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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그야…….”

임유진은 손에 들고 있던 한 입 남은 찐빵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예전 같았으면 맛없다고 투정 부렸을 테지만, 지금 그녀에게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배를 채우면 되는 거였다.

“우리는 많이 닮았으니까? 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이잖아. 어쩌면 그 누구도 우리를 원하지 않을 거고, 관심을 주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말을 마친 그녀는 강지혁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희망과 기대 속에 김장감도 섞여 있었다.

“그런가? 하긴, 우리가 비슷한 부류긴 하지…….”

진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그의 눈은 마치 덫에 걸린 동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진혁에게는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가질 수 있는 그에게 삶은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유진의 말은 꽤 흥미로운 게임으로 다가왔다.

“누나.”

그는 유진이 그토록 바라던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순간, 유진의 미소는 봄에 핀 꽃들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

저녁을 먹고 난 뒤, 유진은 지혁을 데리고 야시장으로 가, 그가 입을 옷을 샀다. 분명 세일하는 싼 옷을 골랐지만 금액은 10만원을 훌쩍 넘었다.

하지만 유진은 뿌듯한 마음으로 지혁에게 새 패딩을 입혀줬다.

“따뜻하지?”

“응.”

지혁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자신과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나는 아담한 유진을 바라봤다.

“사실 안 사줘도 돼. 원래 있던 옷으로도 충분해.”

“충분해도 새 옷을 입을 순 있잖아. 물론 돈이 없어서 많이는 못 사주지만, 적어도 너한테 옷 한 벌 정도는 사줄 수 있거든?”

“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

진혁은 나지막이 물었다.

“그야 내가 네 누나니까.”

유진은 싱긋 웃으며 지혁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우연히 닿은 차가운 그의 손에 유진은 양손으로 감싸 입김을 불어주며 이리저리 비벼댔다.

“손이 너무 차가운데? 이렇게 문지르다 보면 좀 따뜻해질 거야.”

스스럼없는 여자의 행동에 지혁은 약간 굳어버렸고 앞머리에 가려진 두 눈은 가늘게 접혔다. 생각해 보니 그 어떤 여자도 그의 손을 녹여주기 위해 손을 비벼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하는 진혁이었지만, 왠지 유진의 손길엔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라 그런가?’

진혁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진은 내내 돌아오지 않는 그의 반응에 뭐라도 생각난 듯 굳은살이 박인 자기 손을 힐끗 바라봤다.

“내 손이 너무 거치네, 계속 비비면 아프겠다.”

이윽고 다급히 그의 손을 놓아버렸다.

순간 손을 감싸던 온기가 사라지자 지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거칠다는 생각 한 적 없어. 아직 추워, 누나가 좀 더 녹여주면 안 돼?”

그 말과 함께 다시 손을 내미는 그의 모습에 유진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바로 다시 진혁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 그의 손에 비해 유진의 손은 너무나도 작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밤, 그녀의 작은 손은 커다란 남자의 손을 최대한 감싸려고 애쓰며 손바닥과 손등을 반복적으로 문질러댔다. 심지어 고개를 숙인 채 이따금 그의 손을 향해 뜨거운 입김을 불어댔다.

추위에 붉어진 코끝을 하고 애쓰는 그녀의 모습은 지혁의 눈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지혁은 당황스러워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작은 손에 감싸진 자기 손을 바라봤다.

‘정말…… 따뜻해진 것 같네.’

……

다음 날, 유진은 이복동생인 이유라의 전화를 받았다.

[언니, 오늘 아빠가 앨범을 모두 버리겠다고 하는 걸 내가 겨우 뜯어말렸어. 지금 내가 갖고 있는데 잠깐 여기로 올 수 있어?]

유라의 말을 들은 순간 유진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 유라가 말한 앨범은 3살이 되기 전,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모아 놓은 사진첩이었다.

[언니가 안 오면 아빠가 또 버린다고 난리 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유라는 사람 좋은 목소리로 유진을 꼬드기고는 주소를 불러준 뒤, 상대방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유진은 전화가 끊긴 휴대폰 화면을 한참이고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유라가 아무 대가 없이 앨범을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 어머니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누나?”

진혁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나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린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혁아,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너 먼저 자.”

짤막한 말을 내뱉고는 황급히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 그녀는 남자가 자기를 빤히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한달음에 유라가 말한 곳에 도착한 유진은 그제야 그곳이 클럽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게다가 유라가 말한 룸에 들어갔을 때, 안에는 유라뿐만 아니라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뚱뚱한 중년 남자도 함께 있었다.

“유라야, 혹시 이분이 언니셔? 몇 년 전 그 서씨 집안 도련님의 여자친구?”

남자는 룸에 들어온 유진을 보자마자 위아래로 기분 나쁘게 훑어보았다.

“네, 하 감독님. 제 언니예요. 언니, 이분은 우리 촬영팀 하 감독님이셔. 언니가 예전에 소민준 여자친구였다는 말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서 불렀어.”

“앨범은 어디 있어?”

유진은 히죽 웃으며 소개하는 유라를 무시한 채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건 언니가 하 감독님께 나에 대해 좋은 말 많이 해주고 난 다음에 보자고. 하 감독님이 기분 좋아서 나한테 좋은 역할을 주시면 앨범 그딴 거 바로 줄 테니까. 다 언니 하기에 달렸어.”

유라의 말은 지극히 위협적이었다.

“이왕 왔으니 술 한잔 받아요.”

하감독은 빈 와인잔에 술을 넘쳐날 정도로 부은 채 유진에게 마시라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유진은 입을 꾹 다문 채 유라를 빤히 바라봤다.

보아하니 유라는 유진을 이용해 좋은 역할을 얻어낼 작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유라는 와인잔을 집어 유진에게 건넸고,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낮게 경고했다.

“언니, 애초에 언니 때문에 내 기회가 날아갔으니 지금이라도 보상해 주는 게 맞잖아? 게다가 언니가 꼴에 하 감독님의 마음에 들면, 앞으로의 인생이 필지 누가 알아? 다 언니를 위해서야.”

“이딴 더러운 말을 맨정신으로 말하는 건 또 처음 보네.”

유진은 고민도 없이 술잔을 옆으로 밀었고, 그 바람에 술은 모두 쏟아지고 잔은 깨져버렸다.

이에 유라는 화가 난 듯 이를 악물었다.

“앨범 갖기 싫어?”

“내 몸을 팔아서 앨범을 받을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어. 그건 우리 엄마도 바라지 않을 거고.”

하지만 유진이 몸을 돌려 룸을 나서려고 할 때, 하 감독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하, 이렇게 나오시겠다? 자기가 아직도 소민준의 여자 친구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이미 유라한테 다 들었어. 당신 요즘 길바닥에서 청소나 하고 있다며? 그런 주제에 내가 술을 권하면 영광인 줄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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