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떠올리지 않으니 때로는 맑은 정신으로, 또 때로는 흐릿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순간들을 머리 속에 재현할수록 그 무심코 한 스킨십이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을 사정없이 베고 있었다.윤아는 온몸에 힘을 잃은 듯 벽에 스르륵 기대어 앉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조금,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이토록 절망스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윤아가 마음을 정리하고 서류를 서랍에 다시 넣으려던 순간, 샤워를 마친 수현이 굳은 얼굴로 욕실에서 나왔다. 수현은 그녀의 곁을 지날 때 마침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두 장의 서류를 발견했다. 눈썰미가 좋은 그는 첫눈에 알아챘다. 혼인 관계 증명서와 이혼 신고서란 것을.수현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그는 우뚝 멈춰선 채 싸늘한 시선으로 윤아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정말 급하네, 심윤아.”윤아는 멈칫했다. 얇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도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엔 손에 들고 있던 두 장의 서류를 꼭 쥔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뭘 말해야 할까.할 말이 없었고 더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이혼 얘기는 그가 꺼낸 것이고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도 그의 생명의 은인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지금 그의 생명의 은인에게 진 신세를 갚는 중이었다.그냥 이대로 내버려둬야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더는 미련도 없었다. 이미 이년 동안이나 그와 함께 생활하며 그를 품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의 삶을 살아 나가면서 이 이년이란 시간을 평생을 두고 떠올리고 회상하며 아끼리라. “내일이면 할머니께서 수술 마치셔. 그니까 더는 연기할 필요 없어. 난 오늘 서재에서 잘게.”결국 수현은 이 한마디를 남긴 뒤, 베개를 가지고 방을 나갔다.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윤아도 서류를 서랍에 도로 넣고 갈아입을 옷을 챙긴 뒤 욕실로 들어갔다.-이튿날.윤아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알람을 끄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어젯밤,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할 수
집사: “...”사실 그는 수현과 윤아 사이의 이상한 낌새를 살짝 눈치챘다. 그리고 어젯밤, 수현이 서재에서 잔 것도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서재 불이 켜져 있음을 발견하고는 들어가 보니 수현이 안에 앉아있었다.그의 눈 밑은 퀭했고 얼굴색도 여간 나쁜 게 아니었다. 수현은 잠긴 목소리로 집사에게 물었다.“뭐합니까?”집사는 순간 수현의 모습에 놀라 아무 말도 못 했다.결국 수현은 아침도 먹지 않고 굳은 얼굴로 주차장에 갔다. 그리고 지금 밖에 나가려는 윤아를 보며 집사는 속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바를 몰라했다.시간이 아직 일렀기 때문에 바깥 기온은 제법 낮았고 주차장은 더 추웠다.그런데 이렇게 추운 곳에 있으면서 수현은 그저 얇은 셔츠 한 장만 달랑 입고 있으면서 담배를 손에 들고는 차에 기대어 서있었다.가까이하고 보니 수현과 그녀의 상태는 정반대였다.두 사람 다 잠을 설치긴 했지만 이미 화장한 윤아와 비교했을 때 수현은 더 초췌해 보였다. 발걸음 소리를 들은 수현은 머리를 들었다. 그는 윤아의 좋은 상태를 보자 얼굴색이 더 어두워졌다.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어젯밤 잘 잤어?”수현이 입을 열자마자 윤아는 그의 목소리가 많이 쉬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잠시 멈칫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응, 잘 잤어. 수현 씨는?”수현은 담뱃불을 끄고는 시커먼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나도 잘 잤어.”“그럼 됐네.”윤아는 수현의 눈에 가득한 핏발과 눈 주위의 다크서클을 보며 생각했다. 모양새가 초라하다고. 화장하고 안경까지 쓰기를 잘했다고.두 사람 사이에는 또 침묵이 흘렀다.수현은 차에 기대어 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운전할 생각도 없는 듯, 그저 굳은 얼굴로 윤아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날카로운지라 윤아는 조금 불편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이제 갈까?”수현은 되물었다.“그렇게 급해?”“그저 그래. 수현 씨가 급해할까 봐.”수현은 이
구청에 사람은 너무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나중에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다.어젯밤 잠을 설친 바람에 몸이 힘든 윤아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수현도 그녀의 뒤를 따라 흙빛이 된 얼굴로 윤아의 옆자리에 서 있었는데 앉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구청에 들어오긴 했지만, 윤아의 마음은 꽤 평온했다.그녀는 머리를 돌려 수현을 한눈 보고는 입을 열었다.“수현 씨는 안 앉아?”“난 됐어.”수현은 차갑다 못해 조금의 온도도 찾아볼 수 없는 목소리로 답하고는 윤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윤아는 금세 알아챘다. 수현이 자신을 상대하기 귀찮아한다는 것을.하긴, 곧 이혼하고 소영과 일생을 기약할 텐데 자신과 상대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다행이었다. 애초부터 이혼한 다음 친구로 지내기를 바라지 않아서 말이다.처음에는 괜찮았지만 두 사람이 붙어있은 시간이 오랄 수록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많아졌다.“이 분위기... 설마 이혼하러 왔나?”“이혼? 에이, 아닐 거야. 이 둘이 이혼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 훈남 훈녀가 따로 없는데, 뭔 이혼이야.”“이해할 수가 없어. 저렇게 생기면 원래 배우자보다 더 훤칠하고 더 예쁜 사람 만나기 어려울 텐데. 아쉽게 이혼을 왜 해.”사람들은 늘 남 일에 관심이 많다. 특히 눈에 띄는 남이라면 더 그렇다.마치 수현과 윤아처럼 외모가 출중하고 또 서로 잘 어울리는 남녀라면 가십거리로 되기 더 쉽다.말이 꼬리에 꼬리를 이어 윤아의 귀에 들어간다. 그녀 옆에 선 수현도 당연히 들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사방을 순간 얼어붙게 만드는 차갑고 도도한 모습으로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있잖아, 저기 두 사람 되게 젊어 보이는데 아이는 있을까?”아이라는 두 글자에 윤아는 가슴이 덜컹했다.조금 어이가 없었다. 화제가 어떻게 아이로 갔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저렇게 좋은 유전자에 아이 많이 낳지 않으면 얼마나 아쉬워.”여기까지 들은 윤아는 수현을 힐끔 훔쳐보았다.역시, 그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그날의
이 말을 마친 윤아는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속으로 수현이 왜 갑자기 변했는지를 생각했다.분명 전엔 얼굴이 굳어있었는데 저 사람들이 하는 소리를 들은 뒤 표정이 그나마 나아졌다. 심지어 그녀가 배가 고픈지 안 고픈지를 걱정하신다.왜?진짜 유산한 줄 알고 미안해서 그러는 건가...“아침 안 먹었잖아.”수현이 또 말을 걸어왔다.윤아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응. 근데 배고프지 않아.”실은 입맛이 없었다.“지금은 배고프지 않지. 근데 나중에는? 조금 있다가 요양원에 갈 때면 아침 먹을 시간 없어.”여기까지 듣자, 윤아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를 끄덕이며 답했다.“알겠어. 그러면 우리 먼저 아침 먹으러 갈래?”“내가 편의점 가서 사 올게. 여기서 기다려.”말을 끝낸 수현이 구청을 나갔다.밖에 나간 뒤, 그는 바로 편의점으로 가는 대신 벽에 기대어 담배 한 대를 피웠다. 찬 바람 속에 조금 있으니 정신이 들었다.그는 벽에 기대어 눈을 내리깔았다. 긴 속눈썹이 그의 눈을 가리면서 요동치는 감정도 함께 숨겨주었다.분명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는데, 그녀의 목을 조르면서 왜 이렇게 무심한지 따지고 싶었는데, 말을 내뱉고 나니 아침 먹겠냐고 물었더라. 헛웃음이 나왔다. 왜 그녀 앞에선 항상 마음이 약해지는지...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허공에 대고 물어본다.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지만, 그저 하염없이 앞을 바라보며 찬바람이라도 그의 진심을 알려주길 기다린다.-윤아도 이런 경우를 예상해 보지 못했다. 수현이 자리를 뜨자마자 아까 토론하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그녀의 앞에 그리고 옆에 자연스레 앉았다.“저기요, 예쁜 아가씨. 궁금한 게 있는데, 아까 나간 분 아가씨 남자친구예요 아니면 남편이에요?”“혼인 신고하러 왔어요? 헉, 설마 이혼 신고하러 왔어요?”“아이는 있어요?”윤아: “...”이 사람들, 묻고 있는 문제가 모순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나...그리고 가십거리 주인공 앞에서 이런 걸 막 물어봐도 되나
봉지를 받은 뒤, 윤아는 수현이 인스턴트 음식을 사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맛이 없어 그저 열어 보기만 하고 다시 치웠다.수현은 거기에 서서 윤아의 행동을 다 눈에 담았다.“다 싫어?”이 말을 듣자, 윤아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흔들었다.“아니, 그냥 입맛이 없어서 그래.”수현은 더는 말하지 않고 윤아의 곁에 앉았다.너무 적게 입어서인지 아니면 금방 밖에서 들어와서 그런지 수현이 옆에 앉는 순간, 윤아는 자신의 주위 온도도 함께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수현이 아직도 셔츠 한 장만 입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입을 열었다 닫으면서 뭐라도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침묵만 유지했다.둘을 이렇게 조용히 앉아있었다.비록 가까운 거리였지만 하늘 저 멀리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윤아는 자리에 앉아 아까 얘기를 나눴던 여자들을 보았다. 한명 한명씩 남자 친구와 함께 들어갔고 나올 땐 다정하게 팔짱을 끼거나 껴안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이 장면을 보니 수현과 혼인신고 하러 구청에 왔을 때가 떠올랐다.추억이 얼마나 아름다우면 현실은 얼마나 참혹했다. 참 많이도 변했구나...윤아가 이렇게 멍때리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와 수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들었다.정신을 차린 뒤, 그녀는 제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달싹이며 수현에게 말했다.“우리 차례야.”수현은 무슨 생각하는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안에서 누군가가 다시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 윤아는 깊은숨을 들이쉬면서 몸을 일으키고는 수현을 향해 말했다.“가자.”말을 마치고 윤아는 먼저 발걸음을 뗐다.“잠깐만.”수현은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불렀다.그러자 윤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녀는 아랫입술을 물어뜯으면서 고개를 돌리려는 충동을 간신히 삼켰다. 비릿한 피 냄새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찌릿한 아픔은 흐릿해지는 정신을 더 또렷하게 했다.그녀는 자신이 낮은 목소리로 묻는 것을 들었다.“왜 그래?”고개도 돌아보지 않고
요양원에 가는 길에서 윤아는 너무 급한 나머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고 손가락을 아무렇게나 꼬아서 부여잡았다.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잘못했다.구청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아침에 깨자마자 요양원으로 갔어야 했다.아니, 어젯밤에 돌아오는 게 아니라 요양원에서 할머님을 잘 보살펴드려야 했다.오늘 수술 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 할머님이 거절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오다니. 어쩜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는가.윤아는 한없는 자책에 빠졌다. 그녀는 몸을 좌석에 기댄 채 눈을 질끈 감았다.기억 속 흐릿하지만, 또 또렷한 장면이 이리저리 엉킨 채 머릿속에 펼쳐졌다.빨리 운전하여 요양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교통 규칙은 지켜야 하므로 수현은 할 수 없이 신호등 길목에서 천천히 멈추어 섰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그의 짙은 눈썹은 계속 찌푸리고 있었다.차를 세운 후, 수현은 점차 윤아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제야 윤아의 입술 사이에 붉은 피가 맺혀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물었다.“너 왜 그래?”아무 응답도 없었다.윤아는 지금 이맛살을 찌푸린 채 얼굴은 창백했고 눈썹은 파르르 떨렸으며 입술은 꼭 깨물고 있었는데,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이런 윤아의 모습을 본 수현은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붙잡고는 꼭 깨물고 있는 입술을 열게 하려고 했다.여러 번 시도했지만, 윤아가 너무 세게 깨물고 있는 바람에 몸부림칠 때 옅은 피가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심윤아, 뭐 하는 거야. 입술 놓으라고!”수현은 힘을 주고 싶었지만, 윤아가 다칠까 봐 말로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윤아는 마치 악몽에 빠진 사람처럼 어떻게 불러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순간, 수현은 뭔가가 떠올랐다.윤아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 곁에서 자라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아버지가 윤아를 무한한 사랑으로 키웠기 때문에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했고 뭐든 그녀를 힘들게 하는 일이
하지만 수현이 몇 번이나 윤아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윤아는 전혀 듣지 못한 거 같았다. 마치 외부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자신을 꼭꼭 숨겨 두었다.윤아의 이런 모습을 본 수현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신호등은 이미 초록 불로 되었다. 수현의 차가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뒤의 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리면서 불평을 토로했다.수현은 이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순간 몸을 숙여 윤아의 턱을 위로 한 채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그가 예상했던 대로 윤아의 이발이 꼭 맞물려있었다. 그래서 한참을 애써도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한쪽 손을 그녀의 허리에 대고 살짝 꼬집었다.윤아는 간지러움을 심하게 탄다.평소처럼 화들짝 놀라며 피하지는 않았어도 뻣뻣하게 경직되었던 몸에 조금의 반응이 있었다.수현은 이 틈을 타서 윤아의 입을 살짝 벌리며 꼭 깨물고 있던 그녀의 아랫입술을 구해냈다. 서로의 숨을 앗아갈 듯한 거리에서 수현은 아주 짙은 피비린내를 맡았다. 윤아에게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다고 질책하기도 전에 찌릿한 아픔을 느끼면서 미간을 찌푸리고는 끙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너무 아픈 나머지 하마터면 윤아를 품에서 밀어낼 뻔했지만, 그런 충동을 간신히 억제했다. 그는 아픔을 참으면서 윤아의 허리를 아까보다 더 세게 꼬집다.그러고는 빨리 윤아의 입술을 놓아 주었고 다시 물어버리기 전에 즉시 그녀의 턱을 잡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매섭게 말했다."심윤아, 빨리 정신 차리지 않으면 지금 여기서 너랑 잘 거야."그의 말투가 너무 매서웠는지 품속의 여자는 몸을 살짝 떨면서 점점 힘을 풀었다.금방 정신을 차린 윤아는 주위의 시끄러운 경적과 창밖으로 들려오는 기사들의 욕 하는 소리에 어리둥절했다.하지만 그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바로 가까이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수현이었다.남성 특유의 호르몬이 거의 그녀를 감쌌고 그의 큰 손은 윤아의 턱을 단단히 잡고 있었다."드디어 깼네?"윤아는 눈을 깜박거리며 피가 묻어있는 입술을 움직였다.뭐라도 말하려고
“내 뭐? 왜 말 못 해?”“...”윤아는 입술을 앙다물었다. 이렇게 어색한 상황에서 그 말을 입밖에 내뱉기가 어려웠다.“못 말 하겠어?”계속 몰아붙이는 수현.윤아는 눈을 내리깔고는 침묵을 유지했다.수현은 이런 윤아를 보고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안 죽어. 그냥 하마터면 물어뜯길 뻔했지만.”이 말을 듣자, 윤아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그렇게 심해?”“심윤아, 네 입술에 생긴 상처 보면 몰라?”“...”그런 것 같았다. 아까 화장 거울로 봤을 때 상처가 아주 심했었다. 그러니 수현이라고 멀쩡할 리가 있겠는가.그의 말에 뭐라고 반박할 수 없으니, 윤아는 축 처진 눈을 한 채 다시 한번 사과했다.“미안해. 다음번엔 나 그냥 내버려둬.”이 말을 들은 수현의 눈썹은 다시 치켜 올라갔다.“다음 번이라니. 심윤아, 자해하는 게 네 낙이야? 앞으로 이런 일 없어야 해. 들었어?”오늘 그가 아니었으면 얼마나 위험했는데...윤아는 작게 중얼거렸다.“나도 억제할 수 없는데 어떻게 막아...”수현은 윤아를 한눈 쏘아보고는 표정을 굳혔다.윤아 말이 맞았다. 방금 어떻게 부르고 말을 걸어봐도 그녀는 마치 의식이 없는 사람처럼 듣지 못하는 것 같았고 몸만 외부의 자극에 반응했었다.수현은 이제 시간 날 때 윤아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윤아에게 말하며 그녀의 마음을 안정시켰다.“할머니께서는 그저 쓰러지셨을 뿐이야. 아직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할 수 없지만 평소 꽤 건강하셨기 때문에 별문제 없으실 거야. 문제가 있다 해도 며칠간 수술 할 수 없을 정도에만 그칠 거야.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아까 일을 겪은 후, 윤아는 오히려 더 진정되었다.아까는 너무 긴장했다.할머님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겼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고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두려웠다. 수현의 말이 옳았다. 그녀는 진정해야만 했다.“응, 알겠어.”요양원.차를 세우자마자 수현이 먼저 운전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