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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정신이 든 강유리는 침대 위라는 것도 잊고 후다닥 뒤로 물러나고 그만 우스운 꼴로 그대로 침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악!”

낮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잠시, 고통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강유리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려보았다.

그리고 미의 신마저도 질투할 것만 같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잘생긴 얼굴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엔 온통 소안영이 소개해 주려던 사람은 그녀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만 가득할 뿐이었다.

“너... 도대체 누구야?”

이불이 걷히고 육시준의 나체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그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야. 어제 있었던 일 다 까먹은 거야? 이렇게 무책임해도 돼? 여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여보라는 호칭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리는 어색하게 시선을 돌려 보지만 휴대폰에서 들리는 소안영의 호들갑 섞인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뭐야! 강유리, 아까 그거 남자 목소리 맞지! 너 귀국한 지 이제 3일째야. 그런데 남자는 어디서 만난 거래? 그리고! 집에까지 들여? 너 정말 미쳤어?”

“내가 조금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강유리는 숙취로 욱신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전화를 끊었다.

사실 대외적으로 강유리는 클럽 죽순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주량은 그 명성에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필름이 끊기기 전, 강유리의 마지막 기억은 서로 결혼 축하한다며 와인잔을 부딪히는 것이었으니...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차마 침대 위에 누운 남자의 나체는 쳐다보지 못하고 이불에 감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보던 강유리의 얼굴이 다시 화끈 달아올랐다.

하지만... 잠시 후, 겨우 이성을 되찾은 강유리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느낌이 이상한데?’

이어 그녀의 시선이 베이지색 침대 시트로 향하고...

아무런 흔적도 없는 시트를 확인한 강유리는 어느새 쑥스러움을 씻어버리고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육시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가 공격을 날리기도 전, 육시준이 불쑥 한 마디 던졌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나 보지?”

‘흥, 아무것도 안 해놓고 잘난 척 하기는...’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확신한 강유리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내가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 여자인데.”

도도한 표정으로 대답한 강유리는 이불을 육시준의 머리 위로 휙 던진 뒤 부랴부랴 방을 나섰다.

욕실에서 물 소리가 들리고 이불을 걷어낸 육시준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정말 확실해졌네. 저 여자 내가 누구인지 정말 모르는 거야.’

30분 뒤, 샤워를 마친 강유리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 어제 조금만 신중했어도 이름이 다르다는 걸 눈치챘을 텐데...’

소안영이 그녀에게 소개해 준 남자의 이름은 유이한, 하지만 어제 나랑 혼인신고를 한 남자 이름은 육시준이었지...

이때, 안방 욕실 물소리가 멈추고 역시 샤워를 끝낸 채 허리춤에 샤워 타올을 묶은 육시준이 거실로 걸어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의 기운을 타고난 듯한 고고한 자태, 평범한 사람은 눈 조차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포스, 그리고 머리카락 끝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의 움직임 뒤로 보이는 섹시한 몸매.

‘내가 결혼에 눈에 멀었었나 봐. 저 남자... 어딜 봐서 호스트야.’

“그렇게 멋있어?”

이때 귓가에 들리는 육시준의 목소리에 강유리가 흠칫했다.

“그냥 뭐, 봐줄만 하네.”

그리고 강유리가 테이블에 놓인 혼인신고서를 가리키며 물었다.

“해명 좀 해보지?”

뜬금없는 질문에 머리를 닦아내던 육시준의 손이 살짝 멈칫했다.

“뭘?”

“내가 결혼하려던 사람은 네가 아니었어. 난 착각할 수 있다고 쳐. 그런데 그쪽은 아니잖아? 갑자기 모르는 여자가 나타나서 다짜고짜 결혼하자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오케이 한 거야?”

하지만 육시준의 관심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샤워 가운에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올린 그녀,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이었지만 생얼은 생얼 나름대로 청초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아직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는지 살짝 달아오른 볼까지 풀어지고 귀여운 겉모습과 달리 사무적이고 딱딱한 목소리로 따져묻는 걸 보니 지금 심각한 분이귀에 어울리지 않게 웃음이 새어나올 것만 같았다.

“옷부터 입고 와.”

‘하, 말 돌리는 것 좀 봐. 누가 들으면 내가 헐벗고 있는 줄 알겠어.’

하지만 다음 순간,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던 강유리는 다리를 꼬느라 샤워 가운이 살짝 올라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난 걸 발견했다.

“큼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강유리는 꼬고 있던 다리를 풀고 계속하여 육시준을 노려보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렇지 않다는 듯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하, 얘 도대체 뭐야...’

나름 걸크러시, 기 센 여자라고 자부하는 강유리였지만 왠지 육시준 앞에만 서면 담임선생님 앞에 선 고등학생이라도 된 듯 기가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은 강유리는 변신 수트를 입은 히어로처럼 더 의기양양한 얼굴로 모습을 드러냈다.

팔짱을 낀 채 소파에 앉은 육시준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제대로 해명하는 게 좋을 거야.”

역시 깔끔한 홈웨어로 갈아입은 육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헐렁한 옷 사이로 살짝 드러난 쇄골을 본 순간, 강유리의 머릿속에 어젯밤의 단편이 스쳐지났다.

‘허, 어제... 내가 먼저 덮친 것 같은데... 이거 실화냐?’

“그쪽이 제시한 조건이 너무 끌려서 말이야.”

강유리의 질문에 육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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