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명원제가 건곤전에 문안하러 왔다. 그는 태상황의 상태가 전보다 호전된 것을 확인 한 후 돌아갔다. 원경릉은 명원제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줄곧 한 구석에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명원제가 자리를 떠난 후, 상선은 늘 그래왔듯 자기 전 태상황의 몸을 정성스레 닦았고, 원경릉은 외전으로 자리를 피했다. 이 틈을 타 그녀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았다. 상처가 난지 꽤 되었기도 하고 계속해서 자극이 있었던지라 고름이 잡히려고 하는 것 같았다. 주사를 놓은 후, 그녀가 잠시 엎드려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데 안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속에서 울컥 무언가가 올라왔다. 그녀의 목구멍에서는 비릿한 맛이 느껴졌으며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렀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나무 아래에 피를 토하고는 나무를 붙잡고 정신을 차리기위해 애썼다.“왕비님, 왜그러십니까?” 등뒤로 상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경릉은 손을 저으며 “체한 것 같습니다. 별일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상선은 그녀의 안색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원경릉은 ‘왜 피를 토한거지’ 하는 의구심을 꾹 참고 궁으로 돌아갔다. 침상에 반쯤 걸터 앉은 태상황의 모습이 보였다. 한눈에 보아도 전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이었다.“태상황님, 주사를 맞으셔야 합니다.”원경릉이 말했다. 태상황은 팔을 걷어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과인이 상전을 내보냈으니, 너는 네 일에만 집중하거라.” 원경릉은 청진기를 꺼내 태상황의 심장박동과 호흡을 확인해보았다. 호흡이 약간 불안정했다. 원경릉은 도파민을 꺼내 링거를 놓았다. 그녀는 설저환 한 병을 꺼내 태상황에게 주면서 “이 약은 응급시에 드셔야 합니다. 가슴이 아프거나 숨이 막히면 혀 아래에 넣으십시오” 라고 말했다. 태상황은 손을 내밀어 설저환을 한움큼 받았다. 잠시 후, 원경릉이 한손에 각양각색의 약을 한움큼 쥐고 다른 한 손에는 물을 가지고 왔다. 태상황은 조금 짜증나는 목소리로 “이게 다 뭐야?”라고 말했다. “다 드
주명취는 태상황의 낯빛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는 안심했다. ‘태상황이 초왕을 총애해서 초왕의 부인인 원경릉보고 병시중을 들라고 한 것이지, 원경릉은 그저 병수발이나 드는 한낱 궁인보다 못한 존재지’어의는 태상황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급히 약을 들고 나가려고 하였다. 태상황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빨리 약을 가져오지 않는게냐! 방금 초왕비가 한 말을 못들은거냐!”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져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특히 주명취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원경릉은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태상황이 어의가 준 약을 먹지 않고도 병이 좋아진 것을 알면 많은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을 원경릉은 알고 있었다. 명원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빨리 가져오거라!”명원제가 원경릉에게 온화한 눈길을 주었다. 태상황이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 약이 매우 써서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찌푸려졌다. 태후는 급히 약과를 하나 건내주었다. 약과를 입에 넣은 태상황의 얼굴이 조금 풀어지는 듯 했다.우문호는 복잡한 눈빛으로 원경릉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생각치도 못하게 황조부가 그녀의 말을 듣다니, 설마 그녀의 음모는 이미 실현된것인가?태상황이 약을 마시자 태후는 기뻐하며 원경릉을 칭찬하자 옆에 있던 예친왕까지 원경릉에게 칭찬을 했다. 황후는 웃고 있는 듯 했지만, 그 웃음이 왠지 어두웠다. 보아하니 주명취의 근심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명원제는 정사를 제치고, 태황상제를 보필하러 왔다. 태상황의 병이 호전됐다고 할지라고 어제 태상황이 임종 가까이 갔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단번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가 명원제와 예친왕에게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명원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원경릉에게 말했다. “낮에는 오는 사람이 많으니, 이 틈에 넌 들어가서 잠을 보충하거라.”이 말을 들은 원경릉은 몸을 숙이며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외전으로 향하는데 상선이 다가와 원
우문호의 마음이 요동쳤다. 죽어도 초왕비는 하지 않겠다니 기가 막혔다. 우문호는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 그는 그녀의 뺨을 내리치며“일어나서 똑바로 말해!” 라고 말했다.희상궁은 화가 나서 원경릉의 몸을 감쌌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이오, 왕야! 어째 이렇게 모질게 변했소! 부부의 정은 고사하고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고해도 이렇게는 못하겠소! 초왕비를 꼴을 보시오. 한치의 동정심도 없습니까?”우문호는 창백한 얼굴의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그 눈빛에서 강한 의지와 고집이 보였다. 결국 그는 그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측전 밖 회화나무 아래에 서서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보니 마음속에도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초왕!”뒤에서 제왕비 주명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문호는 표정을 가다듬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툇마루 앞에 서 있었다. 치맛자락이 뒤로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이 선녀가 강림한 듯 기품 있어보였다.그녀의 범접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었다. 소꿉친구였던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자 우문호의 마음 한켠에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있었다. 주명취는 우문호의 어두운 눈빛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주명취는 그의 눈빛에서 그는 자신을 잊을 수 없다는 확신에 어딘가 의기양양한 기분도 들었다.“지금 태상황의 병세가 호전되었고, 부황께서 당신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셨으니, 제가 더 기쁩니다!” 그녀는 눈을 번뜩이며 우문호에게 말했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우문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십니까?” 우문호는 눈꺼풀을 내리며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그냥 살아가는거죠”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주명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좋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냥 살아가는 거죠. 전 그저…… 제가 염려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입니다.”우문호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뭐가 두렵습니까?”주명취의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 아래엔
우문호는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그는 냉랭한 얼굴로 원경릉을 바라보았다. “황조부에게 무슨 약을 드린거야.”“심장마비나 호흡곤란에 쓰이는 약을 드렸습니다.”“누가 너에게 준거야?”“아무도 준 적이 없습니다. 모두 제것입니다.”“진실을 말하고 싶지 않은게 분명하군.” 우문호는 원경릉이 이럴거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당신이야말로 내가 하는 말은 믿지 않는 군요.”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런 약들이 원경릉에게 있다는 말인가. 그녀가 누군가에게서 약을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그럼 나에게 주사한 독약은 무엇이냐? 어찌하여 내 의식을 잃게하고, 몸도 가눌 수 없게 한거지?”“그건 독약이 아니라. 마취제입니다. 마치 자금탕과 비슷한 것 입니다.”그 말은 들은 우문호는 차갑게 말했다. “자금탕은 독약이야.”원경릉은 그를 보며 “그럼 당신이 전에 나에게 독약을 먹인거네요.”우문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고 침묵했다. 원경릉은 그의 침묵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됐어요. 독약이든 약이든 나는 신경 쓰지 않아요. 정 제가 거슬린다면 그냥 죽이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살아있는 한 제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마세요. 적어도 제가 태상황을 치료하는 동안은 왕야께서 너그럽게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이전의 일들은 궁 밖을 나가면 차차 설명해드리겠습니다.”원경릉은 담담하게 말을 내뱉었다. “만약 황조부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너의 행동에 책임을 물을 것이야.”우문호는 원경릉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원경릉은 날카로운 말투로 “그럼 태상황의 건강이 좋아진다면, 그때는 제 공로를 인정해 주실 건가요?” 우문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아, 본왕은 공과 사가 분명하다.”그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탁자에 단약을 놓았다. “나중에 희상궁보고 먹여달라고 하거라.” 우문호는 뒤돌아 밖으로 나갔다.원경릉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한다고? 퍽이나’그는 은혜는 나
자금단을 먹고 한시간 가량 잤을까. 깨어난 후 상처의 통증도 많이 줄고 고름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일어나서 몇 걸음 걸어보았다. 확실히 통증이 줄었다는게 느껴졌다. 희상궁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깨어난 원경릉을 발견했다. “왕비 일어나셨으면 밖에 나와 좀 걷는게 어떠시겠습니까. 자금단을 먹고는 움직이셔야 활력이 생깁니다.” 원경릉은 알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갔다. “쇤네가 보필하겠습니다.”두 사람이 막 뜰을 지났을 때, 젊은 태감 한 명이 창백한 얼굴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왕비님, 초왕님께서 서둘러 건곤전으로 오시라 합니다.”희상궁이 그를 붙잡고 물었다. “무슨일이길래 그리 서두르느냐.”“푸바오가 문창탑에서 떨어져 죽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태상황이 아시고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궁안이 아주 난장판입니다.” 태감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희상궁은 깜짝 놀랐다. 태상황은 푸바오를 가족처럼 생각하니 푸바오가 죽게되거나 무슨일이 생긴다면 태상황님은 틀림없이 큰 상실감에 빠지실 것이 뻔했다. 희상궁이 고개를 돌려 원경릉 쪽을 보았다. 원경릉은 성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이미 건곤전으로 향하고 있었다. 원경릉이 도착한 건곤전 안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황후와 주명취가 바닥에 앉아 있었고 우문호와 제왕은 침상 앞에 있었다. 어의의 손이 정신없이 태상황의 맥을 짚고 있었다. 명원제와 태후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원경릉은 빠르게 우문호 쪽으로 걸어가 고개를 숙여 우문호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다. 그녀는 우문호의 눈을 한번 본 뒤 다시 어의 쪽으로 다가갔다. “어의님, 황조부님은 어떠십니까?” 원경릉이 침상으로 걸어가더니 베개 밑에서 설저환을 꺼내 태상황 혀 밑에 넣었다. 원경릉은 황후와 주명취를 등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방금 원경릉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볼수 없었다. 하지만, 주명취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로 원경릉을 주시했다. 사실 태상황은 별 일은 없었다. 단지 숨이 가빠져 호흡곤란에 빠졌을 뿐. 어의가 태상황에게 침을 놓자 태상
“푸바오……”우문호는 말을 잇지 못했다.“살릴 수 있어!” 원경릉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녀가 우문호 쪽으로 천을 한장 던졌다. 이건 방금 전 우문호가 그녀의 상처를 닦던 것이었다. “내가 비장을 꿰매고 있을테니까 당신은 지혈을 해줘요. 태상황께서 푸바오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알죠? 만약 푸바오가 죽는다면 태상황의 병세가 악화될지도 몰라요.” 우문호는 던져진 천을 주워들며 마스크를 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스크를 낀 모습은 참으로 어색했다. 마취, 제모, 절개, 원경릉은 능수능란한 모습으로 신속하게 비장을 찾아냈다. “피를 닦으라니까!” 멀뚱거리는 우문호에게 원경릉이 소리쳤다. 정신을 차린 우문호는 천으로 절개 부분 주위를 닦아냈다. 그의 손에서는 피 비린내가 진동했다. 우문호는 피를 닦으면서 생각했다. ‘이 여자는 이게 무섭지가 않은가?’여기 저기 튀는 피로 그녀의 얼굴, 이마, 눈썹 등 온통 피가 묻어있었다. “혈관이 터졌어요!” 원경릉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먼저 혈관을 봉합해야 해요.” 우문호는 자기도 모르게 천을 꺼내 그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었다. 그녀의 미간에 뭉친 피자국이 마치 큰 반점처럼 요사스러웠다.“고마워요.” 원경릉은 고개를 숙인채 말했다. 그녀는 혈관을 핀셋으로 살짝 잡고 빠르게 바늘로 봉합을 시작했다. 혈관을 봉합했지만 비장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원경릉의 마음이 급해졌다. “푸바오, 조금만 버텨. 넌 이겨낼 수 있어. 태상황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우문호는 자신이 개 한마리 때문에 이렇게 조마조마 하고 있다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푸바오가 아프지 않을까?” 우문호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마취제 투여했어!” 원경릉은 귀찮다는 듯 눈은 푸바오를 응시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문호는 문득 자신도 예전에 이렇게 마취를 당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문호는 한겹 한겹 푸바오의 살갗을 꿰매고 있는 그녀의 능수능란한 손을 보며 마음 속에 또 수많은 의문이 생겼
원경릉은 그의 표정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 “당신을 모함하려는 거죠? 당신이 문창탑 위에 있었나요?”우문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천천히 앉아 푸바오의 가련한 모습을 보고 분노했다. “나를 모함하려고 했던 사람은 황조부를 해하고 나까지 쳐내려고 했네.” 라고 말하며 냉소를 띄었다. “태상황제가 살아 계시니 반드시 이 일에 대해 조사를 하실겁니다. 다만 제가 걱정이 되는 건 왕야께서 이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하실거고 그렇게 된다면 태상황께서 실망하……”원경릉을 차마 마지막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말은 우문호가 다시는 태자 자리에 오를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우문호는 한동안 말 없이 골똘히 생각을 했다. 그의 낯선 모습에 원경릉은 그를 감히 건드리지도 못하였다. 이런 지저분한 사건에 그녀는 손톱만큼도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문호가 관여된 자신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문창탑에 당신 말고 또 누가 있었습니까?” 우문호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주명취!” 원경릉이 망설임 없이 내뱉었다. “그 입 다물라!” 우문호의 눈에는 분노가 일었다. “누가 너더러 함부로 입을 놀리라고 했느냐!” 원경릉은 그를 피해 푸바오 곁으로 자리를 옮겨 푸바오의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왕야 서둘러 태상황 곁에 가 계십시오. 태상황이 깨어나시면 분명 이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하실겁니다. 지금 가 계시는게 좋습니다.”우문호는 싸늘한 얼굴로 돌아섰다. 원경릉은 푸바오를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가 푸바오를 해하려고 했다니. 원경릉은 머릿 속이 복잡했다. ‘푸바오가 안전하려면 태상황 곁에 있어야해’그녀는 푸바오를 이불에 싸서는 건곤전으로 향했다. 이번 일에 대해 태상황이 명을 내릴 것이다. 태상황은 푸바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푸바오는 높은 곳을 두려워했고, 계단을 내려갈 때에도 다리를 떨었다. 이런 푸바오의 성격 상 문창탑 같이 높은 곳에는 올라갈리가 만무했다. 깨어난 태상황은 이 일에 대해 철저하게
탑에서 떨어진 푸바오와 자금단“그러면 왕야께서 문창탑(文昌塔)을 떠나실 때 푸바오가 따라 나왔습니까?” 구사가 물었다.우문호는 고개를 저으며, “그땐 신경을 안 써서 모르겠네.”“너는 태생이 명민하고, 아바마마가 푸바오를 얼마나 아끼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정녕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명원제의 이 말은 정곡을 찔렀다. 옛날 우문호가 태상황의 환심을 사려고 강아지를 어르던 것을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어 태후조차 당황할 정도였다.태후가 말하길: “됐다, 개 한 마리 때문에 자식에게 화풀이해서 무엇 하겠느냐, 다섯째가 데려갔다 치더라도 어쨌든 다섯째가 개를 던진 건 아니니 않느냐, 다섯째와 푸바오 사이도 아직 좋고 말이다.”태후는 명원제의 마음에 다른 생각이 싹 트고 있는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저 명원제가 중요한 걸 예사로 처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고작 개 한 마리때문에 태상황의 비위를 맞추려고 취조를 하게 되면 이 많은 사람들 면전에서 다섯째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태후는 명원제가 말없이 얼굴빛이 어두운 것을 보고 태상황 쪽을 돌아보며: “태상황 폐하, 뭐라고 말 좀 해보세요. 푸바오가 죽었어요. 푸바오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만, 친왕에게 벌이라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태상황은 우문호를 보며, “네가 간 뒤에 또 누가 문창탑에 갔는냐?”우문호의 눈에 한 줄기 의심의 빛이 스쳤으나, “할바마마의 하문에 답하기로, 없었습니다.”원경릉은 안으로 들어오다 태상황의 질문과 우문호의 대답을 듣고, 문창탑에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우문호가 지키려는 사람이다. 원경릉은 둘러보니 주명취는 황후의 곁에 서 있다. 손을 늘어뜨리고 서서 우문호가 답하는 것을 듣고 분명 눈꼬리를 움찔거렸다. 상선은 눈이 예리해서 원경릉이 이불을 안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이부자리가 푸바오의 것이며, 핏자국이 얼룩진 것이 심상치 않다고 여겼다. 초왕비는 또 무슨 일인가? 태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