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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녀의 장점

스미스가 식구를 데리고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권재민은 미리 5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들 일행이 도착하자 그는 자연스레 그들을 호텔로 안내했다.

“방은 예약해 뒀으니까 휴식 잘해. 시차 잘 적응하고.”

“시차가 뭔 대수라고. 나도 매일이다시피 여기저기 출장 다니는 몸이라 이미 습관 됐어.”

권재민의 걱정과 달리 스미스는 오히려 손을 저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도 먼저 들어가서 짐 정리해야 하잖아. 얼른 가 봐.”

계속되는 권재민의 말에 스미스는 부인 다이애나의 의견을 물은 다음 식구들을 데리고 호텔 방으로 향했다.

그들의 편리를 위해 권재민은 저녁을 먹을 장소를 호텔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그것도 모자라 레스토랑이 있는 2층 전체를 빌리기까지 했다.

그의 통 큰 행동에 강윤아는 혀를 내둘렀지만 돈이 그녀 주머니에서 나가는 것도 아니기에 그저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저녁 시간이 되자 강윤아와 은찬은 권재민과 함께 스미스네 식구를 맞이했다.

아래층으로 향하는 동안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 세 무리로 나뉘어졌다. 권재민과 스미스는 비즈니스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았고 강윤아는 다이애나와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받았고 은찬은 이제 안 지 얼마 되지 않는 엘리사와 어느새 친해졌는지 둘만의 세상에 빠져 저들끼리 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아들이 곁에 있지 않는 게 습관이 되지 않아 두리번 거리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강윤아는 엘리사가 자기 아들 얼굴에 입을 맞추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놀란 듯 잠시 멍하니 있는 그때, 다이애나도 아이들을 발견했는지 살짝 웃음을 터뜨리며 강윤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윤아 씨 아들 정말 귀엽네요. 우리 엘리사가 이렇게 남한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닌데.”

“은찬이 쟤는 예쁜 여자애들하고만 놀아요. 저것 봐요, 엘리사한테만은 미소를 잃지 않는 거.”

강윤아는 피식 웃으며 마치 화라도 난 듯 푸념했다.

두 사람이 입을 가리며 웃고 있던 그때, 마침 고개를 돌린 권재민과 스미스는 사이좋은 네 사람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민, 역시 우리가 오랜 친구라 그런지 부인과 아이들마저 사이가 저렇게 좋네.”

“그러게.”

권재민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런 분위기가 무척 만족스러웠다. 따라서 강윤아를 자기 짝으로 선택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여자가 모이니 당연히 패션에 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었다.

“참, 윤아 씨. 전에 파리 패션위크 봤어요?”

일전에 해외에 있을 때, 생활이 점점 좋아진 뒤로 가윤아도 가끔 패션 쪽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다이애나의 갑작스러운 물음에도 그녀는 예전의 기억을 바로 떠올렸다.

“네, 봤어요. 모니카라는 모델이 입었던 옷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게다가 모델의 분위기도 옷과 잘 맞는 것 같았고.”

그녀의 말에 다이애나는 눈을 반짝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저도 그 옷 마음에 들어서 패션위크 끝나자마자 바로 구매했는데. 이번에 마침 가져왔는데 윤아 씨도 그 옷 마음에 든다면 제가 선물로 드릴게요.”

다이애나가 말하지 않아도 강윤아는 그 옷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었다. 때문에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귀한 선물은 받을 수 없어요. 게다가 다이애나 씨도 그 옷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제가 받을 수 있겠어요?”

“에이, 윤아 씨 너무 내외하신다. 제가 우리 그이랑 여기 있는 동안 두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그냥 받아요. 게다가 저한테 마침 두 벌 있어요. 전에 누구 줄지 고민했었는데 마침 잘됐죠.”

다이애나의 거절하기 어려운 말에 강윤아는 권재민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그의 담담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이애나 부인의 호의가 있는데 거절하지 말고 받아요.”

“그……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고마워요, 다이애나 씨.”

돌아가는 상황에 거절하기 어려워진 강윤아는 끝내 받아들였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대화를 이어 나가던 그때.

“저 얼마 전에 자원봉사자로 아프리카에 다녀왔었거든요.”

다이애나가 최근 참석한 공익 프로그램에 대해 말을 꺼냈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 바쁘게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는지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하, 그런데 그곳 생활 환경이 정말 열악하더라고요…… 그렇게 어린애들이 가난과 병마와 싸우고 있는 걸 보니 어찌나 마음이 아프던지.”

“하긴, 이 세상에는 늘 불행에 허덕이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죠. 얼마 전 H 국에서도 역병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잖아요.”

안타까움을 표현하며 다이애나의 말에 호응하고 있던 강윤아는 그녀가 아프리카에서 겪은 일들을 풀어내는 걸 한참 듣더니 감탄을 뱉어냈다.

“다이애나 씨는 어쩜 마음씨도 외모만큼이나 아름다워요. 다이애나 씨 같은 분을 아내로 맞이한 스미스 씨는 참 좋겠네요.”

“뭘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것뿐이죠.”

“기회가 된다면 저도 다이애나 씨랑 같이 자원봉사자로서 좋은 일을 하고 싶네요.”

싱긋 웃는 강윤아의 눈빛에서 진심이 느껴졌는지 다이애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 정말 적응하기 어려워요. 가고 싶으면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해야 할 걸요. 그런데 기회만 된다면 저도 윤아 씨 같은 친구가 한 명 같이 가주면 좋겠네요.”

한참을 말하던 그녀는 이상야릇한눈빛을 보내더니 윙크까지 해대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남편분이 윤아 씨 고생할까 봐 마음 아파 안 보내는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부인하는 말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붉게 달아올랐다.

그 시각, 권재민은 여전히 스미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등 뒤의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늘 강윤아의 활약에 아주 만족했다. 본인이 갖고 있는 소양을 떠나서 그가 요구했던 걸 제대로 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게 보였고 당당한 태도 덕에 탄로 날 걱정도 할 필요가 없었다.

‘보아하니 이 여자의 장점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많네.’

한참 뒤, 레스토랑에 도착한 그들은 이내 식탁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푸짐하게 차려진 요리를 본 다이애나의 표정에는 오히려 실망이 언뜻 지나갔다.

그러한 정서는 마침 강윤아의 레이다에 걸렸다.

“혹시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세요?”

“아니에요.”

다이애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무슨 음식이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요. 그런데 두부조림이 엄청 맛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없는 것 같아 조금 아쉬워서요.”

그 말을 들은 권재민은 곧바로 호텔 측 주방장에게 두부조림을 만들어 오라고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건 매니저의 사과였다.

“고객님…… 정말 죄송하지만 한식을 책임지신 셰프님이 오늘 마침 안 계세요. 때문에 바로 해드리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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