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황은 다 알고 있다?건곤전에 도착하자, 태상황은 의외로 반쯤 걸터앉아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다.건곤전 안은 상선 외에 한 명 더 있는데, 이 사람은 온통 검은색 옷에 허리에 검을 차고 귀밑머리가 하얀 것이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이다. 그는 원경릉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굴빛이 확 바뀌는데 섬광처럼 차갑고 날카롭다.태상황이 해바라기씨를 벗기며: “나가게.”검은 옷을 입은 사람은 예를 취하고 물러났다.그 사람 발소리가 가볍길래 자세히 보니, 걸어가는 동안 내내 발이 땅에 닿지 않다가 금방 건곤전 밖으로 사라졌다.“뭘 봐? 저 사람은 외로운 그림자 무사야. 일은 잘 풀렸나?” 태상황은 원경릉을 쏘아보며 한가하게 묻는데 정신은 생각보다 또렷해 보인다.원경릉은 문득 이 늙은이가 실은 뭐든 다 알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희상궁을 사주한 인물을 포함해서 말이다.늙은이가 그녀를 보고 괴상한 웃음을 터트렸다.원경릉은 머리털이 쭈뼛하게 곤두섰다. 제대로 맞춘 게 틀림없다. 늙은이가 뭐든 다 알고 있다.“상선, 내가 태상황 폐하와 단둘이 나눌 얘기가 있는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 원경릉은 바보취급을 당할 순 없으니, 정확히 짚고 넘어가기로 했다. 상선은 눈치가 있는지 바로 나갔다.태상황은 여전히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한 대 패고 싶은 표정으로, “뭐 물어볼 게 있나? 과인이 반드시 답을 해준다는 법은 없지만.”“누가 약을 바꿔 치기 했어요?” 원경릉이 다가가 물었다, “알고 계시죠?”“알지!” 눈을 감은 채, “남나인.”“저한테 어수룩한 척 하지 마세요……”“무엄하다!” 태상황이 일갈하자, “네가 지금 누구와 얘기하는지 알고 있느냐?”원경릉은 눈을 감고 웃겨서 배가 당기는 걸 간신히 참으며,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태상황은 ‘풉’ 하고 계속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있지만 착실하게 원경릉의 말상대를 하며, “그렇지, 과인은 알고 있지.”원경릉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태상황을 본다. 다들 태상황이 어떻게 느낄까 전전긍긍
우문호를 찾아온 손왕, 경조부 부윤이라니?“안 기쁘냐?” 태상황이 안색을 살피더니 묻는다.“기쁠 만한 일이 없네요.” 태상황이 웃으며, “다섯째가 측실을 들이는 것 때문이지? 이건 현비 생각일 게야. 보아하니 너 다섯째한테 그다지 관심도 없던데,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신경 쓸게 뭐가 있어?”태상황도 이 일을 알고 있네? 측실을 들이는 거에 대해 벌써 얘기가 오간 모양이군.“그 일 때문 아니에요. 제 입장엔 그건 일 축에도 못 끼어요.” 굳이 일이라고 한다면 좋은 일 쪽이다, “희상궁 저랑 궁을 나갈 건데 아시죠?”“알고 있어!” 알아? 이건 방금 전에 정해진 일인데, 누가 이렇게 빨리 보고했을까? 누가 이렇게 재빠르지? 원경릉은 저도 모르게 방금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떠올렸다. 아마 그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태상황의 귀와 눈 역할을 하고 있겠지?“희상궁한테 잘해 주렴, 과인이 희상궁에게 실망은 했지만 그래도 미워하고 원망한 적은 없다.” 태상황은 눈을 감고 손을 닦으며 말했다.태상황과 같은 존귀한 신분의 사람이 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죽이려 했는데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는데다 심지어 그 사람한테 잘 해주라니 정말 야릇하다.궁중 어서방의 별전, 손왕은 우문호가 궁 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이토록 상처가 심각한지 몰랐다. 우문호가 조금의 생기도 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니 고무공처럼 동그란 머리에 열이 받아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곤두서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어느 놈이 한 짓이야? 토막을 내서 죽이고 시체를 잘근잘근 씹어도 분이 안 풀리네.”화가 나서 한 손에 약 먹을 때 먹으라고 보낸 약과를 입에 넣으며, 노기가 등등하게 와그작와그작 씹는다. 우문호는 오히려 평온하게 손왕이 끊임없이 먹는 걸 지켜보며, “저쪽에 간식 있어, 상선이 보내온.”원경릉에게 보낸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우문호는 사실 마음이 안절부절해서 줄곧 밖을 쳐다봤다.탕양이 간식을 가져다 손왕 앞에 놓아두니, 손왕이 손을 저으며,
자금단을 주고간 손왕, 우문호 출궁하다손왕이 헤헤 웃으며, “내 생각에 네가 비교적 나을 거 같아, 큰형이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내가 큰형을 안 좋아 하잖아 그래서 자연스럽게 널 천거했지.”탕양의 안색도 어두워지며, “손왕 전하, 이렇게 추천하신 것이 초왕 전하께 해가 될까 두렵습니다.”손왕이 당황하며, “왜 초왕한테 해가 되는데? 난 그냥 말 나온 김에 한 거라 정식 천거도 아니고, 아바마마도 내 말을 들으실 것 같지 않고 말이야. 탕양 너 진짜 너무 소심하네, 너 같은 성격도 즐거운 일이 있긴 해?”탕양은 쓴 웃음을 지으며, ‘하여간 나름 정확하게 아는 것도 있으시네요, 황제 폐하가 손왕 전하 말을 안 들으신다는 건 정확히 맞추셨어요. 그리고 언제 심사숙고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긴 한가요?’ 이 손왕 전하께서는 정말 단순 그 자체시다.손왕이 모두의 얼굴빛이 이상하자 뭔가 잘못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 입을 한 대 때리더니, “요 멍청한 입이 뭘 또 잘못 말한 거지?”“괜찮아 형.” 우문호는 고개를 흔들며, “틀린 말 없어, 형은 날 높이 평가해 날 천거한 거니 당연히 맞는 얘기야.” 우문호의 눈은 계속 밖을 떠돌고, 원경릉은 아직 안 돌아왔다. 아바마마가 진노하셨는데 원경릉을 어떻게 처리하셨을까?손왕은 간식을 다 먹고 가고, 가기 전에 비분강개 하며 우문호를 위해 범인을 저주하며 욕했다. 게다가 형제 간에 우애를 다할 셈인지 자기의 자금단도 탕양에게 건내 주었다.우문호는 필요 없다고 했지만, 손왕은 직접 우문호의 몸에 던지고는, “이거 맛 없다더라, 난 필요 없어, 다시 말하지만, 난 태자의 자리에 욕심이 전혀 없으니 아무도 날 해치지 않을 거다.”던져 놓더니 그냥 나갔다.탕양은 황급히 무슨 보물인 것처럼 집으며, “손왕 전하는 역시 왕야께 관심을 기울이시는 군요.”우문호는 묵묵히, “나도 알아.”둘째형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으론 태자의 지위를 둔 경쟁이 과열되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다
초왕부로 돌아와 목욕하는 원경릉우문호는 눈을 감아도 어찌 된 일인지 마차가 여전히 요동을 친다. 전에 예친왕이 준 자금단으로 일시적으로 기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 자금단 효과가 사라지고 상처가 위중하다 보니 이 정도의 요동으로도 우문호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원경릉은 본래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우문호의 미간이 찡그려 진 채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악 상자를 꺼내 우문호에게 강력한 진통제를 주사했다.우문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더니, 진통제를 주사한 후 통증이 줄었는지 겨우 눈을 뜨고 원경릉을 봤다.원경릉은 약 상자를 만지작거리느라 우문호를 보지 않고 있는데 볼에 머리카락 하나가 내려와 눈꼬리를 가렸다.“아바마마께서 널 처벌하지 않으신 게 정말 사실이냐?” 우문호가 쉰 소리로 물었다.원경릉이 약 상자를 닫으며, “아바마마께서 추호의 빈틈도 없이 살피시고 내가 이번 일과 무관함을 아셨으니, 당연히 날 처벌하실 리가 없지.”“누가 한 건데? 희상궁은 또 왜 우리를 따라 출궁하는 거야?”“현비마마도 어서방에 계셨으니, 몸이 좋아지면, 현비마마께 가서 물어봐.” 원경릉은 다시는 우문호 앞에서 주명취에 대해 말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다.초왕부로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그 숨막히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느니 삼가는 편이 낫다.현비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말에 우문호는 눈살을 찌푸렸다.생모는 몸이 좋지 않아 늘 궁중의 일엔 상관하지 않으셨는데 왜 이번 일엔 끼어드신 걸까?원경릉은 눈을 감고 머리를 창에 기댄 채 서늘한 바람이 밖에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도 가을의 소슬함에 물든 것 같다.우문호는 그녀를 보니, 가을 태양이 그녀의 옆 얼굴에 비치며 부드럽고 따스한 빛이 감도는 반면 반대쪽은 어둡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요 며칠이 원경릉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일면이었다면, 지금은 차갑게 가라앉은 어둠 쪽이다.초왕부에 돌아온 원경릉은 마차에서 내려 희상궁을 데리고 봉의각으로 갔다.녹주와 기상궁이
희상궁과 기상궁, 열이를 만나다저녁식사는 기상궁이 준비한 것으로, 원경릉은 입맛이 없어 탕만 한 모금 마시고 가져 가라고 했다. 기상궁은 원경릉의 마음이 안 좋다고 느꼈지만 이유를 묻지 못하고 녹주에게 상을 내 가라고 분부했다.기상궁이 나가려던 때, 원경릉이 물었다: “기상궁, 열이는 좋아졌어?”기상궁은 원경릉이 입을 여는 것을 듣고 황급히 돌아와: “왕비마마,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열이는 벌써 괜찮아 졌습니다.”“내일 열이 보러 갈게.” “예, 감사합니다!” 기상궁은 원경릉이 마음이 유쾌하지 못한 와중에도 열이에게 신경을 써 준 것에 순간 감동했다.원경릉은 책을 좀 보고 잠을 청하며, 좋은 꿈을 꾸길 바랬다.마침 이때 희상궁이 들어와 안에서 문을 잠근다.원경릉이 그녀를 보며, “무슨 일 있어?”희상궁이 손을 늘어뜨리고 담담하게: “왕비 마마 직접 말씀해 주시지요, 쇤네를 어찌 처벌 하시겠습니까?”원경릉이 가볍게 웃으며, “처벌 같은 거 안 할 건데.”희상궁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쇤네 알아들었습니다, 왕비 마마 말씀은 쇤네가 자결하라는 것이군요, 이건 틀림없이 황제 폐하의 뜻이기도 하겠지요.”원경릉은 평상시처럼: “황제 폐하께서 무슨 뜻인지 나는 모르고, 감히 성은을 추측할 수도 없지. 하지만 태상황 폐하께서 나한테 희상궁을 아끼고 잘 대해주라고 하셨어.”희상궁은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며 입술만 달싹이며, “태상황 폐하께서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내가 희상궁을 속일 필요 없잖아, 자결을 하면서까지 은원을 없애든지, 잘 살아서 태상황의 성은에 보답할지, 희상궁 자신이 고민해봐. 내가 대신 해줄 순 없어. 돌아가. 나 쉬고 싶어.” 원경릉은 대놓고 나가라고 했다.무거운 발걸음으로 천천히 나가는 희상궁의 한숨 소리가 원경릉 귀에 아직 들린다.희상궁이 원경릉에게 심어준 느낌은 희상궁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수도 없이 처했고, 말 못할 고민도 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원경릉은 희상궁의 행동을 평가할 마음도 없고, 그
초왕부를 찾은 현비여기가 공평한 사회가 아니고 원경릉의 능력도 한계가 있음에 그녀는 마음이 불편했다.이때 어떤 하인이 달려와 긴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하더니, 원경릉이 여기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왕비가 어째서 하인 숙소에 있을 수 있지?“무슨 일이야?” 기상궁이 물었다.하인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원경릉에게 예를 갖춘 후: “탕대인께서 상궁께 간식을 좀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궁에서 온 전갈에 따르면 현비마마께서 초왕부로 오신다고 합니다.”“현미마마님이 오신다고?” 기상궁은 곧 힘을 내서, “알았네, 자네는 탕대인에게 가서 내가 적당한 것으로 준비하겠다 이르게.”기상궁은 현비가 시집올 때 친정에서 데려와 우문호가 분봉왕으로 초왕부로 나가 살게 되자 현비가 내려준 상궁이다.옛날 주인이 오신다는 말에 기상궁은 자연 흥이 돋지만, 반대로 원경릉의 마음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현비는 황궁을 통틀어 원경릉을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이번 출궁으로 아마 우문호가 상처를 입은 사실이 후궁에 알려지겠지? 사실 현비가 이 일을 알고자만 하면 알 방법은 많지만,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발톱을 감추고 있었다.원경릉은 봉의각으로 돌아갔다. 현비가 온다는데 명색이 며느리가 화장도 좀 하고 옷도 차려 입어야 한다.이마의 상처는 희상궁이 분을 두껍게 발라 가렸는데도 약간 흔적이 남았다. 마치 도장처럼 상당히 선명하다.원경릉은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절세 미녀는 아니라 주명취와 비교하면 천지차이지만, 담백하고 맑은 눈빛과 비굴하지 않지만 굴하지도 않는 정신, 침착함은 원경릉 쪽이 앞선다.희상궁이 원경릉과 구리거울에서 눈이 마주치자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원경릉의 눈은 이미 잔잔한 바다와 같다.현비가 왕부에 도착할 때는 이미 오시(午時, 오전 11시~오후 1시)무렵이었다.한낮의 태양이 작렬하고, 바람은 시원하지만 원경릉이 초왕부 입구에서 영접할 때 여전히 햇살이 강해서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현비의 봉황가마가 초왕부 입구에 멈춰 서고,
후궁을 맞아? 현비와 원경릉의 갈등현비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네가 도대체 누구의 미움을 샀길래, 이렇게 심하게 당했단 말이냐?”“소자는 미움을 산 일이 없습니다.” 우문호는 달래듯이: “됐습니다. 괜찮아요. 범인은 이미 전부 죽었으니 소자도 위험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에미가 바보인 줄 아느냐……” 현비는 고개를 들어 원경릉을 보더니 화가 치밀어 올라, “뭘 멍하니 서 있는 거니? 아랫사람에게 왕야께 드릴 탕을 만들어오라고 분부할 줄도 모르느냐? 넌 이런 식으로 시중을 드는구나?”원경릉이 우문호를 보고, “왕야, 뭐 드시고 싶으세요?”현비는 화를 내며: “뭐든 만들어 오라고 시켜야지, 뭐든 안 좋겠어? 다친 사람한테 뭘 먹어야 하는지 까지 물어봐야 하고, 작은 일 하나도 처리를 못 하는구나, 보아하니 이 왕부의 일은 너 혼자 감당이 안되겠다. 사람을 찾아서 너를 대신해 분담을 시켜야지.”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냉소를 지으며, 측실 들이는 건으로 온 거지? 현비가 고래고래 소리 좀 지른다고 겁 먹을 까봐? 아니다 현비를 너무 높게 평가했네, 현비는 소리도 못 지르지.현비는 꼿꼿하게 앉더니 얼굴색을 단정하게 하고, “에미가 이번에 행차를 한 건 네 상처가 어떤지 보는 것 외에 너랑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서 였다만.”우문호는 현비가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고, “다음에 하시지요, 소자 지금 상처도 아직 낫지 않았으니 당분간 말씀 나누기 어렵습니다.”“꼭 지금 얘기 해야 해.” 현비는 강경하게 말했다: “에미가 이미 아바마마께 이 일을 말씀드렸고 아바마마께서도 반대가 없으셨어. 사람을 시켜 주씨 집안 의견만 물어보면 끝이야. 주씨 집안에서만 동의하면 이 일은 성사되는 거지. 게다가 만약 네 아바마마께서 너 대신 언급만 해주시면 주씨 집안도 동의 안 할 수 없는 일, 넌 그저 안심하고 요양하며 상처가 낫는 데만 치중 하려 무나, 혼사는 알아서 할 테니까.”“됐습니다. 그만 말씀하세요.” 우문호는 마음이 복잡했다. 목숨이 걸린 이런 순간에 후궁
우문호에게 측실을 권하는 현비바로 깔깔 웃으며: “이 못난 녀석아, 당초에 네가 왕비와 한사코 혼인하지 않겠다더니, 이젠 왕비 대신 변명을 다 하는구나. 고작 1년 사이에 무슨 감정이라도 생긴 거니? 절대 잊으면 안된다. 왕비와 정후 두사람이 어떻게 너를 함정에 빠뜨렸는지. 게다가 정후 그 사람 정말 못 쓰겠 더구나, 넌 반드시 주씨 집안의 지원을 얻어내야 해, 그래야 다시 도전해 볼 가능성이 생기지.”우문호는 참다 못해 결국, “어마마마, 이 일은 다음에 다시 얘기하시면 안됩니까? 저는 지금 그런 잡다한 일에 신경을 쓸 상태가 아닙니다.”현비는 한숨을 쉬며, “에미는 다 너 좋으라고 그러는 게 아니냐. 그 자리는 네가 다투지 않아도, 사람들이 널 가만히 둘 것 같으냐, 왜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냐? 그때 만약 주씨 집안이 가로채지 않았으면 네 어미는 황후가 되었고, 너는 적장자인 황자였어. 쟁취할 필요도 없지 않았느냐?”우문호는 아예 눈을 감고, 싸워?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문호는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다.아바마마께서는 아직 젊으시고, 태자를 세운다 해도 이 태자의 자리가 또 얼마동안 이나 평온할 수 있을까? 우문호가 처음 전장에 나갈 때부터 마음속으로 북당을 위해 변방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그러나 이런 그의 모습은 세상에 진취적으로 비쳤고 모든 사람들은 우문호가 태자의 지위를 노린다고 믿었다.현비는 우문호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고, 투지가 하나도 없어 보이니 화를 참지 못하고, “너 지금 네가 어떤 꼴인지 아니? 다시 이렇게 못 쓰게 되면 아바마마께서 조만간 친왕의 봉호까지 거두어 가실지도 모르는데, 너는 네 어미의 한을 풀어 줄 수 없는 것이냐?”우문호는 돌연 눈을 떴는데 눈빛에 분개하는 기색이 느껴지며, “한을 풀어요? 어마마마는 제가 무슨 한을 풀어 주길 바라십니까? 일어서서 태자의 지위를 쟁탈하는 겁니까?”“왜 이렇게 큰 소리를 내고 그래? 옆에서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현비는 일어서서 차갑게 우문호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