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07화

평소 떠올리지 않으니 때로는 맑은 정신으로, 또 때로는 흐릿하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예전의 순간들을 머리 속에 재현할수록 그 무심코 한 스킨십이 칼날처럼 그녀의 마음을 사정없이 베고 있었다.

윤아는 온몸에 힘을 잃은 듯 벽에 스르륵 기대어 앉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이토록 절망스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윤아가 마음을 정리하고 서류를 서랍에 다시 넣으려던 순간, 샤워를 마친 수현이 굳은 얼굴로 욕실에서 나왔다. 수현은 그녀의 곁을 지날 때 마침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두 장의 서류를 발견했다. 눈썰미가 좋은 그는 첫눈에 알아챘다. 혼인 관계 증명서와 이혼 신고서란 것을.

수현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그는 우뚝 멈춰선 채 싸늘한 시선으로 윤아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정말 급하네, 심윤아.”

윤아는 멈칫했다. 얇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뭐라도 말하려고 했으나 결국엔 손에 들고 있던 두 장의 서류를 꼭 쥔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었다.

뭘 말해야 할까.

할 말이 없었고 더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혼 얘기는 그가 꺼낸 것이고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도 그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그의 생명의 은인에게 진 신세를 갚는 중이었다.

그냥 이대로 내버려둬야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더는 미련도 없었다. 이미 이년 동안이나 그와 함께 생활하며 그를 품었으니까. 그러니 앞으로의 삶을 살아 나가면서 이 이년이란 시간을 평생을 두고 떠올리고 회상하며 아끼리라.

“내일이면 할머니께서 수술 마치셔. 그니까 더는 연기할 필요 없어. 난 오늘 서재에서 잘게.”

결국 수현은 이 한마디를 남긴 뒤, 베개를 가지고 방을 나갔다.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윤아도 서류를 서랍에 도로 넣고 갈아입을 옷을 챙긴 뒤 욕실로 들어갔다.

-

이튿날.

윤아는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는 눈을 비비며 알람을 끄고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 거의 뜬눈으로 지새웠다고 할 수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최신 챕터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