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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아... 이 대표님이시구나. 뭐 하실 말씀이라도?”

이청아를 본 유진우가 흠칫 놀라더니 이내 차갑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냥 지나가다가 보이길래 인사나 한 번 하려고 왔어.”

이청아는 본래 설명하려고 했던 말을 그대로 삼켜버렸다.

유진우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엄마의 말을 그녀는 전혀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일 줄이야.

두 사람은 이미 이혼한 사이였으나 한때 남편이었던 사람이 이렇게나 빨리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영문 모를 불편함이 몰려왔다.

“진우 씨, 친구분이세요?”

조선미가 넌지시 물었다.

여자의 민감한 직감으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상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적의를 말이다.

“전처예요.”

유진우가 대답했다.

“네?”

순간 조선미가 눈썹을 치켜들더니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조선미라고 해요.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가 친절히 손을 내밀었다. 그 살짝 올라간 아래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이청아가 예의를 차리며 대답했다.

그녀는 자신감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조선미가 자신을 압도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이 여자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

몸매, 얼굴, 분위기 어느 곳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인 절세미인이었다!

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본능적으로 끌리게 될 것이다.

“유진우, 나 예전엔 왜 이 친구분을 본 적이 없었지?”

이청아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네가 예전에 나한테 관심이 있기라도 했어?”

유진우가 담담히 물었다.

그 말에 이청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유진우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받아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유진우, 난 그냥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야.”

몇 초간 침묵한 뒤 이청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

유진우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에선 말하기가 좀 그래. 날 따라와.”

이청아가 말을 마친 뒤 몸을 돌려 구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유진우가 따라오고 있지 않음을 인지한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할 말이 있으면 여기에서 해. 괜히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면 안 되잖아.”

유진우가 말했다.

“꼭 그래야겠어?”

이청아가 다시 이마를 찌푸렸다.

그녀는 지금 화해를 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는 왜 조금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는단 말인가.

또한 매정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니 이제 그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이 대표, 우린 이미 이혼했어. 높으신 분께서 이젠 나 같은 사람과는 어울리면 안 되지. 이 대표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잖아.”

유진우가 말했다.

“나 정말 이해가 안 돼.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이청아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유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건 다 네 선택이었잖아?”

“난...”

이청아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렇다. 그녀의 주도하에 한 이혼이다. 이제 와 얘기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마음속의 이 찝찝함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더욱이 유진우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 이토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지...

이상하게도 그런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더 강렬해져만 갔다.

“유진우, 네가 나 미워하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또한 난 이미 너한테 충분히 기회를 줬었어!”

이청아의 목소리가 점점 더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워낙 도도한 성격인지라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도 그런 그녀와 맞서며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다 내 탓이라는 거야?”

유진우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나 너랑 이런 거로 싸우고 싶지 않아.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 하지만 아직 날 존중하기라도 한다면 내 앞에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나진 말았어야지.”

이청아가 말했다.

“존중?”

유진우의 입꼬리가 삐딱하게 올라갔다.

“그럼 양의성은? 이혼하기 전부터 두 사람은 항상 붙어 다녔잖아? 그런 네가 이제 와 나한테 존중이라는 말을 꺼내?”

“네가 믿든 말든 난 떳떳해.”

이청아가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말했다.

“그래?”

유진우의 얼굴에 조롱 섞인 미소가 걸렸다. 이어 그가 마침 가까이 걸어오고 있는 양의성을 가리켰다.

“이래도 떳떳해? 하하... 나 오늘 떳떳이라는 개념을 다시 배워가는 것 같네.”

두 사람은 분명 사적으로 잦은 만남을 갖는다. 또한 지금 이 순간 함께 파티에 참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뻔뻔하게 떳떳하다는 말을 입에 올리다니.

정말이지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뭐라고?”

이청아가 이마를 찌푸렸다. 억울했지만 애써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첫째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둘째로는 말한다고 한들 상대가 믿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청아 씨, 아까까지만 해도 저쪽에서 즐겁게 얘기 나누고 있던데 언제 여기에 온 거예요?”

양의성이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매혹적인 자태의 조선미를 본 순간 그는 제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의 눈동자에서 욕망과 탐욕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버려 호흡조차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름답다! 너무나도 아름답다!

그는 지금까지 이토록 아름다운 미인은 본 적이 없다!

이청아를 깨끗하고 맑은 물에 비유한다면 조선미는 활활 타오르는 뜨거운 불이다.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의 영혼까지 빨아들일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요물 그 자체였다.

몇 초가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양의성은 서둘러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시선을 거두었다. 미녀 앞에서 적나라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인상을 좋게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말이다.

“유진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유진우를 본 양의성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더욱이 조선미와 유진우 두 사람의 다정해 보이는 모습을 보니 그의 두 눈은 실핏줄이 터진 듯 시뻘겋게 물들었다.

젠장!

저 자식이 무슨 능력으로? 이청아와 이혼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사이에 또 저런 절세미녀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내가 왜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데?”

유진우가 반문했다.

“청아 씨한테 듣기로 넌 청성 그룹에서 말단 직원에 불과하다던데 네 신분으론 여기에 들어올 자격이 안 되지 않아? 설마 몰래 들어가려고?”

양의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한테 자격이 있든 없든 네가 상관할 문젠 아니야.”

유진우가 차갑게 말했다.

“하하. 내가 제대로 맞췄나 보군.”

양의성이 차갑게 웃으며 조선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봐요, 예쁜 아가씨, 속으셨어요. 옆에 서 있는 이 사람은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라 사회 가장 밑층 조무래기일 뿐이에요. 당신의 아름다운 용모에 어울릴만한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는 필시 유진우가 무슨 꾀를 써 여자를 속였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어떻게 저런 미인을 옆에 둘 수 있겠는가?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좋아하면 되니까요.”

조선미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아가씨의 조건이라면 충분히 명문가 도련님과도 결혼할 수 있을 텐데 왜 하필 이런 자식을 만나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해요?”

양의성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명문가가 뭐 그리 대단한가요? 제 눈엔 유진우 씨야말로 가장 훌륭한 남자인걸요.”

조선미가 유진우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훌륭한 남자라고요?”

양의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데 대체 어디가 훌륭하다는 거죠?”

“적어도 당신보다는 잘 생겼어요.”

조선미가 단호히 말했다.

“흥! 잘 생긴 게 무슨 소용이 있어요. 얼굴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양의성이 어두운 얼굴로 경고했다.

“아가씨, 내 말 잘 새겨들어요. 계속 그렇게 사리 분별하지 못한다면 돈도 몸도 다 빼앗겨버리고 후회하게 될 거예요!”

“돈도 몸도 다 빼앗긴다고요?”

조선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말로 제가 원하는 것인데 이 사람이 받아들일지 모르겠네요.”

그 당돌한 말에 이청아와 양의성은 물론 유진우까지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 여자는 정말 일반인이 감당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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