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도 아주 복잡한 것 같았다.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던 심윤아는 입술을 깨문 채 생각에 잠겼다.“대표님? 대표님.”오민우가 그녀를 부르며 손을 휘적일 때가 되어서야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왜 그래요?”오민우는 걱정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원래는 그녀가 대답을 회피하기 위해 입사 날 얘기를 꺼낸 줄 알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마냥 회피 같지는 않았다.그녀는 아주 진지하게 그의 입사 날짜를 물었다. 그의 입사 날짜를 통해 무언가 떠올리려는 것 같았다.‘역시 회사를 이끄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 남다른 감이 있단 말이지.’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오민우는 이렇게 생각하며 소파에 앉아 있는 진수현을 힐끗 봤다. 그는 아주 차가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오민우는 손에 들고 있는 서류와 돈줄을 잡은 진수현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대표님, 회사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을 시작할 건 없어요. 이 정도 일은 제가 알아서 해결할 수 있어요. 그러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는 게 어떠세요?”“...”심윤아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힐끗 봤다.“저 지금 금방 들어왔는데 돌려보내려는 거예요?”오민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진수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안색이 훨씬 풀어진 것을 봐서는 올바른 선택을 한 듯했다.그래서 오민우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대표님 안색을 보니 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전보다 훨씬 야윈 것 같은데 그동안 많이 아프셨어요?”오민우의 말을 듣고 심윤아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야윈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잘 모르던 사람도 한눈에 보아낼 정도였다.심윤아가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 오민우가 말을 이었다.“오늘은 일단 돌아가세요. 시름이 안 놓으면 다음에 다시 오셔도 되잖아요.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제가 다 보고드릴게요. 그리고 처리는 제가 할 수 있어요.”오민우가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심윤아는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잠깐 고민하다
진수현은 고개를 숙여 눈을 꼭 감은 채 자신의 품에 기댄 심윤아를 바라봤다.“오래간만에 일해서 그런가? 약간 피곤하네.”이 말을 듣고 진수현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피곤해? 어디 아픈 데는 없고?”눈에 띄게 긴장한 진수현을 보고 심윤아는 피식 웃었다.“내가 피곤하댔지, 언제 아프다고 했어? 왜 긴장하고 그래?”“내... 내가 언제...”“지금 긴장한 게 아니라고?”“응. 난 그냥 물어봤을 뿐이야. 물어보는 것도 안 돼?”걱정했으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걸 보면 조금 전의 일 때문에 적지 않게 섭섭한 듯했다.심윤아는 잠깐 고민하다가 먼저 손을 뻗어 그의 손과 맞잡았다. 그것도 힘껏 말이다. 그 순간 진수현은 몸을 흠칫 떨었다.몰래 웃음을 참던 그녀가 고개를 든 순간 그도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은 허공에서 딱 마주치게 되었다.“이따가 너희 회사에 가 봐도 돼?”심윤아의 맑은 눈빛은 깨끗한 호수와 같았다. 사무실의 조명 아래에서는 유난히 밝게 빛나서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왜?”그는 걸걸한 목소리로 되물으며 심윤아의 허리를 더욱 꽉 잡았다. 다른 손은 그녀에게 잡혀 있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그녀의 온기를 느끼기만 했다.그녀의 온기 때문인지 그는 마음도 사르르 풀렸다. 그래도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면 섭섭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아까는 안 간다고 했잖아.”“그래, 안 간다고 했었지.”심윤아가 곧바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진수현의 안색은 완전히 어두워졌다.“역시 넌 나한테 관심 없지.”심윤아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내가 왜 너한테 관심 없어? 난 관심이 있으니까 안 가려고 하는 거야.”“응? 그게 무슨 뜻인데?”“너 아직 환자거든? 환자가 무리해서 되겠어? 너 오늘 이미 충분히 무리한 것 같은데.”말을 마친 심윤아는 넋이 나간 진수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너 설마 그사이에 다친 걸 까먹었어? 아니면 하루에 약 한 번 바르는 것으로 멀쩡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한 건가?”조금 전까지만
뜨거운 열기에 놀란 것도 잠시 진수현은 입술을 겹쳐왔다.“읍!”갑작스러운 키스에 심윤아는 넋이 나가버렸다. 그가 사무실에서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입술에 닿은 따듯한 감촉과 진수현 특유의 숨결은 그녀를 마구 범했다. 뒤늦게 정신 차린 심윤아는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려고 했다.“읍... 안 돼... 여기 사무실이야...”이때 누가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정말 어색해진다. 그래서 심윤아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며 키스를 피하려고 했다.그녀가 자꾸 피하려고 하자 진수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았다. 그리고 약간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왜 피해?”심윤아는 그의 눈빛에 깜짝 놀랐다. 적어도 그녀의 기억 속에는 이런 눈빛을 한 진수현이 없었기 때문이다.그의 눈빛은 블랙홀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조금 전의 키스를 떠올리며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심윤아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서 그의 눈을 피했다. 그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얼버무렸다.“호... 혹시 누가 들어오기라도 한다면...”진수현은 걸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무도 안 들어와.”“...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오 매니저를 제외하고 누가 감히 네 사무실에 들이닥치겠어? 찾아왔다고 해도 노크 정도는 하겠지.”“그, 그래?”기억이 없었던 심윤아는 아무것도 몰랐다.“응.”진수현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치 이 회사, 이 사무실이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이렇게 대답한 그는 천천히 몸을 숙이더니 다시 입을 맞추려고 했다. 하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바라보던 심윤아는 또다시 피해버리고 말았다.진수현의 입술은 제대로 허탕 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심윤아가 넋을 잃은 덕에 잠깐의 달콤함을 맛볼 수 있었다. 원래는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었지만 너무나도 달콤해서 자꾸만 탐하게 되었다.그는 더 원했다. 하지만 심윤아는 계속 피하려고만 했다. 구구절절 설명하고 나서도 실패하자 그는 심윤아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난 기다리기 싫어.”말을 마친 진수현은 손을 놓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그걸 바라보던 심윤아는 그가 화난 줄 알았다. 그의 손길이 갑자기 사라지자 괜히 썰렁한 기분도 들었다.‘갑자기 어딜 가는 거지?’심윤아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진수현은 이미 문 앞으로 가서 문을 잠가버렸다. 그가 화나서 떠나는 줄 알았던 심윤아는 그대로 말을 잃었다.심윤아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진수현이 위험한 눈빛으로 돌아오는 모습도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아니, 정확히는 하도 흥분해서 위험해 보이는 것이었다.늑대에게 노려지면 딱 이런 기분일 것이다. 늑대는 강하고도 포악했다.전에는 다쳤다는 핑계로 진수현을 거절했다. 하지만 지금은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위기감이 본능적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심윤아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책상 뒤로 가버렸다.그녀가 자신을 피하는 것을 보고 진수현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화나면서도 웃긴 듯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공주야, 이번에는 왜 또 피해? 누가 들어올까 봐 불안한 거면 문을 잠갔잖아.”심윤아는 진수현이 문은 잠근 탓에 더 겁이 났다. 적어도 문이 열려있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것을 생각해서 절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특히 그의 위험한 눈빛을 보니 이대로 꿀꺽 삼켜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싫은 것은 아니지만 사무실에서는 선을 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만약 이상한 소리를 냈다가 옆 사무실 사람이 들으면...? 또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들으면...’심윤아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찌 됐든 사무실에서 선을 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진수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확히는 욕구불만이었다.그는 앞으로 다가가 손으로 책상을 짚더니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공주야, 이쪽으로 와.”“...”심윤아는 잠깐 넋이 빠졌다가 단호하게 거절했다.“싫어.”그의 말을 따른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녀는
사무실을 떠난 오민우는 자신이 사장님께서 만족할 만한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돌아가는 길에 조금 전 사무실에서 일어난 일을 줄곧 회상했다.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무실에 있을 때 사장님께서 물어본 그 몇 가지 질문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처음엔 심윤아가 화제를 돌리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되었으나 사무실을 나서면서부터 뭔가 수상쩍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서라면 이야깃거리는 많고도 많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하필이면 그런 질문을 했다.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가서 서명할 서류를 찾았다. 대표님의 사무실에 들러 엿들어볼 심산이었다.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걸음을 재빠르게 옮긴 오민우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노크했으나 응답은 없었다.오민우는 서두르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1분간 기다렸으나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자 오민우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대표님.”잠시 후 안에서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렸다.문밖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소리가 작지 않은 듯했다. 오민우는 두 사람이 부딪힌 것은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어쨌거나 어딘가 이상했던 소리에 다급해진 오민우는 문을 힘껏 두드리기 시작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그러나 사무실 내부는 조용했고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다.“대표님?”잠시 머뭇거리던 오민우는 결국 손을 뻗어 문을 열었다.“찰칵”문고리를 내려보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그는 멍하니 문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문이... 잠겼어?때마침 문 안에서 누군가의 잠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입니까?”오민우는 진 대표의 목소리임을 금방 알아차렸고, 무언가를 느낀 것 같긴 했지만 마치 뇌가 마비된 듯 일시적으로 반응하지 못했다.오히려 그의 입이 뇌보다 반응이 빨랐다. 수현의 말을 들은 후 그는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대표님께서 서명하셔야 할 서류가 있습니다.”내부가 또다시 조용해졌다.“거기서 기다려요.”
곧이어 문이 열렸다.문이 열림과 동시에 오민우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비즈니스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미소는 소용이 없었다. 문을 열러 온 사람은 윤아가 아닌 흐린 표정의 수현이었다.“서류는요?”오민우는 그의 안색이 칙칙한 데다 옷깃이 지저분하고 셔츠 단추 두 개가 풀려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넥타이는 진작부터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이를 본 오민우는 자신이 정말로 두 사람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했음을 알아차렸다.“...여기요.”오민우는 그저 무감각하게 손에 쥔 서류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확인하시고 사인만 하면 됩니다.”사실은 윤아가 사인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는 그저 대표님 사무실에 들르기 위해 핑계를 댄 것일 뿐이니까.수현은 서류를 받은 후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무실 문을 닫아버렸다.“쾅”문밖에 서 있던 오민우는 하마터면 문에 맞을 뻔했다.하지만 어쩔 수 없다. 같은 남자로서 그런 일을 할 때 방해받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너무 잘 아니까. 방해한 장본인을 죽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것이다.그랬기에 수현이 아무리 그를 아니꼽게 보고 건방지게 굴더라도 그저 머쓱하게 그 자리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사무실 내부.수현은 오민우가 준 서류를 윤아에게 건넸다.“사인하래.”윤아가 자신의 옷을 단정히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서 목까지, 목에서 귀까지 모두 울긋불긋했으므로 옷에 가려진 곳만 보이지 않을 뿐이지 훤히 드러나 있었다.그녀는 황급히 단추를 채운 다음 수현이 들고 있던 서류를 받아 펜을 들었다.“어디?”그녀의 다급하고 황망한 모습과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보니, 조금 전 노크 소리가 들렸을 때 힘껏 밀쳐낸 그녀가 생각나며 화를 참을 수 없어졌다.이 망할 놈의 오민우.아침에도 저녁에도 오지 않더니, 하필이면 그때 와서 좋은 일을 다 망쳐버렸다.요즘 수현의 부상 때문에 윤아는 상처가 벌어진다는 것을 이유로 스킨십을 꺼렸었다.결국 어렵게 기회를 찾아 마음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현이 또 한 페이지를 넘겼다.윤아가 무언가 말하려다가, 찡그린 그의 미간을 보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다시 삼켰다.됐다, 됐어. 읽는 것도 빠른데 두 사람이 사는 것이 아무래도 혼자인 것보다는 나을 테지.윤아는 그를 방해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그가 다 훑어볼 때까지 얌전히 기다렸다.약 몇 분 만에 계약서를 다 훑은 그가 마지막 장의 윤아가 서명한 글씨체를 보고 웃음을 금치 못했다.그가 서류를 덮자 윤아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이렇게 빨리 읽는다고? 자기도 자세히 읽어보진 못했으면서, 날 뭐라 해.”그 말을 들은 수현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세 번째 페이지 다섯 번째 줄 내용이 뭐였게? 기억해?”“뭐?”수현의 느닷없는 질문에 윤아가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수현이 느릿느릿하지만 조리 정연하게 알려주었다.윤아가 한바탕 투덜대며 서류를 펼쳐보았으나 내용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대로였다.윤아가 수현을 힐끗 바라보자, 수현이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물었다.“남편 좀 대단한 것 같지 않아?”윤아는 침묵했다.수현이 그녀의 머리를 문질러주며 입을 열었다.“내가 갖다줄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말을 마친 수현이 서류를 건네주기 위해 몸을 돌렸다. 이때 윤아를 향하던 웃음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문을 열고 오민우에게 서류를 건네는 그의 모습은 차갑기에 그지없었다.오민우는 어색하게 서류를 받아서 들었다.“다시는 오지 마세요.”수현이 차갑게 말 한마디를 뱉었다.말을 안 했으면 오히려 나을 뻔했다. 그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오민우는 더 난처해져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도 이제 별일 없으니 폐 끼치지 않을 겁니다.”말을 마친 오민우는 빠르게 자리를 떴다.모퉁이를 지난 후에야 그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리에 서 있었다.전에 아무리 대기업 경영진에 익숙하더라도 수현처럼 카리스마가 강한 남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역시 진씨 그룹의 진 대표님은 카리스마나 아우라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것 같다.
“누가 할 일이 없대?”“...”“이리 와봐.”윤아가 주저하며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에이... 그냥 하지 말지?”“네가 안 오면 내가 간다?”2초간 고민하던 윤아는 조금 전의 일을 생각하고는 결국 그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순순히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윤아를 보며 수현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윤아의 볼을 꼬집었다.“왜 갑자기 말을 이렇게 잘 들어?”“안 듣는다 해도 소용이 있어?”윤아는 방금 그에게 덜미를 잡힌 이후의 일을 잊지 않았다.“소용없긴 하지.”그녀의 뾰로통한 모습에 수현은 귀여움을 참지 못하고 말랑한 뺨을 만지작거렸다.“그러니까 이제 숨지 마. 네가 어딜 숨든지 내가 가장 먼저 찾아내서 잡아 올 거니까.”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윤아의 작은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그의 입술이 다가오자 심윤아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 촉촉하고 따뜻한 감촉이 이마에서 느껴졌다.그 부드러운 감촉이 끝난 후, 견디기 버거운 뽀뽀 세례가 몰아칠 거라는 생각과 달리 수현은 따스하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어리둥절한 윤아가 곧이어 눈을 떴다.앞에 서 있는 사람이 그저 조용히 안고만 있을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자 오히려 기분이 이상했다.“너...”한 글자를 내뱉은 이후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왜 계속 안 해?...라고 묻는다면 일종의 격려처럼 들리겠지?“왜?”수현은 마치 그의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것 같이 되물었다.“내가 계속 뽀뽀하지 않아서 아쉬워? 가기 싫어?”“아니.”윤아가 저도 모르게 반박했다.“이제 가자.”말을 마친 윤아는 바로 수현을 밀어내고 그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사무실에 계속 있다가는 그가 또 탐욕스러운 본색을 드러낼까 두려웠다.수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얗고 보드라운 손이 자신을 잡아당기며 사무실을 나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떠날 때 그는 윤아의 사무실 문을 닫는 것을 잊지 않았다.하도 기세등등하게 윤아의 회사로 오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