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명의 왕비: Chapter 171 - Chapter 180
2734 Chapters
제 171화
“왕야. 뒤뜰에 있는 밀실 안에 고문 도구로 가득찬 밀실을 발견했습니다.” 탕양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보고했다. 탕양이 손짓을 하자 병사들이 고문 도구를 들고 다가와 우문호 앞에 놓았다.고문 도구에는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혜정후는 의아하다는 듯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밀실도 수색을 해야합니까?” 라고 물었다.“나리께서 고문 도구가 왜 필요하십니까?”우문호가 천천히 물었다.“말 안듣는 하인들을 처벌하려면 구형방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후부에 기강이 섭니다.”혜정후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탕양은 마음이 초조해졌다. 저택 곳곳을 뒤졌지만 왕비는 커녕 왕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서일은 제대로 본게 맞는거야? 만약 서일이 잘 못 본것이라면 정말 큰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조부 병사들이 수색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왕야. 개들이 갇혀있던 마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수색했습니다.” 라고 말했다.“개들?” 우문호의 눈빛이 번뜩였다.“뭘 놀라십니까? 본후가 개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개들은 저택을 지키는 용도입니다. 만약 본후가 왕비를 어딘가에 숨겨두고 있다고 생각이 되면 개들이 있는 마당에 가서 찾아보시지요. 허나 개들이 난폭해서 무슨일이 벌어질지는 장담 못하니 조심하십시오.” 혜정후가 말했다.“왕야. 개들이 있는 마당은 병사들에게 가서 찾아보라고 하는게 좋겠습니다.” 탕양이 말했다.우문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그 곳은 본왕이 직접 수색한다.” 라고 말했다. 탕양은 우문호의 뛰어난 무술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우문호라도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한번에 달려든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왕야. 위험합니다!” 탕양이 다급하게 말했다.“괜찮아.” 우문호가 담담하게 혜정후를 보며 “본왕이 후부에서 사고를 당한다면, 후작께서도 후일을 감당하셔야겠죠.” 라고 말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감당할 수 있을까? 우문호는 어찌됐든 왕실의 친왕이다.우문호의 말을 들은 혜정후는 냉소를
Read more
제 172화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우문호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여기저기 피부가 찢긴 스무 마리의 사나운 개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짖어댔다. 개들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했고 금방이라도 우문호에게 달려들 것만 같았다.“왕야 이래도 들어가시겠습니까?” 혜정후가 물었다.“왕야. 안됩니다!”옆에 있던 탕양이 우문호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탕양이 비록 개를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개들의 몸에 난 상처를 보니 금방 얻어 맞은 것이 분명했다. 외부의 자극으로 한껏 예민해진 개들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은 자살 행위와 다름 없었다. 대문을 막 지나자마자 한마리의 개가 우문호에게 달려들었다. 가까스로 공격을 피한 우문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것도 잠시 구석에서 심복이 개들에게 손짓을 하자 개들이 미친듯이 달려와 우문호를 에워쌌다. 우문호는 마당 안쪽으로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었다. 개들이 몇 번 짖어대더니 우문호의 소매와 옷자락을 물어 뜯었다. “왕야 조심하십시오!” 탕양이 소리쳤다.우문호는 탕양의 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짧은 꼬리에 귀를 쫑긋 세운 사나운 개가 포물선을 그리며 번개처럼 우문호의 등을 향해 돌진했다. 우문호는 빠르게 몸을 돌려 피했지만 날카로운 발톱에 긁혀 목 뒤에서 피가 흘렀다. 병사들과 탕양이 우문호를 돕기 위해 들어가려고 하자 혜정후가 그 앞을 막아섰다. “멈추거라. 본후의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마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탕양은 혜정후의 옆에 서 있는 심복이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것을 보았다. 가만보니 심복의 휘휘 소리가 개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후작나리.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고의로 왕야를 해치려 하다니요!” 탕양은 크게 노했다.“고의? 본후가 왕야에게 이미 경고를 했지 않나? 기어이 들어가야겠다고 한건 왕야다.” 혜정후가 오만한 표정으로 탕양을 내려보았다.탕양은 치가 떨리는 표정으로 혜정후를 노려보았다. ‘만약 혜정후에게 사과를 하고 왕야를 마당에서 꺼낸다면, 마당 내부를 뒤질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왕야를 속수무책
Read more
제 173화
혜정후의 눈동자가 살기에 가득찼다. 그는 피에 굶주린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본후가 그날 장부에서 한 말이 기억나십니까? 본후가 네 목숨을 쥐락 펴락 하는 날이 오게 된다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 고통 속에 너를 살게하리라.”혜정후의 몸에서 나던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고, 그의 눈에는 원한이 가득찼다.우문호는 절망감에 빠졌다. ‘원경릉은 죽었겠구나.’어찌된 영문인지 우문호는 자신의 앞날은 걱정되지 않았다. 부황은 언제나 우문호를 못마땅해 왔지만 이러한 일로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확신이 있었다.우문호는 막다른 길에 몰린 짐승처럼 애처롭지만 마지막까지 맹렬하게 싸울 준비가 된 모습이었다.“만약 본왕이 철저하게 조사해 원경릉이 여기에 있었고, 후작의 손에 죽었다는 것을 밝혀진다면, 본왕은 후작의 뼛가루로 원경릉의 무덤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왕야는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되는줄 아시나 봅니다. 왕야는 지금부터 분주히 자기 앞가림부터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바쁘실테니 제 목숨은 나중에 생각하시지요.” 혜정후는 우문호가 가소롭다는 듯 크게 웃었다.우문호는 이가 갈렸다. 우문호 평생에 있어 공주부에서 겪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이런 굴욕을 겪은 적이 었었다.심복이 손을 모으고 앞으로 나와 혜정후 앞에 섰다. “후작나리. 지금 입궁하시겠습니까?”혜정후는 웃음을 멈추고 심복에게 손짓했다. “말을 준비하거라. 그리고 주수보님을 모셔오거라. 본후는 왕야와 함께 어전으로 가서 이 일을 논의해봐야겠다.” “왕야…….”탕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철수하거라!” 우문호가 소리쳤다.탕양은 지금까지 후부에서 일어난 일들이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이 느껴졌다. 경조부 병사들도 우문호의 부름에 황송해하며 길을 나섰다가 지금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재수없는 상황에 처했다.만약 문서 절도 죄가 확정이 된다면 이 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현장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일언반구 없이 모두 철수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는 혜정후
Read more
제 174화
병사들이 달려들자 군참모들도 달려가서 원경릉을 부축했다. 혜정후는 무표정을 지어보였지만 무의식적으로 심복을 쳐다보았다. 원경릉을 본 심복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원경릉이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것을 본 우문호가 황급히 그녀에게 다가가서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웃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원경릉은 몹시 당황해하며 숨을 헐떡였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 같았다. 원경릉은 우문호에게 기대 흐트러질 것 같은 정신을 붙잡았다. “저 사람이 그랬습니다! 황제께서 왕야를 경조부윤에 임명한 이유를 말하라고 나를 납치하고 고문을 했습니다.”원경릉이 혜정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울먹였다.우문호가 몸을 돌려 혜정후를 쳐다보았다.“후작나리.” 우문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드리웠다. “말은 준비되셨겠지요? 입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본왕과 함께 경조부로 가시겠습니까?”혜정후는 굳은 얼굴로 우문호를 노려보다가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수보님을 경조부로 모시지요.”혜정후는 원경릉이 이 자리에 나타난 것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원경릉을 보는 혜정후의 눈 속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지금 이 순간 혜정후는 우문호보다 원경릉을 더 꼴보기 싫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숙여 조용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 듯 그의 품 속에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몇 분 흘렀을까 원경릉를 안고 있던 우문호의 손에 피가 잔뜩 묻어났다. 그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탕양을 불렀다. “탕양. 왕비를 먼저 궁으로 모시거라.”원경릉은 가련한 얼굴을 천천히 들고는 마당 안쪽의 개들을 손으로 가리켰다.“왕야. 혜정후가 개를 풀어 또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으니, 개들도 모두 끌고 가야합니다.”“다 죽여라!” 우문호가 마당의 개들을 보고 소리쳤다.“안돼!” 원경릉이 소리를 질렀다. “안됩니다. 죽여서는 안됩니다.”우문호는 그런 원경릉이 이상하다는 듯 실눈을 뜨고 그녀를 보았다. ‘이 여자 똑바로 서있을 힘도 없으면서, 엉뚱한 소리를 하
Read more
제 175화
“그게 전부입니까?”탕양의 미간이 좁혀졌다.“그게 전부가 아니면?” 원경릉이 머리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듣고 싶은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 머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네요. 맞다! 왕야께 말을 전해주세요. 제가 몸이 안좋아서 바람을 쐬면 안되고, 사람을 보는 것도 힘들다고요.”탕양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일단 경조부로 돌아가자. 왕비에게 나중에 물어보면 돼.’“탕양님!” 원경릉이 돌아서는 탕양을 불러세웠다. “괜찮으시다면, 개들을 신경써주세요.”“왕비님께서 이러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으신다면, 왕야께서 개들을 모두 죽여버릴 수도 있습니다.”원경릉은 탕양의 교활한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내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다 개들 덕분이에요. 개들이 나를 구해줬어요.”험악한 개들 틈을 지나 왕비가 도망쳤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탕양은 그녀의 말이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그럼 왕비의 은인들을 살리기 위해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탕양이 손을 모으고 말했다.탕양이 떠난 후, 기상궁이 들어오더니 원경릉을 보고 놀랐다.“왕비께서 혜정후의 손아귀로 들어가셨다는 말입니까?”원경릉은 기상궁을 보며 “다행히 왕야께서 제때 와서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라고 말했다.“왕비 그렇다면……” 기상궁이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고개를 저으며 묻지 않았다.“그런일 없어요!” 원경릉은 기상궁이 무엇을 묻고 싶은지 알고 단번에 대답했다.원경릉의 단호한 말투에 기상궁의 마음이 놓였다.“저 너무 졸립니다. 한숨 자야겠어요. 기상궁. 만약 왕야께서 부중으로 돌아오신다면, 이쪽으로 오는 것을 막아주세요.” 원경릉이 기상궁의 두 눈을 보며 신신당부를 했다.“알겠습니다.” 기상궁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왕비. 초하룻날은 피할 수 있지만 열다섯날은 피할 수 없습니다.”“괜찮아요. 초하룻날만 피하면 됩니다. 화는 점점 가라앉을 겁니다.” 원경릉은 낙관적으로 대답했다.원경릉은 피곤한듯 팔을 괴고 엎드려 누웠다. 그녀가 바로 누워 자고
Read more
제 176화
원경릉은 머리를 감싸고 곰곰히 생각했다. 그런 원경릉을 보던 우문호가 말을 꺼냈다.“부황에게 보고 안하면 되잖아? 최근 며칠 동안 너가 혜정후 앞에 일부러 얼쩡거렸다고 혜정후의 측근들이 이미 말했어. 네가 그가 남자다운 기질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남장까지 해서 그를 유혹하려고 했잖아. 너는 도대체 머리가 안좋은거냐 아니면 귀신에 씌인거야? 혜정후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그를 자극해? 죽고 싶으면 저기 멀리 가서 혼자 땅파고 누워있으면 될 것이지. 왜 본왕을 귀찮게 하느냐! 지겹다 정말 너란 여자 너무 지겨워! 내가 확 너를 죽여……”화가 잔뜩 난 그를 보고 원경릉은 조용히 말을 끊어버렸다.“혜정후부에 있을 때, 왕야가 혜정후에게 했던 말 기억합니까? 그를 죽여 뼛가루를 내 무덤에 묻겠다는 그 말. 난 몰랐는데 왕야는 나를 많이 사랑하나봐요.” 원경릉은 그의 입을 가장 빨리 다물게 할 방법이 이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역시 이 말을 듣자 우문호는 말을 멈추고 얼굴이 굳어지더니 입꼬리가 마치 중풍에 걸린 환자처럼 씰룩거렸다. “갑자기 뭔 놈의 사랑을 운운하는거야?”우문호와 원경릉이 말다툼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마침 탕양이 그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며 “왕야, 왕비는 다쳤습니다.” 라고 말했다.그제서야 우문호는 원경릉이 다쳤다는 것이 생각났고,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겨 상처 부위로 손을 가져갔다. 그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원경릉은 상황을 알아채고 “그래! 말할게! 말한다고!” 라고 말했다.“오늘은 내가 그냥 넘어가지만, 다음에 자백하지 않으면 곤장을 칠 것이야.” 우문호가 그녀의 팔을 놓고 말했다.원경릉은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우문호에게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자 우문호가 손을 뻗어 원경릉의 귀를 잡아당겼다.“말하라고!”원경릉은 그의 고함에 깜짝 놀라 한껏 움츠러들었다. 그녀는 우문호의 험악한 표정을 보고는 억울하다는 듯 “곧 말할거야.” 라고 말했다.“만
Read more
제 177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말을 잃었다. ‘왕비가 개구멍으로 들어왔다고?’원경릉은 자신이 개구멍을 기어 들어왔다는 사실을 솔직히 말하기 싫었다. “개구멍이 너무 작아서 들어갈 수 없었어! 그래서 담을 넘었어!”“어? 그 개구멍을 제가 봤습니다. 그 개구멍은 왕비 정도면 충분히 드나들 수 있는 크기였는데…….” 서일이 말했다.“쓸데 없는 말은 하지 않는게 좋아요 서일!” 원경릉이 서일을 노려보았다.서일은 억울한 표정으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라고 작게 읊조렸다.우문호는 생각에 잠긴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본왕이 후부로 가는 것을 보고, 왜 도망친 곳으로 다시 돌아온거야?”“반드시 돌아가야지. 만약에 왕야가 경조부 병사들을 데리고 혜정후부로 갔는데 나를 찾지 못한다면 혜정후가 가만히 있겠어? 아마 미친개 처럼 왕야를 물고는 놓지 않을걸?” 원경릉이 말했다.“너는 본왕을 미워했지 않느냐? 본왕이 미친개한테 물려 죽는 것을 바라지 않느냐?” 그녀를 바라보는 우문호의 눈빛에 분노가 사라졌다.원경릉은 우문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기 넘치게 대답했다.“부부가 된 이상 한 배를 탄거나 다름없어. 네가 내 손에 죽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의 손에 죽는 건 용납할 수 없지.”“나가 죽어라!”원경릉의 말을 듣고 열이 뻗힌 우문호가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원경릉은 갑자기 밀쳐지는 바람에 방어할 틈도 없이 뒤로 넘어져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다. “연기 그만해라!” 우문호가 그녀의 정강이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녀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우문호는 화가 난 듯 그녀의 손을 잡아 당겨 그녀를 일으켰다.“아직도 연기를 하느냐?”원경릉은 축 늘어진 채 옆으로 휙 쓰러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연기가 아닙니다. 왕비의 상처가 벌어졌어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탕양이 놀라서 소리쳤다.탕양의 말을 듣고 우문호가 일어서서 보니 침상에 검붉은 피가 묻어있었다.“뭐 하고 있느냐! 당장 어의를 불러라!” 우문호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원경릉은 침
Read more
제 178화
우문호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어의를 보며 말했다.“그녀는 언제쯤 깨?”“왕비께서는 피곤한데다가 피를 많이 흘리셨습니다. 충분한 안정을 취한다면 금방 깨어나실 겁니다.” 어의는 이 말을 마치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이 여자는 정말 골칫거리구나!”우문호는 혼수상태에 빠진 원경릉을 노려보며 “이까짓거로 의식을 잃다니.” 라고 말했다.이런 우문호를 보며 서일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원경릉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혜정후에게 끌려가서 흠씬 얻어맞고도 기회를 살펴 도망을 갔다니, 그것도 모자라 우문호가 위험에 처할 것을 감지하고 개구멍으로 다시 들어와 그들을 구하다니! 이런 용감한 여자가 세상에 어디있겠는가? 만약 일반적인 여인이라면 혜정후에게 납치되어 끌려가는 순간부터 눈물만 펑펑 흘렸을 것이다.“상궁들 보고 시중을 들라고 하고 왕야는 먼저 관아로 들어가시는게 어떨런지요?”서일이 우문호가 또 다시 원경릉을 괴롭힐까 걱정이 되어 돌려 물었다.“됐다. 본왕이 여기를 지킬테니, 자네는 왕비가 깨어나면 먹을 수 있도록 사람을 시켜 죽이나 탕을 준비하라고 하거라.”“예!” 서일이 대답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탕양. 너는 관아로 돌아가서 혜정후의 상태를 주시하거라. 적어도 부황이 모든 사건의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착오도 있어서는 안된다. 혜정후에게 어떠한 일도 일어나서는 안되며, 또한 어의도 꼭 지정된 어의를 써야 한다. 그리고 주수보(褚首辅)가 혜정후나 어의를 찾아온다면 그 전에 본왕에게 먼저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 한다.” 우문호가 탕양 쪽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왕야께서는 언제 입궁하여 황제님께 아뢰실 예정이십니까?” 탕양은 우문호가 부황에게 말할 기회를 놓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서두를 필요없다.” 우문호가 말했다.“하지만 주수보가 먼저 입궁해서 죄를 사할까봐 걱정입니다. 주수보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다 지어낸 말이지 않습니까.”“아니. 부황께서는 주씨 집안이 유난을 떠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계셨다. 하지만 딱히 흠을 잡을게 없어
Read more
제 179화
우문호는 세상만사 세옹지마라는 생각이 들었다.원경릉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그는 앞으로 평생 그녀와 마주보거나 말을 섞을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녀와 ‘평생’이라는 이 두 글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겼다.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일어난 사건들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이 변한건지 모르겠다.우문호는 천천히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지금의 원경릉은 예전의 그녀와 완전 다른 사람이다. 갓 결혼한지 얼마 안됐을 때, 그녀는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우문호를 찾아 왔다. 옷을 만들어 선물하거나 그의 외투 주머니에 수를 놓거나 음식을 만들어서 가져오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우문호는 그런 그녀가 귀찮다는 듯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우문호를 보며 상심하고 때로는 원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우문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하며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혐오했다. 그래서 그녀가 온갖 수모를 겪어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결혼한지 반년이 지나자 우문호는 그녀의 유치한 각종 술책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는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았다. 만약 그녀가 입궁해서 태후에게 아직 합방도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지 않았다면, 우문호와 원경릉은 지금처럼 서로 얽혀있지 않았을 것이다.우문호는 이 변화가 합방 후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정말 부부가 합방을 했다고, 상대의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혼수상태에 빠진 원경릉은 다시 실험실로 돌아왔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로그인 된 위챗의 소식을 보면서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오빠에게 모두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은 예전과 같이 그녀에게 너무 과로하지 말라고 답장을 했다. 그녀는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한없이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실험실을 눈으로 한번 훑어보았다. 닫힌 문 손잡이에 곰인형이 하나 걸려 있었다. 작년 생일에 그녀가 조카랑 인형뽑기로 만원을 써서 뽑은 작은 곰인형이었다. 조카는 곰인형을 쥐고
Read more
제 180화
그녀는 움직이는 것도 귀찮아서 우문호를 깨우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고 꿈속의 모든 순간을 되새겨보았다. 꿈 속에서 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한없이 소중했다. 왜 꿈에서 깬걸까?원숭이의 연구 데이터는 이전에도 여러번 보았기에 기억이 생생했다. 확실히 원숭이에게 약물 투여 후 데이터가 좋게 나왔고, 그냥 눈으로 보아도 약물을 투여했을 때 원숭이의 행동이 훨씬 더 민첩하고 똑똑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좋아진 지능으로 탈출을 해서 차에 치여 죽었지만…….이런 생각을 하자 그녀는 갑자기 원숭이가 차에 치여 죽은 후에도 그 영혼이 시간을 초월하여 이 곳에 있지 않을까? 라는 기이한 생각을 했다. ‘참나. 말도 안돼.’그나저나 이 남자 머리통이 정말 크구나. 너무 무거운거 아니야?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잠든 그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가 잠이 들었을 때만 그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기애가 강해서 누가 자기를 빤히 보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솔직히 딱 까놓고 말해서. 잘생기긴 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완벽에 가깝다. 굳이 단점을 뽑자면 각진 얼굴이라 꽤 날카로워 보인다. 이런 얼굴은 웃고 있어도 어딘가 모르게 차가워 보인다. 그리고 눈매도 날카로워서 눈이라도 마주치면 순간 얼어버리는 느낌이 든다. 마치 지금처럼…….그녀는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너…… 언제 일어났어?”우문호가 담담한 눈빛으로 “네가 본왕을 빤히 볼때.”라고 말했다.“일어나. 네가 내 팔을 베고 자는 바람에 팔에 피가 안통해.” 원경릉은 넋나간 표정으로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우문호가 머리를 들었고, 원경릉은 팔을 뺐다. 이 침상에는 베게가 하나 뿐인데, 그걸 원경릉이 베고 있으니, 그녀의 팔을 베고 자는 수 밖에 없었다. ‘팔 좀 빌려줬다고 되게 생색내네.’“뭘 보고 있었냐?”우문호가 물었다.“네 상처가 잘 아물었는지 본거야. 오해는 하지마.” 원경릉이 결백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는 전혀 오해하지 않았다. 잠에
Read more
PREV
1
...
1617181920
...
274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