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숨결이 윤혜인의 코를 덮쳤다.이준혁은 오른팔을 의자 등에 걸고 윤혜인의 뺨과 손가락 하나만큼의 거리에 얇은 입술을 갖다 댔다.윤혜인은 놀라움에 심장이 멈출 뻔했다.머릿속에서는 지난번 이준혁이 자신을 물고 빨며 키스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때 남긴 치아 자국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아 샤워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면 볼 수 있었다.윤혜인의 얼굴이 갑자기 불처럼 확 타올라 뜨거워졌고 뒤로 피하려고 했지만 등 뒤에는 시원한 에어컨의 바람을 맞아 서늘한 벽만 남았다.얇은 입술이 당장 덮쳐와 키스할 것 같은 분위기에 윤혜인은 군침을 꿀꺽 삼키며 떨리는 숨소리로 경고했다. “준, 준혁 씨가 더 이상 다가오면 성희롱으로 고소할 거예요. 그리고 근로기준법으로도 준혁 씨를 처벌할 거예요.”이준혁은 웃음을 터뜨리며 윤혜인의 이마에 대고 손가락을 튕겼다.“앗!”윤혜인의 어여쁜 얼굴이 찌푸려졌고 그녀는 머리를 감싸며 이준혁을 기세등등하게 노려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가정 폭력을 행사하는 건가요?”이준혁의 입가에는 미소가 슬며시 떠올랐고 다정스럽게 윤혜인의 콧등을 긁었다.“응, 가정 폭력이야.”웃음기가 섞여 있는 이준혁의 목소리는 매력적이고 듣기 좋았다.그 말에 윤혜인의 얼굴이 단번에 뜨거워졌다.자신이 말을 내뱉고 나서야 가정 폭력이란 말은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윤혜인은 자기가 이 개자식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선을 테이블로 돌리며 다시 기세를 되찾아 당당하게 말했다. “식사할 거예요? 말 거예요?”이준혁은 공간을 내어주었고 윤혜인은 그제야 마침내 마음껏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테이블 위의 음식은 진짜 그녀의 입맛에 맞는 것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윤혜인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지 못한 것도 아니고 곽씨 가문의 요리사들도 국내에서 초청한 최고의 요리사들로 꽉 찼다.하지만 거기서 만들어진 음식은 언제나 뭔가 부족한 느낌이 강했다.아무래도 식재료든 요리 방식이든 국내에서 먹어야 윤혜인의 마
이준혁이 까준 게를 먹고 나자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윤혜인의 태도는 훨씬 나아졌다. 그래서 배시시 웃으며 얘기를 꺼냈다.“우리 남편 오재윤 씨도 예전에 항상 게를 까서 나에게 주었어요.”이준혁의 손가락이 갑자기 경직되어 이례적으로 윤혜인의 가느다란 팔목을 꽉 쥐었다.남편이라는 두 글자는 마치 보이지 않는 철사처럼 이준혁의 심장을 거세게 조여왔다.윤혜인이 떠난 그 기간, 윤혜인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았다는 생각만 하면 이준혁의 마음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거대한 고통이 밀려왔다.불행 중의 다행은 그 남자가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만약 아직도 그 남자가 살아있다면 자기가 어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를지 확신할 수 없었다.“준혁 씨, 준혁 씨...”윤혜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이준혁의 이름을 두 번이나 불러서야 이준혁은 정신을 차리고 꽉 쥐었던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하지만 잘생긴 얼굴에는 아까와 달리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유심하게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이준혁이 방금 보인 실수는 윤혜인이 예전의 남편인 오재윤을 언급했기 때문인가?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사실 윤혜인은 오늘 온종일 걱정이 태산이었다.첫 출근 날인 오늘 이준혁에게 20억에 가까운 지출을 부담하게 했고 방금 만난 이준혁의 첫사랑도 무척이나 짜증 나 윤혜인은 그녀를 의도적으로 도발해 아슬아슬한 사태로 이끌어갔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을 짜증 나게 하려고 이 정도로 노력했는데도 왜 이 남자는 전혀 화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준혁은 일부러 재산을 과시하는 사람과 착하지 않은 사람을 가장 혐오한다고 하지 않았던가?그런데 왜 윤혜인이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이준혁의 얼굴에는 조금도 싫어하는 표정이 없는 걸까.심지어 윤혜인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윤혜인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애교처럼 귀엽게 봐주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그래서 윤혜인은 오빠가 제공한 정보의 신빙성을 의심하려고 했는데 이제
이준혁의 몸이 아래로 기울어졌고 위협적인 숨결을 내뿜으며 윤혜인을 응시했다. “얼마나 대단한데?”“뭐... 그냥...”대충 얼버무리고 난 후에 윤혜인은 얌전하게 입을 다물었다.원래 임시로 꾸며낸 거짓말이었기 때문에 윤혜인은 오재윤이 도대체 어떻게 대단한지 설명하기 어려웠다.이준혁의 눈부시게 잘생긴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고 매력적인 중저음 목소리도 들려왔다.“내가 자를 줄까? 네가 한번 측정해 봐, 과연 누가 더 대단한지.”“...”윤혜인의 표정이 굳어지고 해맑은 눈동자가 여러 번 깜박였다. “뭘 측정하라고요?”이준혁은 목소리를 더 낮춰 말했다.“네 생각엔 뭘 말하는 것 같아?”윤혜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설마 그걸 말하는 건 아니겠지... 이 변태 새끼가!’“오재윤은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면서 나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없단 말이야?”이준혁은 윤혜인의 손을 잡고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내가 네 기억 회복을 도와줄까?”윤혜인은 사태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걸 감지하고 손바닥을 본능적으로 뒤로 뺐지만 이준혁이 꽉 잡고 놓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준혁의 손을 따라 아래로 끌려갔다. 이 상황은 너무 이상했다.이준혁이 도대체 뭘 하려고...윤혜인은 놀란 가슴에 떨리는 목소리로 고함쳤다.“변태예요?”“난 변태가 아닌데?”이준혁은 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색한 표정보다 더 무서웠다.“과거를 추억하는 걸 좋아한다며? 그럼...”이준혁은 기다랗고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윤혜인의 턱을 들어 올렸다. “내가 너에게 예전에 네가 날 남편이라고 불렀을 때 우리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시켜 줄까?” 윤혜인은 억지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한계에 이르렀다.“이준혁! 당신은...”미처 내뱉지 못한 말들은 이준혁의 입술 속에 파묻혀 전부 삼켜졌다.“읏...”윤혜인은 가볍게 신음을 냈고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이준혁이 더 강하게 당겨 그의 품에 안겨 더 진한 키스를 하게 됐다.진한 키스에는 이준혁의 알아채기 어려운 인내
이준혁은 아름의 예쁘고 자그마한 얼굴을 보자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그날 이준혁의 직감이 틀리지 않았다. 이 소녀는 윤혜인의 딸이 분명했다.윤혜인과 그 남자와의 딸이었다.이 사실은 이준혁의 심장을 무형의 덩굴로 엉킨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호흡하기도 어려워졌다.부드럽고 향기로운 아름이 차석에서 이준혁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아름의 연꽃처럼 하얗고 야들야들한 작은 팔이 이준혁의 목을 감았고 자연스럽게 이준혁에게 물었다.“아빠, 아름를 찾으러 왔어요?”아름이 이토록 친밀하게 대하자 이준혁도 어리둥절해졌다.솔직히 말해서 윤혜인 이외의 사람이 이준혁과 친밀한 접촉을 하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다 싫었다.하지만 아름은 ‘아빠'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어 갑자기 이준혁의 얼굴에 입을 갖다 댔다.“쪽.”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이준혁의 얼굴에 닿았다.자신이 선택한 ‘아빠'는 진짜 보면 볼수록 잘생겨 보였다.아름은 유치원 친구 안나에게 자기 아빠가 안나의 아빠처럼 진흙이 묻은 지 오래된 물통 같은 아빠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아빠라고 말하고 싶었다.비록 엄마가 아름에게 딴 사람에게 함부로 별명을 짓지 말라고 가르침을 받았지만 안나의 아빠에게 별명을 지은 건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지난번에 안나가 아름을 아빠 없는 들개라고 조롱할 때 안나의 물통 아빠도 안나와 함께 윤혜인을 조롱했기 때문이었다.흥!아름은 마음속으로 안나의 아빠를 오래된 물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아름은 앳된 목소리로 이준혁에게 물었다. “아빠, 아름를 놀이공원에 데려가려고 오신 건가요?”이준혁은 눈앞의 어린 소녀를 복잡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얇은 입술은 몇 번 움직였지만 끝내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아까 이준혁의 뺨에 맞춘 달콤한 뽀뽀에는 심지어 약간 끈적한 침이 묻어 있었다.그러나 이준혁은 의외로 그게 싫지 않았고 오히려 마음 깊은 곳에서 본능에 끌린 듯 친밀감이 일어났다. 원래 아름을 밀어내려고 했던 손도 동작을 멈추고 아름이 넘
‘이 남자는 분명 내 아빠잖아. 내가 공항에서 고른 아빠란 말이야.’윤혜인은 한숨을 내쉬며 속삭이듯 아름을 달랬다. “아름아, 이분은 삼촌이지 아빠가 아니야. 네가 이렇게 함부로 아빠라고 부르면 삼촌이 괴로워할 거야. 알겠어?”아름은 아직 어린 소녀인지라 괴롭다는 것은 좋지 않고 싫어한다는 뜻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아름이 ‘아빠'를 아빠라고 부르면 ‘아빠'가 싫어하는 걸까?아름은 너무 슬펐다.이 순간, 아름은 가장 좋아하는 인형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는데 그 사람이 인형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아름은 작은 입이 힘없이 축 처졌고 샘물처럼 맑은 두 눈도 어느새 촉촉해진 채 내리깔고 말했다.“아름이 알았어요...”윤혜인은 아름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쳤다.“그럼 삼촌에게 작별 인사해 봐.”이때 이준혁은 이미 차에서 내려와 윤혜인과 아름의 앞에 서 있었다.물론 윤혜인이 아름에게 가르친 말을 전부 다 들었다.윤혜인은 아빠라고 부르면 이준혁이 괴로울 것이라고 했다.사실 진짜 괴롭다고 하더라도 그건 달콤한 ‘괴로움'일 것이다.아름은 진짜 내키지 않았지만 작은 입을 살짝 내밀고 이준혁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삼촌, 안녕히 가세요.”아름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인사했다.순간, 이준혁의 마음은 알 수 없는 힘에 무겁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이준혁은 아름을 번쩍 안아 올려 달래고 싶었다.이준혁의 눈동자에 불분명한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왜 자기가 다른 사람의 아이에게 이렇게 강렬한 감정이 생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윤혜인은 이준혁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아름을 빤히 쳐다보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감이 더 차올랐다. 아름이 이준혁과 더 이상 불필요한 접촉이 발생하길 원하지 않았다.윤혜인은 아름의 작은 손을 잡고 이준혁에게 살짝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 별장에 들어가려 했다.“잠깐만.” 이준혁이 두 사람을 불렀다.윤혜인은 걸음을 멈추
어린 소녀는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윤혜인은 방으로 돌아왔지만 오랜 시간 동안 잠들지 못했다.어쩌면 서둘러 아름의 성장에 참여할 아빠를 아름에게 찾아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오재윤이 천국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면 윤혜인의 결정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다만 찾아야 할 아빠 후보는 반드시 이혼 후에 물색해야 한다.윤혜인은 또 이유를 알 수 없이 불쑥 튀어나온 그 남편이 생각나자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그래서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베개 밑에서 헤적거렸다.‘개자식!’...술집에서 세 명의 남자가 바에 앉아 말없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첫 라운드가 이미 끝났고 김성훈은 앞장서 두 번째 라운드를 이어갔다.이준혁이 오늘 술잔을 연이어 비우는 모습을 보자 김성훈은 약간 충격을 받았다.“오늘 왜 이렇게 많이 마시는 거야?”이준혁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윤혜인이 돌아왔는데 기쁘지 않아? 왜 인상을 험하게 쓰며 그 난리야?” 김성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침묵을 지키던 이준혁이 갑자기 되물었다. “임신 상태가 2년 동안 지속된 사례가 있어?”“푸흡!”김성훈의 입에서 술이 뿜어져 나왔다.“뭐 괴물이라도 임신한 거야? 출산하는 게 그렇게 어려울 정도로?” 김성훈이 말을 이었다.“11개월 동안 임신한 사례도 거의 없는데 2년이란 게 말이 돼? 아이를 낳자마자 유치원에 바로 보내야 하겠네?”이준혁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희망의 불꽃에 찬물을 끼얹어 꺼버리는 것 같았다.답답한 마음을 술병을 들어 건배하는 방식으로 풀었다.김성훈은 이준혁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너 혹시... 윤혜인의 아이를 만났어?”이준혁은 무표정을 유지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김성훈이 무심하게 물었다. “그 아이는 누구를 닮은 거 같았어?”이준혁은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동그랗고 살굿빛이 나는 눈동자, 기다란 속눈썹, 계란형 얼굴, 그리고 웃을 때 정말 윤혜인을 닮은 것 같았다.“아이의 엄마를 닮은 거 같아.”자꾸 언급되던 오재윤에
김성훈은 윤혜인의 아이에 관한 얘기가 나오니까 이준혁이 빼앗고 싶어 하는 모습이 가득한 표정이라고 말하고 싶었다.김성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윤혜인의 아이가 진짜 귀여울 거라고 짐작했다.이제 시간이 나면 꼭 만나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 육경한의 전화벨이 울렸다.휴대폰 너머에서 무슨 말이 왔는지 육경한의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육경한은 전화를 끊고 일어서서 자리를 떠났다.김성훈은 육경한의 뒷모습을 보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었다.그때 소원이 사망한 후, 육경한은 자기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이 삶을 허비하며 고통에 허덕였다.김성훈이 곁에서 애써 설득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그러다가 삶을 허비하며 고통에 허덕이는 남자가 두 명이 되었다.두 친구가 너무나 타락한 삶을 사는 걸 번연히 보면서도 김성훈은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다행히도 이준혁은 어머니가 아들을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기운 내라고 등을 떠밀어 드디어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이는 오늘을 맞이할 수 있었다.그리고 육경한에게 남겨진 유일한 목표는 아마 그 사람의 여생과 노후를 책임지는 일일 것이다....클럽에 도착한 육경한은 방문을 하나하나 발로 차서 열어 확인했다.방에서 쾌락에 젖어 있던 남녀들은 한결같이 소란에 놀랐고 잇따라 각종 욕설을 퍼부었다.육경한은 욕설에 아랑곳하지 않고 찾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주저없이 다음 방 문을 열어제꼈다.클럽의 접대 매니저 영숙은 이 남자가 이렇게 소란을 피우자 깜짝 놀라 허겁지겁 뛰어와 담배를 드리고 불을 붙이며 소통하려고 애썼다.“육 대표님, 왜 이러시는 거죠?”육경한의 잘생긴 얼굴은 험상궂은 기색이 역력했고, 불붙은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쌀쌀하게 물었다.“선미는 어디에 있어?”영숙은 그 말에 순식간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이 쌍년이 영숙 몰래 원군을 부를 줄 생각하지 못했다. “선, 선미는...”영숙은 우물쭈물하며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선미는 오늘 밤에 친한 친구의 생일을 쇠어준다며
턱은 마치 압력계로 눌러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선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육경한의 사나운 태도에 놀라 가슴이 두근두근 심하게 떨렸다.콩알만 한 눈물이 눈에 고였고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았다.육경한은 선미의 얼굴 중 어느 부위가 그렇게 닮았는지 주의 깊게 살피다 두 눈이 닮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둘 다 위로 휘어진 여우 눈이지만 소원의 눈에는 아무리 비천할 때도 굴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하지만 선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쪽 바닥에서 뒹굴고 놀아나 비굴하고 아부하는 데 능숙한 성격을 갖추게 되었다.그래서 남자를 잘 유혹할 만한 이 여우 눈에는 아부와 순종만이 가득했다.소원과 가장 닮은 것 같으면서도 어찌 보면 가장 닮지 않은 여자인 것 같았다.선미는 꾹 참다가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계속 이대로 누르면 자기 턱이 분명 육경한의 손에 의해 산산조각 날 것 같았다.놓아달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육경한은 눈꺼풀을 내리깔며 흥미를 잃은 것처럼 손을 놓았다.선미는 관성에 의해 바닥에 주저앉았고 심장이 여전히 쿵쾅쿵쾅 심하게 뛰었다.자기 턱이 가짜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가짜였다면 이미 부서졌을 것이다.육경한은 상반신을 펴고 긴 다리를 무심하게 꼬고 앉아 쌀쌀한 말투로 명령했다.“술을 따라.”선미는 부들부들 떨며 술을 따랐고 육경한은 술잔을 술을 벌컥벌컥 마셨으며 어느새 두 병을 다 마셨다.양주는 술기운이 셌다.육경한은 어느새 시선이 흐릿해졌고 눈앞의 여자도 점점 매일 밤 그의 곁에 누워 시간을 보내던 여자와 닮아갔다.육경한은 모호한 말투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소원아...”이 이름은 선미가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육경한이 처음으로 선미를 지목했을 때 육경한은 선미를 옆에 두고 밤새도록 말없이 얼굴만 바라봤다.육경한은 선미에게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했고 심지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게 명령했다.그때부터 선미는 자기가 소리를 내면 그 여자가 아니라는 게 들통나기에 이런 명령을 내리는 걸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