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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나태웅이 업무적인 일로 사무실에 방문하면서 고은영은 그제야 그 숨막히는 사무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배준우는 유리창을 통해 자신의 앞에서는 조신하게 행동하던 그녀가 밖에 나가서는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태웅도 그의 시선을 따라 바깥을 내다보니 고은영이 무언가를 바쁘게 찾고 있었다.

‘고 비서는 여전히 덜렁거리는군.’

고개를 돌린 그는 봉투 하나를 배준우에게 건넸다.

“대표님, 조사해 본 결과, 역시 그날 사모님이 술에 약을 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나태웅이 확인해 보니 캐릭터 모양의 핸드폰 케이스가 보였다. 당연히 배준우의 것은 아니었다.

아까 사무실에 들어왔던 고은영이 부주의로 핸드폰을 두고 나간 것이다.

한참 핸드폰을 찾아 헤매던 고은영은 다시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문앞에 도착하자 배준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그 여자는 찾았어?”

방 문을 노크하려던 고은영은 순간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

아직도 그 여자를 찾고 있었나?

곧이어 나태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사모님께서 대표님 결혼을 추진하려고 보낸 여자일 테니 사모님 측근임이 틀림없겠네요.”

“측근이라! 웃기지도 않는군!”

잔뜩 날이 선 배준우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한달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 찾아서 해결해.”

“네, 대표님.”

나태웅의 목소리마저 차가워졌다.

고은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골칫거리가 생겼을 때 그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였다.

만약 그날의 진실이 탄로난다면 자신이 어떤 처참한 처지가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밖으로 나온 나태웅이 고은영을 보고 아는체했다.

“고 비서?”

“나 실장님, 오랜만이네요.”

고은영은 곧장 정신을 가다듬고 공손히 인사했다.

하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태웅은 그녀의 안색을 잠깐 살피더니 걱정스럽게 물었다.

“고 비서 어디 아파? 안색이 왜 이래?”

“감기기운이 좀 있어서요.”

고은영은 황급히 변명했다.

나태웅은 고개를 끄덕인 뒤, 병원에 가보라는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사무실 문이 열려 있었기에 고은영은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죄송해요, 대표님. 핸드폰을 놓고 가서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핸드폰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데 배준우가 재빨리 그녀의 핸드폰을 가로채더니 켜진 핸드폰 화면을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다.

“고 비서, 이거 어떻게 설명할 거야?”

안 그래도 좋지 않던 고은영의 안색은 차가운 한마디에 파랗게 질렸다.

핸드폰 화면에는 안지영이 보낸 카톡 문자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아직이야? 왜 이렇게 늦어? 대표님한테 붙잡혔어?]

고은영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

배준우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고 비서, 내가 그렇게 힘든 일 시켰어? 그래서 친구한테 고해성사라도 한 거야?”

잔뜩 날이 선 말투에 고은영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아, 아닙니다, 대표님.”

안 그래도 조금 전 들은 대화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운데 상사 뒷담화하다 들킨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배준우는 빨리 해명해 보라는 듯이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고은영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대표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 고 비서 평소에 일을 열심히 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왜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해?”

평소에 배준우는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칭찬은 오히려 더 큰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녀가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안지영의 문자가 또 도착했다.

[야, 무슨 일인데? 혹시 대표님한테 들킨 거 아니지?]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치닫고 있었다.

고은영의 얼굴에서 핏기가 아예 사라지고 입술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녀는 애써 고개를 들고 어서 대답해 보라는 남자와 시선을 맞추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쉬는 날에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뭐?”

배준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은영은 손톱에 살갗이 까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애써 정신줄을 잡았다.

“회사랑 무관한 간단한 아르바이트예요. 회사에 그 어떤 불이익도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동영그룹 대표실 비서인 동시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였다.

원칙적으로 회사에서는 원활한 업무진행을 위해 쉬는 날 아르바이트를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일이 까발려지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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