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화목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일 것이다. 일반적인 강재보다도 곱절 단단했다.현대에서 철화목은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야생식물이었다. 예전의 사람들은 철화목으로 금속을 대신하여 조그마한 작은 물건도 만들곤 했다. 하지만 가격이 좀 비쌌다.하지만 그녀는 오늘 분명히 태상황이 톱으로 짤막하게 자르는 것을 보았었다. 게다가 이렇게 단단한 나무에 어떻게 조각까지 했단 말인가? 금강석(金刚石) 칼로 조각했을 리는 없지 않는가?“태상황께서 직접 조각하신 거네. 이건 철화목이 아닐 걸세!”원경능이 말했다.희씨 어멈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오직 태상황만이 조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 시위들은 할 수 없습니다.”“태상황께서는 지금 몸이 편치 않으시네. 걸을 때도 힘에 부치시는데 어떻게 이런 단단한 나무를 조각할 수 있단 말인가?”원경능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태상황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걸을 때 힘에 부치시는 건 병 때문이지만, 태상황은 젊은 시절 우리 북당의 내력과 외력을 겸비한 제일 강한 무림용사였습니다. 지금은 연세가 있으시고 병도 많지만, 조각할 수 있는 내력(内力)은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정말로 내력이란 게 있단 말인가?”원경능은 더욱 호기심이 동했다. 무협소설에서 말하기를, 내력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면 꽂이나 나뭇잎으로도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희씨 어멈이 해석하려고 할 때 문 어구에 사람의 그림자가 비췄다. 그녀가 자세히 관찰하다 말했다.“아이고, 이렇게 늦은 밤에 왕야께서 웬일이십니까?”우문호는 원래 궁에서 하사한 물건이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 가만히 문 어구에서 볼 생각이었다. 기왕 희씨 어멈에게 발각되었으니 그는 아예 대범하게 들어 왔다. 그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원경능의 손에 있는 어장을 한번 쳐다보고는 물었다.“이것이 황조부가 하사한 것인가?” “그래요. 조각이 특별히 정교하고 아름다워요. 왕야도 보세요.”원경능은 어장을 건네주며 말했다.우문호는 원경능이 이렇게 대
반 시진이 지난 후 우문호는 분개하면서도 원망하는 눈빛으로 탁자 위에 앉아 있는 이 뻔뻔스러운 여인을 바라보았다.옷은 반쯤 벗겨져 있었고 두 손은 목과 쇄골을 오르내리며 힘껏 긁고 있었다.얼굴에도 쇄골에도 목에도 심지어 반쯤 벌어진 가슴에도 다 줄줄이 붉은 흔적들이 나있었다. 게다가 붉은 반점들도 한 무더기 나있었다.바닥에는 음식이며 그릇들로 엉망진창이었다. 기씨 어멈과 녹아는 쫓겨 났다. 희씨 어멈은 그래도 머리가 좋아 스스로 도망쳐 나와 해장탕을 끓이고 있었다.다보마저도 폭풍이 휘몰아 치기 전, 그러니까 첫 번째 그릇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이미 도망쳐 버렸다.한잔의 계화주였다. 그는 맹세할 수 있었다. 정말 딱 한잔이었다고. 그는 천천히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원경능은 어장을 들고 탁자를 힘있게 두드리며 목이 쉬도록 고함쳤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우문호는 순간 그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다른 사람에게 위협당하는 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원경능은 온몸이 다 근질근질하여 미칠 것만 같았다. 처음 술을 마셨을 때에는 그저 취했을 뿐 거부반응은 없었었다. 근데 왜 이번에는 거부반응이 생겼지? 그녀는 아직 의식이 있었다. 그저 그 뼈에 사무치는 가려움을 참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마치 혈액 속에서 흘러나오는듯한 그런 가려움이었다. 공교롭게도 약상자를 한바탕 뒤졌지만 거부반응에 쓰이는 약은 한 알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온 몸의 껍질을 다 벗겨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웠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에 감히 나가려 하다니?“등이 너무 가려운데 손이 안 닿아요!”원경능은 미친 듯이 두 다리로 탁자를 두드리며 양손을 끊임없이 뒤로 가져가 긁기를 시도했다.“태의는?”우문호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걸어가 그녀의 등을 긁어줬다.그녀의 등은 뜨거워 손이 데일 정도였다. 손끝이 닿는 곳은 마치 불덩이를 만지는 것 같았다.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 정도로 뜨거운데 그녀는 왜 제 불에 타 죽
우문호는 등이 그녀를 향하게 측면으로 돌아 누워 화를 감추고 담담하게 말했다. “셋이나 다섯 정도 되지.”원경능은 깜짝 놀랐다. 한 두 명도 많다고 여겼는데, 셋이나 다섯 정도 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 했다.현대인으로서 남자들이 통방을 찾는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후대를 번식하기 위해서라는 그 원인도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도 그를 등져 누웠다.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었다. 그 여인들을 위해 분노했다. 녹아를 놓고 보았을 때, 통방이 되기를 바라는 여인은 없었다. 누가 한 사내의 생육 도구가 되길 바라겠는가? 하지만 강한 권력의 압박 속에서 그녀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사회적 지위는 너무 낮기 때문이었다.그 가엾은 여자애들이 이렇게 우문호 같은 무뢰한에게 능욕당하게 내버려 둬도 된단 말인가?하지만 이제 와서 그녀들을 왕부에서 내보낸들 이런 봉건사회에서 그녀들이 좋은 남자를 찾아 시집갈수나 있을까? 원경능은 화가 잔뜩 났다. 우문호도 마찬가지였다.그녀 그 말은 무슨 뜻이란 말인가? 대체 그를 어떤 사람으로 보는 것인가? 그는 통방은커녕 측비나 첩도 없었다. 오직 정비만 있었다. 그것도 혐오해서 건드리기도 싫은 사람 말이다. 화가 난 두 사람은 결국 누구도 잠들 수 없었다.눈을 감고 서로 마음속으로 한바탕 저주를 퍼붓고 나니 날이 밝아왔다. 우문호가 먼저 일어났다. 나가서 탕야에게 두어 마디 분부했다. 그더러 관아로 가서 오늘 정오 이후나 돼야 관아로 갈수 있다고 말하라 했다.원경능도 일어났다. 그녀는 녹아의 시중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옷을 들고 병풍 뒤로 가 갈아입었다. 기씨 어멈이 우문호의 옷을 들고 들어와 하나하나씩 벗기고 또 하나하나씩 그에게 입혀주고 매주고 했다. 원경능은 화장대 앞에 앉아 그 모습을 보다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당신은 손을 못쓰는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 옷을 입지 못하는 거예요?”이 말은 평소 같으면 그녀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부잣집 도련님들의 교만함을 잘
원경능이 정색하며 말했다.“회왕의 병은 전염성이 있으니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입 가리개를 착용해야 합니다. 제가 회왕에게 잘 설명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심리적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말입니다.”“닥치거라.”로비는 화가 나서 말문이 막혔다. 그녀가 궁을 나선 원인은 원경능을 잘 주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아직 치료도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이 따위 수작을 부리다니.기왕비가 웃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주의하면 됩니다. 전 요 며칠 드나들면서도 그… 입 가리개라고 했지요? 그걸 쓰지 않았습니다. 여섯째 시동생은 병이 위중하니 자연히 생각도 많을 터인데, 우린 될수록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그녀는 즉시 입 가리개를 원경능에게 돌려주고는 몸을 돌려 들어가려 했다. 자신은 조금도 불쾌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원경능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멈추세요!”기왕비가 차갑게 말했다.“무슨 위세를 부리는 겁니까?”원경능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부황께서 저를 보내시어 회왕의 병을 치료하게 하셨으니, 병세에 관해선 모두 제 말을 들어야 합니다. 결핵은 전염성이 매우 강합니다. 타액으로도 전염이 가능하단 말입니다. 입 가리개를 쓰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조치일 뿐입니다. 누구든 입 가리개를 하지 않는다면 이 방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녀는 고사를 돌아보며 차갑게 명령했다.“고 대인, 문 앞에서 지키고 있게. 누구든지 들어가려면 반드시 입 가리개를 써야 할 것이네. 쓰지 않는 자는 전부 못 들어가게 막으시게. 로비 마마도 포함해서 말이네.”“네!”고사가 명을 받았다. 황제가 명령했듯이 모든 건 초왕비의 말에 따라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고사는 속으로 초왕비가 오늘 담력이 참 크다고 생각했다. 다시 초왕을 바라보니 그는 익숙하다는 듯 더없이 차분하고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서서 초왕비를 위해 해명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로비가 크게 화를 냈다.“네가 감히 본궁까지 막으
우문호가 회왕을 부축하자 기왕비가 냉큼 말을 걸어왔다.“다섯째 시동생, 혹시 전염되는 것이 두려우면 머슴을 시키세요.”이 말은 도가 지나쳤다.원경능은 더는 참지 못하고 청진기를 귀에 건채 몸을 돌려 기왕비에게 냉혹한 어조로 말했다.“기왕비, 당신은 여기서 분쟁을 일으키고 떠들어 대는 것 외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있어요. 차라리 나가셔서 차를 마시면서 시시비비를 따지는 게 낫지 않겠어요? 당신이 잘하는 일을 하시면 되겠네요.”기왕비는 원경능이 이렇게 말할 줄 몰라서 잠시 멍해졌다. 곧 그녀가 미안한 얼굴로 로비를 바라보며 말했다.“로모비, 정말 죄송합니다. 확실히 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로비는 날이 선 원경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차갑게 일갈했다.“네가 왜 기왕비더러 나가라 하는 것이냐? 요 며칠 기왕비가 왕부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았더라면 왕부는 진작 아수라장이 되었을 것이다. 네 실력이 어떤지도 아직 모르겠는데 지금 감히 윗사람을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냐?”원경능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로비 마마, 침상에 누워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저는 명을 받고 치료하러 온 것이지 그를 해치려 온 것이 아닙니다. 입 가리개를 쓰는 일은 이미 마마께 설명 드렸습니다. 회왕의 병은 전염될 수 있다고요, 입 가리개를 쓰는 것은 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입니다. 불쾌해서 쓴다고 여기시든 어떻든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러나 기왕비와 함께 제 치료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왕비가 무슨 속셈을 갖고 있는지 저는 모르지만 기왕비는 절대 마마보다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을 거예요. 허나 저는 지금 의원의 신분입니다. 저는 환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도 같은 선상 위에 놓여있단 말입니다. 마마께서 이성적이시라면, 응당 제 말에 따라야 합니다. 필경 회왕을 치료하는 일은 부황께서도 제 말에 따르고 계시니까요.”“초왕비, 저는 도무지 당신이 왜 제가 속셈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지 모르겠군요. 제게 무슨 속셈이 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제왕은 도리어 그를 위로했다.“다섯째 형님, 그럼 됐습니다. 형님도 그녀와 승강이하지 마십시오. 여인은 도리를 따지지 않습니다. 모든 여인이 명취처럼 사리에 밝은 게 아니니까요.”우문호가 말했다.“그래, 명취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니 그녀에게 이 일은 여기까지 하자고 전하거라. 그녀를 화나게 했다간 지팡이가 날아들지도 모르는 일이니. 물에 빠진 것도 서러운데 맞기까지 해서야 되겠냐? 그럴 가치가 없다. 저런 여자한테 화풀이하는 건 가치가 없는 일이야.”그는 말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꼬리가 풀려버렸다.제왕은 잠시 멍해 있었다.“다섯째 형님, 어째 형님은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인데요?”우문호는 표정을 갈무리하고 그를 한번 흘겨봤다.“그럼 울기라도 하란 말이냐?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부인에게 맞고 산다는 걸 들키면 안되지 않느냐?”일리가 있었다!“허면 이 일은, 이렇게 끝내는 건가요?”“어장을 봐서 참아 보거라!”우문호는 말을 마치고는 원경능을 찾으러 갔다.요즘 이 여인은 한시라도 자신의 시야를 벗어나게 하면 안되었다. 걸핏하면 사람들에게 화를 내니 말이다. 점점 더 제멋대로 굴고 있었다.그런데 원경능은?우문호는 한번 쭉 훑었지만 그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을 뿐인데 이렇게 사라진단 말인가?원경능은 창평공주 우문령(昌平公主宇文龄)과 문경공주에게 끌려갔다.두 자매는 진심으로 회왕의 병세를 관심하고 있었다. 하여 제왕이 우문호를 끌고 간 후 냉큼 원경능을 이끌고 밖의 정원으로 걸음을 옮겨 회왕의 병세를 물었다.원경능은 대략적인 상황을 설명해줬다. 문경공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이 고비를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미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그녀의 눈 밑이 거멓고 피부도 푸석해진 것을 보아 확실히 잠을 설친 듯싶었다. 하여 원경능은 그녀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곁눈질로 저명취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우문령이 치를
원경능은 손을 내리고 조금 달가워하지 않는 투로 물었다.“그럼 어떤 방법이 당신한테 먹히는 데요? 미안하다니까요?”“미안한데도 이렇게 당당한 거야? 이렇게 날뛴다고? 이게 잘못했다는 태도야? 사과는 했어? 용서는 구했냐고?”그는 힐난을 퍼부었다. 실로 너무 오랫동안 이 분노를 참았었다.원경능도 화가 치밀었다.“그냥 한마디 한 것 같고 왜 그래요?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한 건데, 이렇게 바가지 긁는 아낙네처럼 계속 늘어져야겠어요? 당신도 뒤에서 저에 대한 좋은 말은 한적 없잖아요, 어쨌든 난 당신 생명의 은….”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앵두빛 입술 끝은 살짝 올라가고 눈빛은 조금 가라앉았다. 그녀는 약간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몸을 조금 기울이고 있었는데 불쾌감 속에서도 다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은인이라는 한마디는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었다. 그녀가 눈길을 슬쩍 피했다.우문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은혜로 사람을 협박하겠다는 것인가? 무법천지가 따로 없군. 그는 생각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살짝 치켜 올라간 입술을 베어 물었다. 손찌검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니 그저 대신 벌을 주려고 했다. 그러나 빨간 입술이 닿는 순간 그 말랑함이 심장 끝까지 파고들었다. 몸은 뻣뻣하게 굳었고 머릿속도 새하얘졌다. 원경능의 머리도 순식간에 새하얘졌다.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포개진 입술 그대로 얼어붙었다. 원경능은 저도 모르게 가지런한 이빨로 아랫입술을 깨물며 두 손으로 우문호의 가슴을 밀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리는 텅 비었다. 심장 박동소리는 천둥소리처럼 가슴속에서 메아리 쳤다.두 사람의 호흡이 가빠졌다. 서로의 손이 통제를 잃고 상대방을 껴안았다. 이건 주관적인 의식이 아닌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그녀가 가볍게 그의 입술을 깨문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우문호의 입술이 묵직하게 내려앉으며 비벼지고 깊게 파고들었다. 입술과 이가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마음도 서로 뒤엉키며 숨결이
원경능은 피할 수 없어 염치 불고하고 낙평공주를 대면했다.낙평공주는 그녀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여섯째의 병을 치료한다고요, 다른 사람은 당신의 능력을 모르겠지만 본궁은 잘 알고 있습니다. 본궁의 거처에서 그런 저속한 일을 꾸민 것도 아직 당신과 따지지 않았는데, 감히 회왕부에 와서 또 허장성세로 협잡질을 하고 있는 거예요?”원경능은 낙평공주의 분노를 헤아릴 수 있었다.그녀 본인의 생일 연회였다. 친지들을 초대하여 경축하는 것은 사실 매우 체면이 서는 일이었다. 그들은 함께 밥도 먹고 극단(戏班)도 초대했는데, 낙평공주는 그녀 몸의 모든 세포를 동원했어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초대한 극단의 실력이 경후부의 부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체면도 많이 구겼고 황실의 체통도 잃었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다른 사람이 그런 저속한 일을 꾸미는 데에 그녀가 이용당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건 그녀의 명성에 큰 손해를 끼치는 일이었다.원흉 중 한 명인 원경능은 도저히 방금 기왕비를 대했던 것처럼 떳떳할 수 없었다. 그녀는 저명취에게서 배운 대로 써먹었다. 속눈썹을 살짝 내리깔고 가여운 모습으로 속삭였다.“부황께서 내리신 명입니다.”“지금 부황으로 저를 누르려는 거예요?”낙평공주가 도끼 눈을 했다.“제가 감히 그럴 리가요!”원경능이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녀는 움츠리는 모습을 보이며 말을 이었다.“사실 저도 왜 부황께서 이런 명령을 내리셨는지 잘 모르겠어요.”낙평공주는 실은 원한을 풀려고 했는데 그녀의 이런 애처로운 모습을 보니 속에 가득 찬 화를 토해낼 수 없었다.그러나 기왕비는 가만히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냉큼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낙평공주를 도와주었다. 그녀가 웃음을 머금고 원경능을 위로하듯 말을 걸었다.“초왕비, 병을 고치는 일을 공주에게 말씀 드려도 될 것 같아요. 당신은 오늘 저와 로비 마마가 병을 고치는 규정을 모른다고 탓했지요. 하지만 공주는 견문이 넓으니 이해할 겁니다. 그러니 공주에게 알려주는 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