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씨 병원아람은 VIP 병실에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침대에 눕고 있는 아람은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침대에 앉아있는 구윤은 아람의 발을 무릎에 놓고 조심스럽게 상처를 치료했다. 아람은 그제야 통증이 느껴져 눈썹을 살짝 찌푸리고 말을 하지 않았다.“아람아, 어제 성주의 별장에 돌아가지도 않았고 해문으로 돌아가지도 않았어. 어디에 갔어?”구윤은 다정한 목소리로 물으며 상처를 치료해 주는 손을 떨었다. 아람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신경주를 찾으러 갔어?”경주의 이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 같았다. 구윤은 매번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언급했다.“지운한테 들었어. 어제 신경주를 만나러 갔는데 얘기가 잘되지 않았다고. 그 후 전화를 받고 홀로 떠났어. 신경주를 찾으러 갔어?”“오빠...”한참 지나서야 아람의 허무한 눈빛이 구윤의 얼굴에 떨어지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너무 싫어. 내가 너무 비천한 것 같아.”“바보야,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자책하지 마.”구윤은 가슴이 아파서 호흡이 불안정해졌다. 몸을 숙여 아람을 안았다.“누가 감히 내 동생을 말하면 평생 잘 살지 못하게 할 거야.”신, 믿음은 물보다 진한 피인 가족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아람이 평생 순탄하고 행복하기를 원했다. 아람은 구윤의 품에 안고 울컥했다. 경주와 김은주의 사진을 볼 때 왜 충격을 받았는지 몰랐다. 마치 영혼이 부서진 듯했다.이때 간호사가 들어왔다.“구 사장님, 구아람 씨의 약을 갈아드릴 시간입니다.”“네.”구윤은 아람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일어서고 자리를 피할 준비를 했다. 간호사는 아람의 큰 병원복을 벗겼다. 안에는 실크 치마를 입었다. 하얀 맨살과 팔은 부러질 정도로 가늘었다. 아람이 어릴 때 구윤은 옷도 갈아입히고 재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 큰 소녀이기에 피해야 했다. 방에서 나가려던 순간 아람을 힐끗 보았다. 그러자 아람의 목과 쇄골 쪽에는 짙은 붉은 자국이 눈을 찔렀다. 목뿐만 아니라 가슴 위에
아람을 위해 구씨 가문 자식들은 간만에 모였다. 군대에 있는 아람의 셋째 오빠 백진만 오지 않았다.“오빠, 언니가 왜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했어?”구아린은 갑에 질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임수해가 그 모습을 보자 다가가서 구아린을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도련님들이 있어 비서로서 행동하기 불편했다. 그저 그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지만 시선은 구아린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이런 사람만이 구아린의 뒤에서 묵묵히 지켜줄 수 있을 것이다.“그래, 형. 아람은 자동차 신이야. 운전 실력이 나보다도 뛰어난데 왜 충돌을 했어? 다른 사람이 아람의 후미등도 볼 수 없을 텐데.”백신우도 의아했다. 오는 길에 걱정되었다. 중요한 임무에서 여러 번 죽을 뻔해서도 눈 깜짝하지 않던 백신우는 아람 때문에 겁을 먹었다. 구진과 구도현도 긴장한 채 구윤을 바라보았다. 복도의 분위기는 너무 무거웠다. 구윤의 얼굴은 차가웠다. 이를 악물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형?”구진은 구윤을 찔렀다.“왜 말을 안 해?”“교통사고는 심각하지 않아. 그저 외상이고 충격을 받았어.”한참 지나서야 구윤은 분노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말했다.“요즘 너희들이 번갈아 아람을 지켜. 수고해. 이 일은 당분간 아버지와 어머니들한테 얘기하지 마. 지금 연서 이모의 마음을 풀어주고 있어. 아람도 부담을 더하고 싶지 않을 거야.”“형, 이 말은 좀 화가 나네. 우리를 남으로 생각해?”백신우는 눈썹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아람은 우리의 친동생이야. 챙겨주는 건 당연한 거야.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린 남아있을 거야.”“그래, 형. 아람보다 중요한 건 없어.”구진와 구도현도 맞장구를 쳤다.“둘째 오빠, 일곱째 오빠는 직장이 있잖아요. 전 아무 일도 없어요. 저와 수해 오빠가 24시간 언니를 지키고 있을게요. 오빠들은 돌아가서 쉬어요.”구아린과 임수해는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괜찮아. 이미 얘기하고 왔어.”구도현은 바로 거절하며 자책을 했다.
하지만 유지운은 여전히 구윤이 최선을 다해 숨기려는 눈물을 보았다. 그러자 잔잔했던 마음의 호수에 격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구윤은 자신의 차가운 얼굴에 나약한 상처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유지운의 눈에는 너무 매혹적이었다.“무슨 일 있어?”구윤은 침착하고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유지운은 여우 같은 눈을 가늘게 뜨고 구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자 숨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유지운은 햐얀 손끝으로 구윤의 붉어진 눈꼬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구윤의 가슴이 떨리며 호흡이 딸라졌다.“알아, 동생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거.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유지운의 정교한 입술은 구윤의 귀에 가까워졌고, 목소리는 유혹적이었다.“하지만 약속해,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마. 너의 공주가 걱정하게 하지 마. 그리고 나도 걱정하지 않게 해줘.”구윤은 마음속 싶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자 귀가 빨개졌다.“바쁜 거 아니까 사촌 형의 차는 타지 않을게.”유지운은 허리를 곧게 펴고 다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당분간 돌아갈 수 없겠네. 차라리 4S 점에 가서 차를 사야겠어. 다니기 편해. 사촌 형, 아는 사람 없어? 내가 사면 할인을 받을 수 있어?”말을 마치자 구윤은 심호흡을 하고 유지운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유지운은 깜짝 놀라 가슴이 두근거렸다.“시간을 줄게, 이 정도는 괜찮아.”구윤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앞으로 살짝 끌었다.“해장원에 돌아가면 지하 차고에 있는 차를 마음대로 골라.”...이틀 내내 경주는 밥 한술도 먹지 않고 물만 마셨다. 나머지 시간에는 잠을 자고 있었다. 한무는 경주의 곁을 떠나지 않고 챙겨주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매일 창문을 대고 경주가 빨리 회복하기를 빌었다. 이렇게 아픈 건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경주가 아픈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사모님을 떠난 사장님은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어? 너무 고통스럽잖아.’“한무야, 네 사장님 어때?”이유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결국, 두 사람의 결혼한 3년 동안 매일 경주 곁에 있어서 너도 잘 알잖아. 아람이 잃은 3년은 경주가 평생 갚아야 해.”한무는 충격을 받았다. 신씨 가문에서 불쌍하지만 경주 곁을 떠나지 않는 아람을 떠올리자 눈물이 흘렸다. ‘신 사장님이 고생이 많아. 하지만 사모님이 더 괴로웠겠네.’...한무는 경주가 밤에 일어나면 모를까 봐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방 소파에서 잤다. 이튿날 아침 깨어나서 자연스럽게 경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침대는 비었고 경주가 사라졌다.“사장님, 사장님?”한무는 당황하여 벌떡 일어나 집에서 경주를 찾았다. 이때 욕실의 문이 열렸다. 경주는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안에서 걸어 나왔다. 정교하고 반듯한 슈트, 손목시계, 넥타이, 라펠 핀. 액세서리도 모두 있었다. 강하고 차가운 카리스마도 있어 아픈 흔적도 없었다. 한무는 경주의 허약한 모습을 잊을 것 같았다.“내 얼굴이 무슨 문제가 있어?”경주는 손을 들고 단추를 채웠다. 목소리는 여전히 쉬었다. 허약한 느낌이 있지만 티가 나지 않았다.“사장님, 왜, 왜 일어났어요? 푹 쉬어야 해요!”한무는 경주의 건강이 걱정되었다.“오늘 그룹에 중요한 전략 회의가 있어서 꼭 참석해야 해.”경주는 눈썹을 찌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을 지었다.“젠장, 까먹었네!”한무는 이마를 치며 돌아서서 충고했다.“사장님, 지금 몸이 안 좋은 게, 오늘의 회의는 가지 마요. 억지로 버티지 마세요!”경주의 얼굴은 창백하고 손을 들어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냈다.“괜찮아, 차 준비해.”...아침 10시,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신씨 그룹 건물 앞에 나타났다. 성A 9999의 번호판이 등장하자마자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9999! 성주의 차 번호야! 흔하지 않아!”사람들은 의론했다.“이 번호판은 경매에 나왔었어. 마지막에 40억 넘게 경매되어서 뉴스에 나왔었어!”“헐, 번호판 하나가 40억? 가난은 상상력을 제한하네!”“너무 궁금해, 차 주인이 누구지?”“왜 물어봐? 당연
임수해가 차 문을 열고 조수석에서 내려왔다. 오늘 구윤을 따르며 다시 KS 그룹 사장 비서로 돌아왔다. 고급스러운 슈트에 날카로운 눈빛을 더하니 흠잡을 데 없이 잘생겼다. 주위의 여직원은 흠모하는 눈빛으로 보았다. 임수해는 무시하고 뒷문을 열어 공손하게 인사했다.“구 사장님.”구윤의 침울한 얼굴은 감정이 보이지 않았고 마치 완벽한 조각상 같았다. 구윤은 긴 다리로 차를 내렸다. 나타나는 순간 여자들은 소리를 질렀다.“세상에, 너무 잘생겼어. 오늘 밤 꿈에 나오겠네!”“욕심이 많네, 꿈이 신 사장님이 있는데 또 추가할 거야?”“그렇게 잘생겼어? 신 사장님보다 못한 것 같아.”“정말 안목이 없네. 신 사장님과 다른 스타일이잖아. 신 사장님은 매우 치명적이고 이 분은 매혹적이야. 네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아서 더 도발적이잖아!”“하지만 이 도련님은 누구지? 왜 우리 신씨 그룹 앞에 왔어? 사람을 찾으러 왔나?”구윤은 안색이 어두운 채로 신씨 그룹에 들어갔다. 임수해는 뒤를 따랐다. 두 사람밖에 없지만 위풍당당하여 악박감을 주었다. 두 사람은 프런트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당황한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신셩주 사장님을 뵈러 왔습니다.”임수해가 먼저 냉정하게 말했다.“신, 신 사장님이요?”안내원은 멍해졌다. 경주는 큰 인물이라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다. 예약한 손님도 비서 한무가 직접 안내했다. 이렇게 찾아온 사람은 없었다.“예약을 하셨어요?”안내원은 공적으로 물었다.“아니요.”“죄송하지만 예약을 하지 않으시면 신 사장님을 뵐 수 없습니다. 먼저 한 비서님께 연락을...”“신경주에게 알려요. 아니면 비서한테 알려요.”침묵하던 구윤은 차갑게 말했다.“만나자고 한 사람이 KS 그룹 사장 구윤이라고.”‘구윤, 구윤?’안내원은 멍해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바로 한무에게 전화를 했다....구윤은 한무를 기다리지 않고 임수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의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복도에 들어서자마자 경호원들이 그들을 막았다.“신 사장
“구 사장님, 오신 건 환영하지만 우리 신씨 그룹의 사람을 때린 건 아니지 않아요?”“신경주가 나올 거야, 아니면 내가 들어갈까?”구윤은 한무의 말을 무시한 채 물었다. 한무는 화가 나서 안색이 어두워졌다.“죄송합니다, 신 사장님께서 회의 중이라 만날 수 없습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구윤은 입꼬리를 치켜올리며 천천히 다가갔다. 한무는 경계심을 올리며 말을 뻗어 막으려 했다.“아!”그 순간 구윤이 재빠르게 손을 댔다. 한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볼 겨를도 없이 팔이 뒤로 꺾여 격렬하게 휘둘렸다. 한무는 팔이 탈골된 채 바닥에 쓰러졌다. 고통에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리며 구윤과 임수해가 회의실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회의실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경주의 훤칠한 몸은 황제처럼 회의 테이블 맨 끝에 꼿꼿이 앉아 위엄을 뽐내고 있었다. 고위원들은 숨을 죽이고 경주의 업무 계획을 전달받고 있었다. 하지만 문이 부서지는 큰 소리에 모든 시선이 구윤과 임수해에게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자리에서 구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주는 그들이 온 것을 알지만 무시하고 손에 든 보고서를 읽었다.“신경주, 얘기 좀 해.”구윤은 차갑게 말했다. 사람들의 앞에서 이름을 부르며 체면을 지켜주지 않았다. 경주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눈을 들어 구윤과 마주쳤다.“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다시 해요. 그럼 이만.”고위 임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회의실에 세 사람만 남았다. 분위기는 너무 안 좋았다.“구 사장님, 할 말이 있으시면 지금 하셔도 돼요.”경주는 구윤을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구윤은 이미 화가 난 상태이다. 경주의 아무렇지 않는 모습을 보자 화가 점점 치밀어 올랐다. 아픈 경주가 억지로 버티며 회의를 하고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버틴 건 모두 약 때문이다. 몸은 너무 허약했고 아직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신경주, 내 동생을 건드렸어.”구윤의 목소리는
구윤은 경주를 향해 다가가며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았다.“신경주, 넌 죽어야 해.”순간 구윤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의자에 앉아 있던 경주를 덮였다.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졌고, 임수해는 당황하여 소리쳤다.“구 사장님, 조심하세요!”경주의 등이 심하게 부딪혀 내상을 건드렸다. 갑자기 눈앞에 차가운 기운이 번쩍였다. 구윤은 악랄하게 경주를 노려보았다. 손에 든 날카로운 십자 단검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마치 잔인한 천벌을 내리려는 듯 경주의 눈을 조준하고 있었다.“구 사장님, 안 돼요!”임수해는 당황해서 소리쳤다. 구윤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비록 경주를 원망하고 아람을 건드린 것이 싫었지만, 정말 경주를 죽인다면 구윤도 곤경에 빠질 뿐만 아니라 아람도 깊은 자책감에 빠질 것이다.‘이건 아가씨가 원하는 것이 아니야. 구 사장님과 같은 고귀한 분은 이런 나쁜 남자 때문에 손을 더럽히면 안 돼.’칼끝이 눈을 찌르려는 것을 본 경주는 꼼짝도 하지 않고 비참할 정도로 가만히 있었다.“구윤! 그만해!”때마침 도착한 이유희가 구윤을 덮여 모든 힘을 다해 바닥에 내려쳤다. 날카로운 칼끝은 방향이 바뀌었다. 경주는 갑자기 목에 한기가 느껴지고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목을 찌른 칼은 얇은 상처를 내어 피가 나왔다.바닥에 누워있는 경주는 손을 들어 목을 만졌다. 손바닥의 촉감이 끈적했지만 마음이 후련했다. 이유희가 1초만 더 늦었다면 날카로운 칼이 눈을 관통했을 것이다. 구윤은 쉽게 나서지 않는다. 하지만 손을 대면 상대방이 평생 구윤을 기억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구윤은 눈을 부릅뜨고 칼을 이유희를 향했다.“비켜, 참견하지 마!”“참견할 거야!”이유희는 숨을 헐떡이며 이를 악물고 가슴을 가리켰다.“네가 정말 대단하면 날 죽여, 여기를 찔러! 아람과 경주의 일은 내 탓이야. 내가 엮은 거야. 모두 내 잘못이야. 제발 경주를 해치지 마. 죽이려면 날 죽여! 하지만 아람을 생각해 봤어? 아람이 원하는 장면이야? 제일 사랑하는 오빠가 피투성이가
백소아는 테이블 위에 놓인 합의이혼서를 바라보았다. 서류엔 이미 남자의 이름이 사인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젖은 눈동자 속에 비친, 신경주는 자신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차갑고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 뒷모습은 마치 어서 빨리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재촉하고 압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제가 사인을 끝냈으니 당신도 어서 하세요. 은주가 돌아오기 전에, 저는 당신과의 모든 법적 절차를 끝내고 싶어요.”신경주는 양손을 등 뒤에 짊어진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결혼 전에 이미 재산 공증을 했기 때문에 재산 분할을 할 필요는 없지만, 소아 씨 당신한테는 그간 정이 있으니 40억 상당의 서부의 별장 한 채를 더 넘겨줄게요. 어쨌든 당신이, 이 집을 나가야 하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전 할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을 것 같아서요.”그의 말에 백소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눈앞이 번쩍였다. “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저랑 이혼하려는 건 아세요?”“모르면 뭐 어때요. 그게 제 결정에 영향을 미칠 꺼라 생각해요?”그녀는 여윈 몸으로 서 있지도 못하고 책상에 겨우 몸을 지탱한 채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경주 씨……, 우리 꼭 이렇게까지 이혼을 해야 해요?”그 말에 마침내 신경주는 돌아서서 짜증 섞인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녀를 쳐다보는 남자의 뚜렷한 이목구비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가슴 떨리게 했다.“왜요? 이 결혼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왜냐하면……, 전 여전히 경주 씨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백소아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사랑한다구요, 경주 씨. 전 경주 씨의 아내로 그냥 있고 싶어요. 당신이 저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더라도 그냥 옆에만 있게 해주세요…….”“전 이제 지긋지긋해요. 사랑도 없는 이 결혼생활 저에게 일분일초가 지옥 같아요.”신경주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그녀의 말을 계속 들어줄 인내심조차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