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배현우도 온다고?“근데 오빠는 아마 조금 늦게 올 거예요. 오빠가 평택에 갔다가 지금 돌아오는 길이어서요. 그렇다고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까 먼저 먹으면 돼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바로 전에 현우 오빠가 갑자기 전화 와서 뭘 먹을지 묻길래 그냥 지아 씨랑 먹는다고 하니까 자기도 오겠다길래 그러라고 했어요. 혹시 불편한 건 아니죠?”나는 빠르게 대답했다. “그럼요! 괜찮죠!”‘정말 괜찮나?’ 사실 조금 불편했다.하지만 이 순수하고 무해한 이 사람을 상대로 불편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다행이네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메뉴판을 나에게 건넸다. “제 것은 이미 다 골랐어요. 같이 밥을 먹는 게 처음이니까 지아 씨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여기 보면서 골라봐요!”그녀는 정말 열정적이고 솔직하고 숨김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봤을 때 그 오만하고 차가웠던 인상과는 정반대였다. 난 그때 그녀가 일어서서 주변을 훑어볼 때의 그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나는 먹고 싶은 요리들을 고른 후 웨이터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이세림에게 말했다. “요즘 너무 바빠서 연락 못 했네요. 죄송해요.”“에이, 무슨! 미안할 필요 하나도 없어요. 바쁜 거 다 알아요!” 그녀의 목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다. “저는 지아 씨가 너무 존경스러워요! 자기 회사를 다 차리고 너무 대단한 거 같아요!”나는 그저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휘청거리며 거의 무너져 가는 회사가 누군가의 존경 대상이 된 게 웃기고 놀리는 거 같았다.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 죄가 없었다. 우리가 주문한 요리들이 나왔고 나는 이세림을 보며 물었다. “정말 배 실장님 안 기다릴 거예요?”“실... 실장님?” 이세림의 눈은 휘둥그레졌지만 곧바로 표정 관리를 하고는 말했다. “아... 기다릴 필요 없어요!”나는 뭔가 잘못 말한 거 같았다. “저... 혹시 뭘 잘못 말한 건가요?”“아... 아뇨! 기다릴 필요 없어요.
나는 거울 속의 신연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짜증을 냈다. “참, 귀신처럼 떡 서서 뭐 하는 건데?”“하! 야, 한지아, 너 진짜 뻔뻔하다! 저 사람 옆에 붙어서 또 뭘 하려고? 네 꼬락서니나 좀 보고 행동해! 이혼녀 주제, 자격 있다고 생각해?”“자격 있는지 마는지는 네가 말해서 소용없어! 너는 입만 열면 욕이지. 좀 말이라도 이쁘게 하면 안 되니?” 나는 말을 마치고는 손을 닦고 뒤 돌아 나갔다. 신연아는 내가 그녀의 마음대로 기죽지 않자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나쁜년. 언제까지 발버둥 칠 수 있나 보자! 언젠간 너도 울게 되는 날이 올 거야. 불행해지는 날이 올 거라고!”신연아의 말이 끝나자 이세림이 마침 화장실로 들어왔고 나와 신연아 사이의 묘한 기류를 느끼고는 바로 내 옆에 서면서 내 팔을 잡고 말했다. “한 대표님, 왜 그러세요?”이세림의 눈길은 악독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신연아를 향했다.신연아는 이세림을 한번 훑고는 앙큼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가씨, 조심해요. 당신 옆에 있는 사람 이래 봬도 꽃뱀이라 언제 그쪽 남자를 뺏을지 몰라요!”신연아의 말은 나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신연아, 너 말조심해! 너무한 거 아니야?”“너무한 건 너겠지!” 갑자기 어디선가 말이 들려왔다. “한지아, 너 꼭 이렇게까지 연아를 괴롭혀야 하는 거야?”신호연은 낮게 말하며 신연아 옆에 섰다. 그러고는 자기의 품 안에 끌어안으면서 말을 이었다.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나오면 나 진짜 가만히 안 있어! 잊지 마, 신흥의 그 공급상들 내 말만 들으니까!”“하! 너 지금 나를 도발하는 거야 뭐야? 야, 네가 남자라면 네가 직접 찾아오던가. 맨날 뒤에서 남이나 이리저리 조종하면서. 찌질하다! 참! 뭐? 네 말만 듣는다고? 네 말만 듣는 공급상들, 나도 필요 없어!”“한지아, 너 그렇게 막무가내로 말하지 마. 신흥을 살리고 싶으면 일단 허심함이나 배우고 와! 아니면 너랑 계약을 체결해도 그저 돈낭비...”신호연의 말이 채 떨어지기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소파에 푹 기대여 천장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쑤시고 힘들었다. 신호연과 이혼만 하면 모든 게 술술 풀릴 줄 알았는데 단 하루조차 제대로 된 휴식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는 듯싶으면서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거 같았다.그리고 신호연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무언가도 함께 나의 길을 가로막는 거 같았다. 전에 했었던 결정들이 진짜 맞긴 한 걸까...회사가 계약을 체결한 건 좋은 일이지만 하나의 족쇄가 되어서 내 목을 졸라왔고 그 족쇄는 나를 꽉 묶어둔 채 그저 수동적으로 앞으로 나가게 했다. 그게 불바다든 어디든 돌아갈 수도 없게 말이다.어머니는 내가 온단 연락을 받았는데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슬그머니 내려와 보았다. 그러고는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마음 아파했다.나는 얼른 내 몸을 일으켜 세웠고 어머니는 내 옆에 와서 살포시 앉았다. “지아야, 많이 힘들지?”“...”“어머니! 우리는 왜...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요...”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어머니는 따뜻하고도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세게 강박할 필요 없어. 끈도 세게 잡으면 끊어지는 거처럼 우리도 너무 강박하면 사람이 미치게 된단다.”“신흥은 제 피땀으로 세운 거예요. 제 모든 걸 바쳐서... 하지만 계속 누군가 그걸 이용해서 저를 압박하고 무너뜨리고 싶어 하고! 저는 절대로 그렇게 되는 걸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더더욱 제가 세운 신흥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고 싶지도 않고요! 남들이 저를 그냥 내버려 두면 저도 가만히 있는데 쟤들이 먼저 시작한 일이니까, 저도 가만히 있을 순 없어요. 원래는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려 했는데 쟤들이 먼저 건드린 거예요!”어머니는 손을 떨면서 말했다. “설마 그 짐승 같은 놈 말이니?”그 말에 나는 ‘아차’ 싶으면서 정신이 확 들면서 벌떡 일어나 안심시켰다. “어머니,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회사는 나름 잘 굴러가고 있어
배현우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전화기 너머로 배현우의 숨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잠깐의 침묵 후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지아 씨는 한참 전부터 저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왜요?”나는 놀라서 전화를 꽉 움켜쥐었다. “아... 현... 현우 씨 저는...”“지아 씨, 이거 어떡하면 좋습니까? 제 인생 책임져요!” 그는 살짝 장난기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 사람이 진짜... 지금이 어느 땐데 이렇게 장난을!’ “아니... 현우 씨... 진짜. 저는 사업에 대해 말하잖아요. 저와의 계약이 혹시 현우 씨의 앞길에 영향 준 거 아니냐고요. 그... 그런거면 우리 계약 해지해요!”“늦었어요!” 그는 딱 잘라서 말했다. “그러니까 지아 씨는 오직 한 갈래 길밖에 없어요. 우리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하는 거요!”나는 자기도 모르게 몸이 이리저리 흔들거렸고 마른침만 삼켰다.그리고는 그는 작게 속삭였다. “잤어요? 저 보고 싶지 않아요?”나는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고 속으로는 너무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충동을 겨우 참아가며 말했다. “현우 씨 내일 출장 간다면서요. 지금 너무 늦었어요...”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심장은 나사라도 빠진 듯 미친 듯이 뛰었고 숨쉬기가 어려워지며 손에서 땀이 났다. 나는 침묵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그...”“그럼 얼른 쉬어요!”배현우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내뱉기 그렇게 힘들었는데 배현우는 이성적으로 딱 잘라서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나는 순간 실망감이 확 들었다. 정말 너무너무 배현우가 보고 싶었고 이 갈망은 억제가 안 될 지경이었다. “제가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려요.” 그는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공허함과 실망감을 느끼면서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그러고는 왜 아까 거절한 건지, 왜 그렇게 억제하면서 진중한 척을 한 건지 나를 탓했다. 생각할수록 더 보고 싶어졌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플 정도로.하지만 나는 그와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신흥의 원 멤버들을 한번 쭉 돌이켜 보았다. 우리 직원의 경우 나는 한 번도 잘못 뽑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은 더더욱 특별한 사람이었고 나와 굉장히 친하고 신뢰도가 높은 사람들이었다. 스파이라... 도대체 누구일까?사무실로 돌아온 후 나는 우선 배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강훈이 알려준 정보가 맞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비행기에 탔는지 전화기가 꺼져있었다.그 후 서강훈이 나를 타일러 주며 말해 준 거와 같이 그 몇 개 공급상들은 연이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나와 장영식은 몰래 계획을 살짝 변경했다. 내가 신흥을 돌보고 장영식이 공급상들과 만나 담판을 하기로 했다. 신호연은 나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을 테니 장영식 쪽은 아마 조금은 무방비 상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영식은 내게 받은 자료를 들고 회사를 나섰다. 그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오직 나만 알고 있었다. 우린 이해월조차 모르게 행동했다.내가 신흥을 인수했을 때 신호연이 옮겨간 프로젝트 외에도 마무리가 흐지부지한 채로 있는 프로젝트가 몇개 있었는데 공급상들은 이걸 빌미로 삼아 소란을 피웠다. 하지만 그들이 소란을 피우든 말든 나와 이해월은 조용히 쉬지 않고 대형 공급상들의 스캔들만 열심히 수집했다.이미연은 또 한 번 우리를 도와주며 그녀의 조력자들까지 불러다 주었다. 그들의 도움으로 나는 이 몇 년간 신호연이 협력할 때 했던 은밀한 거래의 흔적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겉으로 보기의 우리 신흥은 엉망진창이었다. 소문에는 우리 신흥이 파산 직전이라고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사무실은 아주 지저분했고 새로 온 대표는 어디 갔는지 모르며 나조차 회사에 코빼기도 안 삐쳤으니까.나는 회사에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 회사의 가장 오래된 직원인 건이에게 모든 사무를 쥐여주었다.본명은 채형건이고 나는 그를 건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이 굉장히 허심하고 야무져 몇 년간 항상 그에게 창고 관리를 부탁했었다.
“알았어. 오면 다시 얘기해.” 대충 얘기하고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갑자기 나한테 묻는다. “한 대표, 혹시 천우 그룹 주인이 바뀐다는 소문 들었어?”“뭐라고...?” 흠칫 놀랐다. 심장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릴 만큼 쿵쾅쿵쾅 뛰었고 목소리도 미세하게 떨렸다. “주인이 바뀌어?”이세림의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지만 웃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아니야.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 빨리 갈게. 끊어.”말이 끝나는 순간 전화가 끊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슨 얘기지? 주인이 바뀌어? 이렇게 큰 그룹이 말 한마디에 주인을 바꾼다고?내가 그동안 천우 그룹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 같다.그래서 배현우가 그때 급히 가면서도 나에게 본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 것이였다. 이세림은 내가 정보 좀 알아내려고 전화한 것으로 알고 그렇게 물어본 거였다. 미연이에게 전화하려는 순간 휴대전화 화면에 도혜선이라는 이름이 떴다. 그동안 나는 도혜선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잠금을 풀고 전화를 받았다. “안녕. 혜선 씨.”“지금 시간 되세요? 잠깐 봐요. 할 얘기가 있어요.”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말투에 잠깐 멈칫했지만 바로 답했다. “좋아! 어디서 볼까?”“때마침 점심이니까 같이 점심 먹어요.” 그녀는 잠깐 생각하는가 싶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진흥동 쪽에 맛있는 할머니 집밥이 있어요. 이쪽으로 와요. 기다릴게요.”전화를 끊고 바로 진흥동 쪽으로 갔다. 음식점 이름으로 봐서는 일반 작은 가게인 것 같다. 도착해 보니 역시 규모가 작았고 주차장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가게 맞은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다시 길을 건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가 크지 않았지만, 내부는 아주 깨끗했다. 도혜선이 보이지 않아 전화하려는 순간 입구 왼쪽 비좁은 계단 위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아 언니!”살짝 고개를 돌려 위쪽을 보았다. 도혜선은 세 계단 내려와서 나를 행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위층에는 룸이 여러 개 있
도혜선의 생각을 듣고 싶어 직접 얼굴을 보며 물었다. 소문이 아닌 확실한 정보였다. “내 말은 형원 그룹은 못 건드려요. 하지만 신호연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도혜선은 음험한 웃음을 보였다. “이번에 지아 씨와의 이혼소송 때문에 불만이 엄청 많이 쌓였을 텐데 지아 씨가 화려한 복귀를 할 수 있게 보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이 자식 일단 힘만 좀 생기면 첫 번째로 지아 씨 망하게 할 준비를 할 거예요!”“그건 맞아요. 안 그래도 지금 여러 공급업체와 계속 뒤에서 수작 부려서 요즘 편한 날이 없어요”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도혜선이 그때 그 일 때문에 신호연에 대한 화가 많이 나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 인간들이 한 짓이니 욕먹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면 앉아서 한 대 맞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거예요? 그래서 내가 묻잖아요. 신흥에서는 무슨 방법이 없어요?” 도혜선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지아 씨. 날 친구로 생각하든 안 하든 상관없지만 신호연과 관련된 일은 무조건 도울 거예요.” 싸울 준비를 하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는 도혜선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요.”그러나 신흥의 내부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속사정을 도혜선까지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제가 있는 동안은 신흥건재가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지 않을 거예요!”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천우 그룹은 무슨 일이에요? 왜 갑자기 힘들어진 거예요?” 나는 도혜선을 보며 물었다. 도혜선이 비지니스를 안 한다고 쉽게 보면 안 된다. 그 어떤 사업가보다 더 프로패셔널하다. 강 건너 불구경까지도 사건의 경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룹재단이 해외에 있다 보니 구체적인 내막은 아무도 몰라요. 근데 주인이 바뀌는 건 확실해요. 얘기가 나온 지 좀 됐어요. 근데 회사기밀을 철저히 숨기고 있어서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어요.” 도혜선은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러면 우리가
내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유빈을 향해 물었다. “요 며칠 별일 없었어?”“하... 말도 마세요. 이 새끼들 정말 장난 아니에요.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정말... 이 새끼들이랑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입이 아파요. 신호연에게 가서 받으라고 백 번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어요. 본인들은 누가 누군지 모른다면서요.”“수고했어. 유빈 씨.” 내가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티를 내기 위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계속 얘기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에게 상황 설명을 정확하게 해 줄 수 있을까?”“한 대표님. 신호연은 진짜 남자도 아니에요. 법원에서 이미 판결이 났는데 인정을 안 하잖아요. 우리는 그냥 공급업체들과 빨리 얘기해서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해요. 대책 좀 내주세요.”“글쎄... 아니면 지금 손에 있는 프로젝트들 전부 다 다른 곳으로 돌릴까? 그렇게 하면 남는 건 없지만 프로젝트 진행 보장도 있고 우리가 걱정할 필요도 없잖아.” 답답해하는 그의 얼굴을 보며 계속 얘기했다. “아는 사람 좀 있어?”유빈은 아쉬운 척 연기했다. “ 정말 그렇게 결정하실 거예요?”“아니면 어떡해? 계속 난리칠 텐데. 신호연에게까지 그럴 수 있으면 더 좋고. 해 보라고 해. 정면으로 승부를 겨뤄보자고!”유빈은 피식 웃었다. “정의는 승리한다고 했어요! 제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인지 그 누구보다도 신호연은 잘 알아요!”잠깐 머뭇거리더니 유빈은 계속해서 물었다. “저희 다음 스텝은 어떻게...?”“가는 대로 가보지 뭐.” 말은 대충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세상의 모든 욕을 다 퍼붓고 있었다. 너에게 다음 계획을 알려줄 만큼 내가 멍청하지 않아!“요 며칠 장 부장님도 안 보이시던데 혹시 어디 출장 가셨나요?” 이건 신연아가 궁금해했던 내용을 유빈에게 물으라고 시킨 것이다. “본가에 내려간다고 며칠 휴가 냈어. 지금 제일 중요한 타이밍에 이러네.” 나는 불만 섞인 말투로 대답했다. “유빈 씨. 지금 재촉하는 금액 리스트 만들어서 나에게 보내줘. 하나도 빠짐없이 다!”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