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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고은영은 어떤 마음으로 휴게실을 빠져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전시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녀를 본 안지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안색이 왜 그래? 어디 아파?”

고은영은 중학교 때부터 자신과 함께한 친구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본 안지영은 급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다급히 그녀를 끌고 화장실로 가서 작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한테 혼났어?”

안에서 문을 잠그자 고은영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안지영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대표님 너 이런 모습 보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텐데!”

동영그룹 배준우 대표는 매사에 철저하고 냉철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예쁜 여직원이라도 일하는 시간에 울거나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절대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과거에 어떤 여직원이 실연 당하고 회사에 와서 몰래 눈물을 흘린 적 있었는데 배 대표는 대차게 그 부서 전체에 징계를 내렸다.

여자라서 절대 봐주는 법이 없는 배준우였다.

고은영은 숨 넘어갈 듯이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영아, 나 이대로 퇴사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강성을 떠나기 싫어!”

“아니, 도대체 무슨 사고를 쳤길래?”

안지영은 앞뒤 잘라먹은 그녀의 말에 조바심이 났다.

“내가… 어젯밤에 대표님을… 추행했어!”

안지영은 순간 온몸이 굳었다.

공기마저 무거워지고 화장실 안에는 고은영의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안지영은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도저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어제 대표님 방에 밤새 있었다고!”

고은영이 말했다.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안지영의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그러니까 네가, 대표님이랑 억지로 잠자리를 가졌다는 거야?”

이게 사실이라면 커다란 재앙이었다.

과거 배준우 한번 꼬셔보겠다고 그의 방에 숨어들었던 여자들은 그 결과가 전부 좋지 못했다.

애를 임신했다고 찾아온 여자도 있었는데 결국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고은영은 안지영의 추천으로 면접을 패스하고 비서실에 입사했다. 배준우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고은영뿐이 아니라 안지영과 그녀의 가족들까지 피해를 볼 상황이었다.

안지영이 버럭 화를 냈다.

“고은영, 도대체 어쩌다가 그랬어? 아니, 왜 그랬어?”

말을 마친 그녀는 고은영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고은영은 더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그녀는 애써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 어제 대표님 대신 협력업체 임원들이 주는 술을 세 잔 정도 마셨는데 그 뒤로 이성을 잃어버린 것 같아.”

“이성을 잃다니? 설마 네가 먼저 덮친 거야?”

안지영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배준우, 회사 여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다가오는 여자들을 끔찍하게 혐오했기에 아무도 감히 그에게 다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안지영은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말했다.

“너 대표님이랑 같이 일한지도 벌써 3년이야. 우리 대표님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

고은영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에 배준우에게 달려들던 기세는 어디로 가고 겁에 질린 가련한 영혼만이 이 자리에 있었다.

“나 어떡하지? 나한테 하루 안에 범인을 찾으래!”

그렇다고 이제 와서 범인이 자신이라고 자백할 수도 없었다.

안지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대표님이 어제 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얘기야?”

배준우가 애초에 범인이 고은영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지시를 내렸을 리 없었다.

고은영은 더 서럽게 울었다.

안지영은 겁에 질릴대로 질린 친구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저 성격에 어제는 무슨 용기가 나서 배준우를 덮친 거지?

하지만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대표님은 정말 너인 걸 몰라?”

고은영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몰라!”

그걸 알았다면 그녀에게 범인을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안지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은영 때문에 온 가족이 피해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모른다면 방법은 간단해.”

안지영은 화장실 문을 열고 복도에 사람이 없는 걸 재차 확인한 뒤,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다가가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안지영의 계획을 들은 고은영은 여전히 불안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정말 괜찮을까?”

“지금으로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어. 빨리 움직여! 우리한테는 시간이 얼마 없어!”

말을 마친 안지영은 곧장 고은영을 부축해서 일으키고 몰래 보안센터로 향했다.

두 시간 뒤, 배준우는 브리핑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고은영은 그에게 다가가서 서류와 가방을 받은 뒤, 그와 함께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에 도착한 그녀는 허리를 펴고 최대한 사무적인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대표님, 조사하라고 하셨던 일, 결과가 나왔습니다.”

배준우는 소파에 앉아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쏘아보았다.

고은영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보고를 이어갔다.

“보안센터로 가서 CCTV를 확인했더니 어제 제가 대표님을 방까지 모신 뒤에는 대표님 방으로 들어간 사람이 없었어요. 그 팬던트는 아마 전에 그 방에 묵었던 투숙객이 떨어뜨리고 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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