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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신하균은 입을 닫고 시선은 꼿꼿이 앞을 보며 침묵했다.

가로등 불빛은 흐릿했고, 얼룩덜룩한 나무의 그림자가 차 안으로 비췄다. 신하균의 칼날 같은 윤곽에 부드러운 느낌을 더해줬다.

릴리가 큰 눈을 깜빡거리며 신하균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생각해 보니 고정남은 최근에 이혼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저를 상대할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그럼 JL빌라로 가죠."

신하균은 차가운 목소리로 릴리의 말을 끊고는 경고했다.

"거리."

릴리는 개의치 않고 신하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귀여운 말투로 칭찬을 구했다.

"지금 유지하고 있잖아요. 신체접촉은 안 할게요. 그러면 차에서 내쫓길 테니까."

"..."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지난번에도 릴리는 자꾸 스킨십을 시도해서 차에서 내쫓겼었다.

신하균은 왠지 릴리가 일부러 하지 말란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이전에 릴리에게 했던 무뚝뚝한 말들에 복수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나 그의 추측이 맞았다. 릴리가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가 억지로 타려고 한 게 아니라 당신이 저를 초대한 거에요. 또 저를 내쫓으면 정말 너무 한 거예요."

따뜻하고 달콤한 호흡이 목에 닿았다. 술 냄새도 조금 풍겨졌다.

신하균은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기가 취한 사람인 것처럼.

릴리는 그가 애써 참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한바탕 웃었다.

릴리는 단점이 있다. 장난에 정도를 모르는 것이다. 릴리는 원래 규칙을 지키고 진지하던 사람이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재밌어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신하균을 바라보고 있던 릴리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그의 목에 다가가 냄새를 맡았다.

"아니면 제가 당신 집으로 갈까요? 어때요?"

갑자기 가까워진 호흡에 신하균은 온몸이 뻣뻣해졌고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피했다.

핸들도 연달아 비뚤어졌다.

신하균은 눈썹을 찌푸리고 나지막이 경고했다.

"강릴리!"

"강릴리는 제부가 만들어 준 가짜 이름이에요. 제 진짜 이름은 릴리 캐번디시고요. 앞으로는 릴리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더 친근하게 느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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