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은 자리를 바꾸기 귀찮아서 그냥 점심때 이승연과 식사한 식당에서 서씨 가족과 만났다. 다만 실내 식당에서 실외의 양산 아래로 이동한 것뿐이었다.새해 연휴가 끝나고 모두가 정상적인 업무 진행 상태로 돌아왔다. 조금 적막해진 거리를 보며 유월영은 갑자기 새해 밤에 연재준과 손을 잡고 북적이는 거리를 걸으며 연극을 보기 위해 연극관에 갔던 일을 떠올리며 정신을 놓고 있었다.마침내 맞은편의 의자가 누군가에게 밀려내자 유월영은 다시 정신을 차렸고 무의식중에 시선을 맞은편에 돌렸다.하늘에서 눈이 사뿐히 내리고 있었고 자리에 앉은 사람은 연재준이었다.어젯밤과 이른 아침의 병에 찌든 창백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깔끔하고 비싼 정장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옷깃부터 소매까지 세부적으로 정교했고 잘 다리미질 되어있는 상태를 보니 언제나 높은 곳에서 위풍당당하게 내려다보던 평소의 연재준이었다.유월영은 잠시 멈칫하다가 연재준에게 질문했다. “재준 씨가 굳이 아픈 몸을 끌고 나를 위해 참전했나요? 그 진심은 고맙지만 난 이 변호사만 있으면 충분해요. 이 변호사는 방금 공증 사무소에 서류를 가지러 가서 곧 돌아올 것이에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신주시로 돌아가세요. 연말에 회사가 얼마나 바삐 돌아가나요.”예전에 연재준과 함께 있을 때 매년 연말은 연재준에게 가장 바쁜 시기였다. 그렇게 바쁜 시기에 이따위 보잘것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하정은은 업무에서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었으니 부디 해고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당신에게 꼭 도움이 될 거예요.”연재준은 유월영이 주동적으로 말문을 떼자 살짝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병든 내 몸 상태를 걱정해? 아니면 회사를 걱정해? 아니면 내가 너무 빡세게 일할 걸 걱정해?”유월영은 커피를 들며 유유하게 말했다. “난 다만 나 때문에 하정은에게 피해가 가는 게 괴로울 뿐이에요.”연재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딴 사람을 신경 쓰는 건 이렇게 잘 하면서 왜 자신을 신경 쓰지 않는 거야? 분명히 합의하고
한 손으로 사인하고 한 손으로 수표를 건넨 다음 공증까지 받았으니 이 일은 여기서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서씨 가족이 떠난 후, 윤영훈은 순식간에 유월영 쪽 사람으로 전환하여 실실 웃으며 제안했다. “우리 근사한 곳을 찾아 제대로 축하 파티를 열죠. 오늘 밤은 내가 살게요. 그냥 플로팅 라이프로 가죠.”유월영과 이승연은 모두 정중하게 사양했다. 이렇게 세 명이 함께 놀러 간다니?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아, 사람이 너무 적어서 그래요?” 윤영훈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별거 아니에요. 내가 몇 명 더 부를게요!”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이 그의 이런 태도를 보면 윤영훈이란 사람은 유월영이 서씨 가족에 파견한 잠입 요원인 줄 알겠다. 어마어마하게 큰 금액의 합의금을 지급하고도 이렇게 즐거워하며 축하 파티를 준비하려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하지만 윤영훈이 이 정도로 준비를 철저하게 하자 유월영과 이승연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냥 윤영훈과 그의 친구들 식사 자리에 잠깐 참석하는 걸로만 생각하기로 했다.윤영훈이 부른 사람은 30대쯤 되는 성숙하고 세련된 남자였다. 유월영은 그 남자를 몰랐지만 이승연은 그를 보자마자 멈칫하며 온몸이 굳어졌다.윤영훈이 자연스럽게 그 남자를 소개했다. “이분은 오성민이라고 해요. 내 친구예요. 처음에는 이 친구에게 서정희 사건을 맡길 생각이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 함께 식사나 하며 그동안 쌓였던 좋지 않았던 걸 풀어보죠.”오성민은 잘생긴 외모를 갖췄지만 관상을 보면 속이 아주 깊어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오성민은 유월영, 이승연과 차례로 악수했다.오성민이 이승연의 손을 잡을 때 조용히 몇 초 동안 더 잡고 놓지 않았고 이승연이 살짝 움직이자 그제야 웃으며 손을 놨다.그들은 둥근 테이블을 중심으로 주위에 앉았고 윤영훈은 다리를 꼬고 느긋하게 말했다. “오 변호사는 서남 지역에서 유명한 형사 변호사예요. 이 변호사는 내 친구를 알고 있었나요?”이승연은 담담한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유월영의 집에서 가정부가 전화를 걸어와 유월영은 방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가정부는 유현석이 최근 술에 빠져 매일 술에 절어있어 이영화가 도무지 그를 설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이대로라면 유현석의 몸 상태가 악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유월영에게 묻는 것이었다.유월영이 봉현진에서 떠나는 그날부터 유현석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데 술에 빠지는 정도까지 발전할 줄이야.유월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이영화가 유현석을 챙기느라 그녀의 몸이 다시 불편해질까 봐 불안했다.“내일 아버지가 깨어나면 나한테 전화해요. 내가 아버지와 얘기해 볼게요.”가정부는 알았다고 대답했다.유월영이 전화를 끊고 방으로 돌아가 보니 전화하는 짧은 순간에 방에 이승연과 하정은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 세 남자는 모두 사라졌다.“남자들은 다 어디에 갔어?”이승연이 간단명료하게 대답했다. “한 사람은 담배 피우러, 한 사람은 전화 받으러, 한 사람은 화장실에 갔어.”유월영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 두 빈자리를 넘어 하정은에게 눈길을 돌리며 물었다.“넌 방금 신주시에서 돌아왔어?”하정은은 능수능란하게 대답했다. “그래, 난 먼저 유진 씨를 스워시로 가는 비행기에 모셔다드리고 여기 서울로 왔어.”백유진을 스워시로 보내다니? 유월영은 살짝 충격을 받았다. 하정은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유진 씨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유월영은 국을 한 그릇 떠서 천천히 마시며 생각에 빠졌다. 연재준이 서슴없이 백유진을 국외로 보내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이것도 연재준이 나에게 부리는 응석인가? 백유진을 보내고 나면 연재준이 더 이상 백유진한테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을 거잖아? 그렇게 먼 나라로 주저 없이 보내는 걸 보면 그냥 날 화나게 하기 위해 백유진을 찾았던 것인가? 연재준이 정말 백유진을 좋아했던 적이 없는 건가?’유월영의 기분은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았다. 단지 그렇게 오랫동안 신경이
유월영은 앞 구석에서 남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쪽으로 곧장 걸어갔다.그리고 연재준과 오성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들의 분위기를 보면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유월영의 발소리가 들리자 두 남자가 동시에 그녀 쪽으로 돌아봤다.오성민은 유월영이 연재준를 찾아온 것을 알고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인사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연재준은 담배를 끄고 유월영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왜 나왔어?”유월영은 방금 그들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재준 씨는 성민 씨를 알아요?”연재준이 그 말에 무심하게 말했다. “상가 유람선에서 너와 함께 포커를 치던 그 오 대표를 기억해?”“기억해요.”그날 포커 테이블에는 서울 신씨 가문의 투자 업계 대부 신현우, 신주시 연씨 가문의 재벌 연재준, 송초시 윤씨 가문의 부동산 업계 거물 윤영훈이 있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용청시 오씨 가문의 IT 업계 거물... 오씨?유월영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설마 그 오씨가 오성민이었단 말인가?연재준은 유월영의 눈 앞을 가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귀 뒤로 넘기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럽고 촉촉한 피부를 만지작거렸다. 어느새 눈빛도 그윽해졌다. “오성민은 오 대표의 사촌 동생이야.”그제야 유월영의 머릿속에서 얽혔던 실마리들이 순식간에 전부 정확하게 연결되었다. “그럼 당신이 오성민에게 서정희가 기껏해야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사실을 서씨 가족에게 알리지 말라고 부탁한 건가요?”“내가 분명히 말했지? 네가 합의하든 말든 내가 널 이 상황에서 무사하게 빼내는 방법이 있다고.”“...” 연재준이 유월영 몰래 많은 일을 해결한 것 같았고 심지어 주동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유월영의 어머니를 위해 외국 의사를 모셔 온 것이나 서씨 가족에 “간첩”을 심어둔 것도 전부 비밀리에 진행된 일이었다.연재준은 몸을 약간 숙여서 그녀의 시선에 맞췄다.매혹적인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길게 내빼며 첼로가 귓가에서 천천히 울려 심금을
창밖의 밤은 한 줄기 빛도 보이지 않은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작은 눈꽃이 겨울바람에 실려 창틈으로 들어왔지만 고작 겨울바람의 추위로는 실내의 습기와 열기를 쫓아내지 못했다.유월영이 이불 밖으로 하얗고 야들야들한 팔을 내밀어 침대 옆 등을 켜려고 했다.그러자 남자가 다시 그녀의 벌거벗은 등을 눌렀고 그녀의 목덜미에 미친 듯이 키스했다. 유월영은 기습 행동에 몸을 떨었고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격렬하게 그녀의 척추를 따라 허리까지 쭉 키스했다.유월영은 베개에 엎드려 그 키스가 간지러워 몸을 꼬았고 몸을 돌려 남자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연재준은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베개 양쪽에 놓으며 머리를 숙여 그녀와 키스했다.유월영은 자연스럽게 연재준이 뭔가... 너무 치근덕거리는 느낌이 들었다.어젯밤에는 병든 주인 없는 개처럼 유월영을 찾더니 지금은 자꾸 사람에게 치근덕거리는 골든리트리버처럼 보였다.유월영은 연재준과 한 번 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연재준이 이렇게 부드럽게 애무하자 자제할 수 없이 폭삭 빠져들었다.어둠 속에서 연재준은 몸을 놀리며 평소의 침착함과 이성적인 모습을 잃은 유월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문득 연희진이 연재준에게 전화해 유월영의 마음을 얻었냐고 묻던 그날을 떠올렸다.연재준이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자 연희진은 아직 연재준이 유월영을 손에 넣지 못한 사실을 눈치채고 연재준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오빠, 그런 말을 못 들어봤나요? 고백은 어린이들이나 하는 유치한 일이고 성인은 직접 상대방을 유혹해야 한다는 말을요. 그리고 유혹의 첫걸음은 바로 인간성을 버리고 고양이가 되고 호랑이가 되고 또 비에 푹 젖은 강아지가 되라는 것이죠.”“무슨 뜻이지?”“다시 말해 자기 약점을 드러내고 세상 불쌍한 척을 하라는 것이죠. 그러다가 적절한 시기에 본 모습을 드러내 상대방을 순식간에 잡아먹는 거죠.”연희진의 그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았다... 연재준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유월영을 침대에서 일으켜서 자기 무릎에 앉히고 그녀의 몸을 자기 어깨에 기대
오성민은 그녀의 냉랭한 눈빛을 보고도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화났어? 당신은 아직도 나를 신경 쓰고 있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7년이야. 난 누구보다 당신을 잘 알고 있어. 만약 당신이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건드린다고 해서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거야.”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승연아, 나 그 여자와 헤어졌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이승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와 혁재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우리의 혼인 관계를 아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텐데, 오 변호사님은 모르셨나 봐요?”오성민은 그녀가 7년 동안의 감정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은 듯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승연아, 내가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는데.”이승연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혁재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에게 발길질 하기 시작했다.“감히 내 마누라한테 치근덕거리다니!”오성민은 날아오는 발길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그의 정장에 허연 발자국이 찍혔다.고개를 든 오성민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유지했다.“이혁재, 네가 승연이와 결혼하는 이유가 뭔지 내가 모를 줄 알고. 마누라? 지금 나랑 해보겠다는 거야? 승연이가 나를 남편이라고 부를 때 넌 이제 막 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이었다고.”오성민은 재밌는 일이 생각난 듯 히죽거렸다.“재밌네. 너 언제부터 승연에게 마음이 있었던 거야? 어쩐지 내가 승연이랑 같이 대학교에 물건 주러 갔을 때, 네가 나한테 그렇게 적대적이더라니, 어린놈이 징그럽게 걔가 너의 이모뻘이라고.”이혁재는 평소에 헤헤거리며 진지한 모습이 적었지만, 이렇게 살기를 띠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는 ‘쌍'이라고 욕을 한 번 하고는 오성민에게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오성민도 이번에는 더 이상 봐주지 않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복도에서 주먹다짐하며 몸싸움을 벌였다.이승연이 외쳤다.“이혁재.”이혁재가 반응이 없자 그녀도 두 남자를 말릴 생각이 없었다. 자칫하다 자신도 봉변당할 수 있었다. 불러도 대답이 없자 이승연은 더 이상
이혁재는 이승연을 빤히 노려보았다.이승연은 이혁재의 손을 떼어내며 차갑게 말했다. “시간이 남아돌아 할 짓이 없으면 너처럼 한가한 사람을 찾아 치근덕거려. 난 사건 자료를 봐야 하니까 널 상대할 시간이 없어.”이혁재는 이승연의 무관심하고 차가운 태도에 화가 치밀어올라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변호사인 너에게 내가 어떻게 말로 널 이길 수 있겠어.”이혁재는 무릎을 들어 이승연의 치마 안에 집어넣으며 거친 쌍욕을 퍼부었다.“시X 네년을 존X 따먹을 거야.”말을 마치고 고개를 숙여 이승연의 입술을 거칠게 물었다.이승연은 갑자기 닥친 이 관계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제야 약간 동요하며 이혁재의 손을 붙잡으려고 시도했다. “이혁재! 미쳤어? 그만해!”하지만 이혁재는 그 소리에 더 미친 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한 손으로 이승연의 양손을 잡아 벽에 댔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A라인 스커트를 허리까지 올렸다. 이승연은 자기 섹시한 몸매로 이런 직업 복장을 하면 얼마나 유혹적인지 알고나 있을까? 그 늙다리 오성민이 이승연을 보는 눈빛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이혁재는 씩씩대며 이승연의 스타킹과 속옷을 함께 찢어버렸다.이승연은 전혀 저항할 수 없었고 반항할 방법도 없었다. 이혁재는 심지어 방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현관 입구에서 바로 거칠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이혁재는 평소에 관계를 맺을 때 이승연을 만족시키기 위해 인내심이 있게 움직였지만 오늘만큼은 좀처럼 그녀의 상태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남편이라고 부르라고 했는데 그렇게 반대하더니 남편이라는 소리는 오성민에게 남겨주려고 그런 거였어? 너랑 혼인 신고한 사람은 나야. 내가 네 남편이라고.”이승연은 이혁재의 반응이 이 정도로 과격할 줄 예상하지 못했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관계를 맺으니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고 숨 고르기도 힘들었다.“이혁재, 넌...”“그 자식이 학교 후배랑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넌 지금쯤 그 자식의 아내가 되어 있겠지?
연재준은 이혁재를 힐끔 쳐다보고는 대답하기 귀찮아 무시하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바에서 뿜어나오는 몽롱한 불빛 때문에 연재준의 표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혁재는 연재준을 자기와 동고동락하는 형제로 여기고 핑거스냅을 하고는 바텐더에게 한 잔을 주문하며 구시렁댔다.“왜 여자들은 다 이렇게 다루기 힘들지?”이혁재는 담배를 꺼내어 연재준에게 한 개를 건넸다.담배에 막 불을 붙였는데 바 저쪽에서 갑자기 두 남자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야, 됐어. 최근에 임신을 준비하고 있어서 담배와 술은 다 뗐어. 난 레몬주스만 마시면 돼.”이 말을 듣자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려던 두 남자는 약속이나 한 듯 순간 멈칫했다.그러고는 또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담배를 끊었다....연재준은 확실히 지성에 계속 머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유월영과 아침을 먹고 하정은을 데리고 신주시로 돌아갔다.유월영은 연재준을 바래다주지 않고 그냥 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겼다.이승연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유월영을 발견했고 자기도 음식을 챙겨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두 사람은 식사하며 얘기를 나눴다. 서씨 가족과 합의했지만 사건이 아직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기에 이승연은 마무리 단계까지 참여해야 했다.유월영은 식사하다가 무언가를 떠올려 헛기침했다. “승연 언니, 그 약이 아직 남아 있어?”유월영은 어젯밤에 피임하지 않았다. 마침 지난번에 이승연이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약국에 가기 귀찮아 두 알을 요구했다.이승연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방에서 약을 꺼내 유월영에게 두 알을 건네며 무심하게 물었다.“어젯밤에 재준 씨와 화해했어?”유월영도 현재 연재준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머리를 저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이승연도 눈치가 빠른 편이라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자기도 두 알을 꺼내 삼켰다.어젯밤의 이혁재는 사나운 들개처럼 달려들었고 당연히 피임을 하지 않았다.아침 식사를 끝내고 유월영은 정식으로 SK그룹에 출근하러 갔다.신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