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침묵 끝에 나지막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혀, 형... 저 돌아가고 싶어요. 사, 사실 저 이렇게 멀리 나온 거 처음이에요. 인터넷에서 부자 됐다는 말을 듣고 나온 거라고요. 소연 누나 오빠가... 어쩌다가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신 처리해 줄 가족이라도 있잖아요. 제가 그렇게 되면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다투는 소리에 주변은 슬슬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 배에 타기 전에는 아마 예상치 못한 문제였을 것이다.그들은 다 큰돈을 주고 나온 것이었다. 그 길의 끝에 죽음이 있을 줄은 어떻게 알았
강하랑은 인기척을 듣고 서서히 눈을 떴다. 강한 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수염 난 남자는 전과 달리 한 무리의 건장한 남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남자들이 가까워짐과 동시에 강하랑의 심장도 세차게 뛰었다.남자들의 등장에 창고는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좁아졌다. 원래 자려고 누운 사람들은 재빠르게 몸을 일으켜 구석으로 갔다.창고 안의 냄새가 지독했는지 남자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수염 난 남자에게 외국어로 물었다.“이 중에 누구예요?”수염 난 남자는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가볍게 말했다.“얼굴을 가릴 수가 있어야지.
수염 난 남자는 나약해 보이는 사람들이 이런 힘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그들은 하나둘씩 일어난 사람들에 밀려서 창고 밖으로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도 잠깐만 지속되었다.상황은 외국인이 무기를 꺼내며 반전되었다. 평소 가장 큰 일탈이 패싸움이던 사람들에게 피를 보는 것은 단연 무서운 일이다. 칼끝에서 정의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낯선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이런 일도 목숨을 잃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맨손으로 칼날을 당해낼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그들은 슬슬 길을 피했고, 그 길의 끝에는 황소연과 강하랑이
강하랑도 자신이 과연 안전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조금 전의 선택으로 인해 다른 위험 요소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되기도 했다.걱정 끝에 그녀는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보다 위험한 상황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는 전보다 훨씬 깔끔해진 방을 보고서도 확인이 서지 않았다. 단지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추측할 뿐이었다.황소연의 질문에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충 얼버무리며 대답했다.“제 가족 중에 해외에서 사업하는 분이 있어요. 그래서 거래를 제안했죠. 하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그녀가 수염
“뭐라고요?”황소연도 놀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하랑이 미워지거나 하지는 않았다.놀란 한편 그녀는 감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그쪽도 참 불쌍하네요. 이런 곳에 납치당해서 우리 같은 사람이랑 고생하다니요.”이렇게 말하던 그녀는 또 한숨을 쉬면서 말을 이었다.“하아... 역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다르네요. 만약 내 고향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외국인한테 울고불고하며 빌 줄밖에 몰랐을 거예요. 그쪽처럼 다른 방법을 생각할 여유 따위는 있을 리가 없죠. 역시 드라마 속의 연약한 재벌 집 아가씨 연
늘 그랬듯이 황소연은 강하랑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이 세상 대부분 사람이 황소연과 비슷한 출신일 것이다. 그녀는 자그마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고 부모는 대부분 사람이 그렇듯 큰 도시로 일하러 갔다. 그녀와 오빠는 농촌에서 조부모 손에 키워졌다.그녀는 아주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보낸 돈으로 농촌에 새집도 있고, 근처 도시의 고등학교 부근에 집도 마련했다. 그녀와 오빠가 고등학교에 가면 걸어서 등교할 수 있었다.하지만 악몽은 항상 예고 없이 시작된다.돈 좀 벌고 집에 차까지 마련한 다음 그녀의 부모는
그때의 황소연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감사 인사를 하고 오빠와 손을 잡고 한숙희의 집으로 향했다. 다들 한숙희의 집에서 포커 하는 줄 알고 말이다.설 기간이 되면 주변에 화투 치는 사람도 포커 하는 사람도 많아진다. 그중에서 경찰은 판이 큰 것만 잡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은밀하게 놀아서 잡기가 쉽지 않았다.그녀는 돈을 많이 번 아버지가 더 은밀한 곳에서 포커를 한다고 생각했다. 오빠의 안색이 나빠진 것은 아버지가 하루 종일 포커만 해서 그렇다고 여겼다. 그래서 바보 같이 한마디 했다.“설에만 노는 거잖아. 돈을 너무 많이 쓰
트렁크에 짐을 실은 다음 황소연과 오빠는 뒷좌석에 가서 앉았다. 어머니도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 앉으려고 했다.조수석에는 물건이 잔뜩 놓여 있었다. 어머니가 허리 숙여 정리하려는 순간 아버지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뒤에 가서 앉아.”차가운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황소연도 약간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 정도였으니 어머니는 더 놀랐을 것이다.아버지는 뒤늦게 말투를 바꿔서 다시 말했다.“그 많은 물건을 언제 다 정리해? 추우니까 얼른 뒤에 가서 앉아.”아버지의 변명이 과연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머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