초 태의는 이날도 우문호의 상처를 처치하기 위해 찾아왔는데 이 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물어왔다. 하여 탕양이 사람을 보내 원경능을 모셔오게 했다. 원경능이 초 태의에게 말했다.“이 실은 계란 흰자와 같은 물질로 만든 실(蛋白线)이라네. 인체가 흡수할 수 있으니 제거할 필요가 없네.”“계란 흰자로 실을 만든단 말입니까? 대단하군요, 정말 대단해요!”초 태의가 감탄했다.반면 우문호는 몹시 답답해졌다.“허면 본왕은 앞으로 이 실들과 생사를 함께 해야 한단 말이야?”“그렇죠, 실이 살면 당신도 살고, 실이 죽으면 당신도 죽어요.”원경능이 비웃으며 말했다. 이틀 동안 두 사람은 그나마 유쾌하게 지냈기에 가끔 서로를 비꼬기도 했다.서일은 초 태의의 의술에 탄복하고 있었다. 하여 왕야의 상처를 처리한 틈을 타서 급히 그에게 질문했다.“태의, 제가 요즘 몸이 좀 불편합니다. 혹시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어디가 불편한가, 서 시위(徐侍卫)?”초 태의는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는 서일이 일개 왕부의 시위라 하여 얕보지 않았다.“요즘 자꾸 졸립니다. 머리도 좀 멍하고요. 방귀도 잘 나오는데, 냄새는 어찌나 독한지. 참, 입 냄새도 심합니다. 머리도 기름지고 엉덩이에 종기(疙瘩)도 많이 났습니다. 태의, 안쪽으로 들오시면 제가 종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정말 끔직합니다….”이 말을 하며 서일이 태의를 병풍 뒤로 이끌었다.병풍 바로 앞에 앉아 있던 원경능은 서일의 옷 벗는 소리가 들려오자 조금 어색해했다.우문호가 병풍 뒤에 대고 화를 냈다.“서일, 네 방으로 꺼진 후 옷을 벗어라.”병풍 안쪽에서는 서일의 긴 방귀소리가 전해졌다. 소리는 매우 규칙적이었는데 마지막에는 거의 폭발에 가까운 소리를 끝으로 뚝 멎었다.“바로 이 냄새입니다. 태의. 혹시 제가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닙니까?”서일은 대놓고 우문호의 분노를 외면하고 있었다. 태의가 코를 틀어막고 뛰쳐나오며 말했다.“됐네, 서 시위. 자네가 무슨 병인지 알겠어. 자넨 비장이 상해서
태의가 진료를 마치고 나온 후에야 경후는 태의와 서일을 이끌고 대청에 가서 차를 마셨다.경후가 서일에게 넌지시 물었다. “왕야의 상처는 괜찮아졌는가?”“경후 덕분에 왕야께서 많이 좋아지셨습니다.”서일은 밖에서는 그래도 신분에 걸맞게 행동했다.“그럼.....”경후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왕비는 친히 왕야를 돌보는 것인가? 본후(本侯)의 딸은 저택에서 너무 떠받들며 키웠던 터라, 왕야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모르겠네?”“왕야는 한번도 왕비에게 화를 내신 적 없습니다.”서일은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해댔다. 이건 탕양이 시킨 것이었다. 그는 만약 경후가 왕비와 왕야의 관계가 안정됐다는 걸 알면 자연히 왕비를 너무 못살게 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가?”경후는 그다지 믿지 않았다. 하지만 하인도 왕비가 왕야를 부축하여 집안에 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고 말했었다. 설마 원경능이 정말 초왕의 환심을 샀단 말인가? 이때 태의도 귀신같이 그를 도왔다. 그가 수염을 쓸어 내리며 감탄했다. “왕비와 왕야는 참으로 금슬이 좋습니다. 요 며칠 왕야를 치료해줄 때 왕비는 항상 옆에서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원경능이 옆에 있었던 건 몰래 그의 의술을 배우기 위해서 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중의학(中医)에 대해서 잘 몰랐다. 하지만 중의 치료법은 믿고 있었다. 필경 오랫동안 약물연구를 해온 지라 예전에도 약초에서 성분을 추출해 중약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다.”말라리아(疟疾)와 홍반성 낭창(红斑狼疮)을 치료하는 아르테미니신(青蒿素)도 제비쑥(青蒿)에서 직접 추출해내거나 제비쑥에서 함량이 제일 높은 아르테미노산을 추출해 반합성하여 만든 것이다.때문에 이 며칠 그녀는 줄곧 구실을 대서 태의에게서 중의학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경후는 초 태의의 말을 듣고서야 둘의 관계를 믿었다.초왕이 무엇 때문에 원경능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이건 좋은 일이었다. 필경 이젠 저씨 집안의 미움을 산 건 이미
우문호는 서일의 부축임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흰색의 비단옷에 허리는 금과 옥으로 만든 띠를 두르고 있었다. 수려한 얼굴은 태양빛에 둘러싸여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병약한 신선 같았다. 걸음걸이가 너무 느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전신의 힘을 다 소진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힘겹게 걸어온 그는 얼굴을 활짝 펴고 부드러운 눈매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원경능을 바라보았다.“왕야, 건강은 괜찮으십니까?”둘째 노부인이 바삐 문안을 전했다. 난씨도 얼른 일어났다. 좀 놀란 표정이었다. 우문호는 눈길을 원경능의 얼굴에서 둘째 노부인에게로 옮기고 웃으며 말했다. “둘째 노부인 덕분에 본왕이 많이 건강해졌습니다.”말을 마친 우문호가 천천히 원경능에게 걸어가더니 글쎄 볼멘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직도 화 났어? 오늘 날 보러 오지도 않고. 이만 화 푸는 게 어때?”원경능은 그를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뭘 어쩌려고 이러는 걸까? 고의로 화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그녀를 위해서라 하지만, 이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저는 화 안 났어요.”그는 그제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화 나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허면 오늘 본왕과 함께 나가기로 한 건, 같이 갈 건가?”자신이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던가?“지금은 손님이 와서요.” 우문호는 난처한 표정으로 둘째 노부인을 힐끔 보면서 말했다. “그래? 허면 갈 수 없는 것이 아닌가?”둘째 노부인은 바삐 말했다. “시간도 많이 지났으니 이 늙은이는 이제 돌아가야겠습니다.”“이렇게 빨리 말입니까? 더 앉아있다 가시지요?”우문호는 아주 열정적으로 만류하는 듯했다.“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늙은이도 할 일이 있어서요. 나중에 시간되면 다시 왕야....와 왕비를 뵈러 오겠습니다.”둘째 노부인은 말하면서 난씨와 원경병에게 눈치를 줬다.원경병이 말했다. “방금 큰언니가 말했어요. 제가 여기서 며칠 지내도 된다고요.”“그럼.....”둘째 노부인은 우
우문호는 이를 악물고 가슴을 문지르며 속으로 다짐했다. 이 일이 잘 해결되면 반드시 원경능을 암실로 끌고가 미친개를 풀어 그녀를 백 번 물게 하여 오늘의 이 원수를 갚을 거라고. 원경능은 ‘후’하며 숨을 내쉬었다. 온 몸이 다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마음도 아까처럼 불안하지 않았다.하지만 그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보노라니 확실히 조금 전에 너무 심하게 물어뜯은 것 같아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미안해요. 당신을 물어뜯으면 안 됐었는데.”우문호는 그녀의 진심 어린 맑은 눈동자를 보며 마음속으로 자신의 뺨을 내리치며 경고했다. 마음 약해지면 안 된다고. 이 여인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진심인척 할 뿐이라고.“참,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미친 사람처럼 말이에요. 정말 미안해요.”원경능은 계속 사과했다. 낯빛도 의기소침하고 괴로워하는 듯했다. “저도 당신이 절 위해 그런다는 걸 알아요. 절 위해 친정식구들 앞에서 연기도 해주고 제가 술에 취해 집에 가고 싶다고 한 말도 기억해주고. 당신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계속 당신과 맞서기만 했던 것 같아요.”우문호는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됐어. 본왕도 당신하고 따지기 귀찮아.” 원경능은 감격해서 말했다. “저는 진작에 왕야가 도량이 넓은 분이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럼 태후 앞에서도 저를 위해 덕담 많이 해주세요.”“본왕은 당신과 한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않아.”우문호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그에 원경능이 온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왕야.” ‘사내들은 달래기가 참 쉽네. 마구 칭찬해주면 되는군.’우문호도 속으로 자신이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여인과 똑같이 굴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이 못생긴 여인과는.이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니 입궁하는 마음도 그렇게 무겁지 않았다.일년 전에 원경능을 맞이하고 나서부터 매번 입궁할 때마다 그는 기분이 나빴다. 궁의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우문호는 열심히 땅바닥을 쓸었다. 바닥을 쓰는 일은 간단해 보였지만 거기에도 학문은 있었다. 예를 들면 낙엽은 될수록 한 무더기로 모여놓아야 했다. 체적이 커야 바람이 불어도 잘 날리지 않았다. 여러 무더기로 해놓으면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다 날려가 버리고 만다.쓸고 있노라니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도 많이 후련해졌다.“왕야, 난각(暖阁) 쪽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무 위에 말벌둥지가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태워버릴 예정인데 벌들을 놀라게 하지 마십시오. 큰 일 납니다.”상공공이 주의를 주며 말했다. “말벌둥지?”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반문했다. 원경능에게 물어뜯긴 가슴이 아직도 은근히 아팠다. 원경능을 쓸게 했어야 했는데.“네, 이 말벌들은 굉장히 사납습니다. 낮에는 감히 태우지 못했습니다. 태상황이 창문을 닫으려 하지 않으셔서 저녁에만 태울 수 있습니다.”상공공이 말했다.“알겠네.”우문호가 말했다.상공공도 그를 관계하지 않고 태상황을 시중들러 들어갔다.계책이 떠오른 우문호가 탕양에게 명령했다. “가서 왕비를 모셔 오거라. 본왕이 청소하는 곳을 바꾸어 준다고 하거라.”탕양이 말했다. “왕야, 어서방 그곳에는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왕야가 가기에는 좀 부적절 한 것 아닙니까?”. 우문호는 입 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괜찮다. 고사가 거기 있으니 그때 가서 고사더러 좀 주위를 살펴보라 하면 된다. 사람들이 오면 숨으면 그만이다.”탕양이 자리를 떠났다.원경능은 우문호가 자신과 바꾸어 준다는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자신이 창피 당하는걸 막으려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의 호의를 받아 들여야지.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건곤전으로 돌아 왔다. 그는 이미 앞 마당을 다 쓸어놓았다. 굉장히 빠른 속도였다.우문호가 걸어오며 말했다. “본왕이 그대를 생각해주지 않는단 말은 하지 말아. 이 빗자루가 무거우니 당신은 힘이 없어 잘 쓸 것 같지 못해서 본왕이
명원제는 상주서(奏折)를 읽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기 직전에 손 대학사(孙大学士)가 나갔다. 손 대학사는 입이 가볍기로 이름있는 사람이었다. 만약 그가 우문호가 어서방에서 청소하는걸 보았다면 아마 하루가 안돼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들이 다 알게 될 것이다.“고개를 들거라!”명원제의 목소리가 그의 왼쪽 어깨 너머에서 들려왔다.우문호는 걸레를 들고 천천히 돌아섰다. 마치 비파를 끌어안고 절반 얼굴을 가리듯, 억지 웃음을 지어냈다. “부황!”명원제는 입술을 실룩거렸다. 몇 초 응시하다가 자신이 확실히 폭소를 참을 수 있다고 확신하자 냉랭하게 말했다. “못난 놈이 더 못된 짓을 많이 한다더니.”우문호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이것과 못난 놈이 더 못된 짓을 많이 한다는 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목여, 거독 연고(祛毒膏)를 가져다 다섯째에게 발라주거라!”명원제가 명을 내렸다.“거독 연고요?”목여공공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그건 …”“무슨 허튼소리가 그렇게 많은 것이냐?”명원제가 차갑게 말했다.목여공공은 응하며 장롱 속에서 대모(玳瑁) 모양의 작은 상자를 꺼내 우문호 앞에 와서 웃으며 말했다. “왕야 좀 참으십시오. 이 거독 연고는 바르면 좀 많이 따끔거리실 겁니다.”“괜찮네. 본왕은 아픔이 두렵지 않네.”우문호는 마음속으로 조금 감동했다. 부황은 참 자애로우신 분이었다.하지만 왜 목여공공의 눈에 안쓰러움이 스친 것인가?얼마 되지 않아 그는 더 이상 이유를 할 수 없었다. 거독 연고를 바르자 이 아픔이 어딜 봐서 따끔거리는 아픔이란 말인가? 그야말로 가슴에 사무치는 아픔이었다. 마치 하나하나의 바늘이 살을 뚫고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말했다. “살살하게 살살하게!”“이런 아픔조차 견디지 못하다니, 너한테 전도가 있긴 하느냐?”명원제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문호는 막 입 밖에 나오려는 고통의 신음소리를 되삼켰다. 하지만 정말 아팠다. 그는 그제야 왜 목여공공의 눈가에 안쓰
원경능이 청진기를 꺼내 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안 할래요. 황조부를 진찰해드릴게요.”태상황은 익숙한 동작으로 자리에 누워 옷을 거두고 그 차가운 물건이 그의 심장에 놓이기를 기다렸다. 그가 머리를 옆으로 돌려 원경능을 보며 말했다. “과인도 심장소리를 들을 거다.”원경능은 청진기를 그의 귀에 꽂아주며 말했다. “박동소리를 세면서 자세히 들으세요.”태상황은 숨을 길게 내쉬고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이건 한 곡의 자장가 같았다.“얼마예요?”원경능이 일분이 됐을 거라 생각하고 물었다.“쉰여섯이다.”태상황은 이를 들어내고 웃으며 말했다. 이빨이 누랬다.원경능이 청진기를 가져와 들어본 후 말했다. “기준에 달하진 않지만 그래도 많이 진보했습니다.”상공공도 호기심에 머리를 가까이하며 물었다. “이 물건이 재미있습니까? 소인도 들어 보면 안됩니까?”원경능은 웃으며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럼, 귀에 걸고 여길 심장에 대면,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다네.”상공공은 원경능의 지시대로 했다. 그리고는 눈썹을 휘날리며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참 신기하군요.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습니다. 쿵덕 쿵덕 하네요.”그는 매우 아쉬워하면서 원경능에게 돌려줬다. “이 물건은 어디에서 팝니까? 소인에게도 구해주면 안됩니까?”“내가 나중에 물어보고 있으면 하나 구해다 주지. 그럼 상공공이 날마다 책임지고 태상황의 심장소리를 들으면 되네.”“좋습니다!”상공공이 기뻐하며 말했다. 복보가 쪼르르 달려와 원경능의 발 밑에서 꼬물거렸다.원경능은 허리를 굽혀 복보를 끌어안았다. 복보는 혀를 날름거리며 그녀의 손을 핥았다. 원경능은 너무 간지러워 그의 혀를 누르며 말했다. “이 장난꾸러기!”복보는 침을 흘리고 있었는데 아주 즐거운 기색이었다.“복보가 모처럼 이렇게 사람에게 친근하게 굽니다.”상공공이 말했다.“개도 총기가 있어 분별할 줄 아는 걸세.”원경능은 복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지, 복보야?”복보는 멍멍 두 번 짖
귀비가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자 황후와 현비도 계속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함께 몸을 일으켰다. 원경능은 태상황을 부축하며 호숫가에서 거닐었다. 태상황은 조금 피로하여 호숫가 나무의자에 걸터앉았다. 원경능은 그를 위해 겉옷을 잘 여며주었다. 비록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마냥 따뜻하지도 않았다.“됐다. 이렇게 세심하게 할 필요가 있느냐?”태상황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당연합니다. 여기까지 꽤 많이 걸었는지라 땀이 나셨을 겁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시면 안됩니다.”원경능이 말했다.“어린 나이에 잔소리가 많구나.”태상황은 목을 빼고 원경능이 옷을 정리하게 했다. 그렇게 머리를 들자 황후 등이 오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태상황은 눈썹을 아래로 드리웠다.“재미없게 되었네.”원경능은 뒤로 흘끔 보고 나서 바로 곧게 서며 두 손을 늘어뜨렸다. 그녀도 속으로 말했다.‘재미없게 되었네.’황후와 귀비, 현비 세 사람이 출동하였는지라 자연히 많은 궁인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호호탕탕하게 걸어오자, 사람으로 하여금 어화원이 비좁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게 하였다.원경능은 다가가 단정하게 문안인사를 올렸다.“황후마마를 뵈옵니다. 귀비마마를 뵈옵니다. 현비마마를 뵈옵니다.”맞지 않는 문안인사였다. 사실 원경능은 황후를 모후로, 고귀비를 적귀모비(狄贵母妃)로, 현비를 현모비로 불러야 했다. 하지만 태상황이 자리에 있으니 원경능과 그것을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들은 함께 다가와서 인사를 올렸다.“신첩, 태상황을 뵈옵니다.”오늘 태상황은 온화한 영감이었다. 그는 입술에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다들 여기에 있었구나.”황후는 한 걸음 다가가며 공손하게 답했다.“태상황께 아룁니다. 오늘 날이 좋은지라 동생들과 함께 활동하러 나왔습니다. 신체는 괜찮습니까?”“좋지, 좋지 않으면 나와서 산책을 하겠느냐?”태상황은 기력이 충천된 모습으로 말했다.“태상황의 강녕이 바로 북당의 복입니다. 초왕비, 그렇지 않느냐?”현비가 웃으며 말했다. 원경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