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리는 서준혁과 함께 왕 대표님과 신기철을 만나러 가겠다고 고집했고 그녀는 신기철이 그녀의 이름을 팔면서 서준혁을 모함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전에 누군가 그녀는 책임감이 너무 강해서 무슨 일이든 자신이 다 처리해야 한다고 했었지만 그녀는 단지 자신 때문에 남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서준혁도 포함이었다.그녀의 뼛속까지 강한 고집과 집요함이 지금의 그녀를 만들었으니 이 성격을 바꿀 수 없었다.포시즌스 호텔에 차를 세웠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밝았던 하늘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신유리는 원래 오늘 날씨가 좋은 줄 알고 옷을 얇게 입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불어서 약간 쌀쌀했다.서준혁은 그녀의 어깨에 트렌치코트를 걸쳐주었다. 옷에는 아직 그의 따뜻한 체온이 남아있었다. 그는 신유리의 뒤에 선 채 덤덤하게 말했다.“또 기절하면 이번엔 보름이나 입원해야 해.”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가 말했었다. 다시 태기를 건드리면 더 오랜 시간을 들여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신유리는 입술을 오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준혁을 따라 들어갔다.어느 방문 앞을 지날 때 신유리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더니 지난번 신연이 바로 여기서 그녀에게 신기철의 영상을 보여주었던 게 생각났다.그들은 아직 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안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를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신유리는 서준혁의 뒤를 따라 눈을 내리깐 채 마음속으로 잠시 후 신기철을 보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했다.신기철에 대해 신유리는 생각이 많았다.적어도 부산시장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여전히 신기철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생각이 많은 그녀는 발걸음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이를 눈치챈 서준혁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지금이라도 가도 돼.”신유리는 그를 보는 순간 쓸데없는 생각이 모두 사라졌다.잠시 후 그녀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일은 해결해야지.”서준혁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문이 막힌 듯 코웃음을 치며 돌
그는 신기철을 보고 한 말인데 다만 이 말에 신기철이 어떻게 대답하란 말인가?서준혁은 신기철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무심코 말했다.“하지만 신기철 씨를 보니 확실히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게 아니면 딸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문안조차 오지 않을 리 없겠죠.”서준혁의 말에 신기철은 어리둥절해졌다.하지만 그도 반응이 빨라서 이내 놀란척하며 가슴 아픈 표정을 지으며 신유리에게 물었다.“뭐? 유리야, 입원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전화를 몇 통이나 치고 문자를 몇 개나 남겨도 말이 없길래 몰랐어.”그러더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지금은 좀 어때? 다시 가서 검사 안 해도 되겠어?” 서준혁은 입가에 의미 모를 웃음을 지은 채 비아냥거렸다.“그날 당신이 좀만 더 심하게 손을 썼더라면 지금쯤 병원에 가서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서준혁은 워낙 입이 독한 데다가 신기철에 대한 비웃음을 아끼지 않았다.신기철은 자신이 신유리에게 손을 댄 일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으니 서준혁이 그를 도와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신기철은 안색이 정말 안 좋아 보였다. 다만 그가 말을 하기도 전에 아까 말을 꺼냈던 고상민이 먼저 입을 열었다.“당신 지금 무슨 뜻입니까? 기철이가 그녀에게 손을 대다니,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기철이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당신은 모릅니까?”고상민은 신기철보다 더 흥분했다. 서준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고상민을 빤히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하려는데 미세한 터치를 느꼈다.신유리는 테이블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실수로 그의 손과 잠시 얽혔었다.그러고 나서 천천히 신기철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마치 머리가 복잡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당신과 우리 엄마가 이혼한 후로 우리는 10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당신도 아무 소식 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잖아요. 당신은 늘 저를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전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전 그 10년 동안처럼 지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신기철은 마지막 한마디를 뱉을 때 마치 다른 뜻이 있는 것처럼 유난히 또박또박 말했다.신유리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눈길을 돌렸지만 그는 그저 한숨만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상민은 보다 못해 손을 뻗어 테이블을 두드리더니 높은 소리로 말했다.“유리야, 기철이 딸로서 기철이 마음을 정말로 모르겠니? 기철이가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다 너를 위해서지. 그가 성남시에서 여자 친구 찾은 걸 우리가 모르는 줄 아니? 진심으로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데 오히려 너는 다른 사람 편이나 들면서 아버지와 관계나 끊으려 하다니.”고상민은 말할수록 감정이 격해져서 신유리를 보며 노여움을 금치 못했다.신유리는 주먹을 움켜쥐더니 흔들리는 눈동자로 신기철을 바라보았다.신기철은 송지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즉, 그는 성남시로 조사 하러 간 것이다.하지만 서준혁을 조사하러 갔는지 아니면 그녀를 조사하러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고상민은 여전히 한숨을 내쉬며 옆사람과 한탄했다.“세상에 자식 걱정 안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부모 속도 모르고 되레 원망이나 하다니.”그는 마치 신유리가 오히려 신기철에게 미안한 짓을 한 것처럼 말했다.게다가 신유리의 처지에 조금이나마 안타까워하던 두 여인도 서로 바라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왕서원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분위기 좋던 식사 자리도 어색해졌으니 말이다.그러나 서준혁과 신유리 탓을 할 수도 없어 그저 구석에 앉아 있는 신기철과 고상민을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신 대표님, 자식들도 알아서 잘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신기철은 갑작스런 왕서원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급히 사과했다.“왕 대표님께서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도 제 딸이다 보니 부모로서 어찌 상관 안 할 수 있겠습니까?”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결심한 듯 술잔을 내려놓더니 신유리를 바라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끝까지 자애로운 아버지 연기를 할 뿐이다.왕서원 덕분에 분위기는 그나마
그는 신유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보기 드문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신유리는 고개를 들어 그의 눈빛을 맞받아치며 물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이신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약간 냉담한 태도로 한마디 뱉었다. “너 술 마셨어?”신유리는 그가 오해한 것을 알고 해명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신은 그녀의 해명을 듣고 나서도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신유리를 바라보았다. 그는 턱에 잔뜩 힘이 들어간 꿀이 떨어지던 눈빛마저 더욱 엄숙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입을 연 그는 허탈감과 탄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이런 자리에 가지 마, 설마 네 아이가 앞으로 술고래가 되길 바라는 건 아니잖아? 게다가 신기철도 있으니 안전하지 않아.” 이신이 부산시에 온 날 신유리는 그에게 신기철에 관한 일을 말했었다. 어쨌든 이 일을 숨길 수도 없었고 이신은 그녀의 현재 대표님으로서 상황을 알 권리가 있는 데다가 만약 신기철과 이연지가 소란을 피우면 이신이 아무것도 모르면 번거로울 수 있다. 신유리는 그의 눈에 담긴 관심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안 갈게.”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옅은 술 냄새가 풍겨왔다. 이석민은 서준혁의 뒤에서 작은 소리로 신유리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리 씨, 언제 돌아왔어요?”신유리가 뒤돌아보니 서준혁이 한눈에 보였다. 초겨울에 그는 외투를 입지 않고 얇은 셔츠 한 벌만 입고 있었는데 셔츠 넥라인이 풀려 있어 쇄골이 보일 듯 말 듯했다. 그는 술만 마시면 피부가 핑크빛을 띠고 새까만 눈동자는 투명해져서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손에 외투를 아무렇게나 들고 고고한 자태로 신유리를 내려다보는데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었다. 신유리는 순간 멈칫했고 이석민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자꾸 대표님께 술을 권하다 보니 거절하지 못하고.”“술을 마셨으면 어서 방으로 돌아가 쉬시는 게 좋겠어요.”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이신은 그녀의
전화 너머로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자 송지음은 더는 참다못해 소리 질렀다. “나보고 어쩌라고? 누가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진 줄 알아? 그것만 아니었으면...”그녀는 하려던 말을 그만 삼켜버렸다. 서준혁과 헤어진 이유에 대해 그녀는 가족에게 말다툼 때문이라고만 했다. 해서는 안 될 말들을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만약 송지음의 부모님이 알게 된다면... 송지음은 이내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대충 둘러대고 전화를 끊어버렸다.“됐어. 다녀와서 다시 얘기해.” 그러나 불과 1초도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또 집에서 걸려 온 전화인 줄 알고 보지도 않고 짜증 냈다. “좀 귀찮게 굴지 마.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잖아.”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경희영의 목소리에 그만 말이 끊겼다.“ 돌아와서 뭐 해? 세형 씨와 관련된 일은 다 처리하고 돌아오는 거야? 이번에도 제대로 일 처리 못하면 그만 꺼져!” “전...”송지음은 핸드폰을 꽉 움켜쥔 채 마음속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애초에 경희영이 그녀를 사탕 발린 말로 꼬실 때는 이런 태도가 아니었다. 이제 목적을 달성하고 나니 그녀가 쓸모없다고 여겨져 이렇게 헌신짝 취급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경희영에게 의지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더 막연해졌다. 장수영과 오혁은 신유리와 잠깐 얘기를 나누다 갔다. 신유리는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장수영에게 물었다. “태지연과 왕서원 왕 대표님은 무슨 사이죠?”“왕 대표님은 태지연의 외삼촌인데 왜요?”신유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연과 친한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그날 밥 먹을 때 만났었거든요.”장수영은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왕 대표님께서 신연 씨를 엄청 좋아해요. 신연 씨와 같은 천재를 보기 드물다고.”“천재?”“몰랐어요? 신연 씨는 예전부터 똑똑했어요. 열여섯 살에 이미 박사까지 합격했고 지금은 박사후 연구원을 하면서 진 씨네 회사에 다니고 있
신유리는 밖에 얼마간 있지 않았고 서준혁은 신연의 경계심이 유별나 거의 매번 조금씩 검색해야한다고 알려주었다.하지만 그이 점은 신유리도 마찬가지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었다.예를 들자면 신연과 신기철 사이의 미묘한 관계 같은 것 말이다.그녀는 회의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때마침 입구 앞에서 송지음과 마주쳤다.송지음을 발견한 신유리의 발걸음을 바로 멈췄고 표정은 금세 굳어졌다.이런 신유리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송지음은 신유리를 보자마자 바로 그녀를 불러 세우며 입을 열었다.“버닝스타에게는 절대로 기회가 없을 거예요.”송지음은 목소리가 크진 않지만 몹시 단호했고 초겨울의 햇볕 아래 그녀의 얼굴은 혈색이 없어 평소보다 더 창백해보였고 눈에는 피로가 가득 쌓여 초췌해보이기 그지없었다.신유리는 송지음을 슥 훑어보더니 예전보다 더 깔끔해진 그녀의 차림새를 발견하고 눈빛은 조롱하듯 차가워졌다.그런 신유리의 시선에 송지음의 심장은 급격히 뛰었지만 표정은 애써 담담한척 하며 고개를 들어 신유리에게 똑똑히 경고했다.“자기 분수를 잘 아는 것이 좋지 않겠어요? 제가 있는 한 홍란에서 버닝스타에게 기회 따윈 주지 않을 거니까 그런 줄 알아요.”말을 마친 송지음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님처럼 몸을 돌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와 함께 당당한 발걸음으로 자리를 떠났다.신유리는 송지음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고는 아무 표정 없이 오혁을 찾으러 떠났다.점심 쯤, 오혁은 부선생이 신유리에게 줄 물건이 있다면서 사무실에 한번 다녀오라고 말해줬다.다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오혁의 모습에 신유리는 그를 방해하기 싫었다.그래서 신유리는 핸드폰을 들어 연우진에게 전화를 걸어 신연에 관한 일들을 물어보려고 생각 했다.그러나 핸드폰을 딱 열자마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신기철에게 온 장문의 사과 문자였고 내용은 자기가 너무 격분해서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 같다는 말과 절대로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의 말들 천지였다.이런 문자를 적지 않게 받아본 신유리는
신기철은 헐레벌떡 신유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와 얼른 물었다.“내가 문자를 그렇게 많이 보냈는데 왜 답장을 한 번도 안 해줬니?”신유리는 그런 그를 냉랭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여기는 왜 온 거죠? 누가 오라고 했는데요?”신기철은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홀로 호텔 앞을 서성거렸고 신유리의 물음에 그의 미간이 가득 찌푸려지더니 불쾌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이내 꾹 참고 신유리를 가만히 쳐다봤고 신유리는 그가 찾아온 것이 무조건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라는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때, 아니나 다를까 신기철은 헛기침을 몇 번하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며 천천히 입을 뗐다.“유리야, 아빠는 오늘 너한테 진심으로 사과를 하러 온 것이란다. 그리고 또 너한테 알려줄 것도 있고... 전에 내가 비록 성남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단다.”“카드 안에 사천만원 있어, 원래는 너 시집갈 때 주려고 모아둔건데... 네가 이 애비를 너무 싫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먼저 주는 거야. 아빠 마음이니 네가 받아줬으면 좋겠다.”신기철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고 신유리는 반강제로 자신의 손에 쥐여진 카드를 보며 별 다른 감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사천만원? 시집갈 때 모아둔 돈?][웃기고 있네.]신유리는 신기철이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슥 보았고 시계의 값어치는 적어도 9천만원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그 카드를 꽉 쥐며 꾹 닫았던 입을 서서히 열었다.“여기는 친구도 없으실텐데 이정도 연기까지 안하셔도 되지 않나요?”신기철은 신유리의 말에 굳었고 슬픈 표정을 세팅한 그의 얼굴은 딱 교활한 여우같았다.그는 아직까지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신유리를 억누르려 하였고 신유리는 단호히 말을 이어갔다.“다른 일 없으시면 제발 저 좀 찾아오지 마세요.”신기철은 한때 신유리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유리가 언제까지고 바보처럼
주언의 말에 신기철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신유리에게 따지듯 물었다.“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그렇지?”그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는 듯 고개를 돌려 서준혁을 쳐다보았다.이미 신기철은 자신의 딸이 성남에 있는 화인 그룹 대표랑 연애한다는 사실을 다 떠벌리고 다녔었고 곧 결혼까지 한다고 거짓말까지 했다.하지만 지금 뱃속 아이가 서준혁께 아니고 얼핏 봐서는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남자 아이라니 신기철은 이 사실을 죽었다 깨어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유리야, 네가 아무리 내 일을 도와주고 싶지 않다고 해도 이런 장난은 좀 너무 심하지 않니? 이게 재밌니? 네 명예를 깍아내리는 것이?”신유리는 신기철의 당황하고 놀란 표정을 보며 고개를 숙여 피식 웃었고 먼저 주언에게 다가가 그의 팔짱을 끼며 대답했다.“뭐 더 속일게 있겠어요? 아이가 누구 아이인지 설마 제가 모르겠어요?”그녀의 말투는 아까보다 많이 좋아졌고 서준혁을 슥 보더니 무감정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그동안 서 대표님한테도 신세 많이 졌어요, 그 놈의 명예 때문에 저랑 같이 엮여서 고생하셨잖아요.”그녀는 주언의 팔짱을 꼭 잡고는 마치 든든한 자기편을 잡은 마냥 기세등등하게 말을 했고 서준혁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까만 눈동자로 주언의 팔짱을 끼고있는 신유리의 손을 쳐다보고 있었다.주언의 복장은 자유로운 예술가 같았지만 신유리는 깔끔한 정장차림이라 보기에 아주 단정해보였다.이렇게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함께 서있으니 묘하게 서로 잘 어울렸다.주언 또한 키나 몸매도 서준혁에게 밀리지 않는데다가 운동까지 하기에 단단한 근육을 지니고 있어 청춘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 했다.그가 신유리 옆에 서있으니 마치 영화에 나오는 예쁜 누나랑 덜 길들여진 늑대같은 모습이었다.신유리는 주언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갈 때, 마치 신유리가 큰 죄라도 지은 듯 뭔가에 뒤통수를 맞아 멍해있는 신기철의 모습이 생각났다.엘리베이터는 누구도 없었고 갓 출발하자마자 신유리는 주언에게서 팔짱을 풀며 담담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