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왔다.이내 하늘에서 가랑비가 보슬보슬 내리기 시작했다.오남미는 실성한 듯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천도준의 답장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그녀의 심장을 찔렀다.“누나, 들어가. 사람 기다리겠다.”아무것도 모르는 오남준은 오남미를 재촉했다.오남미는 손으로 눈가의 눈물을 닦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고개를 들어 보슬비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절망의 쓴웃음을 지었다.“결국 나 혼자 이 모든 걸 감당하게 되었네?”레스토랑은 조금 어두컴컴했다.희미하고 몽롱한 조명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곳은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이대광은 한쪽 구석에 자리한 채 이따금 빛나는 정수리를 만지며 사진 속의 오남미를 엉큼하게 바라보았다.이대광은 노총각이다.하지만 아직 충분히 놀지 못했기에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재벌가에 시집간 이대광의 누나는 이대광을 여러모로 많이 도와주었고 이대광은 누나 부부의 도움을 받아 생활 여건이 아주 좋았다.정태건설의 대표로 있을 때 그는 직권을 이용해 수많은 여직원과 잠자리를 가졌다. 정태건설을 팔아넘길 때까지도 그는 고가의 계약서에 서명한 일을 말하지 않았고 다음 날 바로 매형의 또 다른 회사에서 관리직을 맡게 되었다.결혼은 책임이다. 마음껏 여자를 놀 수 있는데 왜 굳이 한 그루의 나무 때문에 숲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오늘 맞선 자리에 응한 것도 사진 속의 아름다운 여자에게 흑심을 품었기 때문이다.돈 좀 팔고 아름다운 여자와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다면 이대광은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저기, 혹시 이대광 씨 맞으세요?”오남미는 혐오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이대광을 바라보았다.나이는 많지만 머리숱은 적고 몸매도 형편없었다.방금 그녀는 이대광이 자기의 사진을 음흉하게 바라보는 모습도 발견했다.게다가 이 늙은 남자는 천도준의 직속 상사이다.하여 그녀는 이 상황이 더없이 혐오스러웠다.“아, 오남미 씨?”이대광은 기름기가 넘치는 두 눈으로 오남미
오남미는 안색이 변하더니 아름다운 눈에 살기가 가득 생겼다.장수지는 대체 그녀를 어떻게 소개한 걸까?어떻게 엄마라는 사람이 딸을 창녀처럼 만들 수 있지?이 순간 오남미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졌고 머릿속이 텅 비었다.“죄송하지만 먼저 가볼게요.”오남미는 겨우 이성을 유지한 채 싸늘하게 말하고 뒤돌아섰다.이때 갑자기 이대광이 화를 내며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더니 그녀를 강제로 품에 안았다.“가긴 어딜 가? 난 사냥감을 놓친 적 없어.”“꺄악, 이거 놔요!”오남미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고 이 순간 천도준이 떠올랐다.“소리 지르지 마! 왜 그렇게 유난을 떨어?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었어?”“이대광 씨, 난 정태건설 천도준의 부인 되는 사람이에요.”천도준의 와이프라는 말에 이대광은 갑자기 피가 뜨겁게 끓기 시작했다.“그래? 천도준 그 자식 아주 잘난 척 하더니 와이프라는 년이 창년이였어? 이거 아주 재밌겠는걸?”이대광은 오남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오남미는 한 번도 회사로 찾아온 적 없었기에 이대광은 오남미를 오늘 처음 본다.그런데 천도준의 여자라니? 이대광은 오늘 반드시 이 여자를 정복하겠다고 다짐했다.‘이 여자 아주 맛있겠는걸? 천도준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지.”이대광은 음흉하게 웃더니 촌스러운 가죽 가방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오남미의 품에 던져주었다.“500만 원 줄게.”“변태 같은 자식!”오남미는 제대로 뚜껑이 열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더니 현금으로 이대광의 뺨을 갈겼다.모든 굴욕과 분노와 억울함이 이 순간에 폭발했다.꼼짝없이 뺨을 맞은 이대광은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서며 그녀의 몸에서 손을 뗐고 오남미는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울부짖으며 호텔을 뛰쳐나갔다.아우디 차 안에서 한참 게임 중이던 오남준은 울며 뛰쳐나오는 오남미를 보더니 깜짝 놀라 다급히 차에서 내려 달려갔다.“누나 왜 그래?”“따라오지 마!”오남미는 오남준을 버려둔 채 도망쳤고 아무것도 모르는 오남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비는 점점
오랜 기다림에 오남미가 거의 무너질 무렵, 드디어 천도준에게서 답장이 왔다.띵!“당신 엄마가 강요한 거 맞네.”월셋집.오남미에게 답장을 보낸 천도준은 표정이 일그러졌고, 가늘게 뜬 눈에는 차가움이 서려 있었다.그는 휴대폰을 잡은 손에 힘을 꽉 주었다.“날 모욕하려는 건가?”천도준은 혼자 중얼거리더니 휴대폰을 들어 이수용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끊은 후,천도준의 눈빛은 더욱 깊은 침묵에 잠겼고 얼굴의 차가움은 가실 줄 몰랐다.오남미는 왜 이대광과 맞선을 보러 갔는지, 그리고 오남미가 그의 전 와이프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그녀를 아가씨라고 밀어붙였는지......보나마나 이 모든 것은 그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다.천도준은 비록 뒤끝이 깔끔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은 아니다.그는 오남미는 번호를 빤히 쳐다보다가 또 하나의 답장을 보냈다.“남준이 신혼집 아직이라면 내일 아침 서천구로 가서 하나 사는 게 좋을 거야. 그거로 어쩌면 오남준의 예물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천구는 오래된 구역이라 집값도 싸고 심지어 지난 1년 동안은 하락세를 보였다.하여 오씨 집안의 재산으로도 충분히 서천구에 집을 살 수 있다.게다가 내일이 지나면 서천구의 집값은 아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시세가 오를 것이다.임설아가 요구하는 예물이 아무리 높다지만 만약 오씨 집안이 선견지명이 있어 서천구에 집을 미리 마련하고 집값이 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놓으면 예물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문자를 보내고 난 뒤, 천도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홀로 중얼거렸다.“오씨 집안에서 내 위치는 말할 것도 없으니 이 말도 분명 귓등으로 흘려보낼 테지?”그도 더는 신경 쓰기 귀찮아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직접적으로 알려줬는데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씨 집안의 문제다. 이 정도면 천도준도 충분히 도와준 것과 다름없다.비는 점점 더 크게 내렸다.아래층에 내려가니 검은 롤스로이스 팬텀이 길가에 서 있었다.천도준은 차에 올라 이수용을 힐끔 보
“그만해. 그만 때리라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당신들 대체 누구야!”이대광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폭행하던 다섯 사람은 그제야 행동을 멈추더니 이대광을 에워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보이지 않는 아우라에 이대광은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에 질려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이대광은 오남미와 ‘맞선’을 보고 나서 잔뜩 화가 치밀어 이곳으로 찾아왔다.모든 것이 준비되었고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샤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섯 명의 덩치가 큰 남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에게 가운을 입힌 뒤 밖으로 끌어냈다.더 놀라운 것은 클럽 사람들은 감히 참견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까나?이대광은 이 클럽의 배후 보스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물도 감히 손을 쓸 수 없다니?“내가 오늘 기분이 많이 상해서요.”이대광은 익숙한 목소리에 몸을 움찔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이대광은 자기가 분명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오는 사람은 바로 천도준이었다.“날 모욕했으니 대가를 치러야죠.”“천도준?”이대광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에워싼 다섯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이게 다 네 짓이야?”천도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고개를 비틀며 말했다.“저 새끼 믿지 못하는 거 같으니 어떻게 좀 해봐.”다섯 남자는 즉시 이대광에게 달려들어 또 한바탕 주먹질했다.비명이 메아리쳤다.5분 뒤, 다섯 사람은 동작을 멈췄고 이대광은 얼굴이 퉁퉁 부어 그야말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나 다름없었다.“이러면 믿겠어요?”천도준이 물었다.이대광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피가 섞인 침을 내뱉으며 깔깔 웃기 시작했다.“하하하...... 빌어먹을. 내가 널 너무 만만하게 봤어. 3년을 개처럼 키웠는데 정말 정태건설을 인수했다니.”그날 이후 이대광은 자기 매형에게 정태건설의 인수에 관해 물었지만 이대광의 매형은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
오남미는 온몸이 쫄딱 젖어서 초라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부모님과 오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어딜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오는 거니?”장수지가 굳은 목소리로 그녀를 야단쳤다.“선 한번 보라는데 그게 그렇게도 싫었어?”오남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엄마, 내가 무슨 일을 당하고 온 건지는 알아?”“알아. 남준이한테 다 들었어.”장수지의 말에 오남미는 울컥 눈물이 나왔다.“남자가 좀 만질 수도 있지. 그러려고 선 자리 나간 거잖아. 차라리 둘이 같이 밤을 보내고 왔으면 나도 이렇게 걱정은 안 했을 거야. 너도 동생 앞길을 생각해야지. 애가 왜 그렇게 이기적이니?”“엄마는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오남미가 울며 물었다.오덕화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그는 장수지를 힐끗 노려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애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어.”“딸한테 그런 말도 못해요?”장수지가 눈을 부릅뜨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선 자리를 망쳤으니 우리 남준이는 언제 장가가요? 누나가 동생 위해서 그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뭐가 문제예요?”아내가 떠드는 소리에 오덕화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오남미는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렸다. 당시 오남준은 레스토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녀가 도망치고 난 뒤에 도착해서 이대광의 말만 듣고 집에 와서 말을 전한 게 분명했다.오남미는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속으로 고민했다.“누나, 그래서 진짜 나 안 도와줄 거야?”오남준이 갑자기 다짜고짜 우는 소리를 했다.“나 누나 동생이잖아. 누나도 날 안 도와주면 누가 날 도와주겠어? 나 진짜 설아랑 결혼하고 싶단 말이야. 설아한테 버림받으면 나가서 콱 죽어 버릴 거야!”“남준이 죽으면 우리도 못 살아. 다 같이 죽어!”장수지까지 합세해서 목청을 높였다.죽겠다고 협박하는 동생과 엄마를 보자 오남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남미야, 네 마음은 알겠지만 엄마랑 동
장수지의 말에 오덕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오덕화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보수적인 선생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대가 끊기는 일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그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감싸며 고통스럽게 말했다.“내가 친구들한테 돈 좀 빌려볼게. 어떻게든 결혼자금은 마련되지 않겠어?”“빌리면 그 돈은 언제 갚으려고요!”장수지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오남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빨갛게 부은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았다.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는 건 알면서 딸을 상품처럼 가치를 매겨 파는 건 괜찮다는 말인가!다음 날, 오덕화는 아침 일찍 돈을 빌리러 나갔다. 어젯밤 일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오랜 고민 끝에 돈을 구해보기로 한 것이다.오남미도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눈이 잔뜩 부어 있었지만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하러 갔다.천도준과 결혼한지 3년이나 지났지만 그녀는 전업주부가 아닌 비교적 일이 수월한 회사 안내데스크 직원으로 일했다. 월급은 적지만 생활비는 천도준이 다 부담했기에 그녀가 번 돈은 거의 용돈으로 쓰고 있었다.하지만 워낙 월급이 적었고 다른 수입이 없었기에 모은 돈도 별로 없었다.오남미는 멍한 얼굴로 거리를 걸으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또 눈물이 나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SNS를 접속해서 힘들다는 글귀를 남겼다.곧이어 SNS에 그녀를 위로하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따뜻한 말들을 보며 오남미는 조금 안정을 찾았다.정태건설.천도준은 SNS에서 그녀가 올린 글귀를 보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 방안을 다시 검토했다. 오늘 밤에 공표할 내용이니 절대 그 어떤 실수도 용납할 수 없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여섯 시가 되었다.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사람들은 거실에 앉아 TV를 틀었다.“의성그룹은 최근 언론을 통해 우리 시로 진군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룹 관계자는 상권을 개발하고 상업 단지를 건설할 계획을 밝히며 일차적으로 서천구부터 재개발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습니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걸 알았을까?오남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문자만 빤히 바라봤다.얼핏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뭔가 알 것 같았다.의성그룹은 국내 건설 업계의 일인자였다. 이 도시에 진군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미리 소식을 외부에 알릴 리 만무했다.그건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 해당되는 것이고 천도준은 정태건설 부장이었다.정태건설이 의성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그래도 의성이 진군하기 전까지는 이 도시의 건설 업계를 꽉 잡고 있는 존재였다. 그러니 뉴스가 보도되기 전에 미리 소식을 접했을 가능성도 있었다.한숨만 쉬던 오덕화가 갑자기 말했다.“어제 남미 말을 들었어야 했어.”오남미는 의아한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았다.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장수지가 씩씩거리며 욕설을 퍼부었다.“나쁜 계집애! 다 너 때문이야! 어제 네가 조금 자세히 설명만 해줬어도 오늘 아침에 당장 거기로 가서 집을 샀을 거야. 그럼 네 동생 결혼자금도 해결되는 건데! 너 때문에 이게 다 뭐야!”가시가 잔뜩 돋친 말에 오남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엄마, 아빠, 난 집을 사라고 말했어. 엄마가 안 된다고 한 거고….”“닥쳐!”장수지는 듣기 싫다는 듯이 자기가 할 말만 늘어놓았다.“네가 조금 더 설득했으면 우리도 당연히 들었겠지. 너 싫은 선 자리 내보냈다고 일부러 우릴 엿 먹인 거지? 대박 기회를 이렇게 허무하게 놓치다니! 이제 우리 남준이 결혼은 어떡해!”말을 마친 그녀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더니 통곡을 터뜨렸다.결혼이 물 건너갔다는 말에 오남준도 씩씩거리며 끼어들었다.“누나,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설아랑 결혼 못 하면 차라리 나가서 죽어버릴 거야!”그들이 울고 불고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오남미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그녀는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쥐여뜯으며 눈물을 쏟았다.“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는 거야?”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잠갔다.그리고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음을 터뜨렸다.“왜 이 모든
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었다.서천구 재개발 프로젝트에서 정태건설은 60억이 넘는 고가의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즉시 파산할 운명이었다.그래서 어젯밤 천도준에게 개 패듯이 맞고도 웃을 수 있었다.그는 천도준은 한낱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성그룹이 서천구 개발에 투자한다는 뉴스가 공개되는 순간까지도 대표인 그는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의 능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였지만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의성그룹은 전국 건설 업계의 명실상부 일인자 기업이었다. 진짜 이 도시에 투자하지 않더라도 공개한 뉴스만으로 서천구 땅값은 하늘로 치솟을 것이다.의성그룹이 손을 댄 지역 중에 땅값이 안 오른 지역이 없었다.그런 핵폭탄급 정보가 공개된 순간, 무리해서 계약을 추진했다고 비난 받던 천도준은 순식간에 대 역전극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는 어제 천도준을 비웃었던 말이 떠올라서 더 수치스러웠다.“운이겠지? 그래 넌 그냥 운이 좋았던 거야. 운이 좋으면 돼지도 날개를 달고 훨훨 날 수 있지. 마침 의성그룹이 서천구에 흥미가 생겨서 너한테 행운이 돌아간 것뿐이라고!”이대광이 거친 숨을 토해내며 중얼거렸다. 그는 핸드폰을 찾아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누나, 나 이 회사 안 다닐래. 난 그래도 부동산 회사가 더 나랑 맞는 것 같아. 매형 휘하에 부동산 회사가 몇 개 있잖아? 매형한테 말해서 나를 그쪽으로 전직하게 해줄 수는 없어?”“누나, 이번 한 번만 내 부탁을 들어줘.”전화를 끊은 이대광이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천도준, 너한테는 천운이 따른 거겠지만 나한테는 매형이 있어. 네 천운도 이제는 끝이야!”천도준은 굳이 지역 뉴스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는 재개발 프로젝트 방안을 정리한 후, 집으로 가서 어머니가 드실 저녁을 준비했다.이제 그에게 어머니는 그의 전부였다.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도 어머니를 위해서였다.그가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을 열자마자 소파에 앉아 있는 이숭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