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태한그룹,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박수혁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이한석에게 분부했다.“지금 하진건설과의 모든 계약을 중지하고 헐값에 인수해. 며칠 안으로 내 눈 앞에서 치워버려.”뜬금없는 박수혁의 말에 가만히 있던 이한석이 사실대로 보고했다.“대표님, 회의하시는 동안 하진건설이 부도가 났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저택이며 전부 경매로 넘어가고 밤새 야반도주를 했다던데요.”박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소은정, 생각보다 더 빨리 움직였네...그리고 자연스레 어제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며 마음은 더 불편해졌다.박수혁은 사적인 감정을 누르려 애쓰며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한편, 역시 이 소식을 접한 강서진은 왠지 등골이 오싹해져 들고 있던 숟가락을 조용히 내려놓았다.소은정 그 여자... 나한테는 그나마 착하게 군 거였구나...그래도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마음, 전에 자신이 저질렀던 일까지 한 번에 복수를 하고 싶어지면 회사 부도가 아니라 먼지가 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박수혁이 있긴 했지만 요즘 소은정에게 푹 빠진 걸 보면 딱히 도움이 될 것도 같지 않았다.잠깐 고민하던 강서진은 바로 SC그룹으로 달려갔다.잠시 후, 우연준의 보고에 소은정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신경 쓰지 말고 예정대로 회의 진행하죠.”“네, 대표님.”오전 내내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 제안서를 검토하고...밥 한 술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로 바쁜 하루가 이어졌다. 어느새 날이 어둑해지고 그제야 급한 업무를 끝낸 소은정이 고개를 들었다.“아, 설마 아직도 있어요?”“네, 계십니다.”소은정이 가리키는 게 누구인지 바로 눈치챈 우연준이 대답했다.“회사 커피숍에서 벌써 아메리카노 두 잔, 카페라테 두 잔, 샌드위치 2개를 드셨습니다.”풉, 문전박대 하면 바로 가버릴 줄 알았는데. 그래. 다른 건 몰라도 의지력 하나는 인정해 줄게.“들어오라고 해요.”“네.”잠시 후, 강서진은 꽃다발까지 들고 조심스레 사무실로 들어왔다.꽃다발? 소은정이 미간을 찌
소은정은 고개를 저었다.싫어! 이제 와서 용서해 달라고?꿈 깨!평소에는 온갖 똑똑한 적은 다 하던 사람들이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구는 건지?소은정의 반응에 강서진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었다. 실망한 그가 사무실을 나서려던 순간, 소은정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강서진 씨, 몇 번을 다시 찾아온다 해도 그쪽을 용서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평생 그렇게 불안하게 하면서 살아요.”소은정의 멈칫하던 강서진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고개를 돌렸다.“은정 씨, 혹시 아직 수혁이 형 좋아해요?”아직 박수혁에 대한 호감이 남아있다면 지금 다시 재결합을 한다 해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에 물은 것이었다. 3년 전에 배경 차이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했다면 신분이 밝혀진 지금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 도리 수 있을 테니까.하지만 강서진의 말을 들은 소은정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정말 죽고 싶어요?”이렇게 대놓고 협박을 한 건 처음이었다. 이에 겁을 먹은 강서진은 어색하게 웃은 뒤 부랴부랴 사무실에서 도망쳤다.아직도 좋아하냐고? 그 꼴을 당하고도? 웃기는 소리.SC건물에서 나온 강서진은 바로 박수혁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사실 나 지금까지 한 번도 형이랑 소은정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하지만 방금 전 그녀의 모습을 본 강서진은 다시 깨달았다. 성격, 포스, 가문의 배경, 외모, 스펙까지 소은정은 완벽했고 강서진은 소은정이야말로 박수혁에게 어울리는 단 한 사람이라는 생각라는 걸.“뭐?”아무렇지 않은 척 차갑게 물었지만 강서진의 말에 왠지 기대감이 차올랐다.하지만 강서진이 한숨과 뱉은 말에 기분은 다시 바닥까지 곤두박질쳤다.“그런데 이제 다시 잘 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짜증스레 전화를 끊은 박수혁이 욕설을 내뱉었다.“미친 놈.”강서진이 사무실을 나서고 다시 퇴근 준비하려던 그때, 소은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저녁에 있을 자선 파티에 함께 참석해야 한다는 소식이었다.아직도 소은해와 소은정의 사이를 의심하는
얼마 전 귀국한 허하진은 오늘 경매가 국내에서 참석한 첫 행사였다. 물론 박수혁의 옆에 앉은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경매장에서 박수혁을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다가간 것이었다. 3년 전에는 소은정에게 빼앗겼지만 이번에는 어떻게든 박수혁을 내 남자로 만드리라 칼을 갈고 있었다.허하진의 말에 박수혁은 아무런 대답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랫동안 박수혁을 모신 이한석은 바로 그의 언짢음을 눈치채고 물었다.“대표님, 불편하시면 저랑 자리 바꾸시죠.”이한석의 제안에 박수혁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한석이 박수혁이 원래 앉았던 자리에 착석했다. 옆에서 허하진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이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하늘이: 박수혁 옆에 앉은 여자 말이야. 트윈즈 엔터 사장 딸 허하진 아니야?”허하진? 미간을 살짝 찌푸리던 소은정이 답장했다.“글쎄. 허하진이 누군데?”한참 뒤에야 소은정은 허하진이 누구였는지 떠올랐다. 엔터 업계를 꽉 잡고 있는 트윈즈 엔터 대표 허강운의 딸 허하진, 평소에 워낙 박수혁과 결혼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닌 탓에 그녀가 박수혁을 짝사랑하는 걸로 재벌 2세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쫙 퍼져있었다.하지만 박수혁에게 무참하게 차인 뒤 해외로 성형까지 했지만 그 사이에 소은정과 박수혁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굉장히 슬퍼했다는 사실을 소은정도 건너 건너 들어 알고 있었다.“하늘이: 얼굴 뜯어고치는데 몇 억은 퍼부었다더라. 저 턱 좀 봐... 아주 종이도 뚫겠어.”문자와 함께 김하늘이 “뜨헉!”하는 듯한 이모티콘을 보내자 소은정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곧이어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소은정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커프스단추였다.드디어 커프스단추 경매가 시작되었다.시작 가격 2천만 원, 아무리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라지만 커프스단추 치고는 이미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다. 소은정의 옆에 앉아있던 유준열이 팻말을 들었다.“2500만원.”“3000만원.” ......어느새 6000만원까지 올
소은정을 바라보던 박수혁은 다시 전방을 주시하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마음에 든다면 그깟 단추 하나 양보하는 것쯤이야.“2억!”낙찰을 알리는 망치 소리가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싱겁게 끝난 대결에 실망스러우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천하의 박수혁이 이렇게 쉽게 물러난다고?한편, 소은정은 그제야 박수혁을 힐끗 바라보고 코웃음을 쳤다. 1억이면 낙찰받을 수 있었던 걸 괜히 끼어들더니 1억이나 더 쓰게 되었다. 일부러 엿 먹이는 건가?소은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고 유준열이 졸졸 그 뒤를 따랐다.결제를 마치고 커프스단추가 담긴 상자를 받은 소은정은 바로 옆에 있는 유준열에게 건넸다.“받아요.”“네?”유준열의 두 눈이 커다래졌다.2억이나 쏟아부은 커프스단추를 이렇게 쉽게 선물한다고?“선배 부탁이라 어쩔 수 없이 나온 거 알아요. 오늘 많이 지루했죠? 그래도 곁에 있어줘서 고마웠어요. 그러니까 받아요.”“아,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렇게 귀한 걸 제가 어떻게... 괜찮습니다.”“아니요. 유준열 씨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에요.”꿈을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다는 말에 꽤 감동을 받은 소은정이었다.이때,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소은정은 딱히 개의치 않았다. 유준열이 또다시 거절하려 하자 소은정은 억지로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마음에 안 들면 다른 사람한테 선물하든가요. 나 이 정도 돈은 충분히 쓸 수 있는 사람이에요. 민망하게 만들지 말고 받아요.”이때 소은해와 김하늘도 대기실로 들어왔다.“박수혁 대표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나가던데. 싸웠어?”김하늘이 질문에 유준열이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대기실에는 저와 은정 씨뿐이었는데요?”방금 전 들려온 인기척을 떠올린 소은정은 대충 상황을 눈치챘지만 역시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했다.“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김하늘이 소은정의 손을 잡았다.고개를 끄덕인 소은정은 소은해, 유준열에게 인사를 전한 뒤 김하늘을 따라나섰다.“박수혁이 그렇게
방금 전, 대기실로 들어가려다 소은정이 유준열에게 한 말을 듣고 이미 화가 날 때로 난 박수혁이 억울하게 허하진이 뿌린 주스를 맞고 만 것이다.분위기가 싸해지고 소은정을 제외한 모두가 박수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수혁 오빠! 괜찮아요?”허하진이 다급하게 다가갔다.“말끝마다 오빠 오빠, 친한 척 하지 마시죠?”차가운 눈빛으로 허하진을 노려보던 박수혁은 소은정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바로 자리를 떴다. 안절부절못하던 이한석도 바로 그 뒤를 따랐다.한편, 박수혁의 말에 허하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 앞에서 박수혁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결혼을 할 수도 있다며 온갖 허풍을 떨어댔는데 박수혁의 말로 모든 게 거짓이었음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허하진은 텅 빈 유리잔을 부숴버릴 듯 꽉 부여잡으며 소은정을 노려보았다.“풉, 지금이라도 따라가서 자기소개라도 하지 그래요?”막타를 날린 소은정도 김하늘과 함께 자리를 떴다. 요주의 인물들이 사라지자 주위의 연예인들은 어떻게든 허하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화제를 돌렸다.잠시 후, 무대 위에 오른 MC가 형식적인 멘트를 내뱉더니 유준열을 언급하며 인사라도 해달라고 요청했다.물론 경매에 참석한 연예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소은해였지만 워낙 톱스타인데다 제멋대로인 그를 건드릴 수는 없으니 요즘 핫하면서도 신인인 유준열이 타깃이 된 것이었다.유준열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무대에 올라 형식적인 인삿말을 건넸다. 하지만 MC는 이대로 유준열을 보내줄 생각이 없는 듯 짓궂은 질문을 쏟아냈다.“유준열 씨,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과 팬분들까지 가장 궁금할 질문일 것 같은데. 이상형이 어떻게 되십니까?”갑작스러운 질문에 유준열은 싱긋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MC는 질문을 교묘하게 바꾸어 집요하게 물었다.“아,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드리죠. 오늘 자리해 주신 분들 중, 이상형에 가까운 분 계시나요?”다들 숨죽인 채 유준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 속, 잠깐 고민하던 유준열은 정확하
허하진이 다시 매달리려던 그때, 소은정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렇게 된 이상 숨는 것도 의미도 없으니 소은정은 자연스레 나오며 전화를 받았다.“야, 그 근처에 수배범이 나타났대.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기사 보낼 테니까.”소은해가 말했다.“됐어. 내가 알아서 갈 수 있어.”소은정은 두 사람을 자연스레 지나쳤다.“은정아...”하지만 박수혁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내가 데려다줄게.”이 인간이 도대체 왜 그래? 왜 친한 척이야?“오해하지 마. 근처에 수배범이 나타났대.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겨 봐.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연쇄 강간범이라는 소리에 박수혁의 마음은 더 불안해졌다. 순간 스쳐지나는 불안감을 개치한 소은정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뭐야?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별꼴이야.박수혁의 뒤를 따라온 허하진이 소은정을 노려보고 있었다.“괜찮아. 수배범이랑 마주치는 것보다 당신이랑 같이 있는 게 더 끔찍하니까.”단호하게 돌아선 그녀의 뒤에서 허하진이 소리쳤다.“저 여자 뭐야? 자기가 뭘 잘했다고 오빠한테 저래?”박수혁의 호의를 대놓고 거절하니 방금 전까지 그에게 매달렸던 그녀의 꼴이 더 비참하게 느껴져서였다. 저 여자 분명 일부러 저러는 거야.하지만 박수혁의 시선은 여전히 소은정을 향해 꽂혀있었다. 마침 이한석이 운전한 차량이 도착하고 차에 탄 박수혁이 말했다.“얼른 가.”허하진이 목이 터져라 박수혁의 이름을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다.주차장을 나선 박수혁의 차량이 도로를 달리고 거리에 가로등이 몇 개나 고장 난 걸 발견한 박수혁은 왠지 불안한 예감에 더 초조해졌다.이때, 어두운 가로등 불빛 아래, 길가에 세워진 빈 차량이 눈에 띄었다.“소은정 씨 차입니다.”뭐야? 잠깐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데?“차 세워!”다급하게 소리친 박수혁이 바로 차에서 뛰어내렸다. 이한석도 부랴부랴 그 뒤를 따랐다.갓길에 세워진 차량 앞에 소은정과 대머리 남자가 서 있었다. 온몸이 흙투성이인 박수혁은 흉기까지 들고 있었는데 소은정을
박수혁은 피가 묻은 그녀의 팔을 낚아채며 물었다.하지만 소은정은 거칠게 그 손길을 뿌리쳤다.“아니, 내 피 아니야.”말을 마친 소은정은 바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신고까지 했으니 남은 건 경찰에게 맡기면 될 테고 박수혁을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였다.왜 이렇게까지 날 밀어내는 걸까?박수혁이 원망 섞인 눈빛으로 소은정을 바라보았다. 수배범을 완전히 제압한 이한석이 달려오더니 물었다.“소은정 씨, 병원 안 가보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네, 괜찮아요.”소은정이 싱긋 웃었다.박수혁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항상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던 그녀였지만 이한석은 달랐다. 지난 3년간, 이한석은 유일하게 그녀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었다.박수혁의 가족, 친구, 다른 직원들까지 다 그녀를 무시할 때도 이한석만은 그녀를 사모님으로서 깍듯하게 대했다. 3년 동안 그녀가 느낀 유일한 호의였다.“그래도 운전은 안 하시는 게 나을 텐데요. 많이 놀라셨을 텐데 혹시 사고라도 나면... 대리기사라도 부르시는 게...”이한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은정은 침묵하며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한석의 말대로 운전을 하는 건 위험할 것 같고 그렇다고 대리기사를 기다리기엔 시간이 아까웠다.“그냥 제가...”다시 입을 연 이한석은 차가운 시선을 느끼고 바로 입을 다물었다.맞다. 대표님이 아직 옆에 계셨지!“아니,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다주시는 게 어떨까요? 저는 경찰 도착할 때까지 여기 있겠습니다.”그제야 그를 노려보던 시선이 사라지고 이한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휴... 하마터면 잘릴 뻔했네.하지만 소은정은 바로 제안을 거절했다. 박수혁의 도움을 받느니 차라리 여기서 집까지 걸어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소은정이 차에 시동을 걸려 했지만 차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소은정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었다.뭐야? 왜 이래?운전석 창문으로 얼굴을 빼꼼 들이민 이한석이 말했다.“아, 저기... 기름 다
“왜?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정말 말하면 죽여버릴 것 같은 소은정의 표정에 박수혁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시동을 걸었다.하긴, 아직 소은정에게 진 마음의 빚도 다 갚지 못했다.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요즘 보여준 몇 번의 호의로 그의 과거를 용서해 달라고 할 정도로 그는 뻔뻔하지 않았다.연구실에 도착하자 소은정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건물 앞에 서 있는 소은찬을 발견한 그녀는 그를 와락 안더니 소녀처럼 방방 뛰기 시작했다.“정말 성공한 거야?”“응.”소은정의 머리를 쓰다듬던 소은찬은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다가오는 박수혁을 발견하고 고개를 까닥했다.품에 안겨 소은찬의 온기를 느끼던 소은정이 물었다.“그런데 왜 나와있었어?”“너 기다렸지. 들어가자.”한눈에 봐도 서로를 향한 애정이 뚝뚝 흘러넘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박수혁은 질투인지 미련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가슴이 답답해졌다.연구실에 들어가자 역시 잔뜩 흥분한 표정의 임춘식이 말했다.“소 대표님, sunner이라는 친구 어디서 데리고 오셨어요? 정말 대단하던데요!”“그게 무슨 말씀이세요?”“프로젝트의 가장 어려운 부분을 단번에 해결했어요! 게다가 원래 방안보다 원가도 훨씬 절약할 수 있겠던데요!”잠깐 망설이던 임춘식이 다시 입을 열었다.“저기... sunner 씨 말인데. 저희 회사에 입사시키면 안 될까요? 지금 몸값의 10배, 아니, 100배도 지불할 수 있어요! 저희 회사 지분까지 보너스로 드릴 수 있습니다.”“아니요. 관심 없습니다.”소은찬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소은찬에게 어차피 돈은 숫자에 불과한 것, 높은 연봉으로는 그를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소은정은 임춘식이 괜히 안쓰러워졌다.“sunner 씨는 이미 다른 회사에 입사한 상태예요. 1달간 쉬는 동안만 도와주기로 한 거고요.”“계약은 파기하면 되죠! 위약금은 저희가 내겠습니다!”이 정도 천재라면 얼마를 들여서라도 영입하는 게 맞았다.“한신연구원이에요.”임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