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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4화

욕조 속의 뜨거운 물은 차갑게 식어갔고 작은 공간 속을 울리던 움직임과 신음소리도 차츰 멎어갔다.

심유진은 이미 진이 빠져 허태준의 가슴에 쓰러졌다.

그녀의 긴 머리는 젖어 부스스 흐트러져 그녀 어깨의 붉은 자국을 가까스로 감추었다.

허태준은 그런 그녀를 안아 들고 긴 다리를 뻗어 손쉽게 욕조를 빠져나왔다.

그는 서랍에서 수건을 꺼내 들어 심유진을 감싸 그녀 몸의 물기를 닦아주었다.

심유진은 눈꺼풀을 들어 쉰 목소리로 힘겹게 한마디 했다.

“졸려요...”

허태준은 그녀의 이마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자세를 다잡아 그녀가 더욱 편하게 자신의 품속에서 쉬게 했다.

“자요.”

얼마 지나지 않아 심유진은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

**

허태준은 침실의 커튼을 치고 침대의 미약한 램프를 켰다.

심유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에 들었다. 꿈속에서도 미간을 찌푸렸고 눈꺼풀은 불안한지 가볍게 떨려왔다.

“은설아...”

그녀는 무의식적인 중얼거림이 허태준의 귀에 들어와 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불을 턱끝까지 올리고 허태준은 몸을 일으켰다. 따뜻한 눈빛은 차차 사그라들었다.

**

하은설이 갈 곳이라고는 몇 군데밖에 없었다.

허태준은 오텀호텔에 전화를 걸어 하은설이 아직 집에서 휴식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녀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이 오피스텔에서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일부러 맞춘 열쇠는 이사 후에도 아직 심유진에게 돌려주지 않았다. 이 열쇠를 이제야 쓰게 된 것이다.

현관의 신발장 옆에 한 쌍의 스니커즈가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신발장 위에는 캐릭터 고리를 단 열쇠가 놓여 있었다.

하은설이 집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거실은 비었고 방의 모든 문들은 잠겨져 있었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고 허태준은 방안으로 급히 찾으러 들어가지 않고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하은설의 침실에서 울리다가 빠르게 멈추었다.

동시에 허태준이 건 전화도 끊어졌다.

허태준은 하은설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와요, 거실에 있으니까.”

십여 분이 지나서야 하은설은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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