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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강만옥은 하이힐을 밟고 긴 곱슬머리를 어깨 뒤로 늘어뜨린 채 요염하게 걸어왔다.

“소월아, 뭐해?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그녀가 손을 내밀자 장소월은 눈살을 찌푸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도시락통을 줍고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갔다,

복도를 걷는 장소월은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가슴은 전혀 느껴보지 못한 숨 막힘을 느껴졌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목적을 가지고 그녀를 접근했고 그 누구도 그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

첫 번째는 전연우다. 그녀의 사랑을 이용해 달콤한 속삭임으로 유언장을 훔쳐 갔고 목적을 달성하자마자 그녀는 바로 버려졌다.

두 번째는 강만옥이다. 학교에서 항상 따뜻하게 챙겨주고 속마음도 들어주며고 심리상담까지 해주며 갖은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그녀에게 접근했다. 그 이유는 장해진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였고, 장가로 들어가자 전연우와 연합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장해진을 살해했다.

세 번째는 송시아다. 한때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

거짓이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

장소월은 다른 강의실 건물로 가서 도시락통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쇳내에 비린내까지 섞인 그 냄새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오고 있었고 손목에 있는 상처를 적셔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장소월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얼어붙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한 듯 도시락통을 깨끗이 씻어내니 상처 부위는 하얗게 변했고 핏자국이 은은하게 퍼져 보기 흉하고 끔찍했다.

모든 것을 마치고 떠나려던 중,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누군가가 검은 봉지로 그녀의 머리에 뒤집어씌우고 거대한 힘으로 그녀를 밀쳤다. 머리가 벽에 부딪혀 심한 통증이 전해왔다.

누군가 발로 그녀의 등을 찼고 주먹으로 얼굴을 내리치기도 했다. 주먹이 한대, 또 한대 날아왔고, 발길이 한 번 또 한번 내리쳤다. 통증이 온몸에 퍼졌고 그녀는 아프다는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는 제대로 보지 못했고 도대체 몇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의 분풀이가 끝나가자 그녀는 반쯤 죽은 상태로 화장실로 끌려갔고 머리에 씌워진 봉지가 사라졌다. 그녀는 의식이 혼미한 상태였고 영혼도 탈탈 털린 듯했다.

귓가에서는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손목에 있던 상처는 조금 전 반항으로 다시 벌어져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흥건히 젖은 바닥이 보기만 해도 몸서리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살고 싶은 마음에 마지막 희망의 끈을 잡고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에 전화를 걸었다. 전연우였다.

...

「뚜뚜뚜~」

핸드폰 진동 소리에 전연우는 발걸음을 멈췄다. 핸드폰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길게 째진 눈을 불쾌한 듯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백윤서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누구예요? 바쁘시면 저한테 신경 안 써도 돼요. 저 진짜 혼자도 괜찮아요!”

전연우는 아무 일도 없는 듯 가볍게 말했다.

“스팸이야, 신경 안 써도 돼!”

장소월이 결국은 참지 못하고 또다시 귀찮게 하는 줄 알았다.

“네.”

백윤서는 밝게 웃으면서 양손에 방금 산 아이스크림을 들고 그중 하나를 전연우에게 건넸다.

“오빠, 제가 사 온 거예요! 한번 먹어봐요!”

전연우는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는데도 건네받았다.

백윤서가는 한입 먹자 부드럽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은 바로 녹았다.

“몸도 안 좋은데 찬 거 많이 먹으면 안 돼. 배 아플 수도 있어.”

전연우는 걱정된 듯 눈썹을 찌푸리며 따뜻한 말투로 혼내듯 말했다.

백윤서는 장난스럽게 혀를 빼꼼 내밀었다.

“오빠, 같이 영화 보러 와줘서 진짜 고마워요. 그런데 진짜 일에 방해되는 거 아니에요? 사실 매일 같이 있어 주지 않아도 돼요. 저 혼자서도 괜찮아요.”

백윤서는 일하느라 바쁜 전연우가 하교 때 학교 앞에서 기다려 주고 영화까지 같이 봐줄 거라 상상도 못 했다.

전연우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입을 열었다.

“요즘 회사가 안 바빠. 너랑 같이 있는 게 더 중요해. 가자, 영화 시작하겠다!”

백윤서는 전연우 손에 들고 있는 영화표 두 장을 보더니 입술을 앙다물며 말했다.

“오빠, 소월이는 안 와요?”

“소월이는 학교 끝나고 또 수업이 있어서 우리랑 같이 안 봐.”

“그래요 그럼! 우리끼리 봐요!”

백윤서는 자연스럽게 전연우의 팔짱을 꼈다.

둘이 함께 본 영화는 멜로였지만 결말은 새드엔딩이었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은 죽었고 여자주인공 혼자만 남아서 쓸쓸하게 늙어갔다.

전연우는 백윤서가 아직 영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수심에 찬 듯한 모습을 보고 같이 쇼핑하기로 했다. 백윤서에게 올해 신상으로 옷을 많이 사줬는데 너무 많이 사 양손 가득 들고 나머지는 직원이 택배로 보내 주기로 했다.

쇼핑을 끝내고나니 이미 저녁 8시였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고 불빛이 모두 켜졌다. 번화한 거리와 차들이 오가는 광경이 참 예뻤다.

백윤서는 기분 좋게 조수석에 앉았다.

“오빠, 오락실 진짜 재밌었어요. 다음에 또 가요!”

전연우는 거절하지 않았고 온화한 미소로 답했다.

“좋아, 오고 싶을 때 얘기해. 최대한 시간 맞춰 볼게.”

전연우는 백윤서에게 다가가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금세 가까워졌고 그는 소녀의 특유한 냄새를 맡았다.

이 냄새는 장소월의 냄새와 달랐는데 유난히 더 달콤했다. 순간 그날 장소월의 가늘고 섹시한 몸매가 전연우의 뇌리를 스쳤다.

백윤서는 어렸을 때부터 전연우와 함께 자랐지만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모습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백윤서는 숨을 죽이고 잔뜩 긴장했다.

전연우는 눈을 내리깔고 몸을 돌려 핸드폰을 확인했다.

장소월이 걸어온 전화와 장가네 별장에서 걸어온 전화까지 수십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는데 핸드폰을 음소거한 바람에 전화를 한통도 받지 못했다.

전연우가 눈썹을 찌푸리며 콜백을 하려던 찰나, 전화가 다시 걸어왔다.

전화를 받자마자 아줌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우 도련님, 아가씨와 함께 계십니까?”

“아니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전연우는 차분하게 말했다.

“네? 아가씨와 함께 있지 않으십니까? 그럼 어디로 가셨을까요?”

“네? 소월이 사라졌습니까?”

전연우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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