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대표님?”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배주한은 멈칫했다.“깼어요?”주현아가 침대에서 뒤척이며 내려왔다. 그녀는 외국에 있을 때 그의 업무 전화를 받았듯이 안경을 집으며 물었다.“업무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요?”그녀의 질문에 상대가 괴이하게 침묵을 지켰다.“대표님?”그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혹시 퇴사한 걸 잊은 겁니까?”그의 말에 주현아가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의식했다.“아, 그러네요. 퇴사했네요.”그러니까 이 연락은...업무를 처리하지 않아도 됨을 깨달은 후 주현아는 급작스레 피로가 몰려왔다. 몰려오는 졸음에 그녀는 뇌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말을 내뱉었다.“그럼 계속 잘래요. 졸려 죽겠어요.”말을 마친 주현아는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편 배주한은 통화가 끊겼음에도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아직 그녀의 집에 방문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그나저나 집에서의 그녀의 모습이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평소 회사에서 시키는 업무를 척척 해내던 그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배주한의 입술이 예쁜 곡선을 그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것저것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주현아가 전화를 끊고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노크했다.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리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떠들썩한 거야? 어젯밤 그렇게 늦게까지 깨어있으면서 다들 어떻게 이렇게 일찍 깬 거지?주현아는 어이가 없었으나 비굴하게 침대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걸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설이 지나면 반드시 자취할 집을 사야겠다고. 자신이 이사하여 혼자 살면 언제까지 자든 누가 상관하겠는가.문이 열리자 장은숙의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 옆에 둘째 이모도 서 계셨다.주현아의 둘째 이모는 그녀를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아이고, 현아야. 오랜만이다. 너 이 계집애! 정말 갈수록 예뻐지네.”“...”곰돌이 잠옷을 입은 채 이제 막 잠에서
주현아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이모,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미리 말씀을 안 하셨어요. 저도 좀 꾸며야지요.”둘째 이모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목소리를 낮추려는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어휴, 괜찮아. 나중에 결혼하고서도 매일 메이크업할 수는 없잖니? 그리고, 넌 메이크업하든 말든 다 예뻐.”지환이라는 남자는 주현아를 처음 봤을 때부터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하여 둘째 이모가 소개할 때도 매우 적극적으로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전 전지환이라고 합니다.”그가 미소를 지으며 이어 말했다.“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제가 이모님께 화장 안 한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해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현아 씨 너무 예뻐요.”그는 자신감이 넘치는 듯 주현아를 향해 눈을 깜빡이며 말을 건넸다.“예쁜 여자들은 많이 봐왔지만 메이크업을 지우고 난 뒤에는 다들 별로더라고요. 그런 여자들은 너무 가식적이에요. 저는 당신이야말로 진실한 사람 같아요.”“...”주현아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제발, 그런 생각은 생각으로만 남겨두세요. 굳이 저한테 알릴 필요 없으세요.주현아는 이런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못해 대답했다.“아. 고마워요.”“천만의 말씀.”둘의 대화를 듣고 서로 호감이 있다고 헛다리를 짚은 둘째 이모는 신이 나서 장은숙을 끌고 와 앉아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주현아가 소파에 앉자 전지환이라는 사람도 그녀의 곁에 앉았다.거리가 가까워지자 주현아는 불편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이게 무슨?첫 만남에 이렇게 가까이 앉는다고?주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둘째 이모가 다시 앉으라며 내리누르는 바람에 속수무책으로 털썩 앉았다.“같이 앉아서 얘기 좀 해야 더 빨리 친해지지. 지환아, 네 직업에 관해 얘기 좀 해보렴.”“네.”남성은 주현아의 곁에서 으스대며 자신의 직업에 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의 허풍은 끝도 모르고 계속되었다.가까이 앉아 있었으므로 가끔 그가 말할 때 풍겨오는 은은
대표님이 여기엔 왜?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던 주현아는 집을 찾아온 사람이 배주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몸이 얼어붙은 듯했다.그녀는 곰돌이 잠옷을 입은 채로였다. 게다가 밤새 자놓고 아침에 세수도 하지 않았으니 지금쯤이면 기름으로 번들번들할 것이었다.눈곱도 있을 수도?주현아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눈가를 비볐다.다행히 눈곱은 없었다.하지만 주현아는 이 몰골을 보여줄 수 없다고 판단하여 얼른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위층으로 올라가려 했다.그러나 막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장은숙이 배주한을 데리고 들어올 줄이야.“현아야. 대표님 오셨다.”“안녕하세요.”배주한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선을 보러 온 전지환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배주한이 나타난 이후 모두 그에게로 시선이 쏠렸다.끔찍하리만치 잘생긴 얼굴에 강한 카리스마로, 그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전체는 보이지 않는 위압감에 휩싸인 듯했다.이렇게 완벽한 사람인데, 사람들 눈에 안 뜨일 리가 없지.그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어색해진 주현아는 엉겁결에 머리를 긁적였다.왜 또 왔지?게다가 사전에 말도 없이?주현아는 그저 아랫입술을 짓씹다가 다시 제자리에 앉았다.이윽고 배주한이 맞은편 남은 자리에 앉았다.마침 주현아와 마주 보는 자리였으므로 그녀는 머리를 무릎에 파묻어버리고 싶은 지경이었다.올 줄 알았으면 옷도 갈아입고 세수라도 했을 텐데. 지금처럼 거지꼴이진 않을 텐데...“이분이 현아 씨 상사이신가요?”주현아가 마음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그녀 옆에 앉아 있던 전지환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주현아는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이 남자, 배주한과 친해지려는 생각인 건 아니겠지?과연 그녀가 생각을 끝내기도 전에 전지환이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전지환이라고 합니다. 직업은...”그가 긴 회사 이름을 줄줄 말했지만 주현아는 자세히 듣지도 못했다. 그저 배주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가볍게 응하는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다.주현아가 참지 못하고 고
어른들 앞이었기에 망정이었다.친척들이 자리에 있지 않았더라면 주현아는 절대 참지 않고 바로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결정?”베주한의 시선이 마침내 주현아로부터 옆자리 남자에게로 향했다.“당신의 일방적인 결정을 말씀하시느 겁니까?”느리게 또박또박 내뱉는 말은 듣기에 매우 권위 있어 보였다.전지환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옆에 있는 장은숙의 안색이 확실히 좋지 않았다.소개한 사람이 믿을 만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멍청이에 거만한 사람일 줄은 전혀 몰랐다.일방적인 결정이라니?자신이 고대 황제라고 생각하는 건가? 누구를 선택하든지 모두 순순히 시집을 가야 하나?거실의 분위기가 괴이해졌다. 주현아의 친척들도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그중 가장 젊은 사람이 전지환을 바라보며 말했다.“형님, 우리 누나 좋아한다면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해야죠. 혹은 누나 의견을 물어보든가요. 아직 진전도 없는데 일방적인 결정이라니요. 누나한테 물어본 적은 있어요?”그는 주현아의 사촌 동생이었는데 곁에 어른들이 없었으므로 혼내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나 그가 나서자 후배들이 저마다 버튼이 눌린 듯 시동을 걸었다. 친척들은 저마다 나무라기 시작했다.“일방적인 결정이라니. 정말 다른 사람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군요.”“둘째 이모, 소개팅 상대를 대체 어디서 찾은 거예요? 사람이 됨됨이가 별로인 것 같은데.”전지환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나 뭇매를 맞을 줄은 몰랐다. 그는 다소 분노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주씨 가문에서는 손님 접대를 이런 식으로 합니까?”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여 주현아를 바라보았다.“현아 씨, 저는 당신 메이크업을 지운 모습을 봐서 마음에 든다고 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제가 좋아할 이유가 없죠? 그건 그렇다 치고 현아 씨 친척들은 너무한 거 어니에요?”“...”주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저기요. 그게 무슨 소리세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에요? 오징어처럼 생겨서는. 그쪽 얼굴이 우리 언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가 방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누군가 주현아의 팔을 덥석 잡았다.“잠시만요.”차분한 저음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팔이 잡아당겨지는 바람에 주현아는 더 앞으로 걸어갈 수 없었다. 결국 걸음을 멈춘 주현아는 고개조차 돌아보지 않았다.“대표님, 저는 이미 사직한 사람입니다. 만일 절 다시 스카우트하고 싶다면 집에 와서 이렇게 위층까지 따라오는 것이 아니라 정석적인 방법으로 해야죠. 대체 뭐 하시려는 겁니까?”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제가 뭘 하려는 건지는 엊그제 이미 알게 된 것 아니었습니까?”그가 잠시 멈추었다가 이어 말했다.“그게 아니라면, 제가 얼굴을 보고 다시 한번 말하기를 원하는 겁니까?”다급해진 주현아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얼른 대답해 버렸다.“아닙니다.”주현아의 다급한 대답은 오히려 배주한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몇 걸음 그녀를 향해 다가섰다.“왜 이렇게 저항하는 거죠?”참 웃겨. 왜 이렇게 저항하냐니?주현아는 마지못해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세요?”“모릅니다.”“...”“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음?”주현아의 말에 배주한이 인상을 찌푸렸다.“주현아 씨는 대체 어느 별에서 살고 있는 겁니까?”그의 말에 주현아가 문득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직 세수하지 않았음을 의식하고 재빨리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무슨 뜻인지 잘 아시잖아요.”“무슨 뜻인데요?”배주한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주현아를 응시했다.“다 같은 지구에서 살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세상이라니요?”“모른 척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 멍청한 거예요? 전 대표님께서 다 이해하셨을 거로 생각해요. 대표님께서 평소에 만나는 사람들과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아예 다른 세계라고요. 일하는 양도, 스케일도, 가치관도 모두 다르다고요.”배주한은 대답이 없었다.그녀는 배주한이 이미 다 이해했을 거로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말을 얹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배주한의 눈에 비친 주현아의 모습은 화장기 없는 얼굴로 회사에 출근하던 때와 다를 바 없었다.그리고 확실히 그녀의 소개팅 상대의 말대로 민낯도 어여뻤다.“다 들으셨잖아요. 계속 붙잡고 있어도 저는 같은 말밖에 할 수 없어요. 돌아가세요.”“그럼 우리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면, 누가 현아 씨와 같은 세계의 사람입니까? 설마 조금 전의 소개팅 상대입니까?”배주한은 그녀에게 있어 항상 단정하고 엄숙한 상사였다. 그는 누구에게든 웃음기 없는 얼굴로 정색하여 말했다.하여 주현아는 그가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언제나 같은 표정이라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비아냥거리며 기가 찬다는 듯 저를 아니꼽게 바라볼 줄이야.“이번엔 그저 사고였을 뿐이에요. 소개팅은 또 해도 되죠. 맞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배주한이 물었다.“그럼 전 어디가 안 맞는 겁니까?”그가 입술을 짓씹으며 집요하게 주현아를 응시했다.“현아 씨가 생각하는 미래의 배우자와 비교했을 때, 저는 어느 부분이 별로인 겁니까?”주현아가 대답했다.“대표님, 오해하셨어요. 저는 대표님이 별로라고 말한 적은 없어요. 단지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을 뿐. 대표님께서는 돈도 많고 훌륭하신데 제 집안은 가난하잖아요. 우리가 평생 놀지도 먹지도 못하며 모으는 돈이 대표님께는 계약서 한 장의 액수에 불과하잖아요. 맞죠?”“그래서요?”배주한이 무뚝뚝하게 물었다.“이런 것들이 우리가 연애하는 데에 영향을 줍니까? 왜요? 제가 돈이 많아서요?”끊임없이 들어오는 질문에 주현아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그게 저에게 유리한 점 일 줄 알았죠.”배주한이 말을 덧붙였다.주현아는 입술을 말아 물며 반박하지 못했다.맞는 말이다. 돈이 많다는 건 당연히 유리한 점이겠지만 그것이 과하게 많을 때는 오히려 스트레스, 부담이 된다.주현아는 자신을 비웃듯 피식 웃었다.“물론 유리한 점이죠. 만일 제가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면 소비 습관이 대표님과 같겠죠. 그럼 당연히
주현아는 대표인 배주한보다 말발이 현저히 딸리는 사람이었다. 배주한의 몇 마디 물음에 주현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결국 그녀는 논리를 벗어난 말인 줄 알면서도 태연 한 척 대뜸 입을 열었다.“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요.”“저와 함께하면 평범한 삶이 안 되는 겁니까?”배주한이 그녀를 응시하며 말을 덧붙였다.“저와 함께한다면 오히려 다른 선택지가 많아질 뿐입니다.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고, 그것이 지겹다면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도 되죠. 두 가지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데 더 좋은 것 아닙니까?”주현아는 그가 어떻게 자수성가한 건지 확실히 잘 알 수 있었다. 배주한은 임기응변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자신을 과시할 만한 점을 잘 드러내 마음을 사로잡는 데는 뛰어난 사람이었다.주현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배주한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 말했다.“제 말이 틀렸나요? 현아 씨의 인생은 저의 재산 유무에 따라 바뀌지 않아요. 전적으로 주현아 씨의 선택과 계획에 달린 일이죠. 우리는 단지 함께 살게 될 뿐이죠. 그렇지 않나요?”주현아는 더 이상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주현아는 자리에 그대로 서서 배주한이 다가오는 것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그의 특유의 박하향이 코를 감쌌다.“어떤가요? 고려해 보실래요?”주현아는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뒤로 물러설수록 배주한은 더 가까이 다가왔다.마침내 등이 차갑고 단단한 벽에 부딪혀 더 물러설 수 없게 되었을 때야 주현아는 물러서는 것을 그만두었다.그녀는 어리둥절하며 눈앞의 배주한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퇴사 직전까지 상사로 대했던 배주한이 어떻게 갑자기... 자신을 고려해 보겠느냐고는 말까지 하는 걸까.지금 이거 현실이 맞긴 한 걸까?아니면 혹시 퇴사 후에 정신에 이상이 생겨 환각이 생긴 건가?이리저리 생각하던 주현아는 배주한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그... 대표님, 혹시 갑자기 직원을 잃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심지어 이미 결혼해 놓고 밖에서는 상간녀를 두고 연애하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그들 사이에 연인 사이의 감정이란 종래로 없었으며 의리 같은 것도 없었기에 서로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다.하여 그녀는 배주한도 비즈니스로 결혼할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평소에 여자와 잘 어울리지 않는 성격으로 보아 바람을 피우지는 않을 것이며 적어도 결혼에 대해서는 충성할 거로 생각했다.당시 부하로서의 그녀는 배주한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면 자존감이 강한 그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그러나 그 사람이 자신을 좋아할 줄은 몰랐다.“사업 발전에는 확실히 도움이 되겠죠.”배주한이 담담히 말했다.“하지만 전 필요 없어요. 배인그룹은 제가 혼자 일구어낸 회사이기 때문에 어떤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사업 때문에 통혼 같은 건 하지 않아요.”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주현아는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그의 말을 듣고 얼음장처럼 굳었다.“네? 뭐라고요?”배주한이 그녀를 힐끗 보았다.“못 들었어요? 다시 말할까요?”“아, 아니요!”다시 한번 들을 용기는 없었기에 주현아는 거절해 보였다.그녀의 하얀 볼에 핑크빛이 감돌더니 이내 귀와 목까지 빨개졌다.차분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변화에 무딘 그일지라도 주현아가 얼굴을 붉히는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현아 씨 평소에는 카리스마 넘치더니, 고백을 들으면 부끄러워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네요?”그녀 의외의 모습에 배주한은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그동안 상사로만 대하는 사무적인 태도를 보아왔기에 오랫동안 고민했었다.그는 직진남이었지만, 여자와 남자 사이에 설레는 기류나 기묘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면 여자가 저를 남자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혹은 여자가 아직 깨닫지 못했다거나?배주한이 주현아의 이마를 톡 치며 중얼거렸다.“아, 이제 깨달은 거구나.”“뭐라고요? 부끄럽긴 누가요! 저, 전 이만 자러 가야겠어요.”이른 아침부터 맞선인지 뭔지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