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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이혼에 관한 일은 전부 여형민한테 맡기니 당사자인 심유진은 오히려 너무나 한가할 정도였다.

휴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아있었다. 심유진은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로열 근처에 있는 작은 아파트를 알아봤다.

로열 호텔은 대구에서도 가장 번화한 지역에 있었다. 그 주위에는 온통 몇십억을 호가하는 고급 빌라 단지뿐이었다. 단지 내에 빈집이 매우 적었는데 있다고 해도 팔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차선택으로 세 개 정거장 이내거나 막히지 않는 상황에서 삼십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으로 범위를 한정했다.

중개인이 그녀를 데리고 하루 종일 다니며 여러 집을 보여줬지만 주변이 시끄럽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낡은 단지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마음에 드는 집은 찾지 못했다.

심유진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호텔로 돌아왔다. 그녀가 막 침대에 누우려는데 조건웅 동생 조건이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다짜고짜 자기 용건을 말했다.

“나 다음 주에 아름이랑 대구에 갈 거니까 비행기 표와 호텔 예약해 줘요.”

조건이는 경주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소아름은 그와 교제한지 2년이 되는 여자친구였다.

심유진은 결혼식 그리고 이번 년 설에 조건이를 몇 번 본 게 다였기에 친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소아름은 본적도 없었다. 그저 조 씨 부모한테서 그녀가 경주 어디 사장님의 외동딸이라는 말만 들었었다.

때문에 그녀는 조건이의 다짜고짜 한 “명령”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이런 일은 그녀를 찾을 게 아니지 않나?

“네 형한테 예약해 달라고 해.”

보아하니 조 씨 집안에서는 아직 그에게 그녀와 조건웅의 이혼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았다. 또 다른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 역시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그대로 전화를 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조건이가 화를 내는 게 아닌가.

“우리 형이 얼마나 바쁜데요. 어디 그런 걸 예약할 시간이 있다고 그래요!”

그의 말투가 거칠었다.

“형수님이 되서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그리고 형수님 로열 호텔에서 일하잖아요? 프런트에 가서 한마디 하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요?”

그녀가 몇 번 밖에 보지 못한 조건이에 대한 기억은 항상 휴대폰을 붙잡고 게임만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몇 마디 말도 나눠보지 못했었다. 그것 때문에 심유진은 그가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자기 부모와 똑같은 별종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호텔 예약만 해줄 수 있어.”

심유진이 고민하다 말했다.

“비행기 표는 스스로 예매하든가, 아니면 네 형한테 찾아가.”

그가 기필코 로열 호텔에 들겠다면 그녀도 굳이 찾아오는 손님을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됐어요. 가식 그만 떨어요. 도와주기 싫으면 됐어요! 호텔도 예약하지 마세요. 다 제가 직접 할 테니까!”

조건이는 한바탕 소리를 내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심유진이 입을 삐쭉거리다가 휴대폰을 옆으로 던졌다.

그녀는 이렇게 이 일이 마무리된 줄만 알았다. 그런데 다음날 집을 돌아보는데 조건이한테서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비행기표는 제가 예매했어요. 호텔은 형수가 예약해 줘요. 스위트룸으로요.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있을 거예요. 주민등록번호는 이따가 문자로 보낼게요. 번호는 지금 이 번호예요.”

부동산 중개인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심유진은 조건이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아 그저 알았다고 답했다.

2분 뒤 조건이한테서 일렬로 나열된 주민등록번호가 도착했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그날 저녁 심유진은 여전히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프런트를 지날 때 마침 조건이가 했던 부탁이 떠올라 소미를 찾았다.

“다음 주 금요일과 토요일로 스위트룸 하나 남겨줘요.”

“친구분 대신 예약해 주는 거예요?”

소미가 자연스럽게 물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심유진은 조건이의 개인 정보를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소미가 정보를 입력하고 물었다.

“나중에 방값을 계산할 때 매니저님 직원 할인 쓸까요?”

“아니요.”

심유진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예약해 주는 걸로 자신은 충분한 배려를 베풀었다. 거기다 그녀의 직원 할인을 받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어라 심 매니저님?”

그때 등 뒤에서 여형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그와 허태준이 서있었다.

그들 곁에는 각각 트렁크가 놓여있었다.

“여 변호사님, 허 대표님.”

그녀가 인사를 건넨 후 물었다.

“체크아웃 하시려고요?”

“네.”

여형민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프런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일 다 보셨어요?”

심유진이 곧바로 물러서며 자리를 냈다.

“다 봤어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소미를 향해 말했다.

“여 변호사님과 허 대표님 체크아웃 부탁드려요.”

“네네 알겠습니다!”

소미가 부들부들 떨며 여형민이 내민 방 키를 받았다. 채 2분이 지나지 않아서 체크아웃이 완료되었다.

심유진이 여형민에게 물었다.

“두 분은 대구를 떠나시는 겁니까? 그럼 제 일은……”

그녀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대구를 떠나는 건 아닙니다.”

여형민이 웃으며 답했다.

“그 반대로 저와 여기 허 대표는 이곳에 남아있기로 결정했습니다.”

“무슨 뜻이죠?”

심유진이 이해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 저희는 CY 그룹 분사를 설립하는 일로 대구에 온 거거든요. 원래는 일을 마무리하고 경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 과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하게 되어서 당분간은 여기 있게 되었어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고요.”

여형민이 설명했다.

“CY 그룹?”

심유진이 놀라 물었다.

“제가 아는 그 CY 그룹 맞나요?”

불과 10년 사이에 IT 업계의 일인자 위치에 오르고, 그룹 대표의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회사였다.

“네.”

여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 CY 그룹입니다.”

“하지만…… CY 그룹이 두 분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심유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베일에 싸인 로열 호텔의 고위층 임원이고 한 사람은 이혼 전문 변호사였다. 어떻게 봐도 CY 그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갑자기 여형민이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넥타이를 정돈한 후 목을 가다듬었다.

“소개할게요.”

그가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이분은……”

그가 허태준을 가리켰다.

“CY 그룹의 창시자이자 현임 대표이시고, 저는……”

그가 자신을 가리켰다.

“당시 그의 파트너이자 현재 CY 그룹에서 두 번째로 큰 주주입니다.”

만약 심유진이 안경을 끼고 있었다면 무조건 바닥에 떨어뜨렸을 것이다.

“참 최근 이틀 동안 어디 가셨나요?”

여형민이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듣기로 아침 일찍 나가서 늦게 돌아왔다던데요.”

여형민과는 함께 중요한 일을 도모하는 파트너라서 그런지 심유진은 그를 외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했다.

“집 보러 다녔어요. 원래 살던 집에는 못 있게 되어서요. 호텔 휴게실은 일하긴 편하지만 다른 방면은 불편해서요.”

“집을 사려고요?”

여형민이 물었다.

심유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살 돈이 어디 있겠어요. 일단은 월세로 살다가 이혼이 마무리된 후 수중에 돈이 좀 생기면 대출을 받아서 살 생각이에요.”

대구는 전국에 두 개밖에 없는 일선 도시 중 하나로서 근 10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었다. 시 중심을 벗어난 지역도 몇억씩 들었다.

현재 심유진의 재산으로는 시 중심에서 화장실 하나도 못 살 것이다.

“그럼 이미 봐둔 집은 있어요?”

“아니요.”

심유진이 고개를 저으며 저도 모르게 불만을 토로했다.

“이틀간 열몇 채는 본 것 같은데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죠.”

“그럼 제 집을 임대해 드릴게요.”

여형민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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