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는 그와 민우 두 사람의 유전자 검사 결과 보고서와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연성빈, 민우는 네 아들이야. 그러니까 네가 잠깐 데리고 있어 줘. 일 끝나는 대로 데리러 갈게.]쪽지에 적힌 글씨체와 이름을 보고 연성빈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세리는 그가 막 출국할 때 사귀었던 여자 친구이다.그들은 반년 동안 사귀었고 반년 동안 동거도 했었다.근데 조수아를 잊지 못해 꿈속에서조차 조수아의 이름을 부르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세리에게 불공평하다고 생각이 들어 이별을 통보했었다. 그 당시 세리는
한지혜는 눈물을 훔치며 그를 노려보았다.“수아가 왜 당신이랑 헤어졌는지 몰라? 그냥 질투해서 헤어진 것 같냐고? 수아 생일날, 수아는 당신에게 프러포즈하려고 했었어. 프러포즈 현장 꾸미다가 손도 여러 군데 베였고.”“그런데 당신은 송미진의 전화 한 통에 수아를 혼자 집에 두고 가버렸지. 유산을 한 수아가 출혈이 심해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도 당신은 수아가 억지를 부린다고 쓴소리를 했고.”“송학진 씨가 수아를 구하지 않았다면 수아는 이미 과다 출혈로 인해 죽었을 거야. 수아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수술 동의서에
조수아의 이런 모습에 육문주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 전해졌다.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열쇠를 가지고 방을 뛰쳐나갔다.한편, 호텔에서 나온 조수아는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그녀는 목적 없이 운전했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고 오늘 밤은 그저 혼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다.연성빈, 한지혜, 그리고 조병윤의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누구의 전화도 받고 싶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이 세상이 자신에게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사람인 그녀가 왜 이렇게 소소한 행복조차
육문주의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서려 있었다.그는 조수아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낮은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맘껏 욕해.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한 대 때려도 좋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그녀는 발버둥 치지 않고 그에게 가만히 안겨있었다.이미 그와 싸울 힘도 없었고 더 이상 그 때문에 상처 받기 싫었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오히려 내가 당신한테 고마워해야지 뭐. 연성빈과의 관계가 깊어진 후에 이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그게 더 큰 상처였을 거야. 오늘
조수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 우리 두 사람은 이미 끝났어. 더 이상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싶지 않고 보상받을 생각도 없어.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그저 옛 회사 동료 사이였으면 좋겠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말을 마친 후, 그녀는 외투를 벗어서 그에게 건네주고는 차에 올라탔다.뒤에서 그가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그녀는 그렇게 차가운 달빛 아래에서 사라져 버렸다.한편,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성빈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소문에 의하면 민우의 엄
조수아가 연성빈을 다시 만났을 때는 허수경이 그녀를 딸로 삼겠다고 한 그날 밤이었다.그는 며칠 사이에 많이 핼쑥해졌다. 눈은 움푹 들어갔고 얼굴도 창백해졌다.그는 복도에 서서 쓸쓸히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조수아는 그에게 물 한 병을 건네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선배, 민우 엄마를 찾아갔었어요?”연성빈은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수아야,실망시켜서 미안해.”조수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자책하지 말이요. 어차피 우리 두 사람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연성빈은 고통스러운 표정
백시율은 이렇게 진지해 본 적이 없었다.자유분방한 그는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러나 조수아의 말 한마디면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랑 경쟁하고 싶다면 일단 나부터 이기고 봐.”검은 옷을 입은 채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육문주는 손가락 사이에 채 타지 않은 담배가 끼고 있었다.준수한 얼굴에는 우울함이 배어있었다. 가뜩이나 깊은 눈은 더 깊게 파여 있었고 눈가의 주름이 선명했다.까만 눈동자 속 깊은 곳에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했
레이싱용 자동차 두 대가 번개처럼 조수아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관중석에 앉아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 한지혜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 너머로 한지혜의 비명이 들려왔다.“수아야, 내일 양지안의 결혼식에 신랑 들러리로 오는 남자 엄청 잘생겼어. 안경을 쓰면 지적이고 안경을 벗으면 또 엄청 섹시해 보여. 너 그 사람이랑 잘해 볼 생각 없어?”조수아는 피식 웃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사람인데 왜 이렇게 흥분해?”“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내가 너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기다려. 이 남자 사진이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