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씨 아주머니가 문을 열었다.뜻밖에도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은 도우미가 아닌 경비원이었다.그러자 장씨 아주머니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 엄숙해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무슨 일이죠?”경비원이 고택 안으로 들어온 적이 거의 없기에 노부인 안방까지 찾아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특히 이런 늦은 시간에.아마 중요한 일이 있어서 경비원이 직접 찾아왔을 것이다.“손님이 오셨습니다. 부 대표님의 선생님이신데, 노부인을 뵙고 싶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기 명함.”경비원은 이렇게 대답하며 류덕화의 명함을 장씨 아주머니에게 건넸다.장씨 아주
“당연하죠!”장씨 아주머니가 맞장구를 쳤다.그리고 노부인을 보며 또 물었다.“그럼 어떻게 하실 거예요? 류씨 가문의 사람을 만나실 건가요?”“여기까지 왔는데, 한번 만나봐 줘야지.”노부인은 이불을 젖혔다.“내가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산다고. 날 이용하려고 온 사람한테 당장 복수하지 않으면 언제 기회가 생길지 모르잖아?”“무슨 말씀이세요.”장씨 아주머니는 노부인을 부축하며 못마땅한 말투로 말했다.“오래오래 사실 거예요. 도련님이랑 윤슬 씨가 결혼하고 아이 낳는 것까지 다 보게 되실 거예요. 어쩌면 민혁 도련님이 결혼하는
류덕화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지. 옛날 왕족이 살았던 저택이야. 부씨 가문의 조상이 큰 공을 세워서 이 저택을 받게 됐는데, 후에 거금을 들여 여러 번 복구해서 지금 이렇게 된 거야.”“왕족이 살던 곳이라서 이렇게 큰 거구나. 왕족의 저택은 거의 허물어져서 보기 되게 드물잖아요. 우리 류씨 가문에도 이런 저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아요?”류진영은 부러운 눈빛으로 주위를 쳐다보았다.그러자 류덕화는 대답하지 않았다.류덕화도 당연히 이런 저택을 가지고 싶지만 류씨 가문은 그런 실력도, 재력도 모두 없었다.‘괜찮아. 은미가 부씨
류덕화는 속으로 노부인과 장씨 아주머니의 반응에 불만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영역이다 보니, 류덕화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그는 자기의 생각을 감추고 오히려 잘못을 인정했다.“동……, 아니, 노부인. 정말 실례를 범할 생각 없었어요. 전 그저…….”“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노부인님은 이 무리에서도 연세가 제일 높으신 분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명문이 다 알고 있는 일이에요.아무래도 작년에 명문의 모든 사람이 우리 노부인의 생신을 축하하러 오셨으니까요. 류씨 가문도 명문이라면 이 일을 모를 리 없
의도가 들통나자 난감해진 류덕화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노부인은 그런 류덕화를 보고 웃으며 장씨 아주머니의 팔을 다독였다.“맞아요. 류 선생, 무슨 일이 있으면 돌려서 얘기하지 말고 그냥 말하세요. 나이가 들어서 수수께끼에 별로 흥미가 없네요. 제시간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류 선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거니까요.”류덕화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맞는 말씀이세요. 그럼 저도 뜸 들이지 않고 그냥 말할게요.”“진작 그랬어야죠.”노부인이 덤덤하게 말했다.그러자 류덕화는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그는 너무 화가 났지만, 어쩔
류덕화는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는데 그 표정은 너무나도 가식적이었다.이게 바로 연기가 서툰 사람의 발 연기였다.그러자 노부인은 더욱 짜증이 났다.“왜 그런 짓을 한 거죠?”류덕화는 노부인이 언짢아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인 줄도 모르고 그저 자기 손녀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미안한 척,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네. 저도 얼마 전에 알았어요. 그래서 직접 찾아온 거예요.”“그럼 류 선생의 손녀가 왜 이런 짓을 한 거죠?”노부인은 찻잔을 들고 여유롭게 차를 마셨다.“만약 제 기억이 맞다면 류 선생의 손녀와 윤슬은
“일을 크게 벌인다고요?”노부인은 마치 세상 우스운 얘기를 들은 것처럼 테이블을 치며 냉소를 지었다.“류 선생이 보기엔 시혁이랑 윤슬이 이 일을 크게 벌였다고 생각해요?”“아닌가요?”류덕화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은미가 잘 못했긴 하지만 고의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시혁이도 참. 고작 이런 일 때문에 이 난리까지 칠 필요 있나, 싶네요. 우리도 사과했으니까, 그냥 넘어가면 될걸.”“류씨 가문에선 이 일을 이렇게 생각하시는군요.”노부인은 비아냥거리는 냉소를 지으며 류덕화를 쳐다보았다.“제가 보기엔 당연히 그럴 필요
이 말이 나오자 류덕화의 표정이 돌변했다.노부인의 호통에 더는 감히 입을 열지 못하던 류진영마저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리고 초조한 표정으로 장씨 아주머니의 노부인을 쳐다보았다.‘큰일났어. 은미가 시혁이를 좋아한다는 걸 다 알고 있었어!’류덕화도 당황했지만, 아무래도 많은 일을 겪어본 사람이라서 곧 진정했다. 그리고 주먹을 쥔 채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농담도 참.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연기는 이제 그만 하시죠? 계속해도 의미 없으니까요. 류은미 씨가 우리 시혁 도려님을 좋아하는 거 진작 알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