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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불여우가 임신했다

아빠의 얼굴은 몹시 곤란해 보였다. 평소에 잘 피우시지도 않던 담배를 계속 태우고 계셨다. 아빠는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시고 엄마만 바라보셨다.

엄마는 눈물을 닦으시며 원망하는 말들을 쏟아 내셨다.

“너희 아빠 그 요망한 비서랑 바람났어!”

요망한 비서? 사진을 집어 자세히 보니 여자가 아주 낯이 익은 것 같더니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났다. 정아와 함께 찻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우연히 아빠를 만났었는데 함께 있었던 비서였다.

그때 나는 아빠의 전 비서는 남자이지 않았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왜 갑자기 여자로 바뀐 것인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나는 아빠를 믿었고 아버지가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 엄마하고 말하지 않았었다.

“엄마, 일단 화내지 마세요. 아빠가 어떤 분인지 아시잖아요. 30년이 지나도록 아빠한테 여자를 소개하는 사람이 없었겠어요? 그래도 한 번도 어긋나는 행동 하신 적 없으시잖아요. 이번에도 무슨 오해가 있을 거예요.”

나는 엄마의 옆에 앉아서 등을 쓰다듬어 드리며 화를 풀어 드렸다.

“맞아, 누군가가 나를 음해 하려는 거야!”

아빠는 마침내 살짝 흥분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었는데, 어떻게 그 여자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겠소?”

아빠의 지금 자리까지 쉽게 오른 것이 아니었다. 아빠는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릴까 봐 평생을 조심스럽게 살아오셨다. 곧 퇴직하게 되시는데 굳이 자신의 명예를 더럽힐 이유가 없었다.

엄마는 나의 품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셨고 나의 마음은 무거웠다. 미간은 찌푸려져 한 번도 펴지지 않았다.

“아빠, 사람을 보내서 이 여자 좀 조사해 보세요. 어떤 목적이 있는지.”

나는 다시 입을 열어 아빠에게 말했다.

“확인해 봤다. 그 여자의 인사정보도 나한테 있어. 이름은 조수연이고 세종시 사람이야.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어. 하지만 그 여자가 키우는 것 같진 않아.”

아빠는 또 담배를 피우셨다. 고새 몇 년을 더 늙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단서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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