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릴리가 갑자기 실종되는 바람에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이었다.다치지도 않았고, 소문이 가짜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사라지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육시준은 바로 신하균에게 문자를 보냈다.강철우도 고성 그룹에 전화해서 물었고, 바론 공작과 강미영도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릴리를 찾기 시작했다...강릴리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때, 가냘프고도 익숙한 그림자가 집안으로 걸어들어왔다.“맛있는 냄새. 뭐 드시고 계세요?”“...”온 가족이 밥상 앞에 모이고, 화제가 순식간에 바뀌었다.강릴리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그녀를 나무라기 시작했다.“방에서 자지 않고 왜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건데?”“잠이 안 오는데 어떻게 자요?”“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못 들었어?”“밖에 나쁜 남자가 얼마나 많다고! 그렇게 밖에서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어젯밤...”마지막 이 한마디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겉보기에 걱정되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노파심에 불안했기 때문이다.바론 공작은 바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아챘다.“그냥 네가 알고 지내는 사람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말했을 뿐이지 모든 남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야.”자기도 포함시켜 욕하면 안 되었다.딸한테 잘 보여야 할 판에 흠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제가 어제 나가서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너무한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하마터면 다시 만나지도 못했는데... 왜 화만 내고 그러세요!”강릴리는 억울한 듯 입을 삐쭉 내밀었다.하지만 그래도 갈비찜이 너무 맛있어 보였는지 한입 베어 물었다.강철우가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했다.“그러니까! 왜 그러는 거야! 급한 건 알겠는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살살 말하면 되잖아.”“저...”“맞아요. 너무했어요! 다음부턴 살살 말씀하세요. 릴리야, 어젯밤 그놈이 뭐라고 했는데?”강미영이 물었다.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
아무리 한 치도 오차 없이 계획했다고 해도 순조롭게 흘러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육시준은 나중에 신하균의 전화를 받아서야 릴리와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우신 오빠가 데리러 와서 제가 궁금해하던 화제를 꺼내길래...”릴리는 우물쭈물 속았던 과정을 상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마침 강유리가 궁금했던 것도 다른 부분이었다.“그 사람이랑 갔는데 하균 씨가 뭐라고 안 해?”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픽업하러 온 사람이 있어서 데리러 올 필요 없다고 문자 보냈거든요.”“이 좋은 기회를 잡지 그랬어.”바론 공작도 강유리의 의도를 알고 물었다.“아니, 제가 한 말이 사실이라니까요! 관심이 없다는 데 왜 다들 안 믿는 거예요?”릴리가 멈칫하더니 이어서 말했다.“하균 씨도 저를 좋아하지 않아요.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대하고 있다니까요.”“...”잠깐 침묵의 시간이 다가왔다.강유리는 그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릴리는 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긴 해도 마음이 식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달랐다...강유리가 잠깐 생각하더니 물었다.“마음이 맞는다는 그 사람이랑은 정말 남녀 사이의 관계인 거야? 만약 하균 씨가 너를 좋아한다고 해도 포기할 거야?”릴리는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딱히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더욱이 가능성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차라리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저는 진짜로 벌어질 일도 아닌 것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말라고요. 다른 얘기 좀 해봐요. 어젯밤 고한빈 씨가 하는 행동을 보면 무조건 외국에 손잡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아빠는 언제 돌아가려고요?”총명한 릴리는 화제를 바론에게 돌렸다.바론이 여기 남아있는 이유는 훤히 보였다. 그래서 바론과 강유리가 더는 침묵하지 말고 문제를 직시하라고 일부러 끄집어냈다.고개 숙여 밥먹고 있던 강유리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다.여느 때와 같이 이 일은 자신과 아무런
정확하고 냉정한 대답에 바론 공작은 순식간에 얼굴이 창백해졌다.분위기가 다시 처지기 시작하자 강철우가 수습해 보려고 했다.“그만하고, 밥부터 먹자고. 릴리가 무사하면 됐지. 아니면 엄마랑 아빠가 죽을 때까지 자책할 뻔했어.”“왜 자책하는 건데요?”릴리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는 억지 부리지 않고 할아버지와 대화를 이어갔다.“왕소영이랑 성한일이 Y 국에 간 걸 진작에 알고 있었어. 최근에 계좌에 큰돈이 들어갔는데도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어.”“...”릴리는 믿기지 않는 듯이 물었다.“계좌에 큰돈이 들어왔다고요? 저는 왜 확인하지 못했죠? 그러니까 제가 확인한 것은 고성 그룹에서 일부러 저한테 보여준 거네요?”“고정철은 몇 년 동안 서울에서 몰래 지내고 있으면서 그래도 아는 사람이 많아. 너는 아직 잘 몰라서 당하기 일쑤지.”강철우가 위로했다.릴리는 그제야 반응하면서 육시준을 쳐다보았다.“그 회사에 계좌 이체한 내역을 찾아내지 않기를 원했겠네요? 그래서 상대방이 눈치챌까 봐 더는 확인하지 말라고 한 거예요?”윤시준은 강유리에게 국물을 떠주더니 대답했다.이미 예상했던 반응인 것만 같았다.세상이 아무리 시끄럽다고 해도 그저 강유리에게 국물을 떠주고 싶은 모양이었다.릴리는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와이프를 끔찍이 생각하는 남자가 몰래 이렇게 큰일을 벌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당사자인 릴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엮여 들였다니.릴리가 한참 동안 말이 없자 육시준은 그녀가 충격을 받았을까 봐 위로했다.“할아버지 말씀이 맞아. 고정철은 서울에서 세력이 막강해. 너는 아직 잘 몰라서 그 사람한테 져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지.”인생 후배한테 이런 가르침을 주는 것은 괜찮았지만 밥상머리에서 어른들이 있는 앞에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특히 바론과 강미영은 어제부터 이 일을 묻고 싶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미루기로 한 것이다.언급된 이상 끝까지 물을 수밖에 없었다.“다음부터 이런 중
툭.육시준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 들어 강미영을 차갑게 쳐다보았다.“작은이모 말씀이 맞으세요. 한집안 식구끼리 숨기는 거 있으면 안 되죠. 제가 비밀로 하면 안 되었어요.”강미영은 한숨을 내뱉더니 부드러운 말투로 변했다.“내 뜻을 알아줘서 고마워...”“그런데 저는 예전에는 이런 도리를 모르고 계실 줄 알았어요.”“...”강미영은 무언가 깨달은 듯 표정이 확 변했다.병원에서 싸웠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 순간 역할이 바뀐 듯했다.속은 사람과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하지만 속은 사람은 언제나 불공평하다고 느꼈다.강유리는 우두커니 육시준을 바라보았다.육시준은 바론 공작을 바라보더니 계속해서 말했다.“이 일은 릴리가 피해를 보지 않게 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래서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순 없죠. 속였던 건 걱정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아버님께 곧 귀국해야 하는 어려움을 떠안겨 드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이해되시겠어요?”아주 설득력 있는 설명이었다.바론 공작은 이해가 안 되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귀국할지 말지든 더 자세히 고민해봐야 했다.‘나를 위해서 그랬다고 해도 일부러 안 알려줄 일은 아니잖아?’바론 공작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뻥긋하자 육시준이 먼저 물었다.“할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강철우는 겪을 만큼 겪어본 나이라 그의 말뜻을 모를 수가 없었다.그는 바로 반응하면서 늘 그랬듯이 어영부영 넘어갔다.“그럼! 다 너의 아버님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 모든 걸 이해하실 거야!”바론 공작이 강미영과 강유리에게 설명할 때도 은근슬쩍 바론의 편을 들어준 그였다.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때 강유리를 도와주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애써 좋은 할아버지로 남고 싶었다.가정이 화목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하지만 누구라도 바론을 도와줬을 것이다.바론은 이해하지 못하고 흥분하기 시작했다.“이해는 하는데 우리를 속인 건 받아들일 수 없어! 날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너...!”“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나쁜 자식들!”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헉!”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방금 전
한편, 육시준 역시 갑자기 나타나 계약 결혼이네 한달에 천만 원이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강유리를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있던 그가 손을 내민 곳은 뒤쪽이었다.“자료 좀 주실래요?”어젯밤 차에 남긴 정보에 따라 비서가 이미 강유리의 뒷조사를 완벽히 끝낸 상태.무표정으로 태블릿 PC를 넘기던 육시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1000만원은 너무 적지 않나? 적어도 0 하나는 더 붙여야지. 그래야 육씨 집안 사모님이란 타이틀에 걸맞을 테니까.”목소리에서 묘한 위압감이 느껴졌지만 강유리는 0 하나는 더 붙여야 한다는 말에 꽂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하이고? 요즘 호스트는 가격 흥정을 이렇게 하나? 하긴, 저 얼굴에 저 분위기에... 부잣집 사모님 한 명 제대로 잡으면 월에 억은 쉽게 받겠어. 하지만...’“5000만원, 이 정도에서 끝내지. 적당히 해.”해외에서 매달 임천강에게 용돈 명목을 부쳐준 돈이 겨우 2000만원 남짓, 강유리가 부자인 건 사실이지만 이런 일로 호구 잡힐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다.이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육시준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런데... 5000만이든 1억이든 누가 누구한테 주는 거지?”“내가 그쪽을 고용했으니까 당연히 내가 주는 거지.”이에 육시준은 다시 강유리의 얼굴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얼핏 얼핏 보이는 요염함이 매력적인 정교한 얼굴, 지금까지 그의 돈에 빠져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던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만만함을 넘어 어딘가 고고하기까지 한 눈빛...‘연기하는 것 같진 않은데...’“좋아.”잠시 후 얘기를 마친 두 사람은 카페를 나선다.하지만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강유리는 우뚝 멈춰서더니 익숙한 롤스로이스에 시선이 꽂힌다.“왜 그래?”“아무것도 아니야.”강유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내가 저 차 주인한테 빚을 좀 진 게 있거든.”강유리를 보는 육시준의 눈이 또 묘하게 변하고...비서 역시 상황이 묘하게 변하고 있다 싶지만 육시준의
충격으로 일렁이는 육경서의 눈동자는 제발 이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말해 달라고 호소하는 듯했지만 육시준은 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비서에게 분부했다.“강유리, 그리고 그 집안에 대해 제대로 알아봐줘요.”3년 동안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사라졌다가 귀국하자마자 결혼이라니.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을 강행하는 걸 보면... 뭐에 쫓기는 듯한데.육시준은 그 답이 그녀의 집안에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알겠습니다. 해외 유학생활에 대해서도 알아볼까요?”어제 비서가 급하게 구한 자료에선 그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3년 간 도피 유학을 떠났다는 정보가 전부, 그 3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적혀있지 않았다.“아니요.”‘그건 그 여자 입으로 직접 들어야겠어...’하지만 육경서는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모습이다.여기 오면서 비서에게 대충 들은 바로는 어제 일부러 육시준 차에 스크래치를 내놓고 오늘 못 알아보는 척 결혼 제안을 한 여자라던데...‘아무리 생각해도 꽃뱀 같단 말이야. 뭔가 냄새가 나... 구린 냄새가...’“형, 그 여자 진짜 형 얼굴 모르는 거 맞아?”서울시에서 한정판 롤스로이스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육시준 한 사람뿐.그의 차가 곧 그의 얼굴이자 이름 같은 존재인데 아무리 갓 귀국했다지만 그걸 못 알아봤다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동생의 질문에 잠깐 고민하던 육시준 역시 고개를 저었다.“글쎄..”“그런데 왜...”“내가 알아서 해.”동생의 말을 잘라버린 육시준이 말을 이어갔다.“아, 아주머니한테 내 짐 좀 정리해 달라고 부탁해 줘. 오늘부터 와이프랑 같이 살아야 하니까.”한편, 강유리는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병원에 들른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마침 저녁 시간, 문 앞에 차를 댄 강유리는 검은색 철문 옆에 적힌 글씨를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성홍주”강민영이 세상을 뜬 뒤로 성홍주는 강유리가 아직 어리다는 핑계로 재산을 전부 빼앗은 것도 모자라 첫사랑과 낳은 사생아까지 집안에 들였다.빨리 어른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