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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

“너...!”

“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

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

“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

‘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

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

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

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

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

“나쁜 자식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

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

“헉!”

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

방금 전 그녀가 찬 조약돌이 매끈한 라인에 아름다운 스크래치를 만든 것을 발견한 강유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 재수가 없으려니까. 애초에 이렇게 비싼 차를 왜 길가에 세워놓고 난리야.’

차 가까이 다가간 강유리는 안에 사람이 없는 걸 발견하고 핸드백에서 메모지를 꺼내 간단한 메시지와 연락처를 남긴 뒤 자리를 떴다.

‘임천강 그 자식 때문에 별일을 다 겪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어디야? 같이 술이나 먹자.”

그녀가 자리를 뜨고 얼마 후, 롤스로이스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다운 라인에 옥의 티 같은 존재인 스크래치를 바라보던 남자가 미간을 살짝 찌프리고... 긴 손가락으로 창문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어낸다.

“미안, 실수로 차에 스크래치를 냈네요. 튀는 게 아니라 진짜 시간이 없어서 가는 거니까 아래 연락처로 연락해요. 010...”

“대표님, 굉장한 미인인데요?”

바로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기사가 달려왔다.

영상에는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가 차 안쪽을 들여다 보더니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메모를 남기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피식 웃던 육시준이 기사에게 물었다.

“이번 달에 이게 벌써 몇 번째지?”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던 기사가 대답했다.

“벌써 아홉 번째입니다. 대표님, 차 바꾸는 게 싫으시면... 회장님 말씀대로 선이라도 보시는 게...”

손가락으로 포스트잇을 만지작거리던 육시준이 대답한다.

“강준이한테 부탁해 보든지.”

한편, 시내의 유명 바.

벌컥벌컥 술을 마시던 강유리가 술잔을 쾅 하고 내려놓고...

그녀의 눈치를 살피던 소안영이 빈 술잔을 살짝 멀리 밀어버린다.

“야, 그냥 실연 한번 한 걸로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세상에 널린 게 남자야. 이참에 너도...”

하지만 강유리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는 듯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친다.

“누가 지금 헤어진 것 때문에 그래? 그 자식 바람 피웠어. 그것도 성신영이랑.”

강유리의 설명을 듣던 소안영의 눈이 동그래진다.

“헐, 그럼 그 자리에서 죽였어야지.”

“왜 하필 성신영이야? 내 돈으로 성신영 그 계집애한테 이것저것 사서 바쳤을 거 생각하면...”

말을 하면 할 수록 화만 치밀고 강유리는 다시 술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소안영은 더 이상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차라리 다른 상대였다면 그저 똥 한번 밟았다 셈 치고 쿨하게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강유리라면 아마 결혼 전에 그딴 쓰레기인 걸 알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했을지도.

하지만 하필 바람 상대가 성신영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강유리의 아버지가 낳은 사생아, 그녀를 배신하고 만난 여자가 성신영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자존심을 짓이겨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 결혼할 거야.”

술잔을 쾅 하고 내려놓은 강유리가 선언했다.

“야, 미쳤어? 임천강 그딴 자식이랑 왜...”

“누가 걔랑 한대? 네 말대로 이 세상에 널린 게 남자잖아. 네가 아는 호스트들 중에서 착하고 잘생긴 애로 소개해 줘. 내일 바로 혼인신고 하러 간다.”

강유리는 한번 한다면 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소안영은 전화번호부를 수놓은 수많은 남자들 연락처 중에서 몇 개를 골라 문자로 보내주었다.

다음 날.

부스스 일어난 소안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복수 때문에 벼락 결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강유리에게 전화를 걸어 본다.

약속 장소로 향하던 강유리가 발신인을 확인하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네가 보낸 프로필은 다 확인했어. 지금 바로 만나보려고.”

“하, 강유리 실행력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그래도... 다른 것도 아니고 결혼인데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좀 이성적으로 생각해 봐.”

“내 인생에서 지금보다 더 이성적인 적은 없었어.”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굳이 이런 방법으로 할 필요는 없잖아? 결혼을 호스트랑 한다는 게 말이나 돼? 너희 집안이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라지만 이건 아니지...”

“아, 됐고. 저기 보인다.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직접 보고 확인할게.”

전화를 끊은 강유리는 창가 쪽에 앉은 남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2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외모,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물컵을 잡은 라인 잘 잡힌 손과 탄탄한 손목에 걸린 비싼 시계.

‘하, 호스트 주제에 귀티가 좔좔 흐르네. 부잣집 사모님들이 좋아하겠어.’

어깨를 으쓱한 강유리는 바로 남자의 맞은 편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불쑥 나타난 강유리의 모습에 물을 마시던 남자가 살짝 멈칫하고 본인보다 더 당황한 비서가 다가가려던 그때, 남자가 손을 살짝 들어 그를 저지한다.

“구체적인 상황은 안영이한테서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결혼은 어디까지나 허울이에요. 결혼하고 나서 누굴 만나든 간섭하지 않을게요. 대신 이 두 가지 조건만 지켜줘요. 다른 사람들한테 나랑 결혼했다고 함부로 떠들지 않기, 그리고 필요할 때 우리 가족 앞에 얼굴 비추기. 어때요?”

따발총처럼 할 말을 뱉어낸 강유리는 남자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페이는 한 달에 1000, 어때요?”

‘500 정도로 퉁 치려고 했는데 이 정도 얼굴이라면... 1000은 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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