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회귀후 전남편과 이혼: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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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그녀는 어렴풋이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형수님, 이한 형이 술 취해서 형수님 이름만 불러요. 혹시 지금 천상의 소리로 와주실 수 있나요?”수화기 너머로 배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졌다.그녀는 눈을 비비며 짜증스럽게 말했다.“전화 잘못 거셨어요.”그리고 상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강이한이 술 취해서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그녀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이 남자에게 남은 거라고는 깊은 실망감과 배신감밖에 없었다.지난 생에 죽음까지 경험한 그녀에게 그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그가 술 취해서 객사했다고 해도 절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한편, 배준석과 박해준은 강이한을 부축해서 차에 올렸다. 유영과 통화를 마친 배준석은 착잡한 얼굴을 하고 밖에서 바람을 맞았다.“왜 그래?”옆에 있던 박해준이 물었다.“잘못 걸었다고 끊어 버리는데?”배준석은 그제야 둘 사이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게 틀림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분명 이유를 제공한 사람은 강이한 쪽일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유영이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나올 이유가 없었다.여자가 한번 돌아서면 남자보다도 더 차갑다더니 유영이 전형적인 예였다.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바로 끊어버리다니.그래도 10년을 함께한 정이 있는데 무슨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까? 게다가 그는 강이한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것이었다.잘못 걸었을 리가 없었다.“일단은 홍문동으로 데려가자.”박태준이 말했다.부부 사이의 일에 대해 방관자인 그들이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배준석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둘은 차를 운전해서 강이한을 홍문동까지 데려다주었다. 새로 바뀐 고용인들은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강이한을 보고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강이한을 부축해서 침실로 데려갔다.강이한의 핸드폰이 쉴 새 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한지음의 전화였지만 한 번도 받지 않았다.배준석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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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그 말을 들은 강이한은 순식간에 머리가 멍해졌다.응급실이라니!자세히 물어볼 여유도 없이 그는 재빨리 침대를 내려 외투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아래층에 있던 집사는 옷도 안 갈아입고 내려오는 그를 보고 다가가려 했지만 이미 강이한은 냉기를 풀풀 풍기며 밖으로 나가버렸다.강이한에 비해 유영은 간만에 긴 휴식을 취했다. 비록 지난밤에 배준석의 전화 때문에 한번 깨기는 했지만 전화를 끊고는 바로 잠들었다.그녀는 아침 일찍 회사로 나왔다.조민정이 업무 일정을 그녀에게 보고하고 있었다.“박 대표님께서 오후에 동교 개발 현장에 방문할 예정이에요. 시간 나면 같이 가보는 게 좋겠어요.”VIP고객이니만큼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유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히 가야죠.”조민정이 말하지 않아도 원래 같이 가려고 했었다.조민정이 계속해서 말했다.“새로 들어온 의뢰는 이미 팀원들에게 나눠줬어요. 이번에는 유영 씨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자신감에 찬 말투였다.유영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경영을 배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디자인팀원을 고용할 때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다들 경험이 풍부하고 실력이 출중한 엘리트들이었기에 간단한 의뢰에서 문제가 생길 수 없었다.“알겠어요.”유영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조민정이 말했다.“인력이 부족해서 채용 공지를 냈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잘 뽑을게요.”“그래요.”하루아침에 스튜디오가 이렇게 바빠질 줄은 몰랐다.전에 직장 경험이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작업실을 운영하면서 보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았다.그래도 정국진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서 의뢰가 끊길 걱정이 없어서 다행이었다.“오후에 다른 일정이 있나요?”“네. 양 변호사님 만나기로 했어요.”유영이 말했다.강이한이 이혼을 해주겠다고 공표한 이상 하루라도 빨리 절차를 진행하고 싶었다.오늘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세강그룹에 방문할 예정이었다.합의가 어려운 부분은 다시 협상할 수도 있고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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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조형욱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사모님께서는 현재 강성건설과 협업 관계가 있으니….”그가 난감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공적으로는 유영도 강성건설과 손을 잡은 사람이니 경쟁사인 세강 대표의 사무실에 들어가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였다.유영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접대실에서 기다리죠.”어디에서 기다리든 상관은 없었다.그녀는 걸음을 옮기며 강이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히 기다리면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잠시 후, 그가 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로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나 지금 당신 사무실이야.”“거긴 왜?”강이한은 유영이 좋은 마음으로 사무실까지 찾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하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이혼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유영이 말했다.“어제 사람들 앞에서 나랑 이혼하겠다고 공표했잖아. 서류에 사인 받으러 왔어. 그래야 당신도 자유로워질 거 아니야.”“자유는 당신이 나보다 더 원하고 있는 것 같은데?”“그렇게 말해도 난 할 말 없어.”“뭐?”강이한은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얼마나 그가 싫었으면 아침부터 이혼 서류를 들고 찾아왔을까?그런 생각이 들자 강이한은 가슴 한구석이 쓰리고 아팠다.“그래, 알았어.”한참이 지나 남자가 말했다.수화기 너머로도 그의 분노와 실망이 전해지고 있었다.유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여자의 아름다운 얼굴에 드디어 미소가 피어났다.“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지금은 못 돌아가.”유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병원으로 와. 사인해 줄 테니까.”남자가 차갑게 말했다.유영은 병원 얘기가 나오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그녀는 병원이라는 곳에 트라우마가 있었다. 강이한이 그녀를 병원으로 부를 때마다 깊은 공포마저 느꼈다.“그럼 언제 돌아올 거야?”유영이 물었다.어차피 서류에 사인하는 건 어디서나 가능했기에 굳이 병원까지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남자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했다.“왜? 무서워?”“자극해도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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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과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여자가 안타까웠다.망막을 이혼 조건으로 내걸다니! 그건 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런 남자를 남편으로 맞은 유영이 안쓰러웠다.그 시각, 강이한의 본가에서도 싸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오늘 아침, 진영숙은 유경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어제 일로 사과하려고 전화한 건데, 전화를 받은 유경원의 모친은 돌려서 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한지음 이 나쁜 년이!”굳이 이유를 묻지 않아도 한지음의 등장이 유경원 일가를 불쾌하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아직 이혼도 하지 않은 강이한이 와이프와 불륜녀를 둘 다 데리고 가족 행사에 참석한 일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세강의 세력이 워낙 막강해서 어떻게든 그들과 연을 맺고 싶어하는 가문이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아무리 재벌가가 정략결혼을 중시한다지만 딸을 귀하게 키운 집안이라면 당연히 이런 가문에 딸을 시집 보내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진영숙은 유경원의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청하시에서 세강과 비등비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유경원 본인의 조건도 재벌가 며느리가 되기에 완벽했다.그런데 전에 했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됐어, 엄마. 화 풀어. 저쪽 집안도 너무하네!”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강서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겉으로는 진영숙을 위로하는 척했다.진영숙은 화가 치밀었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그쪽에서 잘못한 게 아니야. 다 그 한지음 때문이지!”딸을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생각하면 유경원 모친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라도 귀하게 키운 딸을 사생활이 문란한 남자에게 시집 보내기 싫을 것이다.좋은 남편을 만나야 딸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건 모든 엄마들이 아는 사실이었다.아들인 강이한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지만 최근 그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졌다.“대체 한지음 걔를 왜 그렇게 신경 써주는 거야? 그래 봐야 비서실 직원이었을 뿐이잖아. 굳이 이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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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진영숙은 절대 한지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그녀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안 되겠다. 병원에 다녀와야겠어.”“같이 가, 엄마.”강서희의 두 눈이 간사하게 빛났다.이 판에 한지음을 끌어들인 건 강서희였다. 그랬기에 한지음의 생각에 대해 그녀보다 잘아는 사람은 없었다.이제 유영을 해결했으니 한지음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진영숙은 고개를 저었다.“넌 집에 있어. 네가 끼어들 상황이 아니야.”싸우러 가는 현장에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 키운 양녀를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아주 오래 전부터 진영숙은 나름 최선을 다해 강서희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알았어.”고집을 부릴 상황이 아니었기에 강서희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영숙이 떠난 뒤, 강서희의 입가에 진한 비웃음이 드리웠다.뒤에서 아줌마가 다가오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아가씨, 디저트를 새로 만들었는데 드셔보실래요?”“좋죠.”강서희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이 집에서 가장 까탈스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강서희였다. 고용인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버럭 화를 내던 그녀였다.하지만 왕숙은 달랐다. 진영숙이 가장 신임하는 고용인이었기에 강서희는 왕숙에게만큼은 예의를 갖춰서 대했다.“맛있네요.”“맛있으면 많이 드세요. 여기 코코넛 밀크도 있어요. 피부에도 좋다잖아요.”“고마워요, 아줌마.”“어서 들어요.”왕숙은 인자한 얼굴로 강서희를 바라보았다.한편, 유영은 씩씩거리며 스튜디오로 돌아왔다.조민정이 다가오며 물었다.“괜찮아요?”“네, 괜찮아요.”괜찮다고는 했지만 사실 속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였다. 남자의 냉철함을 이미 경험해서 아는 그녀였지만 망막 기증 얘기를 다시 꺼냈을 때 저도 모르게 긴장되고 온몸이 떨려왔다.그 한마디로 인해 그에게 남았던 마지막 미련마저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지난 생에서 그랬듯이 결국 똑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민정 씨.”“네, 듣고 있어요.”“강서희 사생활 좀 조사해 줘요.”만약 강이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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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조민정이 나간 뒤, 유영은 사무실 전화로 정국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 강이한의 회사에서 핸드폰을 박살냈을 때 전화가 걸려와서 못 받은 것 같았다.“외삼촌.”수화기 너머로 정국진의 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영아, 한지음 걔 좀 이상해.”“뭐가요?”“둘이 전에 만난 적 없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그 사고가 있기 전까지 유영은 한지음을 만난 적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그럼 다시 확인해 봐야겠구나.”“무슨 문제라도 있어요?”유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한지음 걔 일부러 너만 물고늘어지는 것 같은데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그러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납치사건부터 시작해서 여론전, 그리고 망막 기증을 강요하는 것까지 모든 화살이 유영을 겨냥하고 있었다.“제가 그만큼 미운 거겠죠.”어제 한지음을 만났을 때 그녀가 하는 말을 듣고 무언가 느끼는 게 있었다.그래서 일이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단순히 강이한을 좋아해서 그런 거라면 이혼만 하면 끝나는 일인데 굳이 망막까지 요구할 필요는 없었어.”정국진이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전화기를 잡은 유영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정국진은 계속해서 말했다.“어쩐지 너한테 보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지난 생에서도 한지음은 끝끝내 유영을 죽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영은 한지음의 동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전에는 진짜 접점이 없었는데요.”학창시절에도 그랬고 사회에 나와서도 한지음이라는 인물을 만난 적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알았어. 내가 더 조사해 볼게.”정국진이 말했다.이미 어느 정도 단서는 확보한 상태였다.한지음의 의도를 알았다면 이제 그 동기를 알아볼 차례였다.얼핏 보면 남자를 두고 치정극을 벌인 것 같지만 정말 그랬다면 유영이 이혼을 선언한 순간부터 멈추어야 했다.하지만 한지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줄곧 망막 기증을 빌미로 유영에게 압력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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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이대로 상처를 내버려두면 환자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예요.”의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강이한은 귀에 이명이 들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조금만 더 기다려봅시다!”말은 그렇게 해도 산 사람에게서 기증을 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곧 죽을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강이한이 암울한 기분에 빠져 있을 때, 진영숙이 다가와서 의사에게 말했다.“선생님은 먼저 나가 있어요.”“네, 사모님.”의사는 진영숙의 기세에 눌려 고개를 푹 숙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왜 이렇게까지 걔를 챙기는 거야?”의사가 자리를 비운 뒤, 진영숙은 다짜고짜 강이한에게 따져 물었다.최근 들어 강이한이 한지음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데 대해 이미 불만이 많았던 진영숙이었다.강이한은 어머니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낫게 해줘야 하니까요.”“그렇다고 네가 친히 나설 이유는 없잖아.”안 그래도 한지음이 거슬리는데 강이한이 이렇게까지 감싸고 돌자 진영숙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아들에게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강이한은 고집스럽게 말했다.“어머니는 상관하지 말고 일단 돌아가세요.”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였다.안 그래도 화가 나 있던 진영숙인데 아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자 점점 더 짜증이 치밀었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쉬고 정색하며 말했다.“넌 집으로 돌아가. 차라리 엄마한테 맡겨.”진영숙의 태도는 강경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이상 아들의 행동을 방관할 수 없었다.유경원 모친에게 거절당한 일을 생각하면 한지음을 당장 청하에서 쫓아내도 모자랐다.“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러세요?”강이한이 싸늘한 눈빛으로 모친을 바라보며 물었다.말투에서 깊은 짜증이 묻어났지만 진영숙은 물러서지 않았다.“너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아직도 부족하세요? 엄마는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아요?”“얘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뭘 어쨌다고?”강이한이 버럭 고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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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강이한은 엄마를 바라보며 실망감이 커져만 갔다.언제부터 엄마가 이렇게까지 냉철하게 변했을까? 그가 어렸을 때는 종종 복지센터로 가서 자원봉사도 했었던 사람이었다.강서희는 보육원에 봉사하러 갔다가 입양한 아이였다. 비록 양녀로 들였지만 진영숙은 친딸처럼 그녀를 아껴주었다.“왜 이렇게 변했나요?”한참이 지난 뒤, 강이한이 실망한 어투로 물었다.갑자기 달라진 아들의 태도에 진영숙이 당황했다.분노에 이성을 잃어서 말이 좀 심했던 건데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진영숙은 눈을 질끈 감고 분노를 억눌렀다.그리고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이한아, 나도 그 아이의 처지가 안타깝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걸 다 네가 떠안을 필요는 없어. 안 그래?”평생 옆에 끼고 살 게 아니면 차라리 관심을 주지 않는 게 나았다.세강의 이미지를 생각해서라도 장님을 며느리로 들일 수는 없었다.강이한은 말없이 모친을 빤히 바라만 보았다.진영숙이 계속해서 말했다.“너 잊었어? 나랑 네 아버지가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세강은 전대 회장이 돌아가고 방계 가족들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겪었다. 집안 싸움에 회사가 공중분해 될뻔한 것을 겨우 살려냈다.강이한이 그만큼 능력이 뛰어났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그때 진영숙은 다른 가문들과 암암리에 정략결혼을 약속해서 세강의 입지를 다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정략결혼이 가져다 주는 이득에 맛을 들였다.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도 좋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가문에 도움이 된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닌가.그래서 강이한이 유영을 데리고 왔을 때 그토록 그녀를 싫어하고 배척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한지음의 존재는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엄마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강이한의 표정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세강이 여기까지 오는데 풍파가 적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초기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고 그가 그룹 경영을 맡으면서 비로소 입지를 튼튼히 다질 수 있었다.“이한아, 엄마도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사람은 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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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강이한에게는 유영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과거가 있었다.그가 가장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었다.그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던 그때를 평생 잊을 수 없었다.강이한은 한지음이 예뻐서, 그녀에게 반해서 잘해준 게 아니었다. 한지음이 세강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아픈 과거와 연관이 있었다.그때 강이한의 할아버지가 돌아가고 방계 친척들의 물밑 공격이 시작되었다.진영숙도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전대 회장이 세상을 뜨고 회사의 주주들과 지분을 보유한 방계 친척들은 합세해서 세강을 차지하려고 했다.그들은 어린 강이한을 납치하고 강이한의 아버지에게 경영권에서 물러나라고 협박했다.강이한은 가까스로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한 소년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 사고가 있은 후, 가족들은 소년의 가족을 찾아가서 보상을 해주려 했지만 강이한에게서 그 아이가 고아라는 말을 들었다.강이한은 침통한 얼굴로 진영숙에게 말했다.“한지음 걔는… 지석이 동생이에요.”진영숙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너 뭐라고 했어?”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이한을 바라보며 다급히 물었다.강이한은 침통한 얼굴로 대답했다.“저도 우연히 알았어요.”“그때는 걔가 고아라고 했잖아.”“동생이 있는데 행방불명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계속 그 아이를 찾고 있었어요.”강이한은 일부러 그 사실을 가족에게 숨겼던 것이다.진영숙은 손발이 떨려왔다.지금 강이한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모두 한지석 덕분이었다.그래서 모든 걸 잊어도 세강의 사람이라면 한지석은 잊을 수 없었다.그런데 한지음이 그의 동생이었다니!“지석이 동생이라고? 확실해?”진영숙이 확실치 않은 얼굴로 다시 물었다.한지음에 대한 진영숙의 생각이 바뀌고 있을 때, 유영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에 몰두했다.점심을 조민정과 대충 때우고 업무에 열중하는데 문 비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박연준이 식사를 같이 하자는 요청이었다.유영은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서 모든 일정을 미루고 박연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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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유영은 당황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녀는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그 사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에요?”둘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절대 좋은 말이 나올 수 없는 관계였다.“꼭 그렇지만은 않아요.”박연준이 말했다.최근 유영과 강이한의 이혼설은 청하시 사람들의 관심사였다.그들의 이혼을 바라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그런데 강이한에 대해 좋게 말한 사람이 그의 오랜 라이벌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그렇게 비교해 보니 강이한이 더 속 좁은 인간으로 보였다.“저와 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정말 되돌릴 여지가 있었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유영이 아픈 표정으로 말했다.박연준은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남자의 눈동자에 유영의 슬픈 얼굴이 담겼다.강이한과 이혼 싸움을 하면서 그녀는 항상 강압적이고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그런데 모든 가면을 벗어 던진 그녀에게서는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 느껴졌다.박연준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그러네요. 둘이 오래 사귀고 결혼했다는 말은 들었어요.”10년의 사랑, 그건 전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그들이 헤어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람들도 있었다.10년을 함께한 커플마저 마지막이 이토록 진흙탕 싸움인데 세상에 과연 변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까?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유영은 묵묵히 고기를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입맛이 썼다.“그래요. 10년을 함께했죠.”그녀는 다시 지난 생 같은 고통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불 타서 죽어갈 때 그 절망적인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그 경험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처럼 단호하게 이혼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매정해 보일지라도 그녀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아무도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식사가 끝난 뒤, 둘은 함께 동교 개발 현장으로 갔다. 늦은 시간임에도 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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