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이 한 잔이 수십만 원은 할 텐데 이렇게 그냥 버리면 아깝잖아, 안 그래?”“지금 술 얘기할 때야?”하구봉은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방금 내가 소식을 들었는데 말이야!”“어젯밤 노부인이 당신을 24시간 안에 출국시키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대!”“이제 노부인이 정한 시간까지는 열두 시간 정도 남았어!”“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여기까지 말하던 하구봉의 얼굴빛은 더욱더 낭패스러워졌다.하현은 오히려 이 상황이 흥미로운 듯했다.“만약 내가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천도가 나서겠지!”“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 노부인 휘하의 천하 제일 검객인 천도가 당신의 저승길을 배웅하겠지. 천도는 문주의 실력을 훨씬 능가하는 전설의 신이야!”“간단히 말하자면 당신이 스스로 여길 떠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배웅을 받고 죽은 채로 떠나게 된다는 거야.”“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저승길을 걷고 있을 거라고.”“천도?”하현은 웃으며 손을 뻗어 하구봉의 어깨를 툭 쳤다.“나 대신 이 소식도 좀 전해줘.”“천도인지 만도인지가 날 처단하러 온다면 좀 빨리 서둘러서 오라고 말이야.”“오늘 밤 난 다른 일이 있어서 그를 상대할 시간이 없거든.”...5분 후 달리는 도요타 센추리 안.하구천은 예의 평정심을 되찾은 얼굴이었다.오히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허민설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하 소주, 하구봉은 항상 야심이 많았어. 그렇지 않았다면 어젯밤에 천 리를 마다않고 달려 엄청난 공을 세우려 하지도 않았을 거야.”“조심해야 해.”“지금 당장 하수진을 상대해야 하는데 뜻하지 않게 하구봉에게 칼을 맞을지도 몰라.”“게다가 오늘 하현과 당신이 맞붙는 걸 보고 하구봉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몰라.”하구천은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하구봉이 상석에 앉고 싶어 하는 건 확실해. 그런 소심함으로 누굴 속일 수 있겠어?”“한눈에 다 알아봤다니까.”
하구천이 떠난 그 시각, 하현은 최영하가 준비해 놓은 차에 타고 있었다.그는 우선 잠시 쉴 곳을 찾은 다음 한숨 돌리면서 노부인의 출국 명령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보기로 했다.하지만 차의 시동이 걸리자마자 하구봉이 헐레벌떡 달려와 하현이 탄 차를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하현, 아버지가 당신을 찾아.”하현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왜 날 찾으시는 거지?”하현은 하문천과 몇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서로 떨떠름하고 달갑지 않은 사이였다.게다가 지금 굳이 두 사람이 만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아버지께서 어젯밤 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어 하셔.”“그리고 당신한테 무슨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을까 물어보려고 찾으시는 거야.”“도움이 필요하다면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실 거야.”“그래서 지금 꼭 만났으면 하셔...”하구봉의 표정에 다소 떨떠름해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에게 이렇게 예의를 차려 대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구봉의 말을 들은 하현은 오히려 약간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최영하에게 먼저 가라고 손을 흔든 하현은 하구봉이 준비한 차에 올라탔다....30분 후.차량 행렬이 항성 중심부 번화한 곳에 자리잡은 건물 앞에 도착했다.건물 자체는 큰 편이 아니었지만 위치가 상당히 좋았다.항성 중심부로 주위는 떠들썩하고 화려했지만 안쪽으로 들어오자 다른 세상처럼 차분하고 안정된 곳이었다.항성 중심부 금싸라기 같은 곳에 이런 땅을 차지하고 저택을 지었다는 것 자체가 하문천의 재력과 능력을 말해주었다.하현은 중심부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는 작은 테라스 위에서 서 있는 하문천을 보았다.상인 기질이 강한 하문천은 당나라 복장으로 말끔하게 갈아입은 뒤 직접 차를 우리고 있었다.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하문천은 돌아서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일어섰다.“하현, 지난번 만났을 땐 내가 실례가 많았어. 부디 괘념치 마시게.
하현의 담담한 얼굴에 아리송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하문천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갑자기 껄껄 웃었다.“아, 그래. 그렇지!”“내가 잊고 있었군. 그날 노부인도 자네한테 당했었지!”“하구천은 노부인한테 말하면 자네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그렇다면 하구천이 너무 자네를 쉽게 생각하는 거잖아?”“자네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하수진이 자리에 오르는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야.”“하구천이 오늘 당장 자네를 항성과 도성에서 내쫓고 싶겠지만 보아하니 헛된 꿈을 꾸는 것 같구만.”말을 하면서 하문천은 하현에게 차를 한 잔 더 따라주며 감탄해하는 눈빛을 잊지 않았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 농담도 잘 하십니다. 하구천이 노부인에게까지 도움을 청했으니 그래도 체면은 좀 세워 줘야죠.”“다만 어떻게 체면을 세워 줘야 할지 좀 더 생각해 봐야겠습니다.”“허허, 자네한텐 도통 못 당하겠군그래.”하문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을 이었다.“지난번 만났을 때 자넨 내 얼굴을 때리더니 이번엔 하구천의 얼굴을 때리는구만.”“자네가 뒤에서 어떤 전략으로 사람들을 움직일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하현은 하문천의 말에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문천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르신 한 가지 분명히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전 누구의 뺨을 때릴 의도는 단연코 없었습니다.”“내 얼굴을 때리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반격했을 뿐입니다.”“알겠어, 알겠다구!”하문천은 껄껄 웃으며 재빨리 탁자 밑에서 자료 뭉치를 꺼내 하현 앞에 놓았다.“아무리 하늘을 나는 천도라 할지라도 하현 자네 앞에선 기도 못 펼 거라는 걸 알지만 말이야.”“나한테 마침 이런 자료들이 있으니 자네가 틈이 나면 뒤적거려 보게. 조심해서 나쁠 거야 뭐 있겠는가?”하현은 자료를 받아들지는 않고 가만히 하문천을 곁눈으로 힐끔 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어르신, 천도가 그렇게 무서우십니까? 노부인이 그렇게
하현의 말에 하문천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잠시 후 그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자네, 그런 농담은 집어치우게.”“나 같은 인물이 어떻게 그런 복잡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는가?”“문주가 하수진을 상석에 앉히려는 걸 안 이후로 난 이미 여러 번 구봉이에게 말했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오늘 내가 자네를 오라고 한 것도 다른 생각은 없었네.”“난 단지 자네가 항성과 도성에서 하는 일이 순풍에 돛 단 듯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야.”“어쨌든 우리는 이미 한배를 탄 사이 아닌가?”“안 그런가?”하현은 일어나서 찻잔을 움켜쥐고 손가락을 튕겼다.‘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맞은편에서 멀지 않은 옥상에 교묘하게 가려져 있던 총구가 나타났다.첨단 장비였기 때문에 멀리서도 얼마든지 대상을 조종할 수 있었다.이 모습을 본 하문천의 안색이 급격히 일그러졌다.하현 앞에서는 절대 뭔가를 속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자신이 몰래 잠복시켜 둔 저격수들의 정체를 하현에게 들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돌아서서 하문천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어르신, 이 세상에 바보 천치는 없습니다.”“날 이용하실 수는 있어요.”“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꼭 치러야 합니다.”“가만히 옆에서 구경만 하다가 떨어지는 콩고물이나 먹겠다... 어르신한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군요.”하현은 말을 마치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났다....하현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하구봉은 한숨을 내쉬었다.방금 하문천과 하현의 만남은 짧았지만 하현은 그 짧은 사이에 하문천의 속을 훤히 꿰뚫어 보았다.하문천은 힘없이 앉았고 하구봉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버지, 이해가 안 돼요.”“지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상석을 노려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남들이 싸우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에
하문천은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계속 말을 이었다.“지금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상황은 솔직히 말해서 양측의 싸움이야.”“한쪽은 문주로 대표되는 지금 현재의 실세야. 그들은 현재 항도 하 씨 가문의 가장 많은 자원과 발언권을 장악하고 있지.”“그들은 지금 십 년 전 일을 구실 삼아 하구천을 소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온 힘을 집중시키고 있어.”“그래야 하수진이 상석에 앉을 수 있으니까.”“문주도 그 자리에 몇 년 더 앉을 수 있고 말이야.”“다른 한쪽은 노부인을 필두로 한 장손 일가들이지.”“하구천을 향한 노부인의 애정과 사랑이 끝이 없을 것 같으냐?”“그렇지 않다.”“네 큰아버지도 예전엔 노부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지. 그런데 왜 넷째가 문주의 자리에 앉았겠느냐?”“지금 하구천이 노부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하구천의 능력과 덕행이 뛰어나서 그런 건 아니야.”“가장 큰 이유는 하구천이 항도 하 씨 가문 장손이기 때문이야.”“넷째는 후사가 없어!”“노부인은 항도 하 씨 가문이 순조롭게 다음 세대로 계승되길 바라는 거야.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않고 항도 하 씨 가문 내부에서 이루어지길 바라지.”“하수진은 항도 하 씨 가문 입장에서 볼 때 남이나 다름없어!”“하현은 항도 하 씨 외부 세력이자 하수진을 상석에 앉히려는 가장 강력한 조력자를 대표하는 인물이야.”“노부인은 그래서 하현을 24시간 내에 항성과 도성을 떠나라고 한 거야. 하수진의 오른팔을 잘라 하구천의 지위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서지.”하구봉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아버지, 아버지가 말한 것처럼 하현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에요?”“어젯밤 직접 목격하지 않았느냐?!”하문천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실 어젯밤 일은 아마 문주가 하현을 한 번 시험하기 위해 시킨 일일 거야.”“만약 천 리를 건너 섬나라를 습격하는 간단한 임무도 수행해 낼 수 없다면 하문준의 칼이 될 자격이 없는
”자, 그 얘긴 이제 그만하자.”열변을 토하던 하문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돌렸다.“이번에 천 리를 건너가 섬나라를 급습한 일은 비록 문주가 너한테 시킨 일이긴 하지만 너와 호위대의 공이 적지 않아.”“공로를 치적할 때 네 이름이 오르내린다면 너한테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어.”“그래서 이번 일은 아마도 네가 하현과 함께 주동적으로 움직여야 해.”“만약 그가 너한테 이런 명분을 준다면 넌 공을 세워 이름을 날리게 되겠지.”“만약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너무 강요하지는 마.”“현재로서는 우리가 문주와 한배를 타기로 했으니 하현과 사이가 틀어지면 좋지 않아. 무슨 뜻인지 알겠니?”하구봉은 하문천의 말을 듣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돌아오는 길에 하현과 얘기를 나눴어요.”“하현 말로는 그는 감독일 뿐이고 진정한 공로는 나한테 있다고 했어요.”“그는 이런 작은 공로에는 별로 관심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솔선해서 모든 공로를 나한테 돌린다고 했다구요.”말을 하면서 하구봉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번졌다.그는 항도 하 씨 가문 호위대를 지휘하고 있었지만 가장 부족한 것이 공로였다.이번 일만 공적에 올려지면 앞으로 누가 덤비든 호위대 책임자 자리는 넘볼 수 없을 것이다.간단히 말해 이번 사건은 하현이 하구봉에게 안정제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하현이 정말 그랬다고? 뜻밖이군.”“다른 말은 없었고?”하문천의 얼굴에 흐뭇한 기색이 역력했다.비록 그는 하현이 쉬운 상대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뜻밖에도 하현이 이렇게 큰 도량과 기량을 겸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보통 사람들은 조그마한 공로도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 안달이다.하지만 하현은 마치 자신이 한 일을 세상이 잊길 바라는 사람처럼 몸을 낮추었다.하문천은 더욱 환한 미소로 하구봉에게 시선을 던졌다.“기왕 말이 나온 김에 얼른 문주에게 가서 이 일을 분명하게 말해 두거라.”“그러고 난 다음엔
하문천은 냉담한 기색을 띠며 싸늘하게 조카를 바라보았다.“내가 너한테 몇 번이나 말했니?”“큰일일수록 침착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어?”“무슨 일이 있어도 냉정해야 해!”“그런데...”조카는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멍청한 놈!”하문천은 욕설을 내뱉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봐!”조카는 빠르게 핸드폰 앱을 켜서 가장 위에 있는 뉴스를 눌렀다.“항성과 도성의 풍운아,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었던 하현, 천 리를 건너 섬나라로 가서 십 년 전 진범을 체포하다!”제목은 그냥 보통의 뉴스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지만 항성과 도성의 현재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제목만 봐도 무슨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릴 정도로 명확하고 충분했다.하구봉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내가 한 공로를 빼앗으려는 거야...”“가장 중요한 내 공로를!”“평생 다시 올까 말까 한 내 공로를!”“감히 이 개자식이 이런 식으로 폭로해서 빼앗아가다니!”하구봉은 펄떡펄떡 뛰며 흥분하기 시작했다.도무지 냉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는 원래 이 공로로 호위대 책임자의 자리를 굳건히 하려고 했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세대의 문주가 될 기회도 엿보려고 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지금 이 순간 하구봉은 이 뉴스를 보도한 자들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맞은편에서 태블릿 PC를 들고 있던 하문천의 조카는 사색이 되어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구봉 도련님!”“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하구천이 이 일을 떠벌린 것 같습니다!”“항성일보에 직접 연락해 자세한 내용을 알려줬다고 해요.”“그 과정을 봤는데 세세한 것까지 아주 정확하고 치밀해서 마치 현장을 직접 본 사람 같았어요.”“간단히 말해 이 일은 하현의 공로라는 걸 조금도 숨기지 않았어요!”“탕!”하구봉은 태블릿 PC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이를 갈았다.“
허민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말 속에 단단한 뼈가 박혀 있었다.순간 하구봉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진퇴양난에 빠졌다.하구천 앞에서 감히 자기가 상석을 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자신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구천이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한다는 걸 들키고 싶지도 않았다.순간 분위기는 어색하고 거북하게 흘러갔다.곽영준과 하민석은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받았다.그들이 하구천 앞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해 봐야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일말의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다.하구봉이 하구천을 받아쳐 유리천장을 건드릴 수만 있다면 자신들에게도 아마 조금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하구봉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애써 냉정을 되찾았다.그러자 그는 하구천을 곁눈으로 힐끔 바라보며 말했다.“하구천, 무턱대고 이곳에 온 건 내 잘못이야.”“하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어.”하구봉은 말을 마치며 태블릿 PC를 하구천 앞에 놓았다.“이거, 당신이 항성일보에 제보한 거지?”사람들의 시선이 태블릿 PC로 쏠렸고 모두들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구봉에게 이 공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이 공로는 휘발성 기사처럼 폭로되어 사람들의 뇌리에서 지워질 지경이 되었다.어쩐지 하구봉이 불같이 화를 내며 들이닥치더라니.하구천은 태블릿 PC를 잠시 들여다본 뒤 입을 열었다.“하구봉, 하현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이 기사가 나간 뒤 가장 큰 이득을 본 자는 그 사람이어야 옳아.”하구봉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하현도 개자식이긴 하지만 그가 지닌 한 가지 장점은 말한 대로 한다는 거야.”“그는 자발적으로 이 공로를 나한테 넘겨주겠다고 말했어.”“그렇다면 그가 뒤에서 이따위 소인배 짓을 할 필요가 없지.”“그러니 이 일이 어떻게 하현이 한 짓이겠어?”하구봉은 아직 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