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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그 일에 대해 묻지 않아서 그냥 넘어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상황은 점점 꼬이고 있었다.

고은영은 선뜻 수락하기도 그렇다고 거절하기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배준우는 그녀가 말이 없자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 하기 싫어?”

당연히 하기 싫죠….

하지만 그 말을 입밖으로 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배준우는 대답할 기회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고 비서, 지금 실력으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많이 봐준 거 알지? 비서실장으로 진급하려면 아직 멀었어.”

고은영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 실장 따라다니면서 배우라고 한 것이 날 밀어주기 위해서라고?

수행비서가 되면 연봉은 네 배로 뛸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숨막히는 대출을 생각하면 이건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실장님이 잘 하고 계시잖아요.”

“나 실장은 연말에 퇴사할 거야. 가업을 이어받는대!”

고은영은 나 실장이 진짜 재벌2세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내 눈썰미가 이렇게나 좋았었나?

그러고 보면 주변 사람들은 다 이어받을 가업이 있는데 자신만 없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

그녀는 좀 더 노력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곧 후회가 되었다.

배 대표를 덮친 범인이 자신인데 자신을 추적하는 조사에 협조해야 한다니!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기에 물릴 수도 없었다.

배준우는 갑자기 바뀐 그녀의 태도에 눈살을 찌푸렸지만 흔쾌히 동의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나가 봐.”

“네, 대표님!”

고은영은 공손히 인사하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밖으로 향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그녀의 태도에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 뒷모습을 노려보았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점심시간.

고은영은 배준우를 위해 음식을 주문한 뒤, 안지영과 함께 회사를 나섰다.

평소에는 구내식당을 자주 이용하지만 오늘은 급한 일이 있었기에 같이 밖에서 먹기로 했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뒤, 안지영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그 문자 뭐야? 무슨 일인데?”

“배 대표님은 그날 밤 여자를 추적하고 있어.”

“그건 나도 알아!”

“그리고 나한테 나 실장님이 조사하는 걸 도와주라고 했어.”

안지영은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아수라장인가? 그날도 그녀에게 사람을 찾으라 지시했고 오늘도 그 여자를 찾으라는 지시를 받다니. 상황이 너무… 무시무시했다.

“너 티는 안 냈지?”

안지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가 아는 고은영은 겁이 많고 소심한 친구였다. 배준우가 왜 그녀를 믿고 중임을 맡기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고은영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응. 긴장하긴 했는데 대답은 잘했어.”

오늘은 무사히 넘겼지만 언제 멘탈이 터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안지영이 말했다.

“이렇게 시간을 끈다고 방법이 생기는 건 아닌데.”

“나 실장은 나한테 그 팬던트 가져오라고 했어.”

“천사 모양 팬던트? 네가 계속 하고 다니던 그거?”

안지영은 허전한 그녀의 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제야 친구가 항상 하고 다니던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다.

“그날 밤 방에 두고 나왔었어.”

안지영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이 사실을 몰랐을 때는 어떻게든 넘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은 그녀가 생각한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래서 큰일 난 것 같다고 했나?

안지영은 긴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물었다.

“대표님은 네가 그 목걸이 하고 다니는 거 못 봤지?”

“나도 몰라!”

고은영은 사고가 정지된 상태였다.

안지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다니던 장신구였으니 고은영이 그걸 하고 다니는 걸 본 직원도 수두룩할 것이다.

물론 배준우가 직원 액세서리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성격은 아니라 다행이지만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안지영은 고은영을 보고 있자니 화만 치밀었다.

“그래서 나 실장한테 팬던트 넘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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