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영이 병실에 도착했을 때 두 명의 의사가 케빈을 둘러싸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환자분, 아직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으니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됩니다.”“아직 붕대를 풀면 안 됩니다.”시영은 이 광경을 보고 날카로운 눈빛을 보이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남자의 얼굴에 한 대를 갈겼다. “누워.”의사는 시영의 행동에 놀라 멍하니 서 있었고 그토록 고집 세고 움직이려던 남자가 모든 동작을 멈추고 순순히 침대에 누웠다.의사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시영은 그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제가 돌볼게요.”그 순간 시영의 미소는 온화하고 밝았으며 방금의 모든 일들이 환상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곧 병실은 다시 조용해졌다.시영은 침대 옆에 앉았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자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의아해했다.시영은 비웃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설마 기억 상실증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겠지?”케빈은 잠시 침묵했다. “아가씨, 오늘 시험이 있지 않나요? 여기 있을 시간이 아니에요.”시영은 멈칫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케빈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케빈, 바보같이 굴지 마. 난 그런 걸 안 믿어.”케빈은 눈앞에 있는 시영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시영의 외모는 예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전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성숙한 여인의 매혹적인 분위기가 넘쳐났다. 그 맑고 투명했던 눈동자조차도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이를 가지고 있었다.케빈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기에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시영은 케빈의 눈에서 무언가를 감지한 듯 이마를 찌푸리며 느닷없이 물었다. “어떻게 다친 건지 기억나?”케빈은 시영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솔직히 대답했다. “산사태로 다쳤습니다.”시영이 17살이 되던 해 그녀는 수학여행으로 해외로 나갔고 불행히도 산사태에 휘말렸다. 당시 케빈은 그녀가 몸을 피할 수 있는 작은 틈을
그 머리핀을 받기 전에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시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시영의 얼굴에는 드문 망설임이 나타났다. 그녀는 바깥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고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시영은 손을 들어 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병실 안의 케빈은 시영의 지시를 따라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케빈은 고개를 돌리며 성숙하고 매혹적인 시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기억을 잃은 건가요?”시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케빈을 쳐다보았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케빈의 눈빛은 안개를 걷어내듯 맑아져 시영에게 낯선 느낌을 주었다.그제야 시영은 사건 이후 케빈이 자신을 거의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케빈은 항상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으며 자신이 그를 욕하거나 때릴 때조차도 아무 말 없이 죽은 듯한 모습이었다.시영은 문득 깨달았다. 사실 케빈도 처음부터 그렇게 죽은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가 점점 무너져 갈 때 그 역시 생기를 잃어갔다.시영은 오랫동안 케빈을 쳐다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쳐다보자 케빈은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그는 지금의 시영이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기억 속의 아가씨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그는 자신이 기억을 잃은 이 기간 동안 무슨 중요한 일이 있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시영은 갑자기 그에게 웃으며 말했다. “케빈 오빠, 좀 괜찮아졌어?”익숙한 호칭, 하지만 다른 사람.시영은 자신이 어색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말을 꺼내니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12살에서 18살까지 그녀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 부모님이 일과 접대에 바쁜 밤들 시영은 항상 케빈의 이름을 불렀다.시영은 자신이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기억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녀의 기억 깊숙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말은 마치 마법의 주문처럼 잠든 기억과 그 밝은 날들을 깨웠다.시영은 자연스럽게 그의 병상에 앉아 손을 들어 케빈의 상처를 만지
시영의 말을 들은 케빈의 눈빛이 흔들리며 의심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분명 그는 자신이 준비한 그 선물을 기억하고 있었다.시영은 케빈의 반응을 보고 그가 기억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시영은 그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꺼내어 그의 눈앞에서 두 번 흔들었다. “봐, 10년이 지났어도 내가 여전히 매일 가지고 다니잖아. 이게 우리의 감정을 증명할 수 있겠지.”케빈은 그 머리핀을 보고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그는 자신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가게에 어떻게 서툴게 들어갔는지, 자신이 카운터 앞에서 소녀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고르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케빈은 몇 달 동안 고른 끝에 결국 이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선택했다. 그는 판매원에게서 그 작은 상자를 건네받을 때 총을 들었던 손에 정교한 무늬가 새겨진 상자가 얼마나 어울리지 않았는지 기억했다.어디에 두어야 손상되지 않을지 몰라 가슴에 넣었던 탄창을 빼내고 그 상자를 조심스럽게 넣어 두었다.케빈은 한 고용병 선배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몸에는 항상 예비 탄창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생명줄이 될 수 있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구할 수 있다고 했다.케빈은 차가운 탄창을 치우고 더 소중한 것을 넣었다. 그것은 바로 시영에게 줄 머리핀이었다.케빈은 그 나비 모양의 머리핀을 쳐다보며 시영에게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걸 받을 때 좋아했었나요?”시영은 잠시 멈췄다가 미소를 지었다. “좋아했어.” 시영은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말했다. “아주 좋아했어.”케빈은 선물을 고를 때부터 불안해하던 마음이 풀렸다. “다행이에요.”비록 표정은 없었지만 시영은 오랜 시간 케빈과 함께 지냈기에 그의 기분이 좋은 것을 알 수 있었다.시영은 손가락으로 나비의 날개를 살짝 문지르며 무심한 듯 물었다. “왜 나비를 선택한 거야?”케빈의 항상 차가운 얼굴에 미소가 살짝 번졌다. “아가씨의 열여덟 살 생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아가씨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어 평안하고 순조로운 삶을 시
시영은 여전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강소진을 데리고 나왔다. 차에 오른 후, 강소진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는 시영을 쳐다보며 참고 또 참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부대표님...”“강 비서가 알아야 할 일이 있어.” 시영이 눈을 뜨며 말했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방금의 소녀의 그리움은 사라지고 차분하고 능숙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강 비서, 명심해. 나와 케빈은 이미 10년 동안 함께 해왔어. 이번에 우리가 사고를 당한 건 그가 나를 구하려다 다친 거야. 알겠어?”강소진의 눈이 크게 뜨며 물었다.“그... 함께 지내왔다는 게 일만 같이 한 거예요, 아니면...”“침대에도 오르고 연애도 했어. 알겠어?”“네, 알겠습니다...”‘세상에, 보디가드 주제에 대체 무슨 수로 부대표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야! 부대표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서 그런가? 진작 알았으면 자신도 좀 더 용기를 냈을 텐데! 이제 부잣집 사위 되는 건 케빈인가?’시영은 강소진의 속마음을 알지 못하고, 가방 안의 나비 머리핀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저녁 7시.케빈의 병실 문이 열렸다.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렸지만 들어온 사람은 시영이 아닌 강소진이었다.강소진은 저녁 식사를 들고 와서 말했다. “부대표님께서 저녁에 약속이 있으셔서 저보고 저녁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식기를 차리면서 강소진은 자신의 월급만큼 비싼 약식을 보며 다시 한번 케빈을 쳐다봤다.속으로 분통이 터졌다. ‘이 녀석 정말 운 좋네!’케빈은 매우 빠르게 식사를 했는데 준비된 요리들을 하나씩 먹어치웠다. 강소진은 식기를 치우면서 국과 밥을 함께 먹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며 속으로 한탄했다.“다른 일 없으시다면 저는 가보겠습니다...”“아가씨의 비서이신 거죠?”강소진은 놀라서 움찔했다. ‘뭐야, 나를 견제하는 건가? 아니면 내가 너무 잘생겨서 날 내쫓으려는 건가?’강소진은 경계하며 말했다. “아, 네, 왜 그러시죠?”“그럼 제가 아가씨와 어떤 관계인지 아시나요?”케빈의 질문은 의문형이었지만 강소
시영의 말투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마치 두 사람이 정말로 10년 동안 함께 지낸 연인 같았다. 하지만 케빈은 무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시영의 팔을 풀어주며 돌아서서 그녀를 보았다.“저... 할 말이 있어요.”시영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금방 다시 밝아졌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렇게 심각해? 이미 말했잖아. 무슨 일이든 나한테 말해도 돼. 우리 사이에는 못 할 말이 없어.”‘제가 민용재가 심어놓은 스파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시영의 눈빛을 마주한 케빈은 도저히 이 말을 물을 수 없었다. 지금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그의 인생에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었다.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하면 이 모든 것이 깨질까 두려웠다.이 모든 것이 거품처럼 사라질 운명이더라도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몇 날 며칠 동안이라도 이 꿈같은 상황을 더 느끼고 싶었다...그래서 케빈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말했다. “아가씨, 저녁은 드셨어요?”시영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케빈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케빈이 방금 한 행동이 이런 사소한 질문을 하려던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그녀는 이를 지적하지 않고 무심하게 침대에 기댔다. “부하 직원이 매입에 실수를 해서 오후 내내 수정하느라 바빴고, 저녁엔 상대방과 식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밥은 거의 못 먹고 술만 많이 마셨어.”“제가 야식을 사 올게요.”케빈이 돌아서려 하자 시영이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녀는 일어나서 웃으며 말했다. “아픈 사람더러 음식을 사 오게 하는 건 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아.”케빈은 아직 이런 친밀한 관계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손을 떼지 않았다. 그는 불편해하며 눈길을 돌렸다. “거의 다 나았으니 이젠 아픈 사람이 아니에요.”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시영의 그윽한 눈빛이 케빈의 탄탄한 팔뚝을 따라 올라갔다. “게다가 병든 남자친구에게 음식을 사 오게 하는 건 내가 마음이 아파서 그래.”케빈은
케빈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시영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그는 방금 이상한 행동을 보인 것이 뭔가를 떠올린 것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을 잃은 후 다시 보디가드의 신분에 충실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만약 10년 후의 케빈이 죽은 물이었다면 10년 전의 케빈은 단단한 돌멩이였다. 시영이가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그는 차갑게 무시했다. 심지어 그녀가 18살 생일에 얇은 옷을 입고 그를 유혹하려 했을 때도 돌아온 대답은 차갑고 냉정한 한 마디였다. “아가씨, 자중하세요.”그의 현재 반응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방금 따뜻해진 그녀의 마음은 다시 차갑게 식었다. 결국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는 케빈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만약 그녀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그는 스스로 그녀와 더 이상 선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시영은 점차 평정심을 찾았다.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를 지나쳐 문을 열려고 했다.하지만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시영은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급하고 초조한 발걸음이었다.시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뒤에서 케빈이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아가씨, 저... 저 기억났어요.”시영은 잠시 멈칫하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혹시 기억이 돌아온 건가?’하지만 케빈이 꺼낸 말은 시영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사실 저는 계속 아가씨를 좋아했어요.”병실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시영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를 들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계속 나를 좋아했다고?’‘말도 안 돼. 케빈은 늘 나를 차갑게 대했잖아.’시영은 고개를 돌려 최대한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말 못 믿겠어. 정말로 나를 좋아했다면 왜 아까 나한테 그렇게 냉정하게 군 거야?”기억을 잃은 케빈은 지금의 시영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는 시영이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힘들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왜냐하면, 저는 아가씨한테 어울리지 않아요.” ‘게다가 저는 배신자예요.’케빈은 잠시 멈추고
사실 케빈 자신도 언제부터 시영을 좋아했는지 몰랐다. 다만 그는 시영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케빈은 시영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목숨까지도.케빈은 시영이가 남학생에게서 받은 고백 편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그녀를 보지 못할 때는 마음이 불안해졌다.하지만 시영이가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을 때 그가 느낀 것은 기쁨이 아닌 두려움이었다.두 사람의 신분은 현저히 달랐을 뿐만 아니라 그는 큰집에서 보낸 사람이기에 그와 시영의 만남은 권력 싸움의 도구에 불과했다.‘아가씨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비열한 배신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실망할까.’결과가 잘못된 것이라면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낫다.그때의 케빈은 시영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저 소녀의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시영은 결국 자신에게서 흥미를 잃을 것이라고 믿었다.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시영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끈질겼다. 시영의 목소리가 늘 그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케빈 오빠.”“케빈 오빠.”때로는 화난 목소리로 때로는 기쁜 목소리로. 시영의 목소리는 그를 묶어두는 그물처럼 그의 마음을 감쌌고 그는 그녀의 포로가 되었다.케빈은 자신과 시영의 결말을 무수히 상상해 보았다. 가장 좋은 결말은 그가 시영을 보호하다가 죽어 모든 죄악과 불필요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다.꿈에서조차도 그는 시영과 연인이 되는 것을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은...병실에서 케빈은 시영을 쳐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히 그럴 수 없었어요. 저는 그저 보디가드일 뿐이에요.”사실 시영은 그의 대답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시영은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그래서 지금도 감히 그럴 수 없다고? 그렇다면 나도 굳이 붙잡진 않을게, 이제 그만하자.”케빈은 엄청나게 당황했지만 여자를 달래는 법을 몰랐다. 주먹
케빈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시영은 예전처럼 그를 졸랐다. “제발 말해줘. 그럼 다시는 이 얘기 안 꺼낸다고 약속할게.”케빈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영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더 과감하게 물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땠어? 열정적이었어, 아니면 순수했어? 혹시... 음란했어?”마지막 두 글자를 말할 때 시영의 발끝이 케빈의 다리를 슬쩍 스쳤다.케빈은 가슴이 답답해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영은 그의 이런 태도에 화가 나서 눈썹을 찌푸렸다.“내가 말하라고 했잖아, 못 들었어?”시영은 방금 자신의 말투가 기억을 잃은 케빈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케빈 오빠, 왜 이렇게 날 화나게 만드는 거야.”케빈은 지금의 시영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든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아가씨였다.케빈은 어렵게 입을 떼어 진실을 털어놓았다. “아가씨께서 꿈속에서 제 방안으로 들어와 어둠이 무섭다며 제 침대에 올라탔어요...”시영은 웃음을 참으며 손가락으로 그의 뜨거운 귀를 살짝 스쳤다. “오빠가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으니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게, 어때?”...잠시 후, 병실의 불이 꺼졌다. 케빈은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끼익- 문이 살짝 열렸고 시영이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케빈이가 일어나 앉아있자 시영은 침대 옆에 엎드리며 말했다.“케빈 오빠, 너무 어두워서 무서워. 오빠 침대에서 같이 자면 안 돼?”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보게 된 시영은 예전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케빈은 자신이 알던 시영을 보는 듯했다. 그는 정말 꿈속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약간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씨, 이건 규칙에 어긋나요.”시영은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 “케빈 오빠, 정말 너무 어두워서 그래. 함께 자지 않으면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시영은 케빈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침대로 올라탔다. 케빈이 반응하기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