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로비에는 이미 구경꾼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손님, 진정하세요…… 신분 높으신 아가씨께서 여기서 소란을 피우시면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 장소를 옮겨서 천천히 얘기하면 안 될까요?”호텔 담당자는 진땀을 뻘뻘 흘리며 신효린을 달랬다.“당신 말 대로 신분이 높은 제 물건도 훔치는 호텔인데 이 호텔에서는 신분이 없는 사람은 아주 개무시를 당할 게 뻔하네요.”신효린은 한 손을 허리춤에 올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프런트를 세게 두드리며 담당자를 노려보았다.주위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신효린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신씨 가문의 귀한 딸이라 미디어에 얼굴이 노출되는 경우도 적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같이 화내는 모습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저…… 저는 물건을 훔치지 않았어요…….”여직원이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고 있었다.“아직도 변명해?”신효린은 선홍색 손끝으로 날카롭게 여직원의 얼굴을 찔렀고 담당자가 말리지 않았다면 여직원은 크게 다칠 뻔했다.“그럼 내가 멀쩡하게 세면대에 올려 둔 목걸이가 저절로 발이 달려서 도망이라도 갔다는 거야?”“제가 방을 청소하러 들어간 건 맞습니다만…… 방안에는 저 혼자가 아니었어요…….”여직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지만, 여전히 자신을 변호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 우릴 의심하는 거예요?”신효린의 친구 A 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우릴 봐봐요. 이딴 목걸이를 훔칠 사람으로 보여요? 당신처럼 거지 같은 사람들이야 말로 목걸이에 목숨 걸고 훔치겠죠. 저희 같은 사람들이 그딴 짓을 할 것 같아요?”“허, 구씨 가문의 호텔이라고 해서 뭐 얼마나 대단하지 보려고 했더니만 서비스가 아주 개판이네요. 우리 신가의 호텔에 비하면 발끝도 오지 못하겠어요.”신효린이 팔짱을 끼고 그들을 깔보듯 말했다.그 말에 호텔 담당자의 얼굴빛이 회색이 되었다.KS 호텔은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호텔이었다. 이런 막무가내인 손님은 처음이었다.“손님, 사건의 전말을 알아내기 전까지 호텔의 명성
그는 백소아한테 전혀 감정이 없는 것 외엔 대표 부인으로서 충분히 체면을 주었다고 생각했다.신경주가 보기에 백소아는 신씨네 집에서 조금도 아쉬움 없이 지내왔다.집에서는 하인이 그녀의 시중을 들고 그녀에게 마음대로 긁을 수 있는 카드도 줬기에 금전적인 면에서도 전혀 아쉬운 점이 없었다.하지만 백소아는 3년 동안 한 번도 그 카드를 쓰지 않았다.‘분명 지금이 요양원에서 간병인으로 일할 때보다 수천 배나 나을 것인데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도대체 왜 온갖 고생을 하고 학대를 받은 것처럼 말하는 거야!’신경주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악물었다.“정말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시네요. 당신이 이곳의 매니저라면 저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오늘 일어난 일은 호텔 측에서 반드시 제대로 해결해 주셔야 할 겁니다. 4억을 들여 똑같은 목걸이를 하나 사서 저한테 돌려주시든지, 저 손버릇이 나쁜 웨이터를 경찰에 넘기든지, 혹은 당신이 매니저로서 사람들 앞에서 저한테 허리를 굽혀 사과를 하든지 하세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들의 태도에 제가 하도 화가 나서 그래요.”신효린은 자신의 긴 머리를 넘기면서 눈을 홉뜨며 백소아를 쳐다보았다.그녀야말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백소아를 아는 척하진 않을 것이다.게다가 모처럼 백소아를 엿 먹일 수 있는 기회를 그녀가 놓칠 리는 없다.‘지난번 자선 경매에서 잘 난 척을 하더니, 구씨 가문의 도움 없이는 넌 그저 아르바이트나 하는 평민일 뿐이야.’ “대표님, 작은 사모님께서 괴롭힘당하는 것 같아요!”한무는 평소에 줄곧 신효린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의 상황을 보자 애가 타기 시작했다.“조금만 기다려 봐.”신경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백소아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전처에 대해 호기심이 엄청났다.그는 단 한 번도 백소아가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의 기억 속의 백소아는 그저 성실한 가정주부일 뿐이었다.호텔은 서비스업인데 서비스업이 쉬울 리는 없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신효린과 그녀의 두 절친은 놀라움에 입을 쩍 벌렸고, 어안이 벙벙했다.임수해는 목걸이를 가져와 신효린에게 보여주며 잘생긴 미간은 공정함으로 가득찼다.“신효린 아가씨,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바로 아가씨가 잃어버린 그 목걸이 맞죠?”“이, 이건…….”신효린은 아연실색하며 목걸이를 받았지만 또 갑자기 꼬리를 밟힌 강아지처럼 소리를 질렀다.“아! 내 목걸이…… 내 목걸이가 왜 이렇게 됐어? 누가 그랬지?!”모두들 자세히 살펴보니, 이 럭셔리한 목걸이가 뜻밖에도 여러 마디로 부러졌다.“저희 지배인님께서 신효린 아가씨가 목걸이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저를 파견하여 온 스위트룸을 낱낱이 수색하게 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소파 아래에서 이 목걸이를 찾았어요.그러나 찾았을 때, 목걸이는 이미 이렇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저희도 잘 몰라요.”임수해는 맑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봤지, 내가 그랬잖아, 이 여자가 억지를 부리고 있는 거라고? 자기가 어디에 두었는지 까먹어서 호텔 직원에게 뒤집어쓰다니, 돈이 조금 있다고 자신이 무슨 대통령이라도 된 줄 아나 봐!”“어머, 근데 이 다이아몬드 너무 크잖아! 누가 이렇게 귀중한 목걸이를 하고 나오겠어, 이거 도둑 맞으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주위의 비웃음을 듣자 신효린은 얼굴이 새까매졌고, 이를 갈며 말했다.“찾으면 어때서요? 당신의 직원이 내 목걸이를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요?그녀는 틀림없이 장물을 숨길 데가 없어서 소파 밑에 숨긴 다음, 내가 떠난 후 몰래 찾아가 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아니에요! 난 그런 적 없어요!”직원은 신효린보다 말주변이 좋지 않아 지금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화가 났고, 자신을 위해 해명도 잘 하지 못했다.“도둑질을 한 거라면, 멀쩡한 목걸이를 망가뜨릴 필요가 없겠죠. 이게 들고 나가기 힘든 물건이 아니니까요.”구아람의 맑은 눈동자는 무척 싸늘했다.“나는 오히려 누군가가 일부러
눈이 마주치자, 시간은 마치 이 순간에 멈춘 것 같았고, 호흡조차도 정지 버튼을 누른 것 같았다.“신 사장님이야! 정말 신 사장님이야!”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았다.“오, 오빠…….”신효린은 신경주가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바로 당황했다.그녀는 여전히 신경주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진주가 매일 몰래 그를 뻔뻔한 사생아라고 욕하더라도, 그가 바로 지금의 신씨 그룹의 주인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한 비서, 먼저 셋째 아가씨 데리고 떠나, 어서.” 신경주는 무표정으로 분부했다.지금 이미 누군가가 몰래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더 이상 질질 끌면, 신씨 집안의 명성은 신효린에 의해 망할 것이다.한무는 지체하지 못하고 얼른 앞으로 나가 여전히 멍을 때리고 있는 신효린을 끌고 나갔다.구아람은 마음속으로 차갑게 웃으며 차디찬 시선을 거두었다.‘그래, 이래야 신경주지, 인정이라곤 모르는 사람 같으니라고.그는 누가 옳고 그른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지금의 이익과 신씨 집안의 체면만 고려할 뿐이야.’“어머! 지금 자신의 혀를 깨물려고 해요!”임수해는 놀라서 소리쳤다.구아람은 놀라더니 이 급한 상황에서 자신의 손목을 직원의 입에 쑤셔 넣었다!직원은 그녀의 희고 하얀 손목을 세게 깨물었고, 두피를 저리게 하는 극심한 통증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지만, 그녀는 미간도 찌푸리지 않고 억지로 이 고통을 참았다.“너……!” 신경주는 깜짝 놀라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그는 구아람이 자신의 몸으로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작고 가녀린 몸이었지만, 의로운 박력 그리고 의사의 선량함을 지니고 있었다.이 장면은 신경주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그리고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서 뜻밖에도 하얀 비둘기의 여위고 허약한 모습이 떠올랐다.그때 전쟁터에서, 하얀 비둘기도 이렇게 크게 다친 그를 돗자리에 놓고 밧줄로 자신을 묶은 다음 그를 아주 오랫동안 끌고 갔다…….“절망하지 마요! 우리는 모두 살 수 있을 거예요! 반드시
구아람의 눈빛은 매서워지더니 무척 소원해졌다.“김은주 씨가 당신을 엄청 잘 보살펴 주었나 봐요. 신 사장님은 예전보다 낯짝이 많이 두꺼워졌네요.”“너와 나의 일에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마.” 신경주는 화가 났다.“더 듣기 싫은 말 듣고 싶지 않으면 나한테서 떨어져요. 이혼 신고하러 가는 것 외에 나는 더 이상 신 사장님과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나요. 그럼!”이 3년 동안 그는 백소아의 자신을 보면 반짝이는 간절한 눈빛과 기대에 익숙해졌다. 지금 그녀의 두 눈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을 때, 어두컴컴했고 그는 마치 얼음 구멍에 빠진 듯 온몸의 열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난 너랑 이혼 못 해!구아람은 붉은 입술을 가볍게 열며 웃음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또 당신 마음대로 하려고요? 나 백소아가 당신이 기르는 개인 줄 아나봐요? 내가 꼭 당신 말 들어야 하나요?”“말을 꼭 이렇게 해야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신경주는 불쾌하게 눈썹을 찌푸렸다.“내 말이 뭐가 어때서요? 하하…… 신경주, 당신도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군요.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 난 당신을 싫어하니까,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마요!”구아람은 눈시울을 붉히며 그의 큰 손바닥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려고 했다.그러나 신경주도 고집이 센 사람이라, 그녀가 발버둥칠수록 그는 힘껏 잡아당겼고, 여자를 아낄 줄 전혀 몰랐다.“쓰읍…….” 구아람은 아파서 가볍게 신음소리를 냈다.그녀는 왼손으로 팔을 잡은 채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렸다.신경주는 그제야 깨닫고 바로 손을 놓았다.눈을 드리우니, 그의 손바닥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고, 그는 눈동자를 움츠렸다.그는 방금 그녀가 다친 곳을 건드렸던 것이다. 그는 급히 그녀를 데리고 가려고 했기에 그녀의 손목에 아직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그가 소홀히 했다.“지금 의무실로 데리고 갈게.” 신경주는 목소리가 잠겼고 어두우며 눈동자가 침울했다.“당장 떠나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신경주는 구아람와 함께 의무실에 갔는데, 의사가 없는 것을 보고 그녀는 익숙하게 알코올과 붕대를 꺼내 자신에게 싸매주었다.“내가 할게.” 남자가 차가운 얼굴로 다가왔다.그녀는 초조하게 몸을 비키며 냉담하게 말했다.“아니에요.”신경주도 고집이 그녀와 막상막하였는데, 그는 아예 내버려두든지 아니면 끝까지 간섭해야 했다.그래서 그는 그녀의 부드럽고 작은 손을 꽉 잡고, 말투가 단호했다.“백소아, 말 들어!”구아람은 멈칫하더니, 서늘한 촉감은 이미 손목에서 전해왔다.신경주는 그녀를 위해 열심히 약을 발라 주었고, 면봉은 가볍게 상처 부위에 닿았다.그는 가늘고 갸름한 속눈썹을 드리우고 있었고, 마디마디가 뚜렷한 손목은 힘을 쓸 때 청색의 핏줄이 차갑고 하얀 피부를 은은하게 투과하여 서로 호응하며 정말 보기 좋았다.하느님은 항상 불공평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잘생기고 멋진 척을 해야 했지만, 어떤 사람은 그곳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자신만의 멋을 가지고 있었다.신경주는 내색하지 않고 그녀의 상처를 자세히 살펴보았다.그녀의 손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었지만, 또 솜처럼 부드러웠다.하얗고 가늘지만 손끝에는 굳은 살이 있어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련함을 가지고 있었다.순간, 신경주의 머릿속 깊은 곳에서 찌릿찌릿한 전파가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앞에 흐릿한 달빛, 가볍게 춤추는 창사가 흔들리고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모두 낯선 장면이었지만 또 모두 익숙한 느낌이었다.신경주는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었고, 목젖은 위아래로 움직였다.그는 김은주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떻게 매번 자신의 인내심에 도전하는 전처에게 이런 난감한 욕망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어이없군.’구아람도 그의 손가락에서 전해오는 뜨거운 열기에 마음이 뜨거워지더니 얼른 손을 움츠렸다.“됐어요.”“붕대 감아야지.”남자는 듣지 않고 손끝에 힘을 주며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았고, 눈동자는 약간 싸늘했다.“너 요
가는 길에, 구아람은 신경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앉았지만, 그녀는 시종 창밖을 바라볼 뿐, 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그리고 온몸에 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신경주는 새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몇 번이나 그녀에게 묻고 싶었지만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신남준의 개인 별장은 성주의 천월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요하고 그윽하며 도시 안으로 숨은 느낌이 든다.“할아버지! 저 왔어요!”구아람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음울함을 씻어내고, 아름다운 눈매는 마치 초승달처럼 구부리며 맑은 목소리는 꾀꼬리 울음소리처럼 무척 듣기 좋았다.사실 그녀는 팔찌의 일로 인해 은근히 불안해하여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야 감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우리 소아 왔어? 아이고, 정말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구나!” 신남준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서 비서에 의해 밀려 나왔다.손자며느리를 보자 며칠째 우울한 노인은 순식간에 정정해져 눈썹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소아야, 너 요 며칠 어디로 놀러 간 게야? 이 할아버지 보고 싶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거야?!”신남준은 구아람의 작은 손을 꽉 쥐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다정하게 물었다.신경주는 불쾌함에 입가가 후들후들 떨렸다.‘할아버지도 참, 연세가 여든이 되었는데도 말을 이렇게 가볍게 하다니, 열여덟 살 때 아주 하늘을 나셨겠어. 아마 이유희가 봐도 사부님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할아버지, 저 요즘 일이 바쁜데다 출장까지 다녀와서 연락드릴 겨를이 없었어요. 제 잘못이에요. 얼른 꾸지람 해주세요.” 구아람은 몸을 웅크리고 달콤하게 웃었다.“내가 어떻게 널 꾸지람 하겠어, 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매우 기쁘구나.”말하면서 신남준은 신경주를 노려보았다.“눈이 멀고 양심도 없는 나쁜 녀석이 중간에서 방해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매일 우리 예쁜 손자며느리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큰 힘을 들일 필요가 또 어디 있겠는가!”구아람은 어색하게 웃더
그녀는 멈칫하다 즉시 고개를 숙여 작은 얼굴을 까만 머리카락 사이에 숨겼다. 비록 극력으로 자제했지만, 고운 눈동자에는 여전히 완곡한 수줍음을 은은하게 머금고 있었다.신경주는 가슴이 떨리더니 숨결이 뜨거워졌다.이때 그의 핸드폰도 품속에서 진동하고 있었다.신경주는 확인하더니 긴 다리를 내디디며 나가서 받았다.복도에서 신경주는 등을 벽에 대고 스크린에 뜬 ‘은주’의 이름을 보면서 눈빛은 어색했다.“경주 오빠,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남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은주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니.” 남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대답했다.그러나 김은주는 그의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그, 그럼 날 만나러 와줄래? 나 오빠가 정말 보고 싶단 말이야. 매일 잠도 안 오고…….”김은주는 쉴 새 없이 고백했고, 징그러울 정도로 아양을 떨었다.“오늘 밤은 안 돼, 할아버지 모셔야 하거든.”“지금 할아버지 댁에 있어? 그럼 나도 거기로 갈게…… 전에 자주 나 데리고 할아버지 모시려고 했잖아. 그러면 할아버지도 날 받아들일지도 모르고.마침 나도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찹쌀 약과를 만들었는데, 어렸을 때 우리 골목 어귀에 같이 앉아서 몰래 먹었잖아. 할아버지께도 갖다 드려서 내 솜씨를 맛보게 해야지.”김은주의 말투는 그야말로 부드러웠다.“은주야, 오늘 밤은 확실히 좀 불편해서 그래.”그녀가 어렸을 때의 일을 언급하자 신경주는 마음이 약해졌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백소아가 할아버지 여기에 있는데, 네가 오면 그다지 좋지 않을 거 같아서. 너도 할아버지가 그녀를 좋아하신다는 거 알잖아…….”“오빠 지금 백소아랑 같이 있어?” 김은주의 목소리가 떨렸다.“응, 할아버지가 요 며칠 계속 그녀를 찾으셨거든. 할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그녀를 데리고 온 거야…….”“정말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오빠가 보고 싶은 건 아니고?” 김은주는 다시 날카롭게 말하며 원망을 쏟아냈다.“아니야, 너무 예민하게 굴지마.” 신경주는 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