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화 불임

남자는 심지안을 한 번 흘끗 보고는 냉정히 시선을 거두었다.

심지안은 남자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낮은 목소리로 진유진에게 말했다.

“너 먼저 돌아가. 난 가서 저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낼 거야.”

진유진이 동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저 사람에게 강우석의 일을 얘기라도 하려고?”

“내가 직접 처단하는 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혼내는 것보다 훨씬 더 통쾌하지 않겠어?”

심지안이 취기가 올라 몽롱해진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진유진은 영문을 몰라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자리에 돌아가 앉은 뒤에야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깨달았다.

진유진이 보기엔 강우석의 삼촌도 멋있긴 하지만 분명 그와 마주 앉아있는 이름 모를 남자가 더 매력적이었다. 하여 그녀는 심지안이 강우석 그 쓰레기 자식에게 대한 복수 때문에 눈이 멀게 된 것이라 생각했다.

심지안은 술기운을 빌려 질끈 묶었던 머리를 휘리릭 풀어헤치고는 술 한 잔을 들고 남자 쪽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때, 돌연 탁자 위의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곧바로 핸드폰을 쥐고 심지안의 옆을 스치고 지나가 밖으로 나가버렸다.

심지안은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이렇게 간다고? 그녀가 아직 입을 떼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망설이고 있을 때, 순간 머리에 강우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어 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한 발 한 발 남자의 뒤를 따라나섰다.

남자는 술집에서 나간 뒤 롤스로이스 차에 올라탔다.

심지안은 차 옆으로 다가가 자신이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차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이어 창문이 스르륵 내려왔고 뒷좌석에서 무표정하고도 오만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의 조명은 술집보다 밝아 그의 얼굴을 더 또렷이 볼 수 있었다. 흠잡을 곳 없는 준수한 이목구비에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 그야말로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 그 자체의 외모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심지안이 입을 열었다.

“핸드폰 잠깐 빌릴 수 있을까요? 제 핸드폰은 배터리가 없어서요.”

그 말에 남자의 눈썹이 의아하다는 듯 찌푸려졌다. 하지만 다행히도 곧바로 거절하지는 않았다.

심지안은 긴장감에 떨리는 작은 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럼에도 매혹적인 눈웃음과 요염한 자세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남자가 심지안을 몇 초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창문을 닫으려고 한 순간, 또다시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못마땅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그 여자들이 그렇게 괜찮으면 할아버지가 만나세요. 필요하다면 제가 할머니라고 부를게요.”

“망둥이 같은 놈! 네가 기어이 우리 집안의 대를 끊어놓으려고 하는구나!”

심지안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노기가 잔뜩 실린 목소리를 듣고는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일 거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중요한 건 바로 집안에서 이 남자에게 결혼을 재촉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에게 있어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남자가 입꼬리를 슥 올리고는 말했다.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대를 잇는 걸 고려해 보시라고요.”

“이런 배은망덕한 자식 같으니라고! 내가 죽는 꼴이라도 보고 싶어서 그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며 박살이 나는 소리가 났고 이어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어서 어서 어서, 구급차를 불러요!”

앞자리의 운전기사가 걱정스레 말했다.

“도련님, 어르신은 심장병이 있으시잖아요. 설마...”

남자는 일그러진 얼굴로 이마를 질끈 눌렀다. 한눈에 봐도 이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난 게 아닌 것 같았다.

대충 상황파악을 끝낸 심지안은 어디에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저도 솔로예요.”

남자가 그녀를 흘끗 보고는 차갑게 말했다.

“그래서요?”

밖의 온도가 너무 낮은 탓인지, 아니면 남자의 반응이 너무 싸늘해서인지 심지안은 순간 취기가 모두 가셔버렸다. 그제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그녀는 난처함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와 그 말을 주워 담는다면 더더욱 창피한 일이 되고 만다.

심지안은 진지한 얼굴로 뻔뻔하게 말했다.

“사실 전 핸드폰을 갖고 왔어요. 당신과 친해지고 싶어 거짓말을 한 거예요. 조금 전 통화를 들어보니 당신도 집안 어르신으로부터 결혼 재촉을 받는 것 같던데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 서로 돕는 게 어떨까요?”

“진심이에요?”

남자의 우수 짙은 눈동자에서 심지안을 향한 괴이한 광망이 뿜어져 나왔다.

“난 불임이에요. 집안 어르신들이 걱정하실까 봐 아직 얘기하지도 못했고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