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은 앞으로 나아가 가방을 소파 위에 놓고는 윤이건의 맞은편에 앉았다.그녀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많지도 적지도 않아 윤이건이 눈을 뗄 수 없게 했다.윤이건은 이진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가볍게 웃었다.“만약 GN 그룹에 정말로 내가 보낸 스파이가 있다면 우리 자기가 이렇게 차분하게 내 맞은편에 앉을 리가 없지.”자기라는 호칭을 듣자 이진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핸드폰을 꺼내 방금 받은 파일을 윤이건한테 보여주었다.“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 난 저녁 한 끼면 되는데.”윤이건은 말을 하면서도 계속 이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진은 그의 말을 못 들은척하더니 말했다.“또 알아내신 거라도 있나요?”이진이 가볍게 입을 열었는데 그녀의 착잡한 심정을 보아낼 수 있다.이기태는 분명 회사 내부에 먼저 손을 썼기에 그녀의 힘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빠른 시간 내에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그녀는 단 한 번도 윤이건을 이 일에 개입시킬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 보니 이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인 것 같다.윤이건은 이진의 걱정 가득한 모습을 보자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그도 한 그룹의 대표로서 방금 열린 주주총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한 여자애가 갑자기 낙하산으로 나타나 회사의 대표를 맡았으니 어느 정도 이의가 있기 마련이다.윤이건은 마음속으로 묵묵히 한숨을 내쉬고는 방금 조사해온 모든 자료들을 이진에게 건넸다.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는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다들 익숙히 알고 있던 윤 대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이진 씨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GN 그룹은 예전의 GN 그룹과는 확연히 달라진 상태에요.”그의 말을 듣자 이진은 고개를 들어 윤이건을 쳐다보았다.이때 두 사람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는데 그녀는 심지어 그한테서 나는 향수 냄새까지 맡을 수 있었다. 진하지 않고 은은한 데다가 윤이건의 냄새까지 섞여 아주 좋았다.“지금 GN 그룹에 큰 문제가
“좋아요, 약속해요.”‘만약 남녀 사이를 오가는 관계라면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친구라면…….’이진은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윤이건을 보았는데 별로 싫지는 않았다.그녀의 대답에 윤이건은 그제야 마음이 가라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시간도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자.”이진은 그가 돌아가자고 말한 곳이 어딘지 잘 알고 있었다.이미 몇 달 후에 이사 가기로 약속했으니 더 이상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물론 그 여우 같은 년이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돌아가는 길에 두 사람은 얘기를 몇 마디 간단하게 주고받았는데 거의 GN 그룹의 문제를 둘러싼 내용들이었다.비서는 차를 몰면서 수시로 백미러로 그들을 바라보았는데 꽤 조화로운 모습이었다.별장에 돌아오자 윤이건은 그제야 별장에 식사를 책임진 아주머니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비록 그 아줌마를 해고한 후 다른 하인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해야 할 일들이 명확했다.공교롭게도 해고된 그 아줌마가 평일에 저녁 식사를 책임진 하인이었다.윤이건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비서더러 5성급 셰프를 모셔오라고 하려고 했는데 이진에게 제지당했다.“저녁 한 끼일 뿐인데 한 대표님께서는 번거롭지도 않으신가 봐요.”이진은 말을 마치고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스스로 부엌에 들어섰다.불과 몇 분 만에 윤이건은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가 나는 걸 들을 수 있었다.그는 궁금해 몸을 돌려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은 채 벽에 기대어 입을 다문 채 이진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채소를 씻고 써는 등 모습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었지만 어딘가 바빠 보였다.윤이건은 갑자기 마음속 한편이 따뜻해진 느낌이 들었는데 점차 멍을 때리고 있었다.이런 여자가 3년 동안 자신의 곁에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헛되이 놓쳐버리다니…….반쯤 준비를 마친 후 이진은 몸을 돌려 조미료들을 꺼냈는데 마침 뒤에 서있는 남자를 언뜻 보았다.그녀는 속으로 두어 마디 중얼거리더니 언짢은듯한 말투로 말했다.“윤 대표님께서 할
그런데 생선 가시를 발라낸 후, 이진은 갑자기 몇 가지 일이 생각났다.도대체 그녀가 이 집에 얼마나 더 있을 수 있을까?곧 떠날 그녀가 이런 집안일을 함부로 맡는 건 적합하지 않았다.원래 윤이건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그녀는 차마 말을 꺼내진 못했다.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한 가닥 흐리멍덩한 기분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 기분은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다.이진은 그 기분이 뭔지 깊이 파고들진 않았는데 아마 그와 함께 한 시간들이 습관 된 것일 거다.이진은 생각이 얼굴에 모조리 드러났지만 윤이건이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이건의 젓가락질은 멈추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그녀를 향해 있었다. 그녀의 감정 변화가 너무 뚜렷해 보이자 윤이건도 마음이 혼란스러워 끝내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이튿날, 윤이건이 기어코 이진을 데려다주겠다고 하자 그녀도 딱히 거절하진 않았다.‘공짜로 데려다준다는데 거절해서 뭐해?’AMC에 도착하자 이진은 윤이건에게 인사를 하고는 차에서 내려 건물로 들어섰다.윤이건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고개를 들어 비서에게 당부했다.“오후에 시간 날 때 제대로 된 하인을 좀 구해봐.”사실 윤이건과 이진은 모두 하인을 찾는 일이 빌미에 불과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굳이 이 거짓말을 밝혀내진 않았다.그렇다면 약속을 두려워하거나 다른 걱정을 하는 것보단 지금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거다.AMC 대표 사무실.이진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케빈도 바로 따라들어섰다.케빈의 손에 놓인 두꺼운 서류들을 보자 이진은 머리가 아파났다.“보스, 제가 밤을 새워 GN 그룹의 자금 흐름 방향을 알아냈어요.”케빈의 두 눈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는데 정말 밤새 자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는 한 무더기의 자료 중에서 두 장을 뽑아 이진의 앞에 놓았다.“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네.”이진과 케빈은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보스, GN 그룹의 자금 흐름은 모두 모진호라는 관광지로 흘러들어갔어요.”“관광지에는
“윤 대표님, 별일 없으시다면 방으로 돌아가서 쉬셔도 됩니다.”이진은 윤이건이 옆에 없다면 더 일에 전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러자 윤이건은 하인들 앞에서 그녀를 향해 미소를 선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그녀와 하인들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 중 나이가 어린 하인들도 있었는데 모두 윤이건의 모습을 보고 홀딱 넘어갈 뻔했다.“무슨 뜻인가요?”윤이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진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했다.“우리 자기가 여기서 집안일을 돕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쉴 수 있겠어?”윤이건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이진은 그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가 뭣 때문에 이러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다른 사람이 봤을 때엔 그들은 깨가 쏟아지는 신혼부부일 것이다.이진은 가능한 한 눈앞의 이 남자를 무시하고는 예비 하인들 앞에 가서 박수를 한번 쳤다.“자, 이제 다음 심사를 진행하겠습니다.”예비 하인들은 이 말을 듣고 즉시 정신을 차렸다.“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번 심사는 요리입니다.”이진은 말하면서 앞에 놓인 쇼핑백 안의 신선한 재료들을 보았는데 꽤 흥미로웠다.“지금부터 여러분들은 방금 구매한 재료들로 요리를 하시면 됩니다. 단 한 가지 요리만 준비하시면 됩니다.”기다리는 동안 이진은 이들의 주변을 맴돌며 요리하는 과정을 지켜봤다.윤이건은 부엌 입구에 서서 이진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한순간도 그녀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처음에는 그녀가 개성 있고 능력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그녀와 알고 지낸 시간이 꽤 오래됐는데도 윤이건은 그녀가 여전히 매력이 넘친다고 느꼈다. 이점은 너무 치명적이고 매력적이었다.반 시간이 지난 후 부엌에는 향기가 흘러나왔고 식탁에는 여러 가지 향기를 풍기는 요리들이 놓여있었다.그러나 윤이건은 맛에 대해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가 흥미를 느꼈다고 할지라도 별 소용이 없었다.하인들은 윤이건이 시식하는 줄 알고 모두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진이 젓가락을 들자
윤이건은 제대로 묻지도 않고 확인하지도 않은 채 흔쾌히 승낙했다.이진도 윤이건이 이렇게 시원스럽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비록 그녀는 이것을 사례금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핑계에 불과했다.두 사람이 3년 동안 함께 지내온 데다가 그녀가 AMC 대표이기도 하기에 이진은 윤이건이 심각할 정도로 공과 사가 분명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러기에 일부 소기업들은 YS 그룹의 이름을 듣자마자 공포에 빠지곤 했다. 심지어 윤이건을 언급할 때 그들은 인정사정없고 차가운 데다가 숨을 멎게 하는 이미지를 떠올린다.이런 사람이 이렇게 쉽게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이다니.그녀도 의심은 갔지만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이 사람이 자신을 도우려는 거니 그녀는 당연히 감사할 따름이다.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그들 사이는 기껏해야 기업을 위해서만 연락이 오갈 것이다.윤이건이 일어나 2층 서재로 걸어가자 이진은 다소 당황하여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서재로 돌아온 윤이건은 직접 관광지 관련 부문에 전화를 걸었다.“윤 대표님?”윤이건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프로젝트 부문의 책임자들은 모두 다소 당황했다.그들 모두 자기가 뭔가를 잘못한 게 아닌가 싶었다.“네, 임대리님. 문의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윤이건은 대외적으로 늘 예의를 차렸다. 그러기에 많은 분들도 모두 YS 그룹과 관계를 맺으려 했다.“말씀하세요.”“혹시 부서에서 모진호에 관한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나요?”“모진호요? 네, 진행되고 있습니다.”“확실한 가요?”임대리가 바로 대답하자 윤이건은 다소 의아했다. 그의 신분과 지위를 보았을 때 그의 손엔 수없이 많은 관광 항목들이 있을 건데 모진호를 한번 조회해 보지도 않은 채 바로 대답할 수 있다니.“하하, 윤 대표님께서는 아실지 모르겠는데…….”임대리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는데 목소리는 다소 흥분되어 있었다.“이 항목은 막 시작된데다가 투자금이 어마어마해 엄청 인상적이었거든요.”막 시작했는데 자금이 어마어마하다니.윤이건은 눈을 가늘게 떴는데 이
이진은 처음으로 윤이건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드러냈다.와인을 마셔 취한 것 같기도 하고 흥분되어 그런 것 같기도 했다.친아버지와 맞서는 느낌은 정말 나쁜 데다가 더 나쁜 건 아버지인 이기태는 지금 상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네가 직접 그의 능력과 자금을 빼앗았는데 그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만 있겠어.”이진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그를 바라보았는데 그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의 노을이 창문을 통해 그의 뺨을 비추니 분위기가 딱 좋았다.갑자기 이진은 자신이 억지를 부렸다고 느꼈고 그녀는 이렇게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녀와 남은 가족들은 단지 혈연관계만 있는 원수일 뿐이다.“왜 그렇게 쳐다봐?”이진이 한참 동안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자 윤이건은 오히려 좀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진은 고개를 저을 뿐 계속 생각에 잠겨있었다. 술을 두 잔 마시자 이진의 뺨은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그녀는 주량이 약해 술자리를 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미룰 수 없을 때에는 샴페인 한두 잔만 마셨었다.그녀는 어느덧 소파 위에 앉아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마치 억울한 아이처럼 쪼그려있었다.“내가 도와줄까?” 평소에 강한 말투와 모습만 보여온 그녀가 갑자기 조용한 모습을 보이자 윤이건은 다소 당황했고 마음이 아파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네, 도와주세요.”망설임도 거절도 없었다.이진은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느낌이 별로 나쁘진 않았다.이진은 그날 저녁 객실에서 잤지만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날따라 유난히 달콤한 잠에 빠졌다.이튿날 아침, 윤이건은 출근하지 않고 이진을 데리고 한 커피숍으로 갔다.두 사람이 도착하자 임대리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임대리는 윤이건을 보자 즉시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곧이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옆에 있는 이진을 바라보았다.“한 대표님, 오랜만이에요. 이분은…….”임대리는 아름다운 그녀를 보자 눈이 번쩍거
윤이건이 말을 마치자 임대리와 이진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가 이런 일을 가지고 장난을 칠 사람은 아니기에 정말로 투자라도 하겠다는 거다.“윤 대표님…….”임대리는 눈을 깜박거리며 윤이건을 보더니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YS 그룹은 단 한 번도 이런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없었다. 만약 윤이건이 정말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면 자금의 투입과 과정은 더 안정적일 것이다.“어때요? 제가 참여한다면 공사 기간에 독촉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독촉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 이진은 테이블 밑에 놓인 손을 주먹 쥐었고 하마터면 그를 한 대 때릴 뻔했다.과연 임대리는 혹시라도 윤이건이 후회하기라도 할까 봐 바삐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윤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진행하도록 할게요. 계약은 나중에 천천히 하는 걸로 해요.”이번 것이 큰 프로젝트가 될게 분명하니 제대로 실행해 나간다면 아마 승진도 가능할 것이라 임대리는 급히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얘기를 마친 후 윤이건과 이진은 임대리는 차에 태워 보낸 후 길가에 서있었다.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참 지나자 이진은 참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윤이건을 바라보았다.왠지 날씨는 조금 서늘하고 쓸쓸한 느낌을 띠고 있었다.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이진은 점점 자신이 윤이건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왜 도와주신 거예요?”“색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 더군다나 이 프로젝트는 뭔가 재밌을 것 같았거든.”윤이건은 그녀가 물어볼 것을 예상해 이미 답을 생각해 놓았다.아주 타당한 이유였지만 이진은 너무 의도적이라고 생각해 입꼬리를 오므리며 여전히 한 가닥 의심을 품고 있었다.‘분명 뭔가 이상한데?’“가자, 곧 비 올 것 같네.”윤이건은 그녀한테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않은 채 그녀의 손목을 잡고는 차에 올라탔다.가는 길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진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인 채 자료를 찾아보았고 윤이건은 자리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정
유연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그녀는 분명 윤이건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마음 아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를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원래 속상한 척 한 거였는데 진짜 속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유연서는 가방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은 돌아섰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분명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진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하도 많이 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진은 오히려 옆에 있는 이 남자의 반응이 궁금해났다.“잠깐만…….”윤이건은 몸을 돌려 집에 들어서려 했는데 이진이 갑자기 입을 열자 얼떨떨했다.“왜?”“그래도 이 먼 곳까지 와 직접 만든 케이크를 선물했는데 집엔 들여보내지 않는다고 해도 배웅은 해야 되지 않나요?”이진이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꺼낸 건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단지 머릿속으로 만 생각하던 말을 저도 모르게 꺼낸 것이다. 심지어 그녀 스스로도 어떤 대답이 듣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윤이건은 그녀의 말을 듣자 자신의 행동이 전과 확연히 다르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유연서가 별장에 왔을 때 그는 항상 그녀를 배웅해 주었는데 이번엔 까먹다니.윤이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자 이진은 갑자기 기분이 좀 언짢았다.이진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그녀는 피로를 풀 겸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섰다. 이진은 욕조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저도 모르게 오늘 발생한 일들을 떠올렸다. 특히나 임 대리와 얘기를 나눌 때 윤이건이 자신을 지지하는 모습이 자꾸 그녀의 눈앞에 아른거렸다.그녀는 이 남자가 왜 이런 행동을 한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친구 하기로 약속했고 선을 그었는데 정말 단지 친구 사이라면 윤이건이 이런 행동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YS 그룹이 공식적인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녀에게도 나쁜 일은 아니었다.그녀는 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