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봄날: Chapter 451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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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그가 말을 하지 않자 병실은 고요했다. 그의 몸에 감돌던 압박감도 서서히 사라져갔다.차우미도 서서히 긴장을 풀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결정을 내린 듯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우리는 결혼 생활을 3년 했었지. 그 기간 안에 나는 상준 씨와 주혜민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나상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눈빛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그는 눈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그는 그녀의 확고한 눈빛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소문?”“응.”차우미는 원래 이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불필요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이딴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녀는 그를 강요하기도 싫었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기도 싫었다.그래서 그녀는 결혼 생활하면서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를 이혼하고 나서 더욱 하고 싶지 않았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그를 오해하고 그에게 상처를 줬기에 말을 꺼내기로 한 거였다.왜냐하면 자신이 얘기하지 않으면 이 사실을 모르는 그가 계속 상처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특히 언젠가 나상준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는데 그 여자도 자신처럼 이런 소문을 듣고 슬퍼한다면 그들 사이에 영향을 줄 게 분명했다.비록 그들은 이혼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그가 행복하길 바랐다.그녀의 눈에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좋은 사람은 행복해져야 한다.이 시각 차우미는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갔고 그녀의 눈빛도 안정을 찾아갔다.“다른 사람들이 상준 씨와 주혜민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 둘은 오랜 시간 함께 했었고 서로 아주 많이 사랑했었다면서. 그런데 할머니 때문에 상준 씨가 나와 결혼했다고 그러더라고.”“상준 씨도 효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고 할머니도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상준 씨가 할머니 말 듣고 사랑을 포기하고 나와 결혼했다고 했어.”여기까지 말한 차우미는 잠시 멈추고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망설였다. 짧은 망설임이었지만 나상준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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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차우미가 꺼낸 얘기를 처음으로 들은 나상준은 3년 넘게 끼고 있었던 결혼반지를 더 이상 만지작거리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맑은 두 눈을 바라봤다.3년 동안 그녀는 그에게 이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도 자신이 그녀 옆에 없는 시간 동안에 이렇게 무수한 소문이 그녀의 귓가에 들렸을 줄 몰랐다.그녀도 그 앞에서 억울해한다거나 불안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지금 이 순간 나상준은 심장이 바늘에 찔린듯했다. 한 개의 바늘이 두 개가 됐고 두 개에서 세 개로 변해가다가 나중에는 무수히 많은 바늘이 심장에 촘촘하게 꽂혔다.차우미는 진지하게 사과를 해야만 했다.나상준의 말은 그녀로 하여금 한 가지 사실을 똑똑하게 알게 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진실이 진실이 아니었다. 주혜민이 한 말들과 자신이 보고 들은 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비록 차우미는 나상준이 주혜민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지만 나상준과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그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는 앞과 뒤가 다른 남자가 아니었다.그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사실일 거다.소문과 몇 번 만나본 적 없는 주혜민보다는 그녀는 나상준을 더 믿었다.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시각 차우미는 자신이 나상준을 오해해 그에게 상처를 줬음을 알게 됐다.그녀는 반드시 사과를 해야 했다. 이 사과가 그에게 준 상처를 아물게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사과는 해야 했다.그러나 차우미가 입을 열자 그는 차우미의 말을 끊고 또 그녀에게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왜 말하지 않았냐고?’차우미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상준을 바라봤다. 그의 말뜻을 이해를 못 해서인지 아니면 그의 질문이 너무 갑작스러워서인지 그녀는 입술을 벌린 채 멍하니 있었다.결혼 기간 그는 모든 정력을 사업에 쏟았다. 일도 많이 바빴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그가 사업을 얼마나 중요시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차우미는 성격이 세지 않고 유유한 편이었다. 가정교육 관계도 있었겠지만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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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문자가 한 통 또 한 통 계속 이어 왔다.계속 울려 퍼지는 문자 알림이 병실의 고요함을 깼다.정신을 차린 차우미는 나상준이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그의 핸드폰은 계속 울려댔다. 많이 바쁜듯했다.입술을 달싹거리던 차우미는 말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 나상준이 했던 질문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나상준의 손에 들려져 있던 핸드폰의 진동 소리에 그의 손이 움직였다.그는 눈앞에 있는 여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안함과 망설임, 그리고 의아함과 많은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모든 표정은 그녀가 난감해하고 있음을 말해줬다.나상준이 입을 열었다.“아침 먹어. 내가 가서 퇴원 절차 밟을게.”말을 마친 그는 핸드폰을 들고 일어서서 병실을 나가려 했다.차우미는 멈칫하며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그는 무거운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서 병실을 나갔고 이내 차우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그가 떠난 병실은 고요했다. 병실 안은 더는 긴장감이 감돌지 않았고 편안함으로 바뀌었다.차우미는 입을 벌린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머릿속에는 많은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 3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었다.결혼은 모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옆에서 아무리 말해도 자신이 결혼 생활을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그녀는 비관적이지 않고 그저 평범한 일상을 좋아했다. 또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아름다움을 느꼈다.그녀는 바라는 게 많지 않지 않았다. 그녀가 바라는 건 평온하고 평범한 거였다.이게 그녀가 원하는 삶이었다.그래서 그녀는 평온함이 깨질까 봐 두려워 많은 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이런 그녀의 생각들이 우환을 불러오게 되었다.결혼이 처음이었던 그녀는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했었다. 가능한 모든 것을 잘하려 노력했지만 그녀와 나상준은 결국 이혼했다.그녀는 처음에는 둘이 잘 맞지 않아서 이혼했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오늘, 그의 말을 들은 그녀는 전혀 의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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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그는 담배를 피울 줄 알았지만 중독은 아니었다.이 시각 그는 마치 무엇을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했다. 어떻게 해도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기분을 바꾸기 위해서 그는 뭔가를 해야 했다.뿌연 연기에 그의 얼굴이 가려졌다. 실눈을 뜬 그의 깊은 두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핸드폰은 울리지 않고 조용했다. 차들이 오가는 소리, 사람들 말소리와 백화점의 할인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지만 그는 마치 이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처럼 곧게 서서 오랫동안 병원을 바라봤다.그의 발 옆에 버려진 담배꽁초가 서서히 늘어갔다.“웅웅...”얼마나 지났을까, 호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했다.그는 움직이지 않고 계속 병원을 바라봤다. 마치 듣지 못하는 것처럼 표정 변화도 없었다.“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를 들으며 하성우는 순간 조급해 났다.나상준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심나연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그는 원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지만 받지 않으면 난처한 일이 생길 수 있었기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받으니 심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그에게 자신에게 숨기는 일이 없냐며 그를 믿지 못하겠다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소란을 피웠다.그는 그녀에게 각종 이유를 대며 어르고 달랬다. 회유와 협박을 하며 그녀와 오래 통화했다.하지만 심나연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를 믿지 못하겠다며 돌아오겠다고 했다. 화가 난 하성우는 급기야 전화를 끊어버렸다.심나연이 돌아온다면 하성우에게 더는 자유는 없었다.지금 나상준 말고 그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다.그래서 그는 병실에서 찍었던 사진을 나상준에게 보내주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나상준이 아무 연락도 없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 다른 그는 바로 나상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나상준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나상준이 전화를 받지 않다니!’하성우는 화가 나면서도 급했다.‘친구 사이에 장난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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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발 옆에는 담배꽁초들로 가득했다. 나상준은 핸드폰을 들고 하성우의 말을 들으며 병원을 바라봤다. 그는 더는 실눈을 뜨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하성우는 그와 차우미 사이에 틀림없이 무슨 일이 있을 거라 짐작했다. 아니라면 그가 이런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다.차가운 나상준의 말투는 하성우에게 상관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성우는 순간 머리가 아파왔다.“상준아, 차우미와 싸웠어? 이럴 때는 억지로 버티는 거 아니야, 억지로 버텨봤자 너에게 좋은 점 없어. 무슨 일인지 말해봐. 내가 방법을 생각해볼게.”“지금이 골든타임이야. 놓치면 안 돼.”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성우가 관심하는 목소리를 들은 나상준이 입을 열었다.“너도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해.”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었다.그는 후회하고 있었다.할머니의 말씀처럼 그는 사업에서는 아주 훌륭한 성과를 냈지만 가정에 있어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그의 눈에 무서운 어두움이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곤 했다. 그는 핸드폰을 꽉 쥔 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순 없었기에 후회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 뿐이었다.원래 그의 것이었던 것을 다시 되찾는 일이었다.그는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길바닥에 있는 담배꽁초 치워줘.”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병원으로 들어갔다.운전기사가 병원의 주차장에서 나상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상준이 나오는 것을 본 그는 얼른 차에서 내려 차 문을 열었지만 나상준은 차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나상준이 차에 타지 않는 것을 보고 운전기사는 다시 차에 올라탔다. 얼마 안 지나 나상준이 나무 아래에 서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보였다.나상준의 전화를 받은 운전기사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차에서 내려 담배꽁초를 치우러 갔다.이 시각, 다른 곳.하성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핸드폰을 받지 않고 벨 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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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하지만 차우미는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됐다.나상준과 주혜민은 사귀는 사이가 아니며 더우기는 주혜민이 말한 것처럼 그들은 결혼할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나상준이 그녀에게 협조해 달라고 말했던 것과 그녀가 발목을 뼜을 때 왜 나상준이 남녀유별 없이 직접 그녀를 보살펴줬는지 이해가 됐다. 그가 남녀유별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와 주혜민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도 존재하지 않았다.그는 정정당당했지만 주혜민은 나상준을 좋아하고 있었다. 차우미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문을 들은 차우미는 나상준에게 묻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녀는 주혜민의 말을 믿게 됐고 나중에는 나상준을 오해해 그를 배척하고 본의 아니게 그에게 상처를 주게 됐다.차우미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후회하지 않았다.누구든 천성적으로 다 아는 사람은 없고 틀린 게 있어야 맞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나상준과의 결혼 기간 동안, 그리고 이혼한 뒤에도 그녀는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은 그녀에게 한가지 도리를 깨우쳐줬다.모르고 불확실한 일들은 자세히 물어보고 많이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소통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영원히 알 수 없으며 진실한 답이 뭔지도 알 수 없고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할 수도 있었다.일을 겪으면 지혜가 생긴다는 게 차우미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이었다.생각이 정리된 차우미는 더는 급하게 호텔로, 안평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오해가 풀렸으니 예전처럼 행동하면 되었다. 그에게 맞춰주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해서 일을 더 이상 망치지 않으면 되었다.다행히도 지금은 모든 것을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틀린 길로 갈 수 없었다.차우미는 침대맡에 놓여있는 보온병을 가져와 상위에 놓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퇴원 절차를 마친 나상준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그가 돌아왔을 때 차우미는 이미 아침을 다 먹은 뒤 뒷정리도 깔끔하게 끝내놓은 상태였다.나상준이 돌아오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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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차우미는 멈칫거리며 계속 아침을 차렸다. 그녀는 젓가락을 나상준 앞에 놓아줬다.“먼저 먹어, 다 먹으면 돌아가자.”보온병을 한쪽 옆에 놓으며 차우미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녀는 더 이상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나상준은 눈앞에 있는 아침을 바라봤다.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나는 게 아주 신선해 보였다.책상은 창가 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때 바깥의 빛이 비쳐 들어오며 음식들을 비췄다.눈앞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몇 달 전, 그녀가 집에서 아침을 준비할 때 아침 햇살이 비춰 들어오며 집안을 따뜻하게 비췄었다.지금은 햇빛도 있고 사람도 변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나상준은 핸드폰을 상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을 집어 들고 아침을 먹기 시작했고 정리를 마친 차우미는 퇴원하기만을 기다렸다.나상준의 밥도 준비해줬고 핸드폰과 볼 책도 없었던 그녀는 마땅히 할 게 없었다.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소파에 가서 앉아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여러 가지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그녀는 한가할 때면 일들을 생각하곤 했다. 특히 자신이 잘못 한 일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고쳐나가면서 자신에게 다시는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되뇌었다.사람은 실수하기 마련이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무서운 일이 아니다. 무서운 것은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이다.그녀는 고쳐나가면서 더 나은 자신을 위해 힘썼다. 이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지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병실 안은 고요했다. 나상준은 조용히 밥을 먹었고 차우미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두 사람은 서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의 호흡은 병실 안에서 소리 없이 융합되었다.시간은 아주 빨리 흘러갔다. 차우미와 나상준이 병원을 나설 때는 이미 점심 열한 시가 되어있었다.차우미는 정확한 시간을 몰랐다. 그녀가 병원을 나설 때 뜨거운 햇살이 그녀를 비췄고 그녀는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음을 짐작했다.오후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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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멈칫하던 차우미는 그의 표정을 보고 옆으로 이동했다.나상준은 그제야 차에 올라탔고 운전기사는 차 문을 닫았다.차는 이내 시동이 걸렸고 병원에서 멀어졌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상준이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말해야 할 것을 다 말한 것처럼 할 말이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차 안은 조용했다. 특히 이 좁은 차 안의 조용함은 병실에서의 조용함과는 또 달랐다. 사람을 긴장되게 만들었다.그러나 여기에서 운전기사만 긴장했다.차우미는 더할 나위 없이 마음이 평온했다.일도 해결이 됐겠다 그녀가 걱정할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니 나쁜 감정들도 더는 생겨나지 않았다.나상준은 뒷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담담한 표정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호텔 앞에 도착했다.멀지 않은 거리여서 차로 십여 분이면 도착했다.차우미는 뒷좌석에 앉아 창밖의 풍경들을 보며 오후에 일할 내용을 생각하다가 차가 멈추는 것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차 문을 열고 내렸다.토론하고 있는 진도로 보아 적어도 2~3일 안에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았다.결과가 나오면 그들은 안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그녀는 요 며칠 시간이 나면 안평 특산물을 서서 선배에게 보내주려 했다.말한 일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에 차우미는 잊지 않고 있었다.생각들을 정리하면서 차우미가 차에서 내리자 나상준도 따라내렷다.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차우미보다 앞서 걸어 나가며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나상준을 보며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그녀는 어젯밤에 나상준의 캐리어를 본 것 같았다. 그의 캐리어가 아직도 방에 있었다.돌이켜 생각해보던 차우미는 어젯밤에 자신이 아파서 잘못 본 게 아닌지 의심했다.그는 예전에 그녀를 돌봐주면서 그녀 방에 캐리어를 가져다 놨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녀 방에 캐리어를 둘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잘못 본 거라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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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차우미가 남자를 볼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그 사람의 분위기였다. 그다음 얼굴을 봤다.눈앞에 있는 소년은 아주 깔끔한 느낌의 잘생긴 청년이었다.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잘생긴 소년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첫 만남과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그녀의 반응에 전민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그녀가 좋았다.눈앞에 있는 누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다.전민수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로앤에서 만났었어요. 기억해요?”‘로앤?’차우미는 멍해졌다. 그러나 그녀의 눈앞에 금세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날 밤 하성우가 그녀를 데리고 분위기 좋고 아담한 곳으로 갔었는데 그곳에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차우미는 금세 기억이 났다.“혹시... 그날 밤 그 남자애 맞아요?”그녀를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친척 중에서 그녀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많았지만 모두 그녀를 언니라고 불렀다. 그리고 회성에는 그녀의 친척들이 없었다.눈앞에 있는 남자애는 그날 밤 그 남자애였다.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고 말하던 남자애였다.차우미는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순간 전민수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네, 저예요!”그는 마치 인정을 받은 아이처럼 아주 기뻐하며 우렁차게 말했다.차우미는 입술을 벌린 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남자애의 모습을 보아하니 그녀를 잊지 못한듯했다.여기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지라 차우미는 한참 생각하다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말을 마친 차우미는 멈칫하다가 자신에게 일이 있어 먼저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말을 하려 했다.그녀가 말을 하려는 찰나 전민수가 빠르게 입을 열었다.“저 여기서 누나 기다렸어요.”차우미는 멍했다.“절 기다렸다고요?”“네! 저...”“차우미.”무거운 목소리가 전민수의 말과 가벼운 분위기를 끊었다.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편안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로비의 온도도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전민수는 멈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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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누나, 저 누나에게 할 말 있어요.”전민수가 재빨리 말했다. 그는 차우미의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어제 나상준의 뒤를 따라온 전민수는 혹시 차우미를 볼 수 있을까 호텔에서 기다렸다.그도 아주 낮은 확률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던 그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뭐라도 해보고 싶었다.그렇게 그는 진짜로 차우미와 만나게 되었고 아주 기뻐했다. 전례 없던 기쁨이었다.이런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그녀를 놓아줄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의 마음속 말을 모두 하고 싶었다.전민수에게 손목이 잡힌 차우미는 멍해졌다.차우미는 남자애가 모르는 사람의 손목을 덥석 잡을 정도로 담력이 있을 줄 몰랐다.그녀는 재빨리 전민수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전민수는 힘이 대단했다. 그녀는 한동안 전민수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차우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너...”“그 손 놔.”차우미가 전민수에게 자신을 놓아달라고 말하려 했지만 굵은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무런 감정도 실려있지 않은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위압감을 조성했다.로비는 조용해졌고 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은 차우미는 그를 돌아봤다.나상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차우미에게 향했던 시선이 지금은 전민수에게로 향해 있었다.그의 눈빛은 마치 깊은 심연과도 같았다. 바라보기만 해도 깊은 심연에 빠질 것만 같은 눈빛이었다.나상준의 목소리를 들은 전민수는 나상준을 바라봤다. 나상준의 무서운 눈빛에 전민수는 무의식적으로 꽉 쥐고 있던 차우미의 손목을 놓아줬다.하지만 전민수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다시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조금 전보다 더 꽉 말이다.전민수는 턱을 치켜들고 두려움 없는 확고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당신은 누나의 남편도 아니잖아요. 저 다 알고 있어요. 당신은 상희 외삼촌이잖아요. 상희가 당신이 좋아하는 사람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줬어요. 그 사진 속의 여자를 보면서 상희가 외숙모라고 했어요. 그 여자는 누나가 아니었어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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