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부시혁은 한참이 지나도 윤슬을 붙잡지 않았다.결국 참지 못한 윤슬이 고개를 돌리고 무슨 상황인지 확인했다.뒤에서 여유작작하게 걸어오는 부시혁을 보고 윤슬은 또 화가 났다. 남자는 전혀 윤슬을 붙잡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관광하러 온 것 같았다.만약 사과하고 싶어서 쫓아온 거라면 진작 윤슬을 붙잡았을 것이다. 한참이나 지났는데 뒤에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는 건 사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다.윤슬은 순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사과할 기회를 주려고 일부러 느리게 걸었는데, 다 내 착각이었어! 흥
‘내가 그저 눈치를 줬을 뿐인데, 바로 반응하네.’노부인은 정신을 차린 부시혁이 말로만 윤슬을 달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부시혁은 아예 윤슬을 품에 안았다.‘행동이 말보다 났긴 하지. 역시 늙었어. 생각이 너무 올드해졌네. 그래도 시혁이가 똑똑해서 다행이야.’노부인은 붙어있는 부시혁과 윤슬을 보며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장씨 아주머니는 노부인이 무슨 이유로 웃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노부인이 기뻐하는 걸 보니, 살짝 안심되었다.맞은편의 윤슬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손을 내밀고 부시혁을 밀어내려고 했다
‘좀 더 안고 싶었는데.’“그래, 점심은 준비 다 됐어?”노부인이 허허 웃으며 도우미에게 물었다.도우미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준비됐어요.”“그럼 얼른 차려라. 바로 식탁으로 자리를 옮길 거니까.”노부인이 대답했다.도우미는 짧은 대답과 함께 몸을 돌리고 자리에서 떠났다.장씨 아주머니는 노부인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윤슬아, 가자. 할머니랑 점심 먹으러.”그러자 윤슬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노부인의 다른 팔을 잡았다.그렇게 세 사람은 나란히 안방에서 나와 식당으로 걸어갔다.부시혁은 또 한 번 덩그러니 혼
부시혁이 대답하기도 전에 윤슬이 먼저 손을 들고 말했다.“저요. 저도 볼래요.”‘재원이의 친구가 소성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네.’부시혁은 한시라도 지체할세라 다급하게 손을 든 여자를 한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한번 보지.”“네.”장 비서는 짧은 대답과 함께 주머니에서 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찾아낸 후, 두 사람에게 보여주었다.윤슬과 부시혁은 자세히 보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그리고 윤슬은 장 비서 핸드폰에 들어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확대된 사진이라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부시혁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아마 소성이 내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거나, 어머니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화풀이해 준 게 아닐 거야.’아무래도 이건 때린다고 화가 풀릴 만한 일이 아닌, 목숨이 걸린 원한이었다.그걸 윤슬이 모를 리가 없었다.그렇기에 윤슬이 화풀이해 준 일은 너무 심각한 사건은 아닐 것이다.윤슬은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장 비서를 한번 쳐다보았다.“어제 아침에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다고 한 거, 기억나요? 집에 가서 얘기하자고 했잖아요.”부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기억나.”윤슬은 한숨을 내쉬었다.“하지
“장용이 너한테 알려줬어? 전부?”부시혁이 물었다.하지만 그의 말투에는 확신으로 가득했다.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장 비서한테 시혁 씨의 반응을 말했더니, 많이 걱정하더라고요. 그래서 알려준 거예요. 장 비서도 자기 입장에서 시혁 씨를 위로해도 당신이 듣지 않을 거란 걸 아니까, 저한테 알려준 거예요. 아무래도 제 말은 들을 거 아니에요.”운전석에 앉아있는 장 비서가 너무나도 감동했다.‘윤슬 씨, 정말 좋은 분이야.’이건 장 비서가 입이 가벼워서 자기한테 알려준 게 아니니, 부시혁이 장 비서를 탓하지 않았음에 윤슬
윤슬은 일부러 유치란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그리고 은근슬쩍 운전석 쪽을 쳐다보았다.운전석에 앉아있는 장 비서는, 이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쓴 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윤슬 씨,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했어요. 그땐 윤슬 씨가 꾸민 일인 줄 모르고 그렇게 얘기한 거예요. 알았으면 당연히 그런 말 안 했죠.”‘세상에, 윤슬 씨의 뒤끝도 이렇게 길 줄이야. 확실히 소성을 때린 행동이 유치하다고 했지만, 나중에 잘했다고 칭찬했잖아. 아무래도 소성이 입원한 건 사실이니까.그런데 윤슬 씨가 칭찬을 완전 무시하고 유치하다
“윤슬 씨 말이 맞아요. 만약 하늘이 소성을 좋아한다면 정말 눈이 먼 게 아닌지 의심했을 거예요.”장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물론 아부하는 느낌도 꽤 들었다.그러자 윤슬이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장 비서는 얼른 손을 저었다.“아니에요. 사실을 말한 건데요. 그렇죠, 대표님?”부시혁은 부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윤슬이 표정이 또 살짝 진지해졌다.“시혁 씨, 소성이 어머님의 어떤 유물로 협박한 건지, 알아냈어요?”부시혁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소성한테 물어봤는데, 알려주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