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낮에 아가의 옆에 있었다. 배준우가 없을 때도 산후 도우미는 고은영이 힘들까 봐 항상 옆을 지키고 있었다.이때 배준우가 들어오자마자 산후 도우미는 재빨리 침실을 나갔다.“내가 안을게. 자 아빠한테 와.”배준우가 아기를 안는 모습을 본 고은영은 가슴 한구석에 간질거렸다.아기를 안은 배준우는 한마디를 뱉었다.“넌 아기를 보기만 해. 안지 말고.”“왜요?”고은영은 입술을 삐죽거렸다.‘왜 내 아인데 안지 못하게 하는 거야?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배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여자는 금방 출산했을 때 관절이 가장 약하대. 이때 아이를 계속 안고 있으면 산후증후군이 생기기 쉽대.”“그런 게 있어요?”고은영은 전혀 몰랐다.배준우가 대답했다.“어.”비록 이런 지식은 모두 책에 나온 것이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고 한 달 동안 이런 것들을 지키며 산후조리를 잘 해야 했다.산우 도우미가 있을 때도 고은영이 아기를 안으려고 하면 배준우와 똑같은 말을 하며 안지 못하게 했다.아기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은영은 고작 한 번밖에 안아보지 못했다.모유 수유를 할 때도 옆으로 누워서 했다.유청과 배지영이 도착했을 때 집사와 혜나가 배준우를 불렀다.두 사람이 왔다는 말에 고은영과 배준우의 얼굴이 굳었다.특히 배준우의 얼굴은 많이 어두웠다.“언제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엊그제요.”라 집사가 대답했다.배준우는 몸을 돌려 아기를 혜나에게 안겨준 뒤 고은영의 뺨을 살짝 잡으며 말했다.“넌 내려오지 마.”“그래도 돼요?”고은영은 고민하며 말했다.배준우의 친엄마를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고은영은 움츠러들었다.배지영이 고은영을 두 번이나 해고했기에 고은영도 충분히 배지영이 자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은영도 더욱 다가가기 힘들어했다.배준우가 말했다.“그래도 되든 안 되든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네?”“네는 뭐가 네야? 넌 쉬고 있어
그의 차가운 뜻이 꼭 량천옥을 대하는 것과 같게 느껴졌다. 이제는 고은영의 일에서 더욱 배준우의 선을 넘을 수 없었다.배준우는 눈을 차갑게 뜨며 비웃음을 날렸다.“제 태도를 이미 명확하게 표시한 줄 알았는데 아직도 이해를 못 하셨을 줄은 몰랐네요.”“준우야.”유청은 숨이 막힐 듯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흥분하며 말했다.“그동안 해외에서 겪은 고통 너도 다 봤지? 그건 다 량천옥 때문이야.”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내가 고은영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거니?”“은영이를 받아들이실 필요 없어요.”이때 유청의 말에 배준우는 망설임 없이 대꾸했다.사람들은 모두 유청이 그동안 해외에서 배준우를 키우느라 고생했기에 배준우가 귀국해서 량천옥에게 한 모든 것이 유청을 위해 한 복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오직 배준우만이 유청이 겪은 고통은 사실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녀와 배항준은 똑같은 사람이었다.배항준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사실 유청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그렇다면 그녀가 겪은 고통을 누구 때문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을까?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다면 자신의 책임은 얼마일까?유청은 배준우의 말을 듣고 순간 눈빛이 차가워졌다.“네 뜻은 네가 지금 고은영에게 진심이라는 거니? 고은영의 량천옥의 딸이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거야?”“네.”배준우는 싸늘하게 한 마디를 뱉어냈다.맞다. 고은영이 량천옥의 딸이든 아니든 두 사람은 함께 할 것이다. 게다가 이제 아이까지 생겼다.때때로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현재 우리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없다.현재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많은 실수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배준우는 줄곧 고마움과 원망을 확실히 구분해 왔다.량청옥을 극도로 원망하지만 그는 고은영을 진심으로 사랑했다.윤청은 배준우의 단호한 대답을 듣고 얼굴이 더욱 침울해졌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난 허락할 수 없어.”그녀 또한 이 한마디를 아주 단호하게 말했
유청은 돌아온 뒤에 배준우와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배준우도 유청이 란완리조트에 와서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청은 오늘 배준우를 보고 그가 너무 많이 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엄청난 기세로 란완리조트에 왔지만 결국 지금...“엄마 우리 여기까지 해요.”란완리조트에서 나온 배지영의 마음은 아직도 쿵쾅쿵쾅 뛰고 있었다. 다행히 배준우는 방금 그녀에게 어떻게 감옥에서 나온 것인지 묻지 않았고 그저 꺼림직한 말을 조금 했을 뿐이다배지영은 배준우가 고은영과 량천옥의 일에 대해 이 정도의 태도일 줄은 몰랐다.그녀는 량천옥을 죽을 만큼 미워했고 지금은 고은영까지 함께 배씨 가문에서 쫓아내 버리고 싶었다.고은영은 자기가 아들을 낳았으니 배씨 가문에서 더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고은영 꿈 깨. 네가 량천옥의 딸인 이상 배씨 가문은 널 영원히 배척할 거니까. 근데 오빠는 지금 왜 저런 태도인 거지? 설마 정말로 고은영을 본인의 아내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유청은 눈을 감고 말했다.“그만하라고? 어떻게 이렇게 그만할 수 있겠어?”량천옥이 오랜 세월 그녀의 인생을 빼앗았는데 어떻게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을까?‘그만하라고? 여기서 그만할 수 없어.’배지영이 말했다.“그럼 아까는 왜 아이를 엄마가 키우겠다는 얘기는 꺼내지 않으셨어요?”유청이 아이의 할머니였으니 아주 합리적인 요구였다.“방금 그 상황에서 어떻게 얘기를 꺼내겠니?”유청은 이미 인내심을 상실하고 말했다.방금 배준우가 고은영을 그렇게 보호하는데 그녀가 어떤 얘기를 꺼내든지 받아줄 리가 없었다.배지영이 말했다.“그럼 라 집사한테 왜 그런 말을 남기셨어요?”“그렇게 해야 준우도 내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게 될 거 아니야?”그래야 배준우도 마음의 준비를 할 것이다.량천옥은 유청이 란완리조트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량천옥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유청은 경멸과 조롱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유청은 쯧쯧하며 혀를 찼다.“너도 이렇게 다급할 때
량천옥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옆에 있는 배지영에게 비웃음을 날렸다.“맞다. 지영이도 곧 결혼 얘기가 오갈 텐데 걱정해야 할 거야. 남씨 가문 둘째 도련님을 배항준이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있거든.”남씨 가문 둘째 도련님이라는 말에 유청과 배지영 두 사람의 얼굴은 순식간에 변했다. 모두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량천옥을 바라보았다.“남씨 가문 둘째?”유청은 이를 악물었고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량천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남씨 가문 둘째 말이야. 지능에 조금 문제가 있는 멍청이.”량천옥의 말에 배지영은 눈을 가늘게 떴고 유청의 얼굴에 있던 미소는 굳어졌다.유청은 손을 들어 량천옥의 뺨을 때리려고 했지만 량천옥이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이에 유청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러는 거야?”“난 당연히 자격이 없지. 하지만 배씨 가문의 사모님 신분이라면 자격은 충분해. 배항준이 이미 동의했어.”“너.”유청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녀는 배항준 그 나쁜 놈이 동의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량천옥이 이어서 말했다.“왜? 지영아 설마 자기 자신을 아직도 명문가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때 너한테 있었던 일 이미 강성에서 유명해. 비록 수년 동안 아무도 그 일에 관해 얘기를 꺼내진 않았지만 네 이름만 얘기하면 다들 그 일부터 떠올릴 거야.”“량천옥 당신은 죽어야 해.”배지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고서는 앞으로 나서며 량천옥을 때리려고 했지만 량천옥은 아주 가볍게 막았다.량천옥이 말했다.“너도 너무 불만스러워하지 마. 내가 남씨 가문에 네 칭찬을 아주 많이 해줬으니까.”“당신은 정말 비열한 인간이야.”량천옥은 두 사람을 밀어내고 유청을 경멸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네 딸의 일이나 걱정하는 게 좋을 거야. 며느리는 네 아들이 알아서 충분히 걱정하고 있으니까. 너만 무턱대고 참견하지 않으면 돼.”유청과 배지영은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두 사람은 량천옥처럼 뻔뻔한 여자에게 도대체 누가 저런
입사 2년 차 고은영은 동영그룹 비서실 직원으로서 매사에 신중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그런데 어젯밤, 그녀는 거대한 사고를 치고 말았다.고은영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을 잡고 살짝 뒤집었다. 알몸 상태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남자의 넥타이를 잡고 방탕한 여자처럼 유혹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아직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헉!”얕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그 장면이 꿈이 아니라니! 어떻게 직속 상사를 상대로 그런 미친 짓을 벌인 거지?배준우, 동영그룹 대표이자 그녀의 직속 상사였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너무도 큰 충격에 고은영은 자신도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재빨리 일어나서 옷부터 입었다.그리고 배준우가 깨기 전에 이 끔찍한 범죄현장에서 도망쳤다.떨리는 다리로 겨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애써 어젯밤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했다.그런데 화장 중이던 안지영이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어제 대표님 방까지 모셔다드리고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화해도 안 받던데 어떻게 된 거야?”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해서 말까지 더듬었다.“나? 바람 좀 쐬고 좀 늦게 돌아왔는데 너 자고 있길래 조용히 들어왔어. 아침에 대표님 호출이 있어서 나갔다 이제 들어온 거야!”조금 긴장했지만 군더더기가 없는 대답이었다.대표실 직속 비서로서 수시로 호출을 받는 일도 잦았고 지금은 출장 중이라 밤에 바람 좀 쐰다고 나갔다 와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안지영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화장에 집중했다.무사히 넘어갔다는 생각에 고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화장실로 가서 씻고 출근준비를 했다.두 사람은 식당으로 가서 대충 아침을 먹고 회의실로 바로 직행했다.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고은영은 평소의 진지하고 성실한 직원으로 돌아왔다.가방에서 핸드폰 진동음이 들리고 발신자에 찍힌 “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했을 때, 그녀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지금 당
고은영은 어떤 마음으로 휴게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돌아왔다.그녀를 본 안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고은영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친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그 모습을 본 안지영은 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그녀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한테 혼났어?”안에서 문을 잠그자 고은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안지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 너 이런 모습 보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동영그룹 배준우 대표는 매사에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아무리 예쁜 여직원이라도 일하는 시간에 울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과거에 어떤 여직원이 실연 당하고 회사에 와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 있었는데 배 대표는 대차게 그 부서 전체에 징계를 내렸다.여자라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배준우였다.고은영은 숨 넘어갈 듯이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영아, 나 이대로 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강성을 떠나기 싫어!”“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안지영은 앞뒤 잘라먹은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났다.“내가… 어젯밤에 대표님을… 추행했어!”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공기마저 무거워지고 화장실 안에는 고은영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지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도저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어제 대표님 방에 밤새 있었다고!”고은영이 말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안지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러니까 네가, 대표님이랑 억지로 잠자리를 가졌다는 거야?”이게 사실이라면 커다란 재앙이었다.과거 배준우 한번 꼬셔보겠다고 그의 방에 숨어들었던 여자들은 그 결과가 전부 좋지 못했다.애를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크게 들릴만큼 고요했다. 고은영은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었지만 속은 어지러웠다.배준우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작은 얼굴을 힐끗 훑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런 것 같다라는 식의 대답 내가 싫어하는 거 알 텐데?”고은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확실하지 않은 대답을 가장 싫어하는 배준우였다.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어제 제가 대표님을 방까지 모신 뒤로 아무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그녀는 아까보다 더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고은영에게는 1분이 1년과 같은 고역의 시간이었다.하지만 이걸 이겨내야 했다.만약 배준우에게 거짓말을 들킨다면 그녀만 인생을 망치는 게 아니라 안지영에게까지 피해가 갈 수 있다.겨우 강성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수는 없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은영의 등 뒤가 축축해질 때쯤 배준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래, 알았어.”고은영은 스르륵 눈을 감고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가서 해상그룹 입찰 방안 계획안 좀 가져와 봐.”배준우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영은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그 뒤로 한달 간 긴 출장이 이어지는 동안 고은영은 최대한 배준우와 단독으로 접촉하는 상황을 피했다.한달 뒤, 긴 출장을 끝낸 그들은 강성으로 돌아왔다.관례대로 고은영에게는 이틀의 휴가가 주어졌다. 이날, 배준우는 긴급회의가 있어 회사로 향했다.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태웅이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나태웅을 본 배준우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고 비서는?”“한달 간 출장을 다녀왔으니 당연히 휴가를 줬죠. 고 비서도 연애해야죠.”배준우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지만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나태웅은 갑자기 싸늘해진 분위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한편, 동영그룹 직원 기숙사.
수화기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고은영은 멈칫하며 다시 발신자를 확인했다.대표님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벽에 머리를 박고 자살하고 싶었다!그녀는 바로 태도를 바꾸어 공손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죄송합니다, 대표님. 다른 사람인 줄 착각했습니다.”“당장 회사로 와.”남자는 차가운 한마디를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은영은 꺼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입을 삐죽였다. 또 꿀 같은 휴식일에 불러내다니!그녀는 다급히 마트에 들러서 안지영에게 줄 라면 하나 사고 기숙사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바로 돌아온 그녀를 보자 안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근처에 은행 새로 섰어?”고은영은 뛰어오느라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대표님이 지금 바로 회사로 오래. 일단 라면이나 먹고 있어.”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서 오피스룩으로 갈아입었다.배준우는 정말 깐깐한 상사였는데 직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편한 복장으로 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그녀가 다급히 현관으로 다시 나가는데 뒤에서 불만 섞인 안지영의 목소리가 들렸다.“대표님도 참, 한달이나 출장을 다녀왔는데 쉬는 날에 또 불러내? 그럴 줄 알았으면 너 마케팅부서에 추천할걸 그랬어.”“나 말을 잘 못해서 마케팅 부서는 어울리지 않아.”말을 마친 고은영은 바로 문을 열고 나갔다.기숙사에서 회사까지는 10분 거리였다.이런 지리적 우세 때문에 그녀는 자기 집을 두고 기숙사에서 출퇴근했다. 아침에 잠을 더 자고 교통비도 아낄 수 있다는 점이 큰 메리트로 작용했다.회사에 도착한 그녀는 바로 대표 사무실로 직행했다.안에 들어서자 창가에 서 있는 배준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햇살을 받으며 서 있는 그는 뒷모습만 봐도 귀티 나고 멋져 보였다.고은영은 공손히 다가가서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했다.“대표님, 저 왔어요.”배준우는 고개를 돌리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은영은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지 대표가 저런 눈으로 볼 때면 괜히 긴장했다.다행히 배준우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