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음에 말을 달려 입궐하니 해는 이미 뉘엿뉘엿 기울어 비단 같은 채색 구름만 수놓고 있었다. 바람이 심해 거리에는 바람소리만 들려왔다. 부자는 말 한 필을 같이 탔고 눈 늑대는 그 뒤를 따르는데 만두가 앞에 앉아 뒤에 채찍을 들고 있는 아빠에게 물었다. “스승님은 왜 다치셨어요? 누가 해치려고 한 건가요? 제가 주재상의 원수를 갚아야 하는데 말이예요.”“ㄱ그냥 실수로 부딪혀서 다치신 거야.” 우문호가 아들의 말에 답했다.만두가 ‘아’ 하더니, “나이가 많은 것도 영 골치네요. 걷는 게 마음 같지 않으니까요. 상선도 잘 못 걷던데 나중에 제가 경호에서 돌아오는 날엔 상선에게 바퀴 의자를 사줘야겠어요. 밀고 다닐 수 있게.” 라고 말했다. “바퀴 의자? 상선한테는 이미 하나가 있지 않느냐?”“그건 불편해요. 누가 밀어줘야 하잖아요. 제가 사려는 건 자기가 밀어서 갈 수 있는 거예요. 상선은 다른 사람에게 시중을 받는 거 싫어해요. 나이 든 사람의 마음과 건강 상태에 관심을 좀 가시세요, 아버지. 되는 대로 대충대충 주지 마시고. 주는 건 쉽지만 받는 사람의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해야 되는 거라고요. 아니면 사는 게 얼마나 재미없겠어요.”우문호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채로 공허한 말투로 말했다. “스스로 밀고 다니는 바퀴 의자가 편하다는 걸 아빠가 어떻게 알아? 타 본 적도 없는데.”“그럼 아버지가 상선이라고 상상해보세요. 바퀴 의자에 앉아서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누군가 불러 밀어달라고 해야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아버지는 너무 꼼꼼하지 못하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다 맞으니까 고치셔야 돼요.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느낄 거예요.”아들의 가르침을 받고 보니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그래, 너 잘 났다. 어쩐지 상선이 널 예뻐 해서 맨날 군것질을 챙겨 뒀구나.” 자신의 떡들과 쌍둥이의 성격이 크게 삐뚤어질 리 없다고 믿는 중요
태상황이 바로 창고에서 고구려에서 보내온 인삼을 가져오라는 명을 내리자, 상자에 담긴 귀한 인삼이 줄줄이 들어왔다. 인삼을 건곤전에 가져올 때 할머니가 한 뿌리 씩 살펴보는데 제일 큰 게 대략 반 근(250g)정도로 심지어 어떤 것은 아기 모양인 것도 있어 향이 상당했다. 원판이 그 인삼을 들고 할머니한테 물었다. “이게 보기엔 비슷하죠?”할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크게 자랐지만 햇수가 천년에 못 미쳐요. 백년삼 정도네요.”“그럼 어떻게 구별합니까?” 소요공이 묻자 할머니가 답했다. “제가 전에 천년 인삼 한 뿌리를 본 적이 있는데, 열자마자 인삼 향이 확 퍼지면서 향이 진하기가 이를 데 없고 사람 모양처럼 생겼습니다. 색은 거의 어두운 금색인데 무늬가 조밀하고 인삼 잔뿌리가 딱딱하며 매우 휘귀합니다. 하지만 보다시피 이 인삼의 잔뿌리는 다소 가늘고 부드러운 것으로 보아 백 년 남짓 된 것 같습니다.”원판은 식견이 풍부해서, 인삼의 좋고 나쁨을 감정하는 건 그도 가능했다. 하지만 몇 년 된 인삼인지 특히 정말 천년이 된 것인지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았다.그래서 내의원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좋은 삼을 적지 않게 봐 왔고 천년 인삼이라는 것도 많았지만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꼭 천년 인삼이 아니면 안되는 겁니까?” 소요공이 물었다.“설사 천년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훨씬 더 오래된 인삼이어야 이 처방에…….” 할머니가 다시 자세히 보더니 다소 주저하며 말을 이었다. “이 처방의 일부 약은 상처에 혈액 순환을 돕고 어혈을 제거하는 것이고 일부는 심맥을 강하게 하는 것, 또다른 일부는 독을 해독하는 것이나 모든 약의 3할은 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삼은 양기를 북돋아줘서 햇수가 오래된 인삼을 쓸수록 약의 부작용을 최대한 낮춰 주지요.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치료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겁니다.”태상황이 할머니의 말을 듣고 다급한 마음에 원판에게 물었다. “다른 건 더 없나?”원판이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을 이었다. “태상황 폐하께 아룁
호비는 자금단때문에 열째에게 계속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열째를 꾸짖었을 때 뛰쳐나가 고자질을 하는 게 지금 명원제가 곁에 있는 김에 몇 마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열째는 서당에 보내 스승님께 지도를 받도록 했다.명원제도 열째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호비는 건곤전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고 있었지만, 곁에 있는 명원제가 자꾸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 것이 주재상의 용태가 정말 좋지 않구나 생각하며 두려워 했다.자금단은 원래 주재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으나 호비 손에서 없어지고 말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기에 약을 먹은 뒤에도 복통이 심해진 것이다.그때 목여태감이 와서 태상황의 뜻을 전달했다.명원제는 호비의 복통을 걱정해서 목여태감의 보고를 듣다가 어쩌면 주재상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얼른 나섰다. “그럼 뭘 기다리느냐. 어서 가서……”명원제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호비가 명원제의 손등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그래. 뭘 기다리고 있어. 창고에 가서 인삼을 가져다 목여태감에게 주거라. 더 좋은 약재가 있으면 쓰시도록 같이 보내고.”목여태감은 한쪽 무릎을 꿇고 한동안 답하지 못했다. 목여태감은 명원제의 시중을 든 지 오래되었기에 명원제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모두 읽어낼 수 있었지만 황제는 목여태감에게 황귀비 쪽에서 가져가라고 하고 있었다.명원제는 얼른 자세를 바꿔 말했다. “그럼 채명전에서 우선 가져가게.”목여태감이 속으로 안도하하며 답했다. “예!”목여태감이 물러나 채명전 궁인과 같이 창고에 인삼을 가지러 나갔다.명원제는 호비 안색이 복잡한 것을 보고 말했다. “몸이 이렇게나 안 좋은데 그 인삼은 만약을 위해 남겨두는 편이 낫지 않을까?”호비는 지금 총애를 받는 기쁨은 없고 오히려 복잡한 감정만 생긴 상태였다. “폐하 그럼 황귀비 마마는요? 황귀비 마마는 저보다 나이가 많은 데다 첫아이로 출산할 때 인삼이 더욱 필요할 겁니다.”“그래, 황귀비도 필요하지!” 명원제는 잠시 무엇인가
호비가 슬그머니 명원제의 손을 놓았다. 마음 속에 한줄기 실망이 싹 튼 것이다. 자신은 그녀를 수년동안 사랑해 왔고 심지어 생사를 함께 하겠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몇 년간 궁에 있으면서 황귀비가 자신을 세심하게 돌봐주는 것이 마치 엄마처럼 느껴졌다. 이런 비유가 맞지 않겠지만 호비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였기에고 황귀비를 자신의 어머니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황귀비와의 감정에 각별히 신경을 썼으며 단순히 신경을 쓰는 정도가 아닌 황제의 사랑에 못지 않았다. 호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일단 떠오르는 사람이 황제가 아닌 바로 황귀비일 정도였다.황귀비는 호비에게 안정감을 주는 측면에서는 황제보다 한참 위에 있었다. 호비의 사랑은 처음부터 비천해서 입궁할 때 황제 주변에 다른 여인들이 있을 것을 알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지금의 편애는 호비 마음에 자괴감을 들게 했다. 호비의 사랑은 후궁의 수많은 마마들의 고독과 바꿔 이룬 것이기 때문이었다.특히 거기엔 황귀비가 있었다.호비가 입궁하기 전에 황제는 황귀비를 좋아했었다. 황귀비는 오래 자식이 없었지만 계속 총애가 식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하지만 지금 황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황귀비의 이익을 희생할 것을 택했다. 자신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인데 말이다.호비는 원래 기뻐야만 했지만 마음이 스산했다.인삼을 보내자 할머니가 보고 비로소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삼은 가능할 게 틀림없습니다. 시도해보지요.”내의원 약방에서는 이미 할머니를 도와 필요한 약을 다 준비해두고 눈늑대봉의 복수초를 기다리고 있었다.원경릉이 계속 주재상에게 약을 쓰는데 약 상자 안에 옥시토신때문에 마음이 여전히 불안했다. 누군가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자신에게 문제가 생기는 건가 두렵기도 했다.약 상자가 자신의 제어 하에 있지만 본인도 알지 못하는 잠재의식이 주변의 위기를 감지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런 감각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다른 건 소홀하기 쉬운 원경릉 성격에 약 상자가 원경릉
원경릉은 희상궁을 좀 재우고 싶었으나, 희상궁은 기어코 주재상 곁에서 떠나지 않고 그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아뇨, 전 여기서 이 분을 지킬 겁니다.”불길한 말은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곁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잠깐이라도 그게 어딘지 싶었다. 희상궁은 과거에 함부로 자신을 낮추고 하찮게 취급했던 일을 이 순간 진정으로 후회했다. 자신은 노비 신분이니 주재상에게 격이 맞지 않다고 우기다가 결국 일생을 잘못 살고 말았다.원경릉은 외전으로 나가 눕더니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취해도 머리는 여전히 쉬지 않고 돌았다.주재상이 이번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태상황과 소요공, 그리고 희상궁은 어떻게 할까? 원경릉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뒷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칼로 찔러지는 것만 같았다.그동안 수많은 비바람을 다 견뎌온 주재상이, 나라 안팎이 안정되어 일신의 무거운 짐을 벗을 찰나에 고작 도시 몇 개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하다니! 원경릉은 그날 받지 말았어야 했다. 사양 했어야 했다.죄책감, 걱정, 그리고 초조함에 괴로움이 겹쳐 불에 바짝 졸여지는 기분이 들었다. 뱃속에 열기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아이도 느꼈을 지도 모른다. 아내를 아는데 남편만한 사람 없다고 원경릉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을 줄 알고 우문호가 오래전부터 와서 함께 있어 주었다.원경릉이 눈을 뜨자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지만 모두가 보고 있어서 원경릉이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알아챌 것이기 때문에 감히 소리내 울지도 못했다.우문호가 손가락을 뻗어 원경릉의 눈물을 닦아주고 이마에 뽀뽀하고는 이마와 이마를 맞대고 목소리를 낮추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지 마, 금방 좋아질 거야.”원경릉은 목이 메어 우문호의 귓가에 울먹이며 말했다. “절대 돌아가시게 하면 안돼. 나라를 위해서도 우리집을 위해서도 안돼... 우리 떡들을 임신하고 정말 죽고 싶었을 때 주재상께서 약을 보내주셔서 고난의 입덧을 넘길 수 있었어.
우문호는 매우 심란했다. 경호 길은 아직 조정이 끝나지 않은 상태로, 경호에 뛰어내리면 어떤 국면을 맞이하게 될지 둘 다 짐작할 수 없었다.하지만 원경릉 말 대로 주재상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황조부는 살아가지 못할 게 틀림없다.태산이 무너지는데 아바마마라고 버티실 수 있을까? 심지어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인데 말이다. 이런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더는 깊이 생각을 진전시킬 수 없었다.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만약 시공간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자기는 용태후께 가서 우리를 구해주시라고 해줘. 우리 만두는 우리가 집에 도착하지 못한 걸 알 거야. 지금 용태후를 찾아가 우리를 저쪽으로 데려다 달라고 할 시간이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 약을 드신 후에도 효과가 없다면 바로 우리를 경호로 데려가줘. 시간이 없어.”우문호는 원경릉을 위험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우문호의 결정에 따라 어쩌면 원경릉과 뱃속의 자신의 아이까지 잃을 수도 있다.“자기야, 내 말을 듣고 망설일 필요 없어. 옳은 일을 한다는 걸 우리는 잘 알잖아. 주재상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는 절대 안돼. 주재상의 목숨은 다른 세사람의 목숨과 묶여 있어. 최악의 경우라 해도 우리는 다른 시공간에서 살아있어. 우리는 죽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자기는 우리를 찾을 기회가 있잖아. 이렇게 해야 한줄기 희망을 품고 건곤전의 저들이 계속 기다릴 수 있어.” 원경릉이 우문호의 손을 꽉 잡고 다시 한번 간절히 애원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주재상이 다른 세 사람의 목숨과 엮여 있듯이 당신 모녀도 우리 부자 몇 명의 목숨이랑 엮여 있다는 걸 모르겠는가?“일단 이 얘기는 하지 말자. 아직 약을 드신 것도 아니니까. 약을 드시고도 효과가 없으면 그때 다시 얘기하기로 하자.” 우문호는 더는 얘기를 이어갈 수 없었다. 원경릉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만으로 앞으로 나날이 전부 암흑처럼 깜깜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원경릉이 두 손으로 우문호의 목을
이 말을 듣고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주재상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주재상은 그렇게 해 질 무렵 또 한번 깨서 태상황을 불렀다. 희상궁이 역시 전처럼 대답하자 주재상이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쓰며 태상황을 찾으려 했으나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를 본 태상황이 버둥거리자 우문호가 태상황을 일으켜 주재상의 침대 앞으로 데려갔다. 태상황이 주재상의 손을 잡고 가슴이 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 여기 있네.”그러자 주재상의 두 눈은 몽롱한듯 다시 감겼는데 입꼬리가 부드러워진 듯 했다. 태상황이 고개를 천천히 위로 들어 올리는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비록 희상궁이 처음에 태상황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주재상은 완전히 믿지 못한 표정으로 있다가 태상황 본인의 목소리를 직접 듣자 비로소 믿는 듯 했다. 우문호와 원경릉이 곁에 서 있었는데 콧잔등이 시큰해진 것 같았다. 도대체 서로 함께 어떤 시간을 보냈길래 지금 이토록 손을 놓지 않는 서로를 꽉 붙드는 건지 놀랍기도 했다.우문호는 원경릉의 말을 확신했다. 주재상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태상황은 정말 정말 살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들 셋은 예전부터 한 목숨이었다.주재상의 상황이 비교적 안정적이게 되자 태상황은 우문호에게 그만 일 하러 가라고 쫓아냈다.하지만 원경릉은 쉽게 떠나지 못하고 할머니와 같이 건곤전을 지켰다.태상황의 기분은 아직도 안 좋았는데, 주재상에 대한 걱정 보다 명원제에 대한 실망이 컸다.할머니가 태상황을 부축해 마당으로 나가 좀 걸으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가 오랜 시간 심리적 억압 하에 놓여 있었기에 이렇게 얘기라도 나누지 않으면 특히 태상황의 나이엔 상당히 위험했다.…..채명전.호비는 약을 마신 뒤 장의자에서 휴식을 취하려고 했지만 자금단 생각을 도무지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진귀한 약을 이렇게 허망하게 잃어버렸다 생각하니 속상했다.그래서 궁인들에게 분부해 밖에 떨어져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찾아보도록 명했다. 열째가 채명전 안에서 만 논게 아닌 밖으로 나갈 수도
호비는 배가 아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궁인들은 애가 타서 소리를 질렀고, 호비는 아픔이 점점 퍼져 천천히 숨을 토했는데, 눈 앞이 오히려 더 캄캄해 지더니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편, 건곤전에 있던 어의 두명이 갑자기 채명전으로 갔다. 아무 말 없었지만 원경릉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약 상자에 옥시토신이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난다는 가능성은 없으니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 임신한 여자들은 아직 예정일이 되지 않았으므로 지금 출산한다면 조산이다. 아이가 살지 못할 것이다. 어의가 와서 황귀비에게 보고하니 황귀비도 얼른 일어나 약간 당황한 기색으로 자리를 떴다. 그러자 원경릉이 따라 나와 황귀비에 물었다. “무슨 일이죠?”황귀비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채명전 사람이 와서 그러는데, 열째가 호비 배에 박치기를 해서 복통이 심각하대. 그래서 호비한테 한 번 가 보려고. 넌 나오지 말고 여기서 재상을 돌봐줘. 만약 정말 위험한 상황이면 폐하께서 널 부르실 테니까.”주재상도 수액을 걸어 놓아 금방 약을 바꿔줘야 해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불러 주세요.”“알겠다.” 황귀비가 말을 마치고는 재빨리 무거운 몸을 이끌고 채명전으로 갔다.명원제는 어서방에서 회의를 하다가 호비가 배가 아파서 혼절했다는 말에 얼른 채명전으로 왔다. 열째가 호비에게 박치기해서 이렇게 됐다는 말을 들은 명원제는 벽력같이 화를 내며 호비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을 전부 끌어내 곤장을 마구 쳐댔다. 그리고 호비 곁에 앉아 위로하며 손을 잡았다. 잠시 후에 호비가 깨어났으나 고통을 참을 수 없었고 출혈도 심했다. 급히 어의를 불러 진맥하자 어의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명원제에게 어서 쑥을 태워 보태약의 (保胎藥: 유산을 방지하는 약) 양을 늘려야 한다고 전했다. “어서 쑥을 태우거라!” 명원제가 바로 명을 내렸다.명원제의 커다란 손이 식은땀이 흐르는 호비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