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호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잔을 부딪치고 와인을 쭉 들이켰다.같은 시각, 신씨 가문의 사람들이 집에 도착했다. 왕사모님은 차에서 내린 후 소지민한테 물었다.“지민아, 이태호라는 자를 알고 있어? 그자가 어떻게 용우진 같은 사람을 알게 된 거야? 게다가 용우진이 그를 엄청 존중해주고 있었어.”소지민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그건 저도 모릅니다, 어머님. 수민이 애 아빠가 누군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희도 5년 전에 하현우와 악연을 맺은 이태호가 은재 아빠인 줄 몰랐죠. 게다가 콩밥을 먹은 범죄자라니, 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왕사모님은 눈살을 찌푸린 채 소지민과 신영식을 쳐다봤다.“너희들도 알다시피 법은 약한 자를 상대한 규율이야. 그 당시 이태호가 감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건 그가 돈도 없고 힘도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뜻이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용우진마저 그를 보살펴주고 있다면 이태호는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닐 거야.”신영식은 왕사모님의 말뜻을 알아챘다.“엄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왕사모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신수민을 다시 가문으로 소환해. 세 사람 정도는 우리 가문이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신영식은 반가운 소리에 웃음을 되찾았다.“그럼 예전에 있었던 일을 그냥 넘기겠다는 말씀이세요? 이태호랑 신은재, 신수민 모두 우리 별장에서 살게 해준다고요?”왕사모님이 그를 흘겨봤다.“입 아프게 두 번 말해야겠어?”“할머니, 그건 안 돼요!”그러나 신수민의 사촌 오빠인 신민석이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그 당시에 수민이 때문에 우리 가문이 어떤 모욕을 당했는지 모두 잊으셨어요? 그리고 그 범죄자를 집에 들여다 놓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으면 다시는 신씨 가문에 발을 들일 수 없다고 할머니가 그러셨잖아요!”이에 왕사모님이 눈살을 찌푸렸다.“그건 홧김에 한 소리일 뿐이야. 이미 많
왕사모님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20억이 뭐가 대수야. 우리도 그만한 돈은 있어. 하지만 신수민이 이씨 가문과 혼약을 맺는다면 우리한테 많은 도움이 되겠지.”“맞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소지민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 신수민이 가문에서 쫓겨난 후 가문이 그녀의 카드에 들었던 모든 돈을 회수했었다.소지민, 신영식과 신수연은 신씨 가문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줄곧 신민석의 괴롭힘을 당했었다. 신영식은 능력이 없어 회사의 창고에서 일하고 있었고 월급도 많지 않았다. 게다가 신민석이 갖은 이유로 그의 월급을 깎는 바람에 세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져 갔다. 소지민은 종래로 일해본 적이 없었고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화투를 쳤다. 신수연은 대학에서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도 마음에 드는 직업을 찾지 못했고 웬만한 직업은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예전에 신수민이 회사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었기에 세 사람은 마음 편히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신수민이 쫓겨난 후 세 사람은 수입원을 잃어 생활이 어려워졌고 회사에서 배치한 차도 신민석한테 빼앗겼다. 맨날 남한테 당하다 보니 그들은 항상 억울하고 화가 많았다.하여 소지민은 20억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돈이 손으로 들어온다면 가족이 다시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된다.비록 가문에서 매달 돈을 주지만 몇십만 원에 불과해 세 사람의 지출을 메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신수민이 있을 때 그들은 매달 200만 원씩 받았고 신수민의 월급도 몇백만 원에 달했으니 종래로 돈 걱정을 한 적이 없었다.그러나 왕사모님이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놓았다.“안 돼. 이영호는 인성이 글렀어. 게다가 여자를 너무 좋아해. 아내가 있는 유부남인데도 매일 아가씨랑 술 마시잖아! 하지만 우리가 아직 이태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일단 이태호랑 신수민을 집으로 불러들여.”소지민은 안절부절못했다.“어머님, 용씨 어르신은 그냥 밥 한 번 사준 걸 거예요. 용씨 어르신이 무슨 이유로 갓 출소한 범죄자랑 가까이 지내겠어요?
이에 소지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로지 20억만 바라보고 있던 그녀한테 프로젝트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지민아, 이영호를 거절하라는 말이 아니야. 일단 이태호와 용우진이 어떤 사이인지 살펴보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지 않겠어? 그러면 너도 이태호를 인정해줄 거지? 만약 이태호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면 그때 신수민을 설득해도 늦지 않아. 하지만 신수민이 싫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네, 알겠어요.”소지민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신수연이 뭔가를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애당초 언니가 고집을 부렸던 건 배속에 든 아이 때문이었지 이태호 때문이 아니었어요. 지금 언니를 다시 받아들인다면 분명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거예요. 언니는 효심이 넘치고 또 은재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이태호를 과감히 버릴 수 있을 거예요.”이에 왕사모님이 허허 웃었다.“그건 나중에 생각해야 할 일이야. 두 사람을 갈라놓고 싶다면 나중에 하도록 해. 지금은 이태호가 우리를 도울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이야. 이태호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면 신수민을 이씨 가문에 시집가도록 설득해야지.”신수연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할머니의 주도면밀한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같은 시각, 이태호와 신수민은 식사를 마친 후 은재와 함께 1층으로 내려왔다.“태호야,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용씨 어르신의 얼굴엔 계속 미소가 걸려있었다.“네,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이태호가 답했다.그러나 곁에 있던 신수민이 콧방귀를 뀌었다.“용씨 어르신이 왜 태호 씨 도움이 필요하겠어요? 용씨 어르신한테 누를 끼치지 않아도 다행이죠.”“하하,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태호 군이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용씨 어르신과 용지혜는 곧 차를 타고 떠났다.이태호는 신수민을 데리고 데스크로 향했고 데스크에 있던 미녀한테 물었다.“아가씨, 정희주라는 사람이 돈
“근데 열쇠는 왜 받은 거예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시 돌려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신수민이 눈살을 찌푸렸다.“다시 돌려준다고요? 이미 받았는데 어떻게 돌려줘요? 에이, 어차피 집 한 채에 불과하는데, 그냥 거기서 삽시다. 집도 없는 마당에 마침 잘 됐잖아요. 제 부모님이 사는 곳도 너무 누추해서 얼른 이사해야 하고요.”“집 한 채에 불과하다고요? 그게 말이에요, 방귀에요? 그 집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요? 용안 별장 구역의 집은 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사는 곳이에요! 그곳에 사는 건 부만 아니라 신분도 과시할 수 있다고요!”신수민은 입에 모터 단 듯 말을 이어갔다.“그 별장은 적어도 160억은 넘어요! 게다가 용씨 가문이 산 건 그 구역에서 가장 좋고 큰 별장이에요!”“그래요? 용씨 어르신이 돈 좀 썼네요.”이태호가 감탄했다.“그런데 진짜 안 돌려줄 셈이에요?”별장 한 채를 받기엔 너무 부담스러운 그녀였다.“생각해봐요. 우리한테 선물한 건데 다시 돌려주면 용씨 어르신 체면이 서겠어요? 저도 그렇게 비싼 집인 줄 몰랐어요. 기껏해야 4, 50억하는 줄 알았다고요.”이태호가 쓴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앞으로 용씨 가문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면 돼요. 그리고 제가 용씨 어르신 목숨을 구했는데 이까짓 집 한 채는 아무것도 아니죠!”“알겠어요.”신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받은 열쇠를 다시 돌려주자니 용씨 어르신이 언짢아하실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태호가 용씨 가문을 도울 거라는 말은 믿지 않았다.신수민은 또다시 한참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태호 씨는 너무 충동적인 것 같아요. 하씨 가문한테도 밉보이고 태수 님의 눈엣가시가 되고. 오늘 용씨 어르신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거예요. 앞으로 그놈들이 또 찾아오면 어떡할 거예요? 오늘 밥도 얻어먹고 집도 받았으면 용씨 어르신이은혜를 다 갚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앞으로 위기에 처할 때마다 손 내밀 수는 없잖아요.”그러나 이태호는 태연하게 웃음을 보였다.“걱정하지 마
“여기 옷은 너무 비싸네요. 다른 데로 가죠.”신수민은 쇼핑몰로 들어서는 이태호를 붙잡았다. 그러나 이태호는 어깨에 멘 봉지를 두드리며 말했다.“이 안에 2억 6천 만 원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에요?”“돈이 있다고 흥청망청 쓸 거예요?”이태호가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뭘 입든 상관없지만 아내와 아이는 챙겨야 하잖아요. 오늘은 그냥 선물 받는다 생각하고 마음껏 사요.”신수민의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사실 마음은 따뜻했다. 지난 5년 동안 그녀의 생활은 하나도 쉬운 게 없었다. 첫 2, 3년 동안은 아이를 업고 남의 눈치를 받으며 배달을 뛰었었다. 지금은 아이가 조금 크고 말도 잘 들어 집에 혼자 두어도 알아서 잘 논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수민은 빠듯한 생활에 숨돌릴 틈이 없었다. 은재도 이제 유치원 다닐 나이가 되었고 유치원생을 볼 때마다 은재는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과거 아직 5년이나 더 기다려야 이태호가 나온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신수민은 포기하고 싶었었다. 차라리 부잣집 아들을 만나 결혼할까 고민도 심각하게 해봤었다. 비록 신세가 몰락하여도 그녀를 따르는 부잣집 도련님은 적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녀는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살았지만 은재가 고생하는 건 죽어도 싫었다. 이태호가 출소하면 은재가 9살이 될 텐데 그때까지 은재를 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이태호가 5년이나 빨리 출소해 한숨을 돌렸다. 그녀는 단지 이태호가 새사람이 되어 은재의 좋은 아빠가 되어주기만을 바랐다.“맞아요. 당신은 우리한테 해줘야 할 게 많아요. 흥, 그럼 오늘은 마음 놓고 마음대로 고를게요. 5년 동안 사지 못한 옷을 오늘 다 사버릴 거예요!”이태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걱정하지 마요, 앞으론 내가 당신과 은재를 보호해줄게요.”이태호의 미소를 보며 오랜만에 안정감이란 걸 느껴본 신수민은 마음이 흔들렸다.“보, 보호할 필요 없어요.”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얼른 말을 돌렸다.“절 쫓아다니는 귀공자들이 적지 않아요. 제가 당신을
“괜찮아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대로 사요!”이태호가 미소를 지었다.“엄마, 아빠, 빨리 와요!”은재는 앞에서 뛰어다니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은재가 이렇게 기뻐하는 걸 오랜만에 보네요.”신수민은 아이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태까지 버텨온 것도 딸을 위해서였으니 말이다.“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니까 그런 거죠.”이태호의 입이 귀에 걸렸다.“언제 사랑했다고 그래요?”신수민은 쑥스러운 듯 발길을 재촉했다.“2층은 가지 마요.”신수민이 2층으로 올라가려는 이태호를 말렸다.“왜 그래요?”이태호가 눈살을 찌푸렸다.“여성 브랜드는 2층에 있다고 쓰여 있는데?”“1층 옷이 좀 더 싸요. 2층은 전부 유명 브랜드라 옷 한 벌에 몇백 만원은 할 거예요.”그러나 이태호는 봉지를 메고 다른 손으로 은재를 안으며 엘리베이터로 올라탔다.“비싼 옷을 사야 돈을 좀 쓰죠.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예쁜데 좋은 옷 좀 사면 어때요?”“참...”신수민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 비록 그가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아까웠지만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그래, 오늘 한번 큰돈 쓰지, 뭐!”그녀는 찡긋 웃으며 2층으로 따라 올라갔다.2층에 도착한 후 이태호는 은재를 내려주고 아이의 손을 잡 채 매장으로 향했다.“여기 괜찮은데요?”이태호는 비싼 옷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얼른 가보죠!”신수민은 뒤를 따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의 그녀는 명품 브랜드 옷을 꿈도 꾸지 못한다.“안녕하세요.”여성 직원이 이태호 가족을 보며 인사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태호의 옷차림과 그의 손에 들린 봉지를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이태호는 직원의 표정을 보고 불쾌함을 드러냈다.“왜요? 손님을 반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여성 직원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당연하죠. 환영합니다. 손님이 곧 왕이거든요.”그러나 그녀는 속으로 이태호를 깔보고 있었다. 그가 멋도 모르고 이곳에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옷 가격을 보고 깜
여성 직원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다른 젊은 직원을 불렀다.“얘, 너 이리 와봐. 이 손님들 좀 보살펴줘. 실습하러 왔으니까 제대로 해야지.”“네, 알겠습니다!”젊은 여성 직원은 이태호와 신수민을 보며 말했다.“어서 오세요, 손님. 여기 있는 건 모두 새로 나온 옷들입니다. 아내 분이 몸매가 좋고 우아하니까 잘 어울리실 거예요.”한편, 방금 그 여성 직원은 구석으로 가 다른 직원들과 수군수군 얘기를 나눴다.“인턴이라 그런지 아직 눈치가 없어. 저런 손님도 덥석 받고 말이야. 헛수고할 게 뻔한데.”“딱 봐도 이곳에 올 사람들이 아닌데. 너도 참 나빴어. 저런 손님들은 항상 쟤한테 넘겨주잖아.”“칫, 눈치가 없으니까 그렇지. 나 같았으면 저런 손님들은 별로 신경 쓰지도 않았을 거야. 차라리 그냥 내쫓는 게 더 빠를걸. 쟤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그녀들은 비록 작은 소리로 속닥거리고 있었지만 모든 대화가 이태호의 귀로 흘러 들어갔다.“엄마, 이거 예뻐요! 이거 입어봐요!”은재가 하얀 치마를 잡고 천진난만하게 웃었다.이 모습을 본 여성 직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인턴을 나무랐다.“야!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이가 옷을 만지려고 하면 얼른 말려야지! 때 탄 옷을 사지 않는다면 네가 대신 살 거야?”인턴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아이 손이 엄청 깨끗해요.”여성 직원은 어이가 없는 듯 피식 웃었다.그녀의 고함에 깜짝 놀란 은재는 얼른 이태호 뒤로 숨었다. 이에 이태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지금 손님한테 뭐 하는 겁니까? 제가 불만 신고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요?”신고라는 말에 여성 직원이 흠칫 놀랐다.“죄송해요. 따님한테 그러는 게 아니라 새로 온 인턴을 나무라고 있었던 거예요. 다름이 아니라 이 옷이 너무 비싸서 때가 타면 다른 손님들이 사지 않거든요.”“비켜요.”“네.”여성 직원은 언짢았지만 순순히 자리를 떴다.이태호는 몸을 쪼그리며 은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괜찮아. 무서워할 필요 없어. 은재 손이 얼마나
몇 년 동안 신수민을 바라봤던 이영호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애당초 신수민의 부모님도 허락한 혼인을 신수민이 자기 발로 차버렸었다. 그러니 이영호는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신수민은 하얀 치마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선녀 같은 그녀의 모습에 이태호는 잠시 넋이 나갔다. 그녀는 도도한 여신의 아우라를 숨길 수가 없었다.“어때요? 예뻐요?”신수민은 자기를 뚫어져라 보는 이태호 때문에 얼굴이 빨개졌다.“너무 예뻐요. 이 치마가 수민 씨를 위해 만든 것처럼 너무 잘 어울려요!”이때, 이태호의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영호 씨, 여긴 어떻게?”갑작스러운 이영호의 등장에 신수민이 적잖게 놀랐다. 이류 가문의 도련님인 그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신씨 가문마저 그 앞에서 덜덜 떠니 말이다.이에 이태호가 몸을 돌려 이영호를 봤다.“당신이 이영호군요. 결혼 예물로 20억이라니, 참으로 대단한걸요?”이영호의 표정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졌다.“수민아, 이놈 누구야? 설마 남자친구야? 날 버렸으면 적어도 부잣집 놈이랑 만나야지, 이 거렁뱅이 같은 놈은 뭐야! 이건 날 모욕하는 거나 다름이 없어!”“거렁뱅이?”이태호는 두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왜? 치게? 내가 누군지 알지? 우리가 태생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이영호는 고개를 들고 이태호를 깔보듯 내려다봤다. 그의 뒤에 있던 4명의 보디가드들이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태호 씨, 참아요!”잔뜩 화가 난 이태호를 보며 신수민이 깜짝 놀랐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그녀는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태호는 이를 꽉 깨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내 말에 순종하겠다고 맹세하는 게 아니었다. 안 그러면 눈앞의 사람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신수민의 말 대로 이태호는 가만히 있었다.“걱정하지 마요. 안 싸워요.”이영호는 손을 맞잡고 있는 두 사람을 보고 눈알이 뒤집어질 듯했다.“야, 얼른 손 놓지 못해?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