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801 - 챕터 810
1026 챕터
제801화
악마의 바다로 들어가려는 순간, 강욱은 이 떠돌이 잡것을 제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이쯤 되면 상대방은 다용도실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강욱이 미리 알아본 결과, 이곳엔 도구만 가득하고 몇 달 동안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문이 열리자 불쾌한 냄새가 그를 덮쳤다.퀴퀴한 냄새와 함께 피 냄새도 섞여 있었다.곧 날이 어두워질 무렵이었고, 오늘은 비까지 와서 바다 전체가 어둡고 음침했다. 맨 밑층에 있는 이 방엔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선체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제외하면 방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했다.강욱은 앞쪽으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인간의 직감으로 상대가 지금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마치 독사가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가 적절한 순간에 나타나서 물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하늘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고, 바닷바람은 거세게 불어왔으며, 문과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지아 역시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어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창밖을 내다보니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며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심술궂은 악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지나가는 사람과 배를 삼키려는 듯 전보다 더 잔인해진 악마의 바다에 들어섰다.파도가 배의 선체에 부딪히면서 배는 심하게 흔들렸다.때때로 파도가 몇 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무서웠다.태양 빛이 없는 어두운 바다는 더욱 섬뜩해 보였다.역시나 악마의 해역이었다.지아는 불안한 마음으로 창가에 서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곧 비가 올 것 같았다.비가 오면 바다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앞으로 수십 시간 동안 이런 큰 바다를 항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아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또 한 번 큰 파도가 치고 배가 심하게 흔들렸다.지아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질 뻔했다.방 안을 몇 번이나 돌아다니며 나가서 강욱을 찾고 싶었다.적어도 강욱이 곁에 있으면 마음이 좀 더 편할 것 같았다. 함께 지내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막 문을 열고 복도에 나오기도 전에 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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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2화
이 가면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전효였고, 전효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눈앞의 키 큰 남자를 바라보았다.어딘지 모르게 이도윤과 닮았지만 이도윤의 몸은 이 남자보다 더 건장했다. 시선이 강욱에게 향하자 그건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밋밋한 얼굴이었다.날 죽이러 온 사람이 아닌가?“날 알아?”맞다, 이 목소리.강욱은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 옷깃을 잡아당기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네가 왜 여기 있어?”전효는 이 남자의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만약 자신을 쫓는 무리였다면 지금쯤 이미 머리를 가격해 죽여버렸겠지,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했을까?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조금 전 강욱은 하필 발로 그의 상처를 가격했고,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그의 옷을 물들였다.강욱이 더 묻기도 전에 복도에서 울려 퍼지는 선원들의 겁에 질린 목소리가 들렸다.“해적이다! 해적이 왔다!”강욱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진짜 나타난 건가?이 쓰레기 같은 놈들.곧바로 밖은 빠르게 달리는 선원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일반 화물선이지만 비상사태를 막기 위해 선내에 물대포와 무기를 장착하고 있었다.오래전 바다가 혼잡할 때 모두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나름대로 생존의 방법을 찾았지만, 평화로운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오늘 또다시 해적과 마주친 것이다.강욱은 곧바로 전효를 묶어 옆으로 던지며 말했다.“얌전히 있어.”말을 마친 그는 성큼성큼 떠났다. 전효의 목적이 무엇이든 지아를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았고, 적어도 해적들보다 덜 위협적이었다.전효는 머릿속엔 두 아이들로 가득했다. 젠장, 왜 하필 이 시점에 해적이 나타나서는.방에서 두 아이와 즐겁게 놀던 맹국영은 두 아이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천재네! 우리 해경이 천재야.”맹국영은 단지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장기를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해경이 그렇게 빨리 익히고 배울 줄은 몰랐다. 겨우 며칠이나 됐다고 세 살도 안 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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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3화
맹국영은 더 설명할 시간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소망은 걱정스럽게 해경을 바라보았지만 해경은 소망을 쳐다보지 않고 아저씨가 보드 위에 내려놓은 마지막 조각만 쳐다보았다.양옆에 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뭘 해도 끝은 죽음이었다.“오빠...”해경은 전효로부터 해적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은 인간성도 없이 사람의 가죽을 쓴 사악한 괴물이었다.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기들은 바다의 패왕이라 불렸다.광물 원료를 운반하는 이 화물선은 자연스럽게 그런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다.국영 할아버지에게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하지만 위험하다는 걸 알아도 막을 능력은 없었다.두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서둘러 전효를 찾아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전효가 자기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뿐이었다.이제 겨우 두 살이 조금 넘은 아이들이지만 삶과 죽음의 의미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아이들은 살아가는 이유를 몰랐다. 개미처럼 사는 게 버거워도 그저 꿋꿋이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적어도 아직 어머니의 무덤에 가서 제사도 한 번 지내지 못했다.“가자.”해경은 소망의 손을 잡고 떠나기 전, 식탁보로 먹다 남은 케이크와 과자를 싸서 매듭지어 자신의 목에 걸었다.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도망 다니는 것에 도가 텄다.소망 역시 같은 마음으로 해경이 뭘 하려는지 알았다.“하지만 할아버지...”해경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아빠를 찾자.”전효는 이 배에서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두 아이가 문을 열자 선원들이 모이는 모습을 보았다.저 멀리 어둠 속에서 불을 밝히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는 커다란 배 한 척이 보였다.망원경도 없고 불빛도 어두워 두 아이는 표지판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전효를 찾아다녔다.하지만 해적들은 두 아이가 멀리 가기도 전에 아무런 경고도 없이 배의 선체를 향해 강제로 총격을 가했다.쿠르릉-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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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4화
지아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보통 이 시간이면 강욱이 과일을 가져다주곤 했는데 오늘은 어디 갔을까?어스름한 빛 속에서 그녀는 빗방울이 대각선으로 날아가 유리에 부딪히는 것을 보았다.비가 내리고 있다.지아는 이런 날씨가 너무 싫어서 잠을 청할 생각도 없는 듯 침대에 기대어 헤드폰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얼마나 지났을까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설마 해적이 온 걸까?’지아가 서둘러 헤드폰을 벗자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정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았다.지아는 문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라 조심스러웠고, 감히 함부로 뛰어다니지 못한 채 조용히 강욱의 소식을 기다렸다.하지만 강욱은 생각보다 빨리 들어오지 않았고, 지아는 긴장감을 참지 못하고 재빨리 문을 열고 달려 나갔다.지아는 불이 달린 배가 아닌 앳된 목소리에 이끌렸다.“사람 살려!”아주 작은 아이의 목소리였다.‘대체 어디서 온 아일까?’지아는 모성 본능에 어느 집 아이인지, 함정이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돌진했다.모퉁이를 돌아보니 한 소년이 작은 손을 죽기 살기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보였고, 시선을 돌리자 난간 바로 너머에 어린 소녀가 매달려 있었다.맙소사!지아는 자신의 안전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들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이 순간 해경은 이미 온몸의 힘을 다 써버린 상태라 소망을 잡아당길 수 없었고, 손바닥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는 소망의 작은 손을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오빠!”“안 돼, 하지 마!”소망이 내려가려는 순간, 공중에 나타난 큰 손이 소망의 작은 손을 잡아 떨어지려는 몸을 때마침 멈춰 세웠다.해경은 어안이 벙벙한 채 자신의 옆에 나타난 잠옷 차림의 여자를 바라보았다.몸의 절반이 난간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특히 소망을 잡아당기는 손은 피부와 뼈만 남은 마른 체구였다.지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잡았다.어린 소녀는 고개를 떨군 채 온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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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5화
소망이 바다에 빠지는 모습을 본 지아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었다.‘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이 어린 여자아이를 구하려 했는데, 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잔인한 걸까?’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해경이 울부짖었다.“소망아!”시선을 돌린 지아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을 마주한 순간 이성을 잃었다.한가지 생각이 지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미처 사실 확인하기도 전에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바로 참지 못하고 난간을 뛰어넘었다.머릿속엔 3년 전 임신했을 때 봤던 4D 영상이 가득했다. 얌전한 쌍둥이였다.이도윤과 닮은 여자아이는 밝고 활발하고 잘 웃었고, 자신의 얼굴과 닮은 남자아이는 얌전한 성격이었다.이 두 아이가 설마 자신의 아들딸일까?지아는 사랑하는 사람과 재회한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이별의 슬픔에 휩싸였다.모든 걸 뒤로 하고 해경을 향해 달려갔다.‘아가야, 그거 알아? 엄마는 오랫동안 너를 그리워했단다.’‘제발 무사해다오.’첨벙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는 시끄러운 배 위에서 마치 작은 돌멩이를 물속에 던진 것처럼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강욱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가장 먼저 지아의 방으로 달려갔다.방 안은 거센 바람으로 가득 찼고 사람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지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표정이 확 굳어진 강욱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모퉁이에서 겁에 질린 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렸다.소리를 따라가 보니 바닥에 앉아있는 작은 소년의 목에 뭔지 모를 물건이 매달려 있었다.“무슨 일이야?”해경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말했다.“동생, 아줌마, 바다에!”강욱은 알 듯 말 듯한 그 말에 다시 한번 되물었다.“혹시 이 정도 키에 아주 마르고 하얀 아주머니 봤어? 머리가 없어.”해경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켰다.“떨어졌어요, 떨어졌어요! 동생이 빠졌어요.”“동생이 물에 빠졌는데 아줌마가 동생 따라 뛰어들었다고?”“맞아요.”강욱은 미치기 직전이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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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6화
소망은 이미 바닷물을 몇 모금 삼키고 극심한 두려움에 주체할 수 없이 미친 듯이 몸을 떨고 있었다.“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널 구하러 왔어.”지아는 소망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소망도 어리고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상황에서 해적선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맹씨 아저씨는 이미 사람들을 시켜 해적선을 향해 물대포를 쏘며 반격하고 있었다.소녀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정신이 혼미해져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지아는 소망을 품에 안고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한 터라, 소망이 계속 발버둥을 치면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파도가 거세서 이미 바닷물을 몇 번이나 마신 상태였지만, 지아는 소망이 질식할까 봐 필사적으로 소망을 안아주려고 애썼다.하지만 누군가에게 힘을 빼앗긴 듯 몸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지아는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과 딸이 모두 목숨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때 지아는 자신의 몸이 건강하지 않아 딸을 구할 수조차 없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하늘에서 무자비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는 소망을 안고 바다에 떠 있는 지아의 얼굴을 강타했다.그녀는 신의 무자비함과 자신의 무력함을 원망했다. 이제 겨우 친딸을 찾았는데 왜 하필 이런 상황이어야만 했을까?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지아는 처음에 가졌던 굳은 마음이 서서히 바뀌었다. 육지에 도착한다 해도 뭘 할 수 있을까.해적들은 이미 오래전에 자신과 아이를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배를 타든 못 타든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지아는 힘이 다 빠져버린 채 소망을 꼭 껴안고 불빛 아래서 딸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아가, 너무 좋다. 엄마가 드디어 너를 만났구나. 미안해, 이제 막 만났는데 다시 헤어져야 해서.”그녀는 몸의 힘을 풀면서 딸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맞추었다.“아가야, 엄마는 널 정말 사랑해. 두려워하지 마. 죽든 살든 앞으로 엄마는 너와 함께할 거야.”지아는 죽음을 각오하고 소망을 안은 채 천천히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그런데 바로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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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7화
막 지아를 건져 올린 강욱이 큰 수건을 둘러주고 젖은 옷을 갈아입히기도 전에 지아는 소망의 행방을 물었다.그녀의 입술은 추위에 보라색으로 변했고 창백한 얼굴은 매우 불쌍해 보였다.“아가씨, 우리 살았어요. 아이는 군함에서 군의관이 아이의 건강을 확인하고 있어요. 추위에 떨지 말고 옷부터 갈아입어요.”“아니요, 보고 싶어요.”지아는 서둘러 침대에서 일어나 맨발로 밖으로 뛰쳐나갔다.복도를 걸어 내려가던 지아는 군복을 입은 남자들, 특히 손에 무기를 든 남자들의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위압감이 밀려왔다.그제야 지아는 자신이 맹국영의 배가 아니라 위압적인 군함에 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지아가 문밖으로 나오자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했다.지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움직임을 멈췄고, 긴장감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아는 온몸이 불편한 기분이었다.그때 뒤따라온 강욱이 말했다.“급해 말아요. 내가 데려다줄게요.”지아의 경직된 모습을 감지한 그는 손을 뻗어 지아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이쪽입니다.”지아는 마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숙였다.그러다 문득 강욱은 이 압박감 속에서 마치 집으로 돌아온 듯 편안해 보이는 걸 발견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침착한 표정과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고 그녀를 익숙하게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침대에 누워 아직 깨어나지 않은 어린 아이를 본 지아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다가갔다.눈을 꼭 감은 아이를 보며 지아는 군의관에게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선생님, 상태가 어때요?”지아를 대하는 상대방의 어투는 차갑고 위압적인 태도는 전혀 없이 매우 친절하고 다정했다.“소지아 씨 걱정 마세요. 애가 물을 좀 먹었는데 방금 다 뱉어냈어요. 아직 어려서 충격이 심했을 테니까 금방 깨어날 거예요.”지아는 안도하며 밝은 백열등 아래서 조용히 아이의 모습을 살폈다.뱃속에서만 보이던 흐릿한 윤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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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8화
강욱은 무심하게 대답했다.“아가씨 구조될 때 내가 말씀드렸어요.”“네, 이분... 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 먼저 나가볼게요.”왠지 지아는 의사가 마치 도망치듯 문밖으로 빠르게 나가는 것 같았다.강욱은 침착하게 말했다.“아가씨, 먼저 옷부터 갈아입으세요. 제가 가서 생강차를 가져다드릴게요.”“그래요.”방에 두 사람만 남은 상태에서 지아는 조심스럽게 소망의 옷을 벗겼는데, 이미 또래 아이의 키를 따라잡아 조산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손의 작은 상처를 제외하고는 몸도 하얗고 깨끗해서 전효가 잘 돌봐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지아는 큰 남자 셔츠로 소망을 감싸고 자신도 옷을 갈아입었다.그녀에게 건네진 옷도 같은 사이즈의 셔츠였는데, 허벅지 밑을 덮을 정도로 아래로 처진 길이가 더 길었다.지아는 서둘러 남자 바지를 입었다. 헐렁했지만 입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몇 분 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들어와요.”강욱은 생강차 외에 몸에 좋은 음식도 몇 가지 들고 왔다.“아가씨, 좀 어때요? 불편한 건 없나요?”지아는 딸과의 상봉으로 감격에 겨워 그제야 추위를 느꼈다.“좀 춥네요.”“추워요?”강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방은 이미 열기가 충분히 틀어져 있었고, 셔츠를 입고도 더위를 느끼는데 그녀는 춥다고?’지아가 추워하는 것을 본 강욱은 서둘러 손에 들고 있던 생강차를 건넸다.“몸을 따뜻하게 하려면 따뜻한 것을 마셔야죠.”“네.”지아는 단숨에 꿀꺽 삼킨 뒤 강욱이 여전히 젖은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왜 아직 옷을 안 갈아입었어요? 감기 걸릴 텐데.”“전 건강해서 감기도 잘 안 걸려요. 일 다 끝나고 갈아입어도 늦지 않아요. 건장한 남자에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지금 상황은 어때요?”지아는 이번에 다른 아이에게 애착을 보였다.강욱이 차분하게 설명했다.“군함과 해적들이 아직 포격을 주고받고 있어 전투가 좀 치열하지만 걱정 말아요. 맹씨 아저씨 선체가 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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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9화
천천히 얼굴에 붙은 얇은 막을 떼어내자 입체적인 그의 오관이 고스란히 거울에 비쳤다. 몇 달 동안 햇빛을 보지 않은 탓에 원래도 하얀 피부가 핏기가 전혀 없었고, 셔츠 앞섬이 다소 열려 있었다.중세기 뱀파이어처럼 우아하고 고귀한 모습이었다.그는 맨발로 피어오르는 물안개의 열기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샤워기의 물이 쏟아지며 검은 액체가 흘러나왔다.그가 다시 걸어 나왔을 때, 그에게서 풍기는 권위적인 기운을 숨길 수 없었다.가면 단추를 채우고 제복을 입은 후 지휘실로 곧장 걸어갔다.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다들 길을 비키며 군인 자세로 똑바로 서서 경례했다.“장관님.”이도윤이 큰 보폭으로 걸어 들어오자 평소 호탕하게 굴던 진봉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장관님, 해적선은 침몰했고 해적들 중 일부는 구명뗏목을 타고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단 한 명도 남기지 마.”“네.”“화물선 상황은 어때?”“저희 형님이 방금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왔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모두 안전하게 지킬 겁니다.”도윤은 울타리 옆에 있던 작은 꼬맹이를 떠올리며 걱정과 불안이 교차했다.당시 그 상황에서 다른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지아의 안위에만 정신이 팔렸었다.아이가 살아있다는 생각에 그는 행복하면서도 다소 긴장했다.조금 전 일부러 떠보았을 때 지아가 그의 이름도 언급하지 않으려는 걸 보아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을 미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그런 지아가 자신이 두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놔둘 리 없었다.치열한 전투 끝에 해적들은 모두 생포되거나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고, 단 한 명도 빠져나가지 못했다.맹국영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하느님, 부처님께 비느라 바빴다. 오늘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의 목숨은 끝장났을 것이었다.화물 빼앗기는 건 둘째 치고, 해적이 배에 오르면 모두 죽을 운명이었을 테니까!일찍이 배를 운영할 때 해적과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 악마들의 수법을 겪은 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오늘 운 좋게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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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0화
도윤이 군함으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지아는 고열에 정신이 혼미한 채 온몸이 뜨거우면서도 춥다고 중얼거리고 있었다.군의관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장관님, 소지아 씨에게 이미 약을 먹였지만, 현재 특별한 상황이라 열이 내리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다행히 군함에는 의료 장비가 가득했고, 도윤은 지아의 곁을 지키며 열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아직 날이 밝지 않아 밖은 여전히 회색빛이 감돌았고, 바다의 포효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도윤은 옷을 덮고 지아 옆에 누워 안쓰러운 눈빛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그동안 두 사람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도 도윤은 항상 다른 사람인 척해야 했고, 지아를 똑바로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않아서 그녀의 의심을 여러 번 샀다.다행히도 도윤은 굳건한 멘탈로 잘 숨길 수 있었다.도윤은 손을 뻗어 조용히 잠든 지아의 얼굴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피부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체온은 펄펄 끓고 있었다.솜털처럼 삐쭉 솟은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며 이도윤은 더욱 자책했다.그는 나지막이 속삭였다.“지아야...”지아는 무슨 꿈을 꾸는지 이마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어눌한 말을 내뱉었다.도윤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럽게 등을 토닥이며 달랬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여기 있으니까.”지아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자신은 김민아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났던 그 해로 돌아갔다.그때 두 사람은 젊고 활기차고 기운이 넘쳤으며, 세계의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다짐했다.그날 밤, 바다는 풍랑과 폭풍우가 몰아쳤고, 호화 유람선은 난파되어 바다에 빠져버렸다.지아는 공포에 질려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바로 그때 하늘에서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내려와 자신의 귓가에 속삭였다.“겁내지 마, 나 여기 있어.”남자의 팔은 강하고 힘차게 자신의 허리를 꽉 움켜잡고 있었다.지아는 당황한 나머지 남자의 목을 껴안고 그와 함께 떠올랐다.분명 낯선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강한 안정감을 주었다.당시만 해도 순박하고 착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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