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에, 구아람은 신경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앉았지만, 그녀는 시종 창밖을 바라볼 뿐, 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그리고 온몸에 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신경주는 새까만 눈동자로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몇 번이나 그녀에게 묻고 싶었지만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신남준의 개인 별장은 성주의 천월정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사방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고요하고 그윽하며 도시 안으로 숨은 느낌이 든다.“할아버지! 저 왔어요!”구아람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음울함을 씻어내고, 아름다운 눈매는 마치 초승달처럼 구부리며 맑은 목소리는 꾀꼬리 울음소리처럼 무척 듣기 좋았다.사실 그녀는 팔찌의 일로 인해 은근히 불안해하여 오랫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서야 감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우리 소아 왔어? 아이고, 정말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구나!” 신남준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서 비서에 의해 밀려 나왔다.손자며느리를 보자 며칠째 우울한 노인은 순식간에 정정해져 눈썹이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소아야, 너 요 며칠 어디로 놀러 간 게야? 이 할아버지 보고 싶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거야?!”신남준은 구아람의 작은 손을 꽉 쥐었는데, 그녀를 보자마자 다정하게 물었다.신경주는 불쾌함에 입가가 후들후들 떨렸다.‘할아버지도 참, 연세가 여든이 되었는데도 말을 이렇게 가볍게 하다니, 열여덟 살 때 아주 하늘을 나셨겠어. 아마 이유희가 봐도 사부님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할아버지, 저 요즘 일이 바쁜데다 출장까지 다녀와서 연락드릴 겨를이 없었어요. 제 잘못이에요. 얼른 꾸지람 해주세요.” 구아람은 몸을 웅크리고 달콤하게 웃었다.“내가 어떻게 널 꾸지람 하겠어, 널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난 매우 기쁘구나.”말하면서 신남준은 신경주를 노려보았다.“눈이 멀고 양심도 없는 나쁜 녀석이 중간에서 방해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매일 우리 예쁜 손자며느리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큰 힘을 들일 필요가 또 어디 있겠는가!”구아람은 어색하게 웃더
그녀는 멈칫하다 즉시 고개를 숙여 작은 얼굴을 까만 머리카락 사이에 숨겼다. 비록 극력으로 자제했지만, 고운 눈동자에는 여전히 완곡한 수줍음을 은은하게 머금고 있었다.신경주는 가슴이 떨리더니 숨결이 뜨거워졌다.이때 그의 핸드폰도 품속에서 진동하고 있었다.신경주는 확인하더니 긴 다리를 내디디며 나가서 받았다.복도에서 신경주는 등을 벽에 대고 스크린에 뜬 ‘은주’의 이름을 보면서 눈빛은 어색했다.“경주 오빠, 아직도 나한테 화났어?”남자가 입을 열기도 전에 김은주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니.” 남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대답했다.그러나 김은주는 그의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그, 그럼 날 만나러 와줄래? 나 오빠가 정말 보고 싶단 말이야. 매일 잠도 안 오고…….”김은주는 쉴 새 없이 고백했고, 징그러울 정도로 아양을 떨었다.“오늘 밤은 안 돼, 할아버지 모셔야 하거든.”“지금 할아버지 댁에 있어? 그럼 나도 거기로 갈게…… 전에 자주 나 데리고 할아버지 모시려고 했잖아. 그러면 할아버지도 날 받아들일지도 모르고.마침 나도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찹쌀 약과를 만들었는데, 어렸을 때 우리 골목 어귀에 같이 앉아서 몰래 먹었잖아. 할아버지께도 갖다 드려서 내 솜씨를 맛보게 해야지.”김은주의 말투는 그야말로 부드러웠다.“은주야, 오늘 밤은 확실히 좀 불편해서 그래.”그녀가 어렸을 때의 일을 언급하자 신경주는 마음이 약해졌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졌다.“백소아가 할아버지 여기에 있는데, 네가 오면 그다지 좋지 않을 거 같아서. 너도 할아버지가 그녀를 좋아하신다는 거 알잖아…….”“오빠 지금 백소아랑 같이 있어?” 김은주의 목소리가 떨렸다.“응, 할아버지가 요 며칠 계속 그녀를 찾으셨거든. 할아버지를 위해서 내가 그녀를 데리고 온 거야…….”“정말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오빠가 보고 싶은 건 아니고?” 김은주는 다시 날카롭게 말하며 원망을 쏟아냈다.“아니야, 너무 예민하게 굴지마.” 신경주는 목이
전화 반대편에서 김은주도 울고 있었다.“그녀는 할아버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아버지를 이용해서 나를 상대하다니…… 그녀는 어쩜 이렇게 악독한 것일까?!”신경주는 멍해져서 김은주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눈앞의 여자는 분명히 아무런 이미지도 돌보지 않고 울고 있었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가 정말 슬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눈물 한 방울 한 방울마저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있었다.“소아야, 도대체 왜 그래? 할아버지 놀라게 하지 마!” 신남준은 여태껏 수많은 풍파를 겪었지만, 한 소녀의 울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구아람은 흐느껴 울었다.“할아버지…… 팔찌, 팔찌는 나 때문에 깨졌어요…… 요 며칠…… 나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팔찌를 고치려고 했지만, 잘 안 됐어요…….그래서…… 그래서 똑같은 걸로 만들 수 있을까 해서…… 저, 저는 그냥 할아버지가 아시면 기분 나빠하실까 봐…….할아버지 죄송해요…… 제가 할아버지를 속였어요…… 정말 죄송해요…….”구아람은 몸을 훌쩍거리며 울었고, 손등은 눈물을 닦느라 축축해졌다.정말 너무나도 불쌍해보였다.신경주는 그녀의 하소연을 듣고 몸은 그 자리에 굳어졌다.그는 마침내 그녀가 사라진 요 며칠 동안 무엇을 했는지 깨달았다.그리고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이 왜 굳은살로 가득 차 있는지도 마침내 알게 되었다. 전부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준 그 팔찌를 복원하기 위해서였다.그는 순간 구아람의 영롱한 눈물 한 방울 한 방울이 그의 마음을 데인 것 같다고 느끼며, 씁쓸함과 쓰라림이 촘촘히 퍼져 나갔다.“아이고…… 난 또 얼마나 큰일이라고, 우리 불쌍한 소아야!”신남준은 구아람의 작은 손을 애틋하게 잡고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사실 네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나는 네가 찬 팔찌가 내가 너에게 준 팔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네. 나도 그 팔찌가 부서졌나 보다 하고 추측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소아처럼 착한 아이가 그걸 안 차고 다닐 리가 없잖아.그러나 이 할아버지는 정말 조금도 너를 원망
신경주는 대답한 다음 구아람 곁으로 가서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그녀를 힐끗 보았다.달처럼 휘영청 밝은 그녀의 작은 얼굴에 두 줄의 맑은 눈물자국이 걸려 있었는데, 마치 새벽 이슬을 머금은 꽃과도 같았다. 그리고 까만 머리는 수려하고 고운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어, 그녀의 새빨간 입술과 가련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구아람은 창피함을 느끼며 두 볼이 빨개졌고, 긴 속눈썹 사이에 눈물이 주르륵 떨어지는 것은 마치 인간 세상에 떨어진 별과도 같았다.신경주는 넋을 잃더니 가슴은 그녀의 움직이는 속눈썹에 따라 기복이 심했다.“이 녀석 좀 봐라, 빨리 네 와이프한테 사과해!” 신남준은 화가 나서 재촉했다.“왜요? 저 때문에 우는 것도 아니잖아요.” 신경주는 영문 몰라 하며 눈살을 찌푸렸다.신남준은 분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소아는 네 여자니까! 네 여자가 울고 있는데, 설마 이 늙은이가 너를 대신해서 달래야 하는 게야? 넌 입이 없어?!”“할아버지, 저랑 경주 씨는 이미 이혼했어요. 저는…….”“그래도 부부였던 사이잖아! 그는 이 3년 동안 널 위해 아무것도 해 준 적이 없으니 이 사과도 그가 너에게 빚진 거야!”신남준은 ‘이혼’이란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가라앉았고, 자신이 이혼한 것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머리가 둔한 녀석! 너 오늘 소아를 잘 달래지 못하면 앞으로 나가서 내 신남준의 손자라고 말하지도 마라!”신경주는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 뒤에 그제야 낮은 소리로 말했다.“미안해.”구아람은 새빨개진 고운 눈을 뜨며 가슴이 흔들렸다.인상속에서 이 남자가 그녀에게 사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애석하게도 성의가 없었다.“허리 굽히고!”신남준이 말했다.“이럴 필요가 있을까요?” 신경주는 눈썹을 찌푸렸다.“넌 내가 너더러 유리 조각에 무릎을 꿇지 않게 한 걸로 이미 다행이라고 생각해! 예전에 내가 너의 할머니한테 사과할 때 말로 한 다음 절을 하며 성의를 다했지! 소아는 내 귀염둥이이니, 나는 결코 네가 사과를 얼버무리는 것을
“뭐라고?”신경주는 눈동자를 움츠리더니 손에 든 젓가락이 땅에 떨어졌다.구아람은 김은주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마음은 점차 아래로 내려앉았다.“방금 김은주 아가씨는 집에서 울고 불면서 계속 사장님의 이름을 부르셨고, 정서가 무척 불안했습니다. 사모님은 사장님께서 좀 가보셨으면 하는데, 김은주 아가씨가 어떤 과격한 행동이라도 할까 봐 두렵다고…….”한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신경주는 벌떡 일어나 주방을 뛰쳐나갔다.“망할 자식! 네가 그 김씨 집안 딸 찾아가면, 나는 다시는 너란 손자 보지 않을 게야!” 신남준은 화가 나서 식탁을 쾅쾅 두드렸다.그러나 이미 늦었다. 존귀하고 도도한 신경주의 그림자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아이고! 아이고! 정말 가문의 불행이로구나! 이 할아버지는 평생 수없이 이 세상을 바꾸었지만, 하필 아무리 애를 써도 경주의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니…… 이 할아버지도 정말 소용이 없구나!”신남준은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고, 눈앞의 이 좋은 손자며느리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낄 뿐이었다.구아람의 눈동자는 어두웠지만, 그녀는 방긋 웃으며 서늘한 손바닥으로 할아버지의 거친 손등을 어루만졌다.“할아버지,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저를 위해 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해요. 저와 경주 씨는 인연이 없는 거예요.”……별장 밖, 신경주는 걱정이 태산인 채 차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신 사장님!”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밝은 불빛 아래에서 쫓아온 백소아를 바라보았다. 맑고 붉은 그녀의 눈에는 싸늘한 기운이 번쩍였다.왠지 모르게 그의 마음속에 갑자기 떫은 부끄러움이 생기더니 막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오늘 밤 당신 여동생이 내 호텔 직원을 모함하여 간질이 발작한 일, 돌아가서 신효린 아가씨에게 전해줘요.나는 이렇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그녀는 반드시 그 아가씨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신경주는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는 그녀가 쫓아와서 하는 말이
“도련님이 자신의 복을 차버린 거예요.”신경주는 눈앞이 어렴풋해지더니, 순간 백소아의 그 맑고 사슴처럼 무고하고 억울한 큰 눈이 떠올랐다.이런 관심은 앞으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조금도 실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백소아는 나의 복이 아니라 나의 재난이에요.”신경주는 음울한 표정으로 침실로 돌아왔는데, 뜻밖에도 탁자 위에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양복점의 상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틀림없이 옷이 다 수선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삐 앞으로 가서 상자를 뜯었다.상자 안에는 재질이 좋은 양복이 조용히 누워 있었다.옷깃은 다시 손질을 해서 겉보기에는 아무런 티가 나지 않았는데 역시 훌륭한 솜씨였다.신경주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미간이 많이 풀렸다.“도련님 마음속에 아직 작은 사모님이 있으시군요.” 오씨 어머니는 그가 옷을 보고 넋을 잃은 보며 기뻐하며 물었다.“이 옷을 버리긴 아까운데다 나름 심혈을 기울였으니 낭비하면 안 되는 법이죠.” 신경주는 차갑게 대답을 한 뒤, 평평하고 빳빳한 옷깃을 매만졌다.“작은 사모님께서 도련님에게 기울인 심혈은 또 어찌 그 뿐이겠습니까.”오씨 아주머니는 탄식을 하며 코끝이 찡했다.“저 따라오세요.”두 사람은 백소아가 살던 방으로 왔다.오씨 아주머니는 익숙하게 맨 구석의 옷장 문을 열었다.“도련님, 보세요.”지붕까지 뚫린 옷장 안에는 선반이 있었는데, 위에는 크고 작은, 색깔이 각기 다른 상자가 가지런하며 놓여 있었다.신경주는 멈칫했다. “이건…….”“이것들은 모두 이 3년 동안, 작은 사모님께서 도련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신경주는 벼락에 맞은 것처럼 어깨가 흔들렸다.“여긴 도련님의 생일선물, 발렌타인데이 선물, 결혼기념일 선물이 있어요…… 작은 사모님은 또 이 안에 두 분이 처음 만난 기념일의 선물도 있다고 말씀하셨고요.보잘것없는 날이라도 도련님과 관련이 있다면 사모님은 도련님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요.설사 도련님이 줄곧 이런 것들을 하찮게 여긴다 할지라도, 작
아침 햇살은 무척 따사로웠다.구아람은 부드러운 큰 침대에서 깨어나 나른하게 이불 속에서 빳빳한 작은 엉덩이를 내밀고 가느다란 팔을 힘껏 뻗었다. 그 모습은 졸려서 눈이 거슴츠레한 작은 고양이와 똑같았다.그녀는 새하얀 운동복을 입고 예전처럼 정원 뒤의 호수에 가서 1인용 카누를 탔다.임수해는 벌써 일어나 다 씻은 다음 기슭에 서서 왼손에 물을 들고 오른손에 깨끗한 수건을 걸친 채 아가씨가 뭍에 오르기를 기다렸다.“인터넷에서 신효린이 저희 호텔 직원을 모욕한 것에 관한 모든 동영상이 삭제되었고, 키워드도 전부 사라졌습니다.”임수해는 흰 수건을 구아람에게 건네주며 또 자상하게 물병을 열어주었다.“지금은 약간의 열기가 있지만 곧 눌릴 것 같은데, 아마 어떤 센세이션도 일으킬 수 없을 것입니다.”“물론이지. 신씨 그룹의 홍보팀과 법무팀은 성주에서 으뜸가니까. 그리고 모두 신경주의 사람들이지.” 구아람은 탄력 있는 뺨을 따라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가볍게 숨을 헐떡였다.“그래서, 이게 다 신경주가 지우라고 한 겁니까?” 임수해는 눈을 부릅떴다.구아람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볍게 날리며 고개를 들어 시원하게 물을 마셨지만 눈빛은 어두컴컴했다.그녀의 희고 긴 목은 매혹적인 호선을 그려냈는데, 단지 물을 마셨을 뿐이지만 임수해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이익은 좇아가고 해를 피하는 이기적인 사람, 이것이 바로 지금의 신경주야.”구아람은 손등으로 입술에 묻은 물방울을 닦으며 자신을 비웃었다.“만약 내가 회사를 통해 그를 알았다면, 죽어도 이 남자를 좋아할 수 없었을 텐데.”‘틀린 시간에 만난 틀린 사람일뿐.’그녀가 신경주를 사랑한 게 된 것도 정말 눈이 멀어서였다!“그럼 이제 어떻게 반격할 계획입니까?”구아람의 단순해 보이는 맑은 눈동자에 마치 천년이나 넘은 여우가 살고 있는 듯, 반짝반짝 빛나는 검은 눈동자는 교활함이 스치더니 즉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그 여자아이는 아직 퇴원하지 않았지? 난 먼저 호텔에 가서 회의를 할 테니까, 끝나면 나와
결혼한 이상, 이혼은 할 수 있지만, 그녀는 재벌 집 아가씨로서 결코 질 수 없었다!병실에서 나오자, 구아람은 다시 선글라스를 썼고, 그녀의 침울한 눈빛을 가렸다.그리고 그녀는 넷째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아야, 너 마침내 내가 보고 싶은 거구나!”백정인의 말투는 징그러우면서도 억울했다.“넌 모를 거야, 둘째 형은 네가 날 잊어버렸다고 농담까지 했는데, 나 정말 당황해 죽는 줄 알았어! 젠장, 내가 누구한테 져도 그 녀석에겐 질 수 없지!”“당신들은 내 오빠들이지 후궁이 아니에요. 자꾸 나를 바람기 많은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고요. 내가 무슨 남자를 밝히는 사람도 아니고.”구아람은 어이가 없어 잠시 침묵하다 낮은 소리로 말했다.“오빠, 이번에 오빠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부탁? 부탁을 한다니?! 망했어…… 우리 사이가 멀어진 거야, 소아야, 너 이제 이 오빠를 사랑하지 않는 거지? 우리 둘의 감정이 없는 거야!”백정인은 또 호들갑 떨기 시작하며 슬프게 말했다.“네가 뜻밖에도 나에게 부탁을 하다니, 보아하니 난 가능한 한 빨리 너의 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군. 2년이 더 지나면 넌 나의 아름다운 얼굴을 잊어버릴 거야.”“백정인! 계속 이럴 거예요! 내가 지금 좀 도와달라고 하고 있잖아!”구아람은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고, 지나가던 의사와 간호사들까지 모두 그녀를 곁눈질했다.이 예쁜 아가씨는 왜 폭탄을 삼킨 것처럼 이렇게 까칠한 거지?“그래, 이래야 맞지,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으면 나도 마음이 편했을 텐데, 말해봐, 무슨 일이야?” 백정인은 히죽히죽 웃으며 물었다.구아람은 눈빛이 가라앉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내일 난 영상을 하나 발표할 건데, 오빠가 특수한 방법을 써서 영상이 한시도 철거될 수 없게 했으면 좋겠어요.”“언제까지?”“적어도 이 소식이 퍼진 후에요.”“훗, 그야 쉽지. 그런데 소아야, 내가 너를 도와주면 너도 표시가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응?” 백정인은 나른한 목소리에 허스키한 기운을 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