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후 전남편과 이혼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30
609 챕터
제121화
유영의 표정은 담담했다. 노부인이 아무리 사람들 앞에서 그녀를 무시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때 강이한이 유영의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잡으며 말했다.“저 그 사람이랑 별로 안 친해요.”그 말에 안 그래도 좋지 않았던 노부인의 표정이 더 구겨졌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기분이었기 때문이다.유영이 미소 지으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강이한 씨, 엄연히 임자가 있는 몸이에요. 유경원 씨처럼 귀한집 따님을, 이 시기에 단둘이 만난다? 그녀의 명성에 해가 되지 않을까요?”“…”“찾아간다고 해도 연회가 끝난 후에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겠어요?”무심히 던진 듯한 말한마디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그중에서 안색이 가장 나빠진 건 다름 아닌 유경원의 아버지였다. 그는 마침 선물을 건넨 뒤, 노부인에게 말을 건네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좀 전에 강이한의 말투에서 그의 의중을 눈치채고 말았다.그는 무엇보다 지금 좀 전에 유영이 한 말이 신경 쓰였다. 지금 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연회가 끝나고 가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그럼 지금 내 딸이 상간녀처럼 몰래 강이한을 만나야 한다는 것인가?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졌다.그러나 오히려 이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인 유영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 당하는 입장에선 더 약이 올랐다.노부인은 잡아먹을 듯이 유영을 노려보며 말했다.“강이한, 네가 아주 얘 버릇을 제대로 잘못 굳혀 났구나!”평이한듯 보이는 목소리였으나, 유영은 그 속에 담긴 분노를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대응했다. 예전의 그녀였으면 몰랐을까, 지금의 유영은 이정도로 주눅들지 않았다.과거에 그녀는 겨우 연회장 주방을 맴도는 신세였으나, 지금 그녀는 당당히 강이한 옆에서 빛나고 있었다.“나 좀 배고픈데.”유영이 강이한에게 말했다.강이한은 간단하게 노부인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한 뒤, 유영과 함께 식사 자리로 갔다.“성질 좀 죽여!”강이한이 작게 유영의 귀에다가 대고 속삭였다.그도 유영이 이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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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강이한은 유영의 팔목을 잡아끌며 강서희에게 말했다.“우린 사람들을 만나야 하니까 넌 다른 여자들 불러서 같이 가.”현장에 사람도 많은데 굳이 유영을 귀찮게 하지 말라는 의미였다.전에는 그녀가 괴롭힘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가 스스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방관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그가 모르는 곳에서 이 정도로 심하게 괴롭힘 받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강서희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강이한을 바라보았다. 전에는 동생이 원하는 건 다 줄 것처럼 행동하던 오빠였다.그런데 그랬던 오빠가 지금은 유영만 감싸고 있었다.“가자.”그의 목소리는 강압적이었지만 그게 강서희 들으라고 한 말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유영도 그가 많이 신경 써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방식이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그는 모든 사람에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냈다.과거의 유영이었다면 조금은 감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한지음이 끼어 있는 이상, 이미 벌어진 감정의 구멍은 다시 가까워질 수 없었다.이미 연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들에 대한 여론은 떠들썩했다.그리고 한지음이 연회장에 나타난 순간, 모든 풍향이 바뀌었다. 유경원이 진영숙이 점찍은 미래의 며느리감이라면 최근 강이한과 뜨거운 스캔들에 휩싸였던 한지음은 그녀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다.그런 상황에서 강이한은 아내를 대동하고 연회에 참석했다. 그의 의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유영은 자신의 어깨를 감싸안은 강이한을 바라보며 눈빛에 비웃음을 머금었다.“나중에 설명할게.”강이한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했다.원래는 차에서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 때문에 화가 나서 미리 말한다는 것을 깜빡했다.유영은 가소롭다는 듯이 그를 빤히 보며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그의 손을 밀어냈다. 미약한 힘이었지만 강이한은 그 동작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유영.”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유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말했잖아. 오늘은 조용히 얼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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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대체 언제부터 아들이 이렇게 불손하게 변한 건지, 진영숙은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당장 사람 시켜서 쟤 내보내!”진영숙이 인상을 잔뜩 구기며 말했다.이것도 많이 참은 것이었다.잔치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가면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다.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반해, 한지음은 흰 붕대로 두 눈을 가린 채, 평온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긴 생머리를 그대로 드리운 모습은 청순하면서도 안쓰러워 보였다.그녀는 참 분위기 미인이었다.순수하고 악의가 없어 보였다.이 처참한 모습이 처음 기사가 났을 때, 왜 네티즌들이 그토록 유영에게 분노한데는 이 외모도 한몫했을 것이다.그녀는 입에 미소를 머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조형욱을 불렀다.“조 비서님.”“네, 한지음 씨.”“뭐라도 좀 먹고 싶은데 괜찮을까요?”그녀는 목소리마저 고양이처럼 나긋나긋했다.그렇지만 조형욱은 거대한 부담감과 싸우고 있었다.한쪽은 상사의 어머니, 그리고 노부인, 한쪽은 사모님에 한지음까지… 그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그는 상사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여자를 가족행사에 오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한지음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조형욱의 도움을 받아 테이블로 향했다.얼마 가지 앉아 그들은 다가오는 유영과 마주쳤다.그녀의 모습은 모두의 주목을 샀다.진영숙이 뒤에서 소리쳤다.“이유영, 거기 서!”비록 한지음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유영과 둘을 또 싸우게 둘 수는 없었다.게다가 오늘은 유경원의 가족들도 참석했다. 지금 유영이 한지음과 충돌하면 유경원의 이미지도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이다.처음에 유경원은 진영숙을 따라다니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고 사람들도 그녀에게 공손히 대해주었다.모두가 그녀를 미래의 세강 안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유영뿐이 아니라 한지음까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입장이 난감한 건 유경원 쪽이었다.유경원의 아버지는 화를 못참고 먼저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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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진영숙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강이한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준수한 얼굴에는 온통 유영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전에는 어떻게 난리를 피우든 기사에 나도 그녀가 직접 사람들 앞에서 입을 열지 않은 이상 되돌릴 기회가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그렇게나 그와 선을 긋고 싶었던 걸까? 이런 극단적인 방식을 택할 정도로?강이한이 보기에 유영이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이혼을 말한 건 일부러 한짓이다.그녀는 한지음에 대해서 줄곧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에게 실망하고 심지어 절망한 아내의 모습을 연기하고 있었다.그녀의 그런 행동은 그를 조강지처 두고 바람을 피운 나쁜 남자로 몰아가고 있었다.강이한은 주먹을 꽉 쥐고 여자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이유영, 안으로 들어가!”이 순간에도 그는 애써 분노를 자제했다.“이혼하자고!”그의 입장에서는 많이 양보한 거였지만 그녀의 태도에는 거침이 없었다.유영은 이혼 소송을 길게 끌수록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양 변호사의 실력을 믿기는 하지만 이곳은 강이한의 본진인 청하시였다.그가 끝까지 협의를 해주지 않으면 그들의 관계는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유경원이 진영숙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가족 행사에 참석하고 한지음의 참석을 강이한이 방관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착잡했다.더 이상 표면적인 관계도 유지할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줄곧 신경을 끄고 싶었지만 그들의 지속되는 자극에 그녀는 마지막 인내심마저 사라져 버렸다.“이혼해!”강이한이 분노에 치를 떨며 어떻게든 유영을 끌고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뒤에서 노부인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노부인은 체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 굉장히 화가 난 상태였다.전통적인 사상을 가진 노인은 이혼을 하더라도 남자가 먼저 여자를 내쳐야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자인 유영이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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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요즘 시대에는 불륜녀들이 더 당당하다니까요?”“누가 아니래요? 생긴 건 참 순하고 참해 보이는데 속은 아주 시커멓네요.”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한지음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갔다.그녀의 뒤에 서 있던 조형욱은 상사의 싸늘한 기운을 느끼고 저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그 시각, 유영은 강이한과 대치하고 있었다.둘만 다른 세상에 있는 것처럼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지난 날의 추억들이 그들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같이 여행 갔던 일, 같이 손을 잡고 지는 해를 감상했던 일,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하지만 마지막은 차갑게 이혼을 말하던 유영의 모습이었다.대체 언제부터 그들 사이에 이토록 깊은 곬이 생겼던 걸까? 무엇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걸까?유영의 눈에 비친 증오의 감정이 강이한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그래요, 이럴 거면 차라리 이혼하세요!”“강 대표님이 먼저 잘못한 거고 사모님은 아무 잘못이 없어요.”“이한아, 오늘 당장 쟤랑 이혼 절차 밟아!”“사모님이 불쌍하네요.”모두가 그들을 이혼하라고 권유하는 가운데, 유영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강이한은 언제부터 유영이 그의 옆에 있는 것 자체로 사람들의 동정을 사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그녀의 눈에 가득 담긴 불신과 증오를 본 순간 결국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그래, 원하는 대로 해줄게!”“이혼하자, 이유영!”강이한은 분노에 차서 고함을 지르고는 그대로 뒤돌아서 연회장을 떠나 버렸다.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는 결국 이혼에 동의하고 말았다.유영은 그 자리에 서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모든 부담감을 벗어 던진 것처럼 온몸이 가벼웠다.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서 고역이었다.강이한이 병원으로 그녀를 끌고 갈 때, 그녀는 혹시라도 그가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고 자신을 수술대에 올릴까 봐 노심초사했다.마치 지난 생처럼….그때 수술 동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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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강서희의 두 눈에 환희가 스쳤다. 그녀는 표정을 수습하고 다가가서 진영숙을 부축했다.“엄마, 너무 속상해하지 마.”진영숙은 강서희의 부축을 받으며 한지음에게 다가갔다. 조형욱은 지금이라도 여기서 도망치고 싶었다.상사는 껄끄러운 상대를 그에게 맡긴 채, 안으로 들어가버린 상황.“당장 여기서 꺼져!”진영숙은 유영을 대했던 것보다 더한 태도로 한지음을 대했다.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은 며느리라도 공식적으로는 세강의 며느리인 유영과 온갖 스캔들을 제조해 낸 한지음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진영숙은 유영에게 참았던 화를 모두 한지음에게 쏟아냈다.“강 대표님도 가셨는데 저 여자는 왜 아직도 여기 있대요?”유영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화살을 한지음에게로 돌렸다.한지음의 안 좋던 안색이 더 하얗게 질리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그녀가 이곳에 찾아온 목적은 유영을 망신주기 위해서였다.자신이 나타나기만 하면 강이한은 자신의 옆에 서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 방식으로 유영의 입지를 흔들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당한 쪽은 한지음이었다.그녀는 세강의 가족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라면 대놓고 남의 집안일에 대해 의논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녀가 놓친 점이 있다면 이곳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상류층 사람들이라는 점이었다.세강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긴 했으나 참석한 손님들도 누굴 두려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대놓고 의논하지는 않았지만 수군거리는 소리와 조소 섞인 눈빛은 숨기지 않았다.비록 그녀가 눈을 가리고 있긴 했지만 자신을 향한 그들의 적의와 혐오감은 생생하게 느껴졌다. 강이한이 현장을 떠난 지금 한지음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빨리 쟤 안 치우고 뭐 해!”진영숙은 조형욱이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언성을 높였다.한지음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고 마치 상처 입은 어린 양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알겠습니다….”조형욱이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한지음 씨,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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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사모님!”한지음이 뭐라고 한 건지, 조형욱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그는 유영이 탄 포르쉐를 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무슨 일이죠?”“한지음 씨가 좀 얘기하고 싶답니다.”조형욱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유영은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처음 보는 싸늘한 모습에 조형욱이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그래요.”그녀는 한지음이 하고 싶다는 말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했다.그래서 차에서 내려 휠체어를 탄 한지음에게로 다가갔다.한지음의 초라한 모습은 기세등등한 유영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유영이 물었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한지음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이렇게 간사한 인간일 줄은 몰랐네.”오늘 밤, 그녀는 유영의 입장을 곤란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역으로 자신이 당할 줄은 몰랐다.이런 기세와 카리스마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유영이 웃으며 말했다.“너보다야 하겠어?”일부러 장님 행세를 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건 일반인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이런 여자였기에 강이한까지 손바닥에 쥐고 흔들 수 있었던 것이다.한지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두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그녀에게서는 선명한 증오심이 느껴졌다.그런데 무슨 자격으로?조금 전에 창피를 당한 것도 한지음이 주제도 모르고 여기까지 찾아오지 않았으면 아예 없었을 일이었다.“이유영,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야.”한지음이 갑자기 표정을 바꾸더니 사납게 말했다.“난 그 사람이랑 이혼할 거고 우리 싸움은 여기서 끝났어.”“하? 끝을 내? 꿈 깨!”증오가 가득 담긴 목소리에 오히려 유영이 잠깐 당황했다.조금 전 보였던 이상한 적개심이 착각인 줄 알았는데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진심이 묻어났다.“널 지옥으로 떨어뜨릴 거야. 아직까지는 네가 잘난 것 같지? 곧 죽기보다 힘든 고통을 맛보게 될 거야.”한지음은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했다.그녀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유영은 어리둥절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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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차로 돌아온 유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부드러운 불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우울한 분위기가 차 안에서 맴돌았다.조민정은 저택으로 들어가지 않고 시간 맞춰서 유영을 데리러 왔다. 하지만 한지음이 안에서 나온 것을 봤을 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략 직감할 수 있었다.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유영에게 생수 한병을 건넸다.“물이라도 좀 마셔요.”“고마워요.”시원한 물줄기가 목덜미를 적시자 갑갑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어졌다.“민정 씨.”“네.”“결혼의 의미는 뭘까요?”유영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강이한과 7년 연애하는 동안에도 진영숙은 그녀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적어도 가문이라는 족쇄가 존재하지는 않았다.그래서 진영숙은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지만 직접적으로 나서서 그녀에게 시비를 걸지도 않았다.하지만 그와 결혼한 뒤로 모든 게 변했다. 시댁의 갑질이 시작되었고 유영은 그 과정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쪽이었다.조민정이 말했다.“각자의 선택이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따르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유영이 말이 없자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만약 유영 씨가 그때 사랑이 아닌 일을 선택했더라면 아마 그래도 많은 난관을 겪었을 겁니다. 고민의 종류가 다를 뿐이죠.”고민이 없는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결혼이 가져다준 고민이 없어도 일을 하면서도 각종 고민을 겪게 된다.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것으로 인해 따르는 고민이 있다.유영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말했다.“그거 알아요? 오늘 그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 사실은 속시원했어요.”그때 그녀가 느꼈던 감정은 드디어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진 느낌이었다.드디어 그 남자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그와 계속 관계를 유지하다가는 말라 죽을 것 같았다.마치 지난 생처럼….지난 생에는 그녀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손에 죽어갈 때 그토록 절망했다.고용인들은 소방차도 불러주지 않았다.고작 불륜녀 때문에 그녀는 불길 속에서 죽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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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이미지의 배준석과는 다르게 박태준은 강이한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남자였다.혼잡한 술집 안에서 그들의 존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왜지?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그만해, 형. 핸드폰 여기 내려놓고 술도 그만 마셔!”배준석이 강이한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앗았다.여기 와서 앉은 순간부터 강이한은 유영에게 미친 듯이 전화를 하고 있었다. 상대가 무시하는데도 그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그들도 오늘 노부인 생신 잔치에서 있었던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그거 알아? 내가 그 여자랑 결혼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과거 강이한은 유영과 결혼하기 위해 가문의 모든 압력을 이겨내야 했다.지금은 그가 세강의 대표로 부임했지만 그때는 손에 쥔 지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는 유영을 위해 친척들의 위협과 싸워야 했다.심지어 그의 어머니조차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물론 유영과 결혼한 뒤로 그는 회사에서 피바람을 일으켜서 빼앗겼던 것들을 전부 되찾아왔다.하지만 그녀와 결혼하기 전에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족들에게 양보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그래. 형수님이 잘못했네!”배준석은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러니까 조건이 서로 비슷한 사람이랑 결혼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 아니야. 해준 형은 어떻게 생각해?”“그만들 해.”박해준은 배준석과 생각이 전혀 달랐다.서로 사랑했던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느 한쪽만 잘못했다고 볼 수 없었다.손뼉도 맞아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짜증만 내지 말고 제수씨가 왜 꼭 이혼을 선택해야 했는지, 네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생각해 봐.”그들은 유영과 접촉할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유영이 이해심 많고 온순한 성격이라는 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런 사람이 갑자기 단호하게 이혼을 결심했다면 강이한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강이한이 냉소를 지으며 질문에 대답했다.“그 여자 바람 났어.”둘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바람은 부부 사이에 신뢰를 깨뜨린 엄중한 문제였다.그렇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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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박해준의 질문에 강이한은 침묵했다.그 순간에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긴 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그 여자는 친척이 없어. 고아야.”그들이 결혼한 뒤로 그는 그녀의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가족 같은 남편을 그녀가 버린 것이다.그를 떠나면 그녀의 세상에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었다.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가슴이 아팠다.“알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했지? 조부모도 그 충격으로 아무런 유언도 못 남기고 돌아가셨다고 들었어. 하지만 조부모 외에 다른 친척이 있을 수도 있잖아.”강이한이 말했다.“친척이었으면 나한테 얘기했겠지.”이 일이 있기 전에 그들은 서로에게 숨기는 비밀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우울감이 찾아왔다. 대체 언제부터 서로가 마음을 닫아버린 걸까?“그건 아무도 몰라.”배준석이 말했다.그는 유영이 강이한 같은 남편을 두고 아빠뻘 되는 남자랑 바람이 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강이한도 그의 말을 듣고 조금씩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유영은 가족들이 그녀가 어릴 때 다 돌아가셨다고 말했지만 방계 친척에 대해서는 말을 꺼낸 적 없었다.만약 그 남자가 유영의 먼 친척이라면?만약 그렇다면….그 순간 강이한의 마음에 다시 희망이 샘솟았다. 정국진이 그녀의 먼 친척이라면 그녀는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는 얘기였다.그는 눈을 질끈 감고 쓴 술을 삼켰다.그의 앞에는 이미 비워진 술병들이 하나씩 늘어갔다.그날 밤, 유영을 제외하고 모두가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한지음은 병원에 돌아오자마자 진영숙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네 처지는 나도 안 됐다고 생각하지만 내 아들은 건드리지 마. 자꾸 주제도 모르고 선을 넘으면 지옥이 뭔지 맛보게 해줄 거야.”강요이자 협박이었다.진영숙은 오늘 한지음이 연회에 나타났기에 유영이 연회장에서 그 난리를 부렸다고 생각했다.그 소란으로 세강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졌다.그녀는 며느리도 싫지만 한지음을 더 혐오했다.“사모님, 저랑 태한 씨는….”“닥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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