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혁과의 이혼으로 유명세를 얻은 주제에 이제 와서 능력 있는 여자인 척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스캔들이 끊이지 않는 소은정의 문란한 사생활도 꼬집었다.그제야 소은정은 고개를 들어 남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름답지만 차가운 눈빛에 재벌 2세도 흠칫 뒤로 물러섰다.“네, 무시하는 겁니다.”별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들러붙네.더 이상 남자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소은정은 한유라에게 가기 위해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이대로 물러서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남자는 짜증스런 얼굴로 소은정의 손목을 잡아끌었다.“야,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어? 박수혁한테 버림받은 여자 주제에. 너 같은 중고품한테 관심 가져주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을 것이지. 어디서 도도한 척이야. 아, 너 돈 좋아하지? 야, 얼마면 되는데. 얼마 주면 나랑 마실 거냐...”남자가 말을 끝내기 전에 소은정은 그가 손에 들고 있던 샴페인 잔을 빼앗아 얼굴에 끼얹었다.술 방울이 남자의 머리카락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남자의 고함에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씩 두 사람을 바라보며 수군댔다.소은정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중고품? 요즘 시대에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는 줄 몰랐네요. 정신 좀 차리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술?”소은정은 남자의 행색을 훑어보았다. 로고가 조잡한 명품들, 졸부들이나 입는 옷차림에 소은정은 피식 비웃음을 날렸다.“내가 마시는 술, 네가 살 수나 있을까?”화가 난 듯 그녀를 노려보는 남자와 달리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 소은정은 도도한 여왕처럼 빛났다. 그 누구도 감히 다가갈 수 없는 타고난 귀티가 그녀의 아우라를 감쌌다.하지만 술을 뒤집어쓴 재벌 2세는 이미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돈 좀 있다는 사실 하나로 여기저기서 갑질을 하는 게 일상인 남자는 이런 수모를 견딜 수 없었다.여기서 물러서면 모두의 웃음거리가 될 게 분명했으니까.박수혁한테 걸레짝처럼 버려진 계집애 주제에. 감히...“너... 죽었어!”남자가 이를 악물고 손을
순식간에 일어진 상황에 사람들의 얼굴에도 의아함이 피어올랐다.박수혁과 소은정은 이혼한 사이, 서로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게 당연할 텐데 왜 굳이 나선 걸까?한유라도 부랴부랴 달려와 소은정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야, 괜찮아?”소은정은 침착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실력으로 남자의 허접한 공격 따위는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그저 갑자기 나타난 박수혁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끙끙대며 바닥에서 일어선 남자는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를 갈았다.소은정의 앞을 막아선 남자가 박수혁일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하민호가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왜 끼어들고 난리야?”소은정은 박수혁한테 버림받은 여자라는 걸 모르는 건가? 눈치 없이 누가 끼어든 거야!소리를 지르는 순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에 하민호는 다시 끙끙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강서진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야, 하민호, 두 눈 제대로 뜨고 똑바로 봐. 너 정말 미쳤어?”평소에는 강아지처럼 온갖 아양을 떨어대던 자식이 바로 욕부터 내질러?그제야 강서진의 목소리를 인지한 하민호가 두 눈을 번쩍 떴다.순간, 무표정한 박수혁과 시선이 마주친 하민호는 고통도 잊은 채 바닥을 기어 박수혁 앞으로 다가갔다.“수혁이 형, 여긴 어떻게...”뭐야? 박수혁은 소은정을 증오하는 거 아니었나? 이게 아닌데...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하민호가 다급하게 변명했다.“오해세요. 저 여자가 요즘 주제도 모르고 형에 관한 루머를 퍼트리니까... 제가 대신 복수라도 하고 싶어서... 형은 저딴 여자가 뭘 하든 신경 안 쓰겠지만 전 못 참아요!”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박수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또다시 하민호의 가슴을 걷어찼다.“네가 뭔데 못 참아. 그리고 형? 너 나 알아?”강서진도 쪼르르 소은정에게 다가와 박수혁 편을 들었다.“우리 친구 아니에요. 형은 하민호 저 자식 알지도 못한다고요. 저희가 시킨 게 아니라 저 미친 자식이 제멋대로... 은정 씨, 오해하지 마세요.”박수
참 공짜로 보기 아까운 공연이라는 생각에 소은정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공연에 맞춰주고 싶지 않았다.소중한 인생을 왜 다른 사람의 생쇼를 보는데 허비해야 하지?“자리 옮기자.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얼굴 보는 거 이제 그만할래.”소은정이 한유라에게 말했다. 물론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란 박수혁을 가리켰다.그런 소은정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한유라는 괜히 그녀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게 후회가 되었다. 한유라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은정은 핸드백을 들고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유라가 주차해 둔 차를 끌고 오는 동안 소은정은 조용히 호텔 문 앞에서 기다렸다.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조용한 밤, 소은정은 괜히 하이힐 끝머리를 툭툭 건드렸다.이때 뒤에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은정아, 서민영도 받아야 할 벌을 받았고 우리... 친구라도 하면 안 될까?”소은정에게 다가온 박수혁이 물었다. 지금까지 친구라도 하자며 다가오는 여자들을 우습게 매정하게 쳐내던 그였는데 그 방법을 소은정에게 쓰게 될 줄은...그때 그에게 다가오던 여자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친구라는 단어로 옆에 묶어놓고 싶을 만큼 간절했을까?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소은정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았다. 적어도 그동안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라도 받고 싶었다.게다가 지금까지 두 사람 사이를 막던 서민영까지 사라졌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나 친구 많아. 그리고 난 아무하고나 친구 안 해. 당신 같은 사람과는 친구 같은 거 하고 싶지 않아.”고개를 든 소은정이 비아냥거렸다. 소은정의 확신에 찬 거절에 박수혁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반면 소은정은 박수혁과 친구가 아니라 아예 모르던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설마... 내가 서민영 그 여자 때문에 당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해? 이제 서민영도 사라졌으니 내가 당신을 용서해 줄 것 같아?”소은정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오르고 박수혁의 안색은 무거워졌다.“그게 무슨 말이야?”가
다음 날 아침, 태한그룹,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박수혁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이한석에게 분부했다.“지금 하진건설과의 모든 계약을 중지하고 헐값에 인수해. 며칠 안으로 내 눈 앞에서 치워버려.”뜬금없는 박수혁의 말에 가만히 있던 이한석이 사실대로 보고했다.“대표님, 회의하시는 동안 하진건설이 부도가 났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저택이며 전부 경매로 넘어가고 밤새 야반도주를 했다던데요.”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였네...그리고 자연스레 어제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며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박수혁은 사적인 감정을 누르려 애쓰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한편, 역시 이 소식을 접한 강서진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져 들고 있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소은정 그 여자... 나한테는 그나마 착하게 군 거였구나...그래도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마음, 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일까지 한 번에 복수를 하고 싶어지면 회사 부도가 아니라 먼지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박수혁이 있긴 했지만 요즘 소은정에게 푹 빠진 걸 보면 딱히 도움이 될 것도 같지 않았다.잠깐 고민하던 강서진은 바로 SC그룹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우연준의 보고에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신경 쓰지 말고 예정대로 회의 진행하죠.”“네, 대표님.”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하고...밥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바쁜 하루가 이어졌다.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 그제야 급한 업무를 끝낸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아, 설마 아직도 있어요?”“네, 계십니다.”소은정이 가리키는 게 누구인지 바로 눈치챈 우연준이 대답했다.“회사 커피숍에서 벌써 아메리카노 두 잔, 카페라테 두 잔, 샌드위치 2개를 드셨습니다.”풉, 문전박대 하면 바로 가버릴 줄 알았는데.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의지력 하나는 인정해 줄게.“들어오라고 해요.”“네.”잠시 후, 강서진은 꽃다발까지 들고 조심스레 사무실로 들어왔다.꽃다발? 소은정이 미간을 찌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싫어! 이제 와서 용서해 달라고?꿈 깨!평소에는 온갖 똑똑한 적은 다 하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구는 건지?소은정의 반응에 강서진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 실망한 그가 사무실을 나서려던 순간, 소은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강서진 씨, 몇 번을 다시 찾아온다 해도 그쪽을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평생 그렇게 불안하게 하면서 살아요.”소은정의 멈칫하던 강서진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돌렸다.“은정 씨, 혹시 아직 수혁이 형 좋아해요?”아직 박수혁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다면 지금 다시 재결합을 한다 해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물은 것이었다. 3년 전에 배경 차이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다면 신분이 밝혀진 지금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 도리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강서진의 말을 들은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정말 죽고 싶어요?”이렇게 대놓고 협박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이에 겁을 먹은 강서진은 어색하게 웃은 뒤 부랴부랴 사무실에서 도망쳤다.아직도 좋아하냐고? 그 꼴을 당하고도? 웃기는 소리.SC건물에서 나온 강서진은 바로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사실 나 지금까지 한 번도 형이랑 소은정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하지만 방금 전 그녀의 모습을 본 강서진은 다시 깨달았다. 성격, 포스, 가문의 배경, 외모, 스펙까지 소은정은 완벽했고 강서진은 소은정이야말로 박수혁에게 어울리는 단 한 사람이라는 생각라는 걸.“뭐?”아무렇지 않은 척 차갑게 물었지만 강서진의 말에 왠지 기대감이 차올랐다.하지만 강서진이 한숨과 뱉은 말에 기분은 다시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그런데 이제 다시 잘 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욕설을 내뱉었다.“미친 놈.”강서진이 사무실을 나서고 다시 퇴근 준비하려던 그때, 소은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있을 자선 파티에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아직도 소은해와 소은정의 사이를 의심하는
얼마 전 귀국한 허하진은 오늘 경매가 국내에서 참석한 첫 행사였다. 물론 박수혁의 옆에 앉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경매장에서 박수혁을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3년 전에는 소은정에게 빼앗겼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박수혁을 내 남자로 만드리라 칼을 갈고 있었다.허하진의 말에 박수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랫동안 박수혁을 모신 이한석은 바로 그의 언짢음을 눈치채고 물었다.“대표님, 불편하시면 저랑 자리 바꾸시죠.”이한석의 제안에 박수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한석이 박수혁이 원래 앉았던 자리에 착석했다. 옆에서 허하진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이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하늘이: 박수혁 옆에 앉은 여자 말이야. 트윈즈 엔터 사장 딸 허하진 아니야?”허하진?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소은정이 답장했다.“글쎄. 허하진이 누군데?”한참 뒤에야 소은정은 허하진이 누구였는지 떠올랐다. 엔터 업계를 꽉 잡고 있는 트윈즈 엔터 대표 허강운의 딸 허하진, 평소에 워낙 박수혁과 결혼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닌 탓에 그녀가 박수혁을 짝사랑하는 걸로 재벌 2세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하지만 박수혁에게 무참하게 차인 뒤 해외로 성형까지 했지만 그 사이에 소은정과 박수혁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굉장히 슬퍼했다는 사실을 소은정도 건너 건너 들어 알고 있었다.“하늘이: 얼굴 뜯어고치는데 몇 억은 퍼부었다더라. 저 턱 좀 봐... 아주 종이도 뚫겠어.”문자와 함께 김하늘이 “뜨헉!”하는 듯한 이모티콘을 보내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곧이어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소은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커프스단추였다.드디어 커프스단추 경매가 시작되었다.시작 가격 2천만 원, 아무리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지만 커프스단추 치고는 이미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다. 소은정의 옆에 앉아있던 유준열이 팻말을 들었다.“2500만원.”“3000만원.” ......어느새 6000만원까지 올
소은정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다시 전방을 주시하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 그깟 단추 하나 양보하는 것쯤이야.“2억!”낙찰을 알리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싱겁게 끝난 대결에 실망스러우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천하의 박수혁이 이렇게 쉽게 물러난다고?한편, 소은정은 그제야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고 코웃음을 쳤다. 1억이면 낙찰받을 수 있었던 걸 괜히 끼어들더니 1억이나 더 쓰게 되었다. 일부러 엿 먹이는 건가?소은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유준열이 졸졸 그 뒤를 따랐다.결제를 마치고 커프스단추가 담긴 상자를 받은 소은정은 바로 옆에 있는 유준열에게 건넸다.“받아요.”“네?”유준열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2억이나 쏟아부은 커프스단추를 이렇게 쉽게 선물한다고?“선배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온 거 알아요. 오늘 많이 지루했죠? 그래도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받아요.”“아,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렇게 귀한 걸 제가 어떻게... 괜찮습니다.”“아니요. 유준열 씨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꿈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말에 꽤 감동을 받은 소은정이었다.이때,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소은정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유준열이 또다시 거절하려 하자 소은정은 억지로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든가요. 나 이 정도 돈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이에요. 민망하게 만들지 말고 받아요.”이때 소은해와 김하늘도 대기실로 들어왔다.“박수혁 대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가던데. 싸웠어?”김하늘이 질문에 유준열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대기실에는 저와 은정 씨뿐이었는데요?”방금 전 들려온 인기척을 떠올린 소은정은 대충 상황을 눈치챘지만 역시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했다.“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김하늘이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소은해, 유준열에게 인사를 전한 뒤 김하늘을 따라나섰다.“박수혁이 그렇게
방금 전, 대기실로 들어가려다 소은정이 유준열에게 한 말을 듣고 이미 화가 날 때로 난 박수혁이 억울하게 허하진이 뿌린 주스를 맞고 만 것이다.분위기가 싸해지고 소은정을 제외한 모두가 박수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수혁 오빠! 괜찮아요?”허하진이 다급하게 다가갔다.“말끝마다 오빠 오빠, 친한 척 하지 마시죠?”차가운 눈빛으로 허하진을 노려보던 박수혁은 소은정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안절부절못하던 이한석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한편, 박수혁의 말에 허하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 앞에서 박수혁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결혼을 할 수도 있다며 온갖 허풍을 떨어댔는데 박수혁의 말로 모든 게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허하진은 텅 빈 유리잔을 부숴버릴 듯 꽉 부여잡으며 소은정을 노려보았다.“풉, 지금이라도 따라가서 자기소개라도 하지 그래요?”막타를 날린 소은정도 김하늘과 함께 자리를 떴다. 요주의 인물들이 사라지자 주위의 연예인들은 어떻게든 허하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잠시 후, 무대 위에 오른 MC가 형식적인 멘트를 내뱉더니 유준열을 언급하며 인사라도 해달라고 요청했다.물론 경매에 참석한 연예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소은해였지만 워낙 톱스타인데다 제멋대로인 그를 건드릴 수는 없으니 요즘 핫하면서도 신인인 유준열이 타깃이 된 것이었다.유준열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무대에 올라 형식적인 인삿말을 건넸다. 하지만 MC는 이대로 유준열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 짓궂은 질문을 쏟아냈다.“유준열 씨,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팬분들까지 가장 궁금할 질문일 것 같은데.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 유준열은 싱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MC는 질문을 교묘하게 바꾸어 집요하게 물었다.“아,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드리죠. 오늘 자리해 주신 분들 중, 이상형에 가까운 분 계시나요?”다들 숨죽인 채 유준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속, 잠깐 고민하던 유준열은 정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