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인은 눈앞에 놓인 은행 카드를 보며 뺨을 세게 맞은 듯 얼굴이 얼얼했다.그녀는 철저하게 졌다. 그녀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임세희에게 완벽하게 패배를 당했다.이내 윤혜인의 머릿속에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올랐고 점점 뚜렸해졌다.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준혁은 자주 L 국으로 출장을 떠났고 한 번 가면 며칠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윤혜인이 아무리 애교를 부리고 애원해도 그를 그녀를 데려가지 않았다.그리고 지금, 이준혁은 임세희를 쥬얼리 매장에 데리고 와서 직접 반지를 고르고 있다.윤혜인 손에 끼고 있는 이 반지는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이준혁의 비서 주훈이 그녀에게 전해준 것이다.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는 주훈에게 시켜 대충 반지 하나를 구매하여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 틀림없다.하지만 그 모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윤혜인은 너무 좋아서 샤워를 할 때마저 반지를 절대 빼지 않았는데, 지금… 그녀의 그 행동들은 커다란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윤혜인은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이 아팠고 숨이 막혔다.‘이준혁, 당신 진짜 너무 잔인하네.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나의 마음에 칼을 꽂을 수 있지?’윤혜인은 단 일초라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기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떠나려고 했다.“준혁 오빠 올 때까지 안 기다릴 거예요?”임세희도 자리에서 일어나 여유로운 모습으로 물었고 윤혜인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싸늘하게 웃었다.“임세희 씨, 당신은 이미 목적을 이뤘잖아요. 이 청취자의 협조가 계속 필요한 건가요?”“그게 지금 무슨 말이에요? 전 단지 그쪽이 불쌍해 보여서 이혼 전에 진실을 얘기해준 것뿐이에요.”표정이 살짝 굳은 임세희가 반박하자 윤혜인이 날카롭게 물었다.“대체 뭐가 두려운 거예요?”윤혜인은 조금 단순하긴 하지만 멍청이는 아니었다. 임세희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그녀를 자극하여 철저히 포기하게 만들려는 것이다.하지만 굳이 그녀를 자극할 필요가 있긴 할까? 어차피 이준혁은 처음부터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이 점 하나만으로도 윤혜인은
윤혜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임세희가 화상을 입어 빨갛게 달아오른 손을 뻗더니 이준혁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준혁 오빠, 혜인 씨를 원망하지 마. 혜인 씨는 내가 오빠를 빼앗아갔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화가 난 거야…”임세희의 말에 이준혁이 고개를 돌려 윤혜인을 쳐다보았고 취조하듯 물었다.“그게 사실이야?”윤혜인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눈앞에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저렇게 허접한 연기는 매장 카메라만 돌려봐도 진실을 알 수 있을 텐데 이준혁은 그녀에게 따져 묻기 바빴다.이미 판단을 했으면서 왜 쓸데없이 저렇게 묻는 걸까? 그녀에게 변명할 기회를 줘서 그녀의 죄를 입증하려는 건가?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저 두 사람이 너무 역겹게만 느껴졌기에 피식 웃던 윤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서서 떠났다.윤혜인이 떠나자 눈살을 확 찌푸린 이준혁이 몸을 움찔하며 그녀를 따라가려고 하던 순간, 임세희가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준혁 오빠, 나 몸이 많이 불편해, 혹시…”하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준혁이 그녀의 손을 뿌리치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세희야, 내가 지금 볼일이 좀 생겼어. 주훈이 널 병원에 데려다 줄 거야.”말을 마친 이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빠르게 떠났고 임세희는 충격에 넋이 나가버렸다.‘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이준혁이 지금 나를 버리고 떠난 거야?’이준혁은 예전부터 임세희의 건강 상태를 과하다 할 정도로 많이 걱정했다. 그녀가 몸이 불편하다고 얘기하기만 하면 이준혁은 어떤 중요한 일이든 전부 제치고 그녀를 보러 외국으로 달려왔었다.이 또한 임세희가 가장 믿고 있는 비장의 카드였는데 지금 이준혁이 그녀를 혼자 쇼핑몰에 버려 두고 윤혜인을 쫓아갔다.설마… 설마 이준혁이 윤혜인을 좋아하게 된 건가? 아니, 절대 그럴 리는 없다! 그건 말도 안 된다!그 보잘것없는 여자는 절대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없다!한편, 비틀거리며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린 윤혜인은 어느새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퉁퉁 부은 윤혜인의 두 눈을 보자마자 심장에 뭔가 꽂힌 듯 움찔하다가 눈빛이 착잡해졌다.“혜인아…”그가 입을 열려던 순간, 윤혜인이 그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그 여자가 날 모함했다고 하면 어떡할 거예요? 임세희를 찾아가서 따져 물을 수 있어요?”윤혜인의 돌발 질문에 흠칫하던 이준혁은 몇 초 뒤, 어두워진 안색으로 목소리를 낮췄다.“그럴 리가 없어. 세희는 절대 널 모함할 리가 없어.”예상된 대답이다. 그런데 왜 가슴 한쪽 구석이 마구 아파오는 걸까.사랑하는 사람이라 무조건 믿는다는 뜻인가? 이준혁에게 있어서 임세희는 영원히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윤혜인의 행동은 그저 중간에서 이간질하는 못난이에 불과하겠지.눈시울이 다시 붉어진 윤혜인이 자신을 비꼬며 말했다.“임세희 그 여자는 그럴 리가 없고 난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 그 여자와 연관된 일이라면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이 무조건 제가 잘못한 건가요? 이준혁 씨, 당신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윤혜인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눈빛마저 암담했다.순간, 말문이 막힌 이준혁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혜인아,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넌 지금 세희가 널 모함했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증거 있어?”그의 질문에 윤혜인은 심장이 아프다 못해 마비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럼 저번에 이준혁이 그녀가 임세희를 밀었다고 확신할 땐 증거가 있었던 건가?그저 말 한마디에 그녀를 유죄로 만들어 버렸는데 지금 임세희에 관련된 일에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무조건 임세희의 편에 서는 이준혁을 보며 윤혜인은 마음이 찢어질 것만 같았고 혹시라도 그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까 봐 입술을 꽉 깨문 채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사랑하는 사람의 눈물은 진주 마냥 귀한 것이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눈물은 그저 눈에서 흐르는 물이나 다름없다.윤혜인의 안색이 점점 굳어지자 이준혁이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이어갔다.“혜인아, 내가 지금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야. 네 마음속에 화가 있다는 걸 나도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진 임세희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준혁 오빠는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준혁 오빠, 나 걱정할 필요 없어. 난 진짜 버틸 만해.”임세희가 온화하게 웃었지만 이준혁은 쌀쌀한 표정으로 불쌍한 척 그를 쳐다보는 임세희를 힐끗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품에 갇혀 있던 윤혜인이 예의 바르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이준혁 대표님, 대표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 대표님을 기다리고 있네요.”윤혜인은 더 이상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기 싫었으며 얼른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윤혜인의 초췌한 모습에 이준혁은 갑자기 마음이 움찔했고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난…”“괜찮아!”그 찰나, 임세희가 갑자기 끼어들었다.“준혁 오빠, 날 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혜인 씨에게 사과하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돼. 난 괜찮으니까 혜인 씨 보내줘.”임세희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윤혜인이 처음 보는 듯한 낯선 눈빛으로 이준혁을 빤히 쳐다보았다.그러니까 이준혁이 지금 이렇게 그녀를 잡고 있는 것도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사과를 하라는 의도밖에 없는 건가?이런 생각에 윤혜인이 다시 씁쓸하게 웃었다.이준혁에게 사랑을 받는 여자는 진실을 왜곡해도 괜찮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려도 다 괜찮다. 어차피 이준혁 마음속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사과만 하면 되는 건가요?”윤혜인이 쌀쌀하게 웃으며 이준혁에게 물었고 임세희가 갑자기 끼어들어 저런 말을 할 줄은 몰랐던 이준혁은 창백한 윤혜인의 얼굴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윤혜인이 그의 손을 홱 뿌리치더니 임세희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죄송합니다, 임세희 씨.”머리를 숙이는 순간, 공을 들여 겨우 쌓았던 그녀의 자존감은 또다시 산산조각이 났지만 어차피 마음도 완벽하게 죽어버렸기에 전혀 상관이 없었다.모든 걸 잃고 나서야 윤혜인은 다시 태어날
임세희는 오래전부터 그 반지를 가지고 싶었지만 이준혁은 끝까지 그녀에게 주지 않았다.그런데 그 반지를 윤혜인 그 나쁜 계집애에게 줬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임세희가 이준혁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었고 왠지 모르게 이런 스킨십에 거부감이 든 이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거두었다.그의 행동에 임세희가 흠칫 놀랐다.이준혁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차가운 눈빛으로 임세희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 눈빛에 겁을 먹은 임세희는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혜인이한테 내가 너에게 반지를 사줬다고 얘기했어?”이준혁의 질문에 얼굴이 창백해진 임세희는 당황한 듯 입술을 살짝 깨물며 대답했다.“난 그냥 우리가 반지 샀다고만 했는데… 다음 달 우리 이모 생신에 선물로 드릴거라고 했잖아. 설마 혜인 씨가 뭘 오해한 거야?”“세희야, 난 누가 내 앞에서 잔머리 굴리는 걸 제일 싫어해. 내가 나중에 네가 원하는 쥬얼리는 뭐든 사준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야.”이준혁이 임세희를 빤히 쳐다보며 쌀쌀하게 말하자 임세희는 안절부절못했다.‘준혁 오빠가 뭘 눈치챈 건가? 내가 말 몇 마디로 윤혜인 그 여자를 자극한 게 뭐 어때서?’예전부터 임세희를 애지중지 여긴 이준혁은 단 한번도 그녀를 서운하게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윤혜인 그 여자 때문에 계속 그녀에게 따져 묻고 있다니! 역시 윤혜인 그 여자를 철저하게 없애야 한다!임세희는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지만 임씨 아주머니의 말이 생각이 나서 가까스로 참았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이준혁에게 카톡 대화 내용을 보여주며 말했다.“준혁 오빠,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못 믿겠으면 오빠가 직접 봐!”카톡 대화 내용으로 보면 임세희는 며칠 전부터 그녀의 이모에게 반지 사진을 보내주며 좋아하는 디자인을 물었었다.카톡 내용을 확인한 이준혁은 싸늘하게 굳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아니면 다행이고.”“준혁 오빠, 어떻게 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내일이면 오빠 이혼할 텐데 내가 굳이 그런 행동을 할 필요가 없잖아?”말을 하던 임세
다음날.아침 일찍 일어난 윤혜인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법원으로 출발했다. 오전 9시 반으로 예약했기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녀는 버스를 타고 천천히 이동하기로 했다.어제 쇼핑몰에서 나온 뒤, 속이 안 좋아진 윤혜인은 소원과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고 물건을 정리하다가 그제야 쇼핑몰에서 샀던 아이의 옷이 없어졌다는 걸 발견했다.쇼핑몰 분실 센터에 전화를 해봤지만 직원은 그런 분실물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윤혜인은 누군가가 주워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버스가 법원에 도착하자 윤혜인이 핸드폰을 꺼내 이준혁에게 문자를 남겼다.[저 도착했어요.]이전의 문자는 임세희가 돌아오기 전에 윤혜인이 이준혁에게 보냈던 문자였다.[여보, 언제 돌아와요?]그날 자신이 임신했다는 걸 알게 된 윤혜인은 문자로 이준혁에게 얘기를 하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큰일은 얼굴을 보고 직접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더 이상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그 문자를 보낸 지 2주밖에 안 된 사이에 모든 게 달라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문자는 대부분 그녀가 보냈고 이준혁은 단답형의 답장만 보내왔었다. 예전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게 확연히 보였다.윤혜인은 카톡 문자 기록을 지우며 다시는 멍청하게 그런 생활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그녀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법원으로 걸어가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뒤에서 도둑을 잡아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소리와 동시에 갑자기 튀어나온 한 남자가 그녀를 강하게 밀쳤다.그 남자는 빠르게 그녀 옆으로 지나갔고 손에는 빨간색 가방을 든 채 도망가고 있었다. 윤혜인이 반응이 빨랐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쯤 그 남자와 부딪쳐 바닥에 넘어졌을 것이다.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뒤에서 그 남자를 쫓았지만 신고 있던 높은 힐 때문에 발을 삐끗한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그 여인은 비통한 표정으로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저 가방 안에 저희 집안 어르
윤혜인의 말에 가방을 확인한 빨간 원피스 여인은 목청을 높여 대답했다.“그대로 있어. 아가씨, 너무 고마워. 힘든데 말하지 마. 구급차가 곧 도착할 거야.”이내 윤혜인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했고 일련의 검사 끝에 팔에 살짝 스친 찰과상과 손바닥에 베인 상처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상처를 봉합하는 내내 빨간 원피스 여인은 계속 윤혜인의 곁을 지켰고 윤혜인은 그 여인의 팔에 얼굴을 묻은 채 겁이 나서 봉합 과정을 단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다.그녀는 어릴 때부터 주사바늘을 무서워했으며 작은 통증도 그녀가 느끼기엔 너무 아팠기에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심지어 뱃속의 아이를 위해 윤혜인은 자신이 마취제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마취없이 봉합을 강행했다.바늘이 그녀의 피부를 뚫는 순간, 극심한 고통에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렸고 곁에서 안쓰럽게 쳐다보던 빨간 원피스 여인은 차라리 그녀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이었다.봉합이 끝나고 의사가 나간 뒤, 한참 숨을 고르던 윤혜인은 그제야 이혼 수속이 생각났다.‘설마 준혁 씨가 아직도 법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진 않겠지?’서둘러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이준혁에게 전화를 걸려던 윤혜인은 손이 불편한 탓에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트렸고 핸드폰 전원이 꺼져버렸다.빨간 원피스 여인은 재빨리 핸드폰을 주워 윤혜인에게 건네며 다급하게 말했다.“아가야, 그렇게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돼.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이 아줌마한테 얘기해.”조금 전에 구급차 안에서 윤혜인과 여인은 서로 통성명을 했다. 빨간 원피스 여인의 이름은 문현미였다.“아주머니, 혹시 아주머니 핸드폰으로 전화 한 통만 해도 될까요?”“당연하지, 전화번호 불러봐.”윤혜인이 전화번호를 부르자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문현미의 손이 흠칫했고 고개를 들며 윤혜인에게 물었다.“이 번호 주인은 너와 어떤 관계야?”“제 남편이에요.”윤혜인의 대답에 문현미가 핸드폰을 그녀에게 건넸다.“아주머니, 너무 죄송한데 혹시 저 대신
“혜인아.”이준혁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오늘 죽음의 문턱에 발을 들인 경험을 처음 하게 된 윤혜인은 이준혁이 이름을 불러주자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서 모든 걸 뒤로하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하마터면 그녀와 그녀 뱃속의 아이는 다시는 이준혁을 못 보게 될 뻔했다. 이준혁이 아무리 싫어한다고 해도 뱃속의 아이는 그의 핏줄인데 윤혜인은 그 사실을 그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죽을 뻔했다.다시 생각해 보니 뱃속의 아이도 이준혁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권리가 있다!“준혁 씨…”윤혜인이 말을 꺼내려던 순간, 병실 문이 다시 한번 열렸고 임세희가 다급하게 들어왔다.“혜인 씨, 몸은 좀 어때요?”임세희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다급하게 말했다.“저랑 준혁 오빠가 법원으로 가려고 했다가 혜인 씨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윤혜인은 멍한 표정으로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뜨겁게 뛰고 있던 심장은 단 일초만에 차갑게 식었고 반짝이던 눈빛마저 빛을 잃었다.‘그래, 내가 왜 잊고 있었지? 우린 곧 이혼할 사이인데… 왜 그런 허튼 환상에 빠졌을까? 조금 전에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제정신이 아니었어.’“넌 왜 들어왔어?”이준혁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고 눈빛마저 다소 차가웠다.“준혁 오빠, 밖에 너무 추워. 내가 오늘 좀 얇게 입어서 도무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어…”임세희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고 윤혜인은 그제야 그녀가 하얀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상대방은 이미 혼인신고를 위해 드레스까지 입었는데 윤혜인은 눈치도 없이 혼자 설레고 있었던 것이다.윤혜인은 더 이상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혜인 씨, 이제 좀 괜찮아졌어요?”임세희가 윤혜인에게 다가가며 걱정하는 척 가식을 떨었지만 눈빛만큼은 분노에 들끓었다.아침 일찍부터 예쁘게 치장한 임세희는 2주 전에 맞춤 제작한 드레스 같은 원피스를 꺼내 입었고 오늘 예쁜 모습으로 이준혁과 혼인신고를 하려고 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