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리에 윤아는 번쩍 정신이 들어 옆에 선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눈앞에 방긋방긋 웃고 있는 수현이 보였다.“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혼자 왔어?”윤아가 입술을 뻐끔거리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수현이 보인 행동이 떠올라 하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기분이 잡쳐 아예 수현을 무시하고는 매장 안으로 걸어갔다.기분이 좋은 수현은 윤아가 이 립스틱을 마음에 들어 하는 줄 알고 사주려고 했는데 윤아가 그런 수현을 힐끔 쳐다보더니 몸을 홱 돌린 것이다. 표정이 꽤 기분 나빠 보였다.수현이 멈칫하더니 윤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말을 잘못했나?하지만 깊이 생각하지는 않고 얼른 윤아의 뒤를 따랐다.“아까 그 립스틱은 마음에 안 들어? 컬러 예쁘던데?”윤아는 수현이 따라오면서까지 립스틱 컬러를 물을 줄은 몰랐다. 인플루언서가 괜히 저 컬러를 바르면 남자들이 좋아죽는다고 말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건 아닐 수도 있다.윤아는 걸음을 멈추더니 물었다.“왜? 저 컬러가 좋아?”수현은 별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다.“좋지. 다른 립스틱은 평소에 바르기에는 부담스럽다면서? 이 컬러는 괜찮은 거 같은데? 네 입술 색과도 비슷하고.”수현은 이렇게 말하며 윤아의 입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전에는 몸이 허약해 입술에 핏기가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런지 음식 섭취도 정상이었고 몸 상태도 조금 돌아왔다. 따라서 입술도 옅은 핑크색으로 돌아왔고 푸딩처럼 촉촉했다. 게다가 윤아는 피부도 매우 하얬다.하지만 윤아는 수현의 생각을 알지 못했고 아직도 조금 전 수현이 보인 행동이 불만스러웠기에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좋아? 그럼 사서 직접 쓰던지.”윤아는 이렇게 말하더니 수현을 던져두고는 자리를 떠났다.수현이 아무리 무디다 해도 윤아가 두 번이나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니 드디어 뭔가 눈치챘다.수현은 그 자리에 서서 잠깐 고민하더니 아까 윤아가 눈여겨보던 립스틱을 챙겨 얼른 뒤를 따랐다.보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었다.“어제 잠을 잘 못 자서 몸이 불편해?”“혹시 내가 립스틱 사러 가자고 해서 힘들어?”“아니면 여기 있는 컬러 다 살까? 그럼 고를 필요 없이 바로 가서 쉬면 되잖아.”“윤아야?”“심공주?”윤아가 립스틱을 고르고 있는데 수현이 계속 옆에서 쫑알거리며 이것저것 계속 확인했다. 그러다 결국 고개를 돌린 윤아는 어딘가 많이 조급해 보이는 수현의 얼굴을 마주했다.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앙다문 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수현의 모습을 보아하니 기분 나빠하는 그녀를 보고 긴장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설마 오해한 걸까? 하지만…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수현에게 물었다.“아까 거기 가서 뭐 했어?”윤아가 드디어 자기 말에 대꾸하자 수현이 바로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며 바짝 다가갔다.“아까? 봤잖아… 그 애들한테…”수현이 미처 해명하기도 전에 윤아가 하얀 손바닥을 내밀었다.“핸드폰 내놔.”이를 들은 수현이 얼른 자기 핸드폰을 윤아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윤아가 핸드폰을 가져와 보니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었다. 윤아가 묻기도 전에 수현이 입을 열었다.“비밀번호는 네 생일이야.”생일이라고?윤아가 잠깐 고민하더니 숫자를 몇 개 입력했고 이내 핸드폰이 열렸다.비밀번호가 자기 생일인 걸 발견한 윤아는 기분이 살짝 좋아졌고 화도 조금 풀렸다.윤아는 이내 카톡으로 들어가 최근 채팅한 사람 중에서 낯선 연락처를 찾았다. 들어가자마자 맨 처음으로 윤아의 연락처가 보였고 그 뒤로도 전부 익숙한 프사였다. 가족이나 친척이었다.카톡 연락처는 간단했다. 연락처도 몇 개 없었다.채팅 목록에서는 별다른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윤아는 코를 찡그리며 연락처로 향했다.확인해 보니 수현의 연락처는 정말 너무 단순했다. 두어 번 위로 올리니 끝이었다. 연락처에도 별것 없었다.윤아가 핸드폰을 가져가서부터 그녀가 뭘 하는지 지켜보던 수현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녀의 손가락에 이상함을 느꼈다.“심공주, 지금 뭐 하는 거
아직 조사가 끝나지 않은 윤아는 수현이 볼을 꼬집는 게 싫어 얼른 밀쳐냈다.“건드리지 마.”수현은 손을 거두기는커녕 허리를 숙여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됐어. 추가한 건 맞는데 다시 삭제했어.”“그럴 거면 왜 추가했어?”“친구 추가 안 하면 영상은 어떻게 받아?”“무슨 영상?”“무슨 영상일 것 같아?”수현이 물었다.“…”윤아는 말문이 막혔다. 이내 그가 말한 영상이 아까 그 여자애가 찍은 수현이 윤아에게 뽀뽀하는 영상이라는 걸 알아챘다.조금 전 윤아는 수현이 그 여자애와 친구 추가하는 것만 봤지 영상을 받기 위해서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아까 차갑게 냉대했던 자신이 떠올라 윤아는 입장이 애매해졌다.“왜? 내가 여자애 연락처라도 딴 줄 알았어?”수현이 윤아의 코끝을 가볍게 쓸어내리더니 이렇게 말했다.“너를 위해 목숨까지 마다하지 않는 내가 그럴 리가 있겠어? 다른 사람 카톡을 추가해서 뭐 하게? 상황만 복잡해질 텐데.”상대를 위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이 다른 사람 입에서 나왔다면 입에 발린 소리라고 생각하고 그저 넘겼을 텐데 수현이 자기 안전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그녀를 구해낸 다음부터 윤아는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믿게 되었다.하여 이 말에는 반박할 길이 없었다. 오히려 예전 일이 떠올라 다시 한번 감동했다.“미안해…”윤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오해했어.”수현은 원래 질투하는 윤아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가야 질투도 할 수 있다. 윤아가 질투한다는 건 수현을 매우 신경 쓴다는 의미였기에 수현은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하지만 수현은 윤아가 사과까지 할 줄은 몰랐다. 갑자기 들이닥친 윤아의 사과에 수현은 어안이 벙벙했다.“바보야, 네가 질투해 줘서 나는 기분이 너무 좋은데? 네가 나를 신경 쓴다는 의미잖아. 사과를 왜 해? 그럴 필요 없어.”이를 들은 윤아가 눈을 깜빡거렸다.“내가 오해하고 심술까지 부렸으니 사과하는 건 당연한 거지.”“아니, 그러
윤아가 다른 컬러를 고르며 가볍게 물었다.“그래서 친구 추가하고 영상을 보내주자마자 삭제했다고?”수현이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안 그러면? 남겨둬서 뭐 해? 너만 기분 나빠지지.”윤아는 수현에게 화냈던 것만 생각하면 할 말이 없었다.“오해해서 그런 거잖아. 지금은 화 다 풀렸는데 왜 자꾸 들춰내는 거야?”“들춰내면 어때서? 어쩌다 질투하는 건데 오래 우려먹어야지.”“…”윤아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물었다.“근데 바로 삭제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심공주, 내가 어떡하면 좋겠어? 그냥 내버려두면 아까 핸드폰 검사할 때 아마 더 화냈을걸?”이렇게 말한 수현은 윤아에게 더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아까 친구 추가할 때 이미 결혼했다고 말했어. 혹시나 네가 질투할까 봐 영상만 받으면 바로 삭제한다고도 했고.”그럼 아까 수현이 입을 뻐끔거린 게 이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윤아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영상은?”“보고 싶어?”수현이 갤러리를 클릭하더니 저장한 영상을 그녀에게 보여줬다.멀리서 찍은 영상이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영상에서 윤아는 수현의 꿀 떨어지는 눈빛도 확인할 수 있었다.평소에 대화할 때는 별로 못 느꼈는데 카메라로 확인하고 나서야 수현이 이런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윤아는 평소에 드라마를 보는 습관이 없었다. 하지만 쇼츠가 유행하는 요즘 드라마를 짤막한 영상으로 만들어 올리는 경우가 많았기에 윤아도 가끔 보곤 했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윤아는 자연스럽게 전에 쇼츠에서 봤던 드라마가 떠올랐다.“아참, 그 여자애 나한테 영상 보내주고 이렇게 묻더라.”“뭐를?”“인터넷에 올려도 되냐고.”윤아가 입술을 앙다물더니 말했다.“된다 그런 거야?”“네 생각엔? 내가 된다 했을까 안된다 했을까?”이에 윤아가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네 마음에 달렸지.”고작 꽁냥대는 영상이었기에 윤아는
심윤아는 그의 생각을 모르고 있어 그저 일상적이고 부드러운 컬러를 몇 개 골라 계산하려고 할 때, 진수현이 몇 개 더 고른 것을 발견했다.수현이 고른 컬러는 하나같이 밝았는데, 가장 많은 것은 핑크였다.윤아는 말문이 막힌 상태로 한참을 쳐다보다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것들은 뭐하게?”수현이 나른하게 대꾸했다.“너 사주려고.”말을 마친 수현이 윤아를 이끌고 계산대로 향했다. 수현이 윤아에게 립스틱 한 무더기를 사준 것을 보고 옆에 있던 여자아이들이 부러움을 금치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여자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윤아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올라갔다.‘역시 여자애들이 제일 귀여워.’그녀들은 다른 사람의 사랑에 환호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모두 본인에게 어울리는 행복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윤아가 마음속으로 화답했다.돌아가는 길에 윤아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수현 씨가 골라준 핑크 컬러는 나한테 안 어울릴 것 같아.”“그래?”수현은 이해할 수 없었다.“왜? 네 입술 컬러랑 제일 비슷하잖아.”“내 입술 컬러랑 제일 비슷한 건 처음에 고른 립스틱이야, 수현 씨가 고른 게 아니라.”윤아는 수현이가 베이비 핑크 컬러도 샀다는 걸 눈치챘다. 어울리는 사람이 없기로 유명한 컬러였다.그만큼 유명한 컬러라 윤아는 산 적이 없었다. 새로운 시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평소에 입는 옷 스타일도 소녀다운 옷이 별로 없었다. 베이비 핑크 컬러는 출근할 때도, 평소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는 상황이 있어야만 살법한 컬러였다.수현이의 목소리가 얼마간 낮아졌다.“그래? 그럼 내가 고른 것 중에 너한테 어울릴만한 거 있었어?”말 나온 김에 윤아가 베이비 핑크 컬러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수현이 갸우뚱하며 물었다.“어떤 컬러?”그의 물음에 윤아는 말문이 막혔다.“무슨 컬러인지도 모르면서 막 골랐어?”‘역시 숙맥이네.’윤아가 쇼핑백에서 베이비 핑크 컬러를 꺼내 보여주었다.어차피 결제한 물건이라 수현은 포장을 뜯어 컬러를 확인
수현이 가볍게 웃었다.“왜 나한테 안 보여줘? 바르고 나갈 일 없다며? 나한테도 안 보여주면 낭비잖아.”“그래도 안 바를 거야.”말을 마친 윤아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수현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하지만 보고 싶은걸? 내가 발라줄게.”말을 마친 수현이 그 립스틱을 주머니에 넣고는 웃었다.“새해가 되는 그날 밤.”윤아의 말문이 막혔다.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윤아는 항상 수현이 생각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았다. 특별한 날을 선택해서 직접 발라주겠다고 하니, 바르고 나서 그에게 삼켜질지 어떻게 알겠는가?그 가능성을 생각하자, 윤아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상상 속의 진전은 빨랐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윤아의 머릿속에는 야한 장면들이 떠올라 하얀 뺨은 블러셔를 바른 듯 달아올랐다.수현이 그녀를 안고 걸어가고 있어 변화를 눈치채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챘다면 그의 성격상 틀림없이 윤아를 놀렸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이 시작됐다. 윤아와 수현이 함께 앉았고 두 아이와 진태범, 이선희가 함께 앉았다.비행기에 탑승한 후, 윤아는 핸드폰을 비행모드로 설정했다. 그녀의 자리는 창가여서 창밖으로 마침 크나큰 공항이 보였다.윤아는 공항을 보며 문득 그를 만나기 싫어하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지난번에 그를 찾아가고 나서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그동안 잘 지내고 있을까? 아직도 감금되어 있을까?’떠난 후, 그녀는 그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했다. 윤아를 도와줬던 진우진마저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는데,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조용했다.비록 연락은 끊겼지만, 윤아는 그가 잘 지내기를 바랐다.또한 그가 얼른 생각을 정리하고 본인만의 생활을 찾아 모든 게 정상 궤도로 돌아갔으면 했다.윤아와 사돈 일행이 와서 같이 설을 보낸다는 사실에 심인철은 너무나도 기뻤다. 딸이 진씨 가문에서도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사실, 그는 항상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믿어왔다. 오랜
사실 화연도 그가 자신이 힘든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평생을 바쁘게 살아왔다.인철과 함께하기 전에는 항상 혼자 아이를 돌보며 살았다. 여자 혼자서 아이를 돌보기 쉽지 않았다. 특히 그녀처럼 평범한 여자가 인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은 완전히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그녀는 자신이 심씨 가문의 사모님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부잣집 사모님이 되어도 화연은 한가롭게 있지 못했다. 혼자 있을 때 정말 바쁘게 보냈는데 인철과 함께 있고 나서는 누군가가 모든 걸 대신 해주다 보니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아 마음이 허전했다.그래서 그녀는 가끔 일을 찾아서 했다. 하지만 인철은 그녀가 도우미처럼 집안일을 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화연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예전에 익숙해져서 그래요.”그녀가 옛이야기를 꺼내자, 인철도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예전이 벌써 몇 년 전인데, 당신도 여기 온 지 한 참 지났어요. 그동안 다른 생활에 익숙해지진 못했어요?”인철의 말을 들은 화연의 표정이 다소 수줍어졌다.“계속 한가롭게 있으면 뭔가 당신 덕을 보는 것 같아요.”인철은 듣더니 말문이 막혔다.“무슨 덕이요? 이리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상 사사로운 건 신경 쓰지 말아요.”“알겠어요. 앞으로 고칠게요.”혼자 아이를 기르며 지내온 화연이지만 그녀는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었다. 정서도 안정적인 사람이었는데, 인철과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두 사람은 한 번도 다툰적 없이 평화롭게 화목하게 지냈다.화연의 성정 때문에, 윤아도 화연을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시간 좀 봐야겠어요. 아마 곧 착륙할 것 같은데, 30분은 미리 공항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죠.”인철이 시간을 보더니 몸을 일으켰다.“같이 갈래요?”화연도 함께 가고 싶었지만 끝내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는 집에서 기다릴게요.”도우미들이 마무리를 깔끔하게 못 할까 봐 걱정되어 그녀는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인철도 그녀의 생각과 성
수현이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힘들면 내가 안고 갈까?”잠깐 기대어 쉬려고 한 윤아는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어이없는 말투로 답했다.“그럴 것까지는 없어. 여기 공항이야.”‘안고 가는 건 너무 눈에 띄잖아.’“공항인 게 왜? 공항이면 널 못 안아?”수현이 불만스러운 말투로 답했다.“다른 사람이 봐.”“그럼 보라고 해.”말을 마친 수현이 그녀를 안으려 허리에 손을 올렸지만 윤아에게 제지당했다.“안돼. 혼자 갈 수 있어. 그저 조금 피곤할 뿐이지 혼자 못 걷는 건 아니야.”몇 초 안 돼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는 윤아의 모습에 수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전에는 이렇게 수줍어하는 거 왜 몰랐을까?”윤아는 입술을 오므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이번에 그녀와 수현만 있으면 안으면 안았지,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태범과 선희 그리고 아이들이 있고 인철이 기다리고 있어 상황이 달랐다.비행기가 착륙하여 핸드폰 모드를 바꾸자마자 윤아는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인철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는데 예상했던 일이었다. 오기 전에 항공편을 물었기 때문이었다.이런 상황에서 수현에게 안겨 나간다면 생각만 해도 민망했다.하여 그녀는 수현이 안고 나가겠다는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수현이 강요하기도 뭐했다. 그녀의 기분을 나쁘게 하고 싶지 않은 수현은 그녀가 하자는 대로 했다.“안는 게 민망하면 업는 건 어때? 그건 되지”듣자 하니 괜찮은 생각 같았다.‘안는 건 민망한데, 업히는 거면... 괜찮겠지?’부모님이 보셔도 그렇게 민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눈치챈 수현이 얼른 그녀의 앞으로 가 허리를 굽혔다.“업히시죠, 공주님.”넓은 등을 보며 윤아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수현은 손을 뻗어 그녀를 당겨 업히게 했다.“뭘 망설여, 업혀.”윤아는 그렇게 예고도 없이 그의 등에 밀착해 업혀지게 되었다.윤아가 비행기에 갖고 올랐던 가방은 수현이 들어줄 손이 없어 직접 들 수밖에 없었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